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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아이, 늘 거울 앞에 붙어 있어요. (上)
우리 아이, 민지는 초등학교 4학년인데 외모에 관심이 너무 많아요. 손바닥만한 거울을 매일 들고 다니고, 복합 화장품 매장에서 샘플 화장품을 발라보면서 화장하는 데 열심을 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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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팁: 짧게 쓰고 싶을수록 오래 생각하라
인간은 좀처럼 권태를 견디지 못하는 존재라고 합니다. 그래서 바쁜 와중에도 조금만 빈틈이 생기면 그냥 쉬지 못하고 또 뭔가를 하려 한다죠. 헬스클럽에 가면 러닝머신 위를 달리며 영화를 보거나 자전거를 타면서 책을 읽는 ‘멀티태스킹 족’들을 볼 수 있는 것처럼 말이죠. 예전엔 버스나 지하철에서 책이나 신문을 꺼내 읽었지만 지금은 모두들 스마트폰을 봅니다. 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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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팁: 계속 생각하고 있으면 그가 온다
세상을 살다 보면 마음대로 되지 않는 일들이 참 많습니다. 거래처 사람이 갑질을 하는 거야 늘 있는 일이다 보니 그런다 하지만 직장 안에서도 같은 편끼리 의견이 갈려 갈등을 빚을 때는 정말 왜 이러고 사나 싶습니다. 저는 광고회사를 오래 다녔는데 일의 특성상 늘 새로운 아이디어를 짜내느라 괴로워해야 했고 그 과정에서 자존심이 상하거나 불합리한 일을 당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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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 팁: 글에게도 기댈 언덕이 필요하다
20세기 최고의 듀오 사이먼 앤 가펑클의 폴 사이먼이 어느 해 그래미 어워드에서 ‘올해의 앨범상’을 받은 직후 했던 수상 연설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상을 받고 여러 관계자들에게 감사의 말을 전하던 그는 마지막으로 “올해에 단 한 장의 앨범도 발표하지 않은 스티비 원더에게 감사드립니다.”라는 소감을 남겼습니다. 스티비 원더 덕분에 자신이 앨범상을 받을 수 있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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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아이, 늘 거울 앞에 붙어 있어요. (下)
알브레히트 뒤러(Albrecht Dürer, 1471~1528)15세기 북유럽 르네상스의 대표 화가로서 독일의 화가, 판화가, 조각가로 명성을 날렸습니다. 목판화, 동판화 등 판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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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아이, 벌써부터 로맨스에 인생을 걸어요. (上)
우리 아이, 서현이는 사랑 이야기를 너무나 좋아해요. 어렸을 때 공주님 왕자님 이야기가 나오는 동화책을 너무 많이 읽어준 게 잘못이었을까요? “두 사람은 결혼해서 영원히 행복 하게 잘 살았습니다.”를 의심하지 않나 봐요. 요즘 세상에… 밤을 새서 책을 읽긴 하는데 다 로맨스 소설이에요. 책을 읽을 거면 추천도서를 좀 읽지 연애지상주의 소설만 읽어서 속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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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아이, 벌써부터 로맨스에 인생을 걸어요. (下)
존 에버렛 밀레이 경(Sir.John Everett Millais, 1829~1896)18세기 영국의 화가. 단테 가브리엘 로제티ㆍ홀만 헌트와 함께 라파엘 전파(前派) 그룹을 만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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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 히스토리는 우주 속에서 길 찾기
『우리는 어디에서 왔는가? 우리는 누구인가?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 폴 고갱이 1898년 타이티에서 그린 작품에 붙인 제목이다.D’où Venons Nous / Que Som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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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 담배를 금지해서는 안되는 이유
전자담배는 해롭다. 그러나 일반 담배는 더더욱 해롭다. ‘전자담배를 금지하는 것은 공중 보건에 오히려 해로울 수 있다’ 지난 11월 12일 미국 뉴욕타임스 사설의 제목이다. (관련기사: 『Banning E-Cigarettes Could Do More Harm Than Good』) 또한 필자가 이번 글에서 제시하는 전체적 취지이기도 하다. 흡연은 피할 수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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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기
『빨간 머리 앤 (Anne of Green Gables)』은 19세기 중반 캐나다 를 배경으로, 루시 모드 몽고메리 (Lucy Maud Montgomery)가 쓴 소설이다.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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땀 냄새의 과학 - 유전자가 서로 다를수록 상대를 섹시하게 느낀다
셔츠 냄새를 맡아 데이트 상대를 구하는 ‘페로몬 파티’의 참가자들. [사진 ‘페로몬 파티’ 페이스북 홈페이지] 인간이 가진 후각 관련 유전자는 1000개 이상으로 시각 관련 유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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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pecting company” - 함께할 사람이 오기를 기다린다
동네마다 감초는 있다. 에이본리(Avonlea)의 감초는 바로 레이첼 린드(Rachel Lynd) 부인이다. 그녀는 사는 집조차 동네에 드나드는 모든 사람들을 볼 수 있는 천혜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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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아이, 노트 필기에 지나치게 집착해요. (上)
우리 아이, 환희는 노트 필기에 지나치게 집착해요. 과목별로 목적별로 노트를 구분해서 한 아름을 쓰고, 컬러펜을 색상대로 다 구매해서 자루만한 필통을 들고 다녀요. 자연히 가방은 엄청나게 무겁죠. 그래도 사실 필기는 봐줄 만 해요. 중요한 단어는 굵은 펜으로 쓰고, 색깔별로 내용을 달리해서 웬만한 교과서보다 눈에 확 들어와요. 줄도 그냥 안 그어요. 꼭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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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아이, 노트 필기에 지나치게 집착해요. (下)
레오나르도 다 빈치(Leonardo da Vinci, 1452~1519)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위대한 만능 예술가로서, 그림, 조각, 음악, 의학, 생물, 과학, 건축, 토목, 기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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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계인, 그들은 모두 어디 있는가?
지구의 나이는 약 45억 년인데 생명이 탄생한 것은 35억~40억 년 전으로 추정된다. 이 시기는 들끓는 용암의 불바다에 혜성과 운석의 융단폭격이 끝나고 환경이 비교적 안정된 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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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little red-haired girl” - 작은 빨간 머리 소녀
매튜가 기차역에 도착해서 살펴보니 소년은 없고 빨간 머리에 주근깨 투성이인 말라깽이 소녀 하나만 기다리고 있었다. 미스 스펜서가 데려다 놓고 간 아이가 입양하기로 했던 소년이 아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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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번째 팁: 선물로는 짧은 글이 좋습니다
⸢조용한 가족⸥이라는 놀라운 코미디 영화로 데뷔한 김지운 감독은 연극계에서 일하다가 불현듯 이 영화의 시나리오를 쓰게 된 이유를 '친구들에게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어서’라고 ⸢씨네21⸥과의 인터뷰에서 밝힌 바 있습니다. 쿠엔틴 타란티노도 '친구들에게 내가 생각해 낸 것들을 빨리 들려주고 싶어서' 영화를 만든다고 한 적이 있죠. 그저 누군가에게 선물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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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아이, 책상도 방도 엉망진창이에요. (上)
우리 아이, 지우는 정리정돈을 전혀 못 해요. 책상에는 물건들이 산처럼 쌓여 있고, 침대에는 옷이 수북이 쌓여 있고, 방은 폭격을 맞은 것 같아요. 입은 옷 안 입은 옷은 구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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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아이, 책상도 방도 엉망진창이에요. (下)
프랜시스 베이컨(Francis Bacon, 1909~1992)
20세기 영국의 표현주의 화가로서, 가장 강력한 불안감과 공포를 불러일으키는 이미지를 만들었다고 평가받습니다. 1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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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체 미생물 39조 마리, 유익한 물질 만드는 ‘제2 장기’
인간과 미생물의 공생대장에서 비타민 K2 등을 생산하며 병원균의 증식을 막아주는 대장균. 일부 변종은 식중독을 일으킨다. 막대 모양이다. [사진 픽사베이]인간의 세포는 모두 30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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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ne spelled with an E” - E자로 끝나는 철자인 Anne
그린 게이블즈에 도착하자 마릴라는 앤을 보고 놀란다. 농장일을 도와줄 소년을 매튜와 마릴라가 원했고, 자신은 착오로 잘못 온 거라는 사실을 드디어 알게 된 앤은 엉엉 울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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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ve through sorrows” - 슬픔을 견디며 살다
그린 게이블즈의 동쪽 지붕 방에서 울다 잠들어 깨어난 앤은 햇살이 부서지는 아름다운 아침과 창밖의 풍경을 보고 감탄을 하며 기운을 낸다. 그리고 아침을 먹으러 내려와 배가 고프다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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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아이, 미루고 미루다가 결국 벼락치기해요. (上)
우리 아이, 지우는 너무너무 게을러요. 숙제를 미리미리 해 본 적이 없어요. 미룰 수 있는 데까지 미루다가 늘 과제 내기 전날 벼락치기해요. 농땡이를 부리며 하도 여유를 부려서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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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아이, 미루고 미루다가 결국 벼락치기해요. (下)
레오나르도 다 빈치(Leonardo da Vinci, 1452~1519)
미켈란젤로, 라파엘로와 함께 전성기 이탈리아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3대 거장 중 하나로서 다양한 재능을 다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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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번째 팁 : 뒤집을수록 맛있어진다
벌써 몇 년 전의 일입니다. 새 정부가 출범했다고 '국민화합'을 주제로 한 공익광고를 제작하라는 공고가 뜬 적이 있습니다. 저는 그때 새로 들어서는 정부가 참 마음에 안 들던 차라 아예 아이데이션을 포기하고 있었죠. 진심이 들어있지 않은 아이디어는 심사위원들의 마음도 움직이지 못하는 법이니까요. 그러나 정치적 성향은 성향이고 일은 일이었습니다. 결국은 다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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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섯 번째 팁 : 네 줄짜리 자서전도 있습니다
단 네 줄로 이루어진 자서전이 있다는 걸 아십니까? 제가 광고를 공부하는 대학생들에게 카피라이팅 특강을 하거나 일반인들에게 글쓰기 강의를 할 기회가 생기면 항상 들고 가는 자서전 같은 시가 바로 김준태 시인의 『감꽃』이라는 시입니다. 감꽃 김준태 어릴 적엔 떨어지는 감꽃을 셌지전쟁통엔 죽은 병사들의 머리를 세고지금은 엄지에 침 발라 돈을 세지그런데 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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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아이, 자꾸 혼자만 놀아요. (上)
우리 아이, 경해는 친구를 통 사귀지 않아요. 늘 찡그리고 다니고 성격이 괴팍하고 못돼먹어서 친구가 없으면 “아, 내 아이 성격을 고쳐야 하는구나.” 할 텐데, 늘 웃고 온순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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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아이, 자꾸 혼자만 놀아요. (下)
조르조 모란디(Giorgio Morandi, 1890~1964)
이탈리아의 화가이자 판화가인 조르조 모란디는 절제된 모노톤의 색채, 고요한 감성이 가득한 자기만의 정물화로 독보적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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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ant to be good" - 의도는 선하다는 것
마릴라는 앤을 마차에 태우고 외진 해변길을 달리기 시작한다. White Sands에 사는 스펜서 부인에게 앤을 다시 데려다 주기 위해서이다. 앤은 뜬구름 잡는 소리를 시작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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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번째 팁 : 저자는 소신대로, 독자는 취향대로
크리스마스는 잘 보내셨는지요? 저는 크리스마스 전후를 양양에 있는 후배 집에 가서 게으르게 보냈습니다. 씻지도 않고 뒹굴뒹굴하며 얼마나 게으르게 지냈는지 아내와 함께 이러다가 '우린안씻는당'이라는 정당을 결성할 기세라는 농담을 할 정도였습니다. 강원도로 가는 고속도로에서는 터널 입구마다 붙어 있는 교통사고 예방 표어들을 보고 미소 지었습니다. 불조심이든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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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아이, 아빠보다 선생님을 잘 따르고 좋아해요. (上)
우리 아이, 준희는 선생님을 너무 좋아해요. 어린이집에 다닐 때부터 유독 선생님에게 꼭 붙어 있더니, 유치원을 다녀도 초등학교에 가도 선생님을 졸졸 따라다녔어요. 이제는 4학년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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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아이, 아빠보다 선생님을 잘 따르고 좋아해요. (下)
구스타브 클림트(Gustav Klimt, 1862~1918)19세기말의 슈퍼스타 미술가로 전통 미술에 반발하여 ‘비엔나 분리파’를 만들었습니다. 금세공업자인 아버지 아래서 태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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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덟 번째 팁 : 인생도 자연도 한 줄 안에 다 들어간다
세상에서 가장 짧은 시는 일본의 하이쿠일 것입니다. 사전을 찾아보면 '5, 7, 5의 운율로 읊는 일본의 정형시'라고 되어 있습니다. 다른 사람도 거의 다 그렇겠지만 제가 하이쿠를 제대로 접한 것은 류시화 시인이 펴낸 [한 줄도 너무 길다]라는 책을 통해서였습니다. 카피라이터로 일하던 어느 날 저와 한 팀에서 일하던 후배 카피라이터 J가 생일선물이라며 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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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f you only get her to love you" - 그 아이가 너를 사랑하게 만들기만 한다면
마릴라는 화이트 샌즈에 있는 스펜서 부인 댁에 도착한다. 여자아이를 원한 것이 아니라 남자아이를 보내 달라고 했다며, 어떻게 여자아이가 오게 된건지 사정을 따져보니 중간에 말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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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얼마나 장수할 수 있나
사람은 얼마나 오래 살 수 있을까? 기원전 4세기의 고대 그리스 철학자 데모크리토스는 109세까지 살았다는 기록이 있다. 출생증명서가 있는 현대인으로는 1997년 사망한 프랑스 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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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수 성별은 기생충 때문에 유지되고 있다
잉꼬 부부, CC: AbirMahmud 현대 생물학의 대표적인 미해결 문제가 있다.도대체 암컷과 수컷, 즉 성(性)이란 것은 왜 존재하는가? 1982년 캐나다의 진화생물학자 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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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을 씻으면 죄책감도 씻겨 나간다
우리가 손을 씻을 때 마음에서도 뭔가가 씻겨 나간다. 실패를 겪은 후 생기는 부정적 감정이 이런 예다. 2013년 10월 독일 쾰른 대학교 연구팀이 ‘사회심리학과 성격 과학(So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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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홉 번째 팁 : 공처가의 캘리를 씁니다
오늘은 글씨에 대한 얘기로 시작해 볼까 합니다. 요즘은 거의 모든 사람이 자판으로 글을 쓰는 시대지만 손으로 직접 쓰는 손글씨 또한 여전히 인기가 높습니다. 잘 쓰인 글씨는 보는 사람의 눈길을 단숨에 사로잡는 '비주얼'로서의 기능을 할뿐더러 브랜딩 측면에서도 효과가 뛰어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SNS나 블로그에는 오늘도 캘리그라피를 쓰는 사람들이 넘쳐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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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아이, 어린데 너무 돈돈돈 해요 (上)
우리 아이, 연수는 돈을 너무 좋아해요. 어릴 때부터 세뱃돈만 받으면 자기 서랍에 꽁꽁 숨겨두더니, 돈을 아낀다고 애들이랑 과자 하나를 안 사먹어요. 심부름 하나를 시키려 해도 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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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st feel a prayer" - 그냥 기도를 느껴요
마릴라는 앤을 재우기 위해 앤의 방으로 올라온다. 잠들기 전 입었던 옷을 얌전히 개어 놓는 일부터 생활습관지도에 들어간다. 그리고 잠자리에 들기 전, 앤에게 기도를 하라고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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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아이, 어린데 너무 돈돈돈 해요 (下)
메디치 가문(Medici Family)13세기부터 17세기까지 이탈리아 피렌체를 지배했던 최강의 가문으로, 인문주의가 부흥하던 당시 이탈리아 문화예술에 넉넉한 지원을 해서 르네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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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를 조종하는 기생충의 습격
기생충은 숙주의 영양분과 에너지만 빨아먹는 것이 아니다. 자신의 번식에 유리하도록 행태를 조종한다는 사실이 속속 확인되고 있다. 뇌를 조종한다거나 마인드 컨트롤을 한다고 말할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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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 번째 팁 : 세 줄의 독후감이 그 책을 내 책으로 만듭니다
어렸을 때 학교에서 내 준 독후감이나 일기 같은 숙제는 왜 그렇게 하기가 싫었을까요? 아마도 길게 써야 한다는 마음의 압박이 있었기 때문일 겁니다. 실제로 중학교 1학년 때 "아버지가 수박을 사 오셨다. 식구들끼리 맛있게 먹고 잤다"라고 일기를 썼던 친구가 선생님에게 혼나는 걸 본 적이 있거든요. 그 뒤로는 일기든 편지든 글이라고 하면 어느 정도는 길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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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 위의 인위, 인위 위의 현실에서 되새기는 가족
친숙한 듯 친숙하지 않은 듯, 대만영화는 알게 모르게 우리를 찾아오곤 했다. 대만을 넘어 할리우드를 대표하는 감독으로 거듭난 지 오래인 이안 감독은 차치하고라도 에드워드 양, 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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엉덩이 탐정과 브라운, 우리들의 1학년
취학통지서가 발급되었다. 흐릿하던 ‘학부모’라는 이름표가 선명해지는 순간이었다. 2020년, 나이 마흔에, 나는 두 번째 1학년이 되는 운명과 마주하고 있다. 88년, 1학년이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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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이 아닌 '나'로 살기
지난 주말 외출할 때 이상하게 목이 따갑고 으슬으슬하다 싶더니 독감에 걸려버렸다. 환절기 어린아이들 사이에서 유행처럼 번지는 A형 독감. 지난 가을 미리 예방주사를 맞았건만, 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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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한 번째 팁 : 두 편의 짧은 글이 저를 살렸습니다
짧은 글을 쓰는 게 표현의 기술을 높이고 효과적인 의사 전달을 하는 데는 어느 정도 효용이 있을지 몰라도 실생활에서 무슨 도움이 되겠냐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으실 겁니다. 하지만 사실을 말씀드리자면, 도움이 되는 경우가 꽤 있습니다. 일단 글을 잘 쓰면 지적인 면이 돋보이게 마련입니다. 그리고 잘 쓴 자기소개서나 보고서 등은 심사위원들과 결정권자들에게 좋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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칭찬에 약한 인간의 뇌 바보인가
한 강연회장에서 연사가 청중 중의 한 여성을 일으켜 세우고 말했다. “지금부터 당신에게 거짓말을 하겠습니다. 당신은 마음이 따뜻하고 주위 사람들을 잘 배려하는 스타일이군요. 매사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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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아이, 자기 PR력이 탁월해요 (上)
우리 아이, 영진이는 자기 PR에 일가견이 있어요. 중학교에 들어가서 페이스북 시작한다고 할 때는 별 생각을 안 했는데, 어느 순간 아이 페북 친구가 너무 많아졌더라고요. 엄마한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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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자의 등장?
문자가 한 통 왔다. 띄어쓰기 없이 오로지 문장부호만 존재하는 안내문. 4개의 마침표, 그리하여 4개의 문장이 도착했다. 첫 문장은 다음과 같았다. 2020학년도돌봄교실입반이확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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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ne of Green Gables가 되는 게 더 나아
화이트 샌즈(White Sands)에서 앤을 다시 데리고 온 다음 날, 앤을 어떻게 하기로 했는지 마릴라가 말해주지 않아서 앤은 오전 내내 불안해한다. 점심(dinner)을 먹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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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아이, 자기 PR력이 탁월해요 (下)
페터 파울 루벤스(Peter Paul Rubens, 1577~1640)17세기 바로크를 대표하는 플랑드르의 화가로, 당대 유명인의 초상화를 그림으로써 최고의 명성과 권력을 누렸습니다. 성격이 좋아서 인간관계에 탁월했고, 5개 외국어를 말할 줄 알아 외교관으로 활동하면서 유럽 여러나라 왕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일본 애니메이션 《플란다스의 개》 마지막 회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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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틴 이어가기
노력 없이 되는 건 없다. 새로운 재미를 느끼기 위해, 더 많은 것을 갖기 위해 도전하는 시기에는 뭐든 시도하면 그만이었다. 한참 즐기다가 힘들면 멈췄다가, 쉬었다 가도 상관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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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늘 아래
어떤 꿈을 꾼 적이 있다. 먼 바닷가였다. 파도가 밀려왔다 밀려가는 소리. 갈매기 소리. 젖은 바람. 나는 아이였다. 어려서 위태롭고 용감한 아이. 경계심이 많고 호기심이 적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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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내] 프리즘 정기구독 가입 안내
프리즘이 마음에 드셨나요? <프리즘>은 사람의 소신과 취향이 만나는 멋진 공간입니다. 소신이 담긴 글과 그 소신을 알아보는 취향이 만나 프리즘만의 독특한 세계를 이루어 나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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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두 번째 팁 : 당신이 쓰는 모든 글은 연애편지입니다.
일본 영화 [러브 레터]가 처음 들어왔을 때 우리나라 영화팬들의 반향은 대단했습니다. 이와이 슈운지 감독 특유의 현대적이면서도 환상동화 같은 이야기 구조도 좋았고 여주인공인 나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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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질은 시작되었다, 리베카
도대체 뭐지? 본인이 매일 자신에게 물어본다고 하더라. '이게 다 무슨 일이야?' 나도 매일 자신에게 물어본다. 도대체 이게 다 무슨 일이냐고. 슈가맨도 몰랐고, 그의 이름도 몰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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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만에 쓰는 반성문
정확하게 고등학교 2학년.잠시 가출했다가 자진 복귀해서 담임선생님께 반성문을 쓴 이후 30년 만에 처음으로 다시 쓰는 반성문입니다. 다만 이번 반성문은 내가 분명하게 어떤 잘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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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1만보 안 걸으면 당뇨 위험…수렵 채집 DNA 때문
“인간은 운동하도록 진화했다.” 지난 해 1월 미국 과학잡지 ‘사이언티픽 어메리칸’의 특집 기사 제목이다. 요약하면 이렇다. “인간은 수렵채집 시대의 DNA를 갖고 오늘을 살아간다. 하루 1만보는 걸어야 하는 까닭이다.” 인간의 DNA는 오랑우탄·고릴라·침팬지·보노보 같은 대형 유인원과 97% 이상 일치한다. 유인원은 영리하고 도구를 사용하며 싸우고 화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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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아이, 자꾸 곤충을 잡아와요. (上)
우리 아이, 민우는 곤충을 너무 좋아해요. 마트에서 파는 사슴벌레가 불쌍하다고 울기에 저도 안됐고 해서 사줬거든요. 곤충 키울 수 있는 사육 통이랑 톱밥, 놀이목도 같이 사줬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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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아이, 자꾸 곤충을 잡아와요. (下)
사임당 신씨(師任堂申氏, 1504~1551)조선 시대 중기의 여자 지식인으로, 어려서부터 자수, 바느질, 서예, 그림에도 재능을 보여 4살부터 글을 배우고 7살부터 그림을 배웠습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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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때는 한꺼번에 세 명과 싸운 적도 있었어요
오늘도 한 건 했다. 2월3일에 양준일 첫 책을 각 인터넷 서점에서 예약 판매로 걸었다. 예약 판매 첫 날, 하루만에 2만3천권이 나갔단다. 이 집계는 <오늘도 펭수, 내일도 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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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러움의 유전
발가락이 닮았나? 부끄러움이 닮았네!어린이집 졸업식 며칠 전, 선생님이 하원하는 아이를 따라 내려오셨다. 자주 있는 일은 아니었기에 인사를 하면서도 마음이 편치 않았다. 그날은 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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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을 위한 나라는 없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들에 대하여 이야기하기로 마음먹었으니, 그 첫 시작에 대하여 언급 할 수밖에 없겠다. 넷플릭스가 모든 제작비를 대고 만든 오리지널 중 첫 작품이 2015년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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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이별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
느닷없이 아이가 울기 시작했다. 본인이 아끼는 포켓몬스터볼을 동생이 빼앗아 갔다면서 소파에 걸터앉아 눈물을 뚝뚝 흘리고 있었다. 큰소리로 동생을 불러세워 형에게 다시 돌려주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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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벤트] 프리즘 런칭기념 구독료 0원
프리즘 런칭기념 3개월 구독료 0원 이벤트프리즘을 만나는 가장 빠른 방법! 바로 프리즘 정기구독입니다. 매일매일 새로운 글이 올라오는 프리즘을 읽으며 바쁜 일상에서 잠시 벗어나 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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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에게도 스승이 필요하다.
‘존경하는 인물과 그 이유’를 쓰시오.일자리를 구하고 이력서를 쓰던 시절, 수없이 받아본 질문에 대한 답은 언제나 ‘엄마’였다. 경제적으로 힘겨운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노력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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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준일 MAYBE - 너와 나의 암호말
책 소개MAYBE 라는 단어 자체에 어둠 속에서 빛을 보게 하는 힘이 있다고 믿는다.- 양준일 - 가수 양준일의 첫 책이다. 가수로서 활동을 중단한 지 19년, 생각지도 못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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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가족, 소중함을 기억하기
비 오는 수요일 아침, 오랜만에 만난 어머니와 함께 아침 식사를 마치고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었다. 커피를 내리고 쿠키 몇 개를 준비했는데, 촵촵 요란한 소리를 내며 쿠키를 드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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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줄 수 있는 것이 나의 시간
시끄럽다 시끄럽다. 신종코로나 때문에 온 동네가 시끄럽다. 얼른 소강 상태가 되어야 하는데 기약이 없다. 안타깝다. 양준일 북콘 확정, 취소 2월 29일, 양준일 북콘서트를 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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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SS를 잘해야 잘 쓸 수 있습니다
광고 제작을 위한 경쟁 프리젠테이션 현장에 한 남자가 자루를 들고 나타납니다. 자루에서 고무공을 꺼낸 남자는 공을 한 번 받아보라면서 앞에 앉은 클라이언트에게 던집니다. 물론 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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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시가 빠지는 데 걸리는 시간
에이번리에서 오지랖 넓기로 소문난 리드 부인이 마침내 그린 게이블즈에 온다. 커스버트 남매가 들인 고아가 어떤 아이인지 궁금해 견딜 수 없었던 것이다. 앤은 보름 정도 그린 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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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을 영광으로 승화시키는 예술적인 방법
페드로 알모도바르, 현대 스페인 영화를 홀로 대표하다시피 하는 감독으로 1980년에 데뷔해 40년 동안 현역으로 활동하고 있다. 그는 선명하고 세련된 색감과 센세이션을 일으킬 만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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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아, 교육의 3대 난제(難題)에 도전해 보자
수학계 3대 난제 vs. 육아,교육 3대 난제인터넷을 검색해보니 20세기에 해결하지 못한 수학계의 3대 난제가 있다는데, 아빠들은 그런 문제에는 무관심해도 됩니다. 그런데 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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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아이, 친구와 보내는 시간이 너무 많아요 (上)
우리 아이, 지호는 친구라고 하면 자다가도 뛰쳐나가요. 인기가 많은 건지는 잘 모르겠어요.애들이 그룹이 있잖아요. 여기 그룹에도 속해있고 저기 그룹에도 속해있고 해서 여기서 부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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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아이, 친구와 보내는 시간이 너무 많아요 (下)
김홍도(金弘道, 1745/영조 21년~ ?)문화예술의 황금기인 조선 후기의 대표 화가로서, 영조 때부터 시작하여 정조 때 활동했습니다. 특히 정조에게서 적극적인 후원을 받으며 산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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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 A로 알아보는 인공지능・기계학습・신경망・딥러닝…
인공지능(AI)이란 무엇인가? 기계학습이란? 신경망이란? 딥러닝이란? 초지능이란? 미국 UC 버클리 대학의 스튜어트 러셀 Stuart Russell 교수가 내놓은 답을 알아보자. (출처: ‘전자공학&컴퓨터과학’과 홈페이지. Stuart Russell, Q & A: The future of artificial intelligence.) 세계경제포럼(W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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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참 디지(dizzy, 어지럽다)하다
세상이 참 디지(dizzy, 어지럽다)하다. 삶이 참 어지럽다. 사람들은 손에 무엇인가 쥐고 싶어서 공부하고 부단히 노력해 왔고, 지금도 한다. 그런데 세월이 지나 돌아다보면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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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봄
내가 다니던 학교는 고풍스런 옛 건물과 지어진지 얼마 안 된 새 건물이 공존하는 어딘가 부족한 오르막과 조그만 정원이 있는 그런 곳이었다. 누구는 친구를 사귀고, 누구는 공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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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가를 떠나요.
<피위의 빅 홀리데이>(이하 빅 홀리데이)는 1985년도 팀 버튼의 장편 데뷔작 <피위의 대모험>(이하 대모험)과 1988년작 <빅 탑 피위> 이후 28년 만에 넷플릭스가 내놓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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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본 -4화
세상이 참 디지(dizzy, 어지럽다)하다. 삶이 참 어지럽다. 사람들은 손에 무엇인가 쥐고 싶어서 공부하고 부단히 노력해 왔고, 지금도 한다. 그런데 세월이 지나 돌아다보면 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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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으로 흥망하는, 뉴욕 보석상의 웃픈 이야기
사프디 형제(조슈아 사프디, 벤저민 사프디)2008년 형 조슈아가 단독 장편으로 데뷔한 후 이듬해 형제 명의로 데뷔한다. 데뷔하자마자 평단의 지지를 받은 사프디 형제, 이후 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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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어떻게 한 줄의 아포리즘을 남길 수 있었을까?
초등학교를 졸업하는 날 우연히 무슨 상을 하나 받았는데 그때 상장과 함께 선물로 받은 책이 『마음의 샘터』라는 명언집이었습니다. 저로서는 처음 접하는 아포리즘 모음집이었죠. 물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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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준일 첫 책이 나왔다
책이 왔다. 양준일 첫 책이 왔다. 인터넷 서점 네 군데에서 예판으로 판매된 부수는 약 3만부 정도 된다고 하니, 출판시장의 다크호스 맞다. 예판 독자들이 지인들에게 한 권씩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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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영’이 좋아하는 크림빵을 기억하자
영양사 면허증이 있는, 식약처에 근무한 경험이 있는 식품변호사에, 먹거리 정보를 제공하는 블로그와 유튜브까지 운영하다보니 주변에서 저를 먹는 것을 아주 좋아하는 사람으로 오인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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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아이, 매일 캠핑 가자고 졸라요 (上)
우리 아이, 유민이가 작년에 처음으로 캠핑 다녀온 이후로 매일 캠핑 가자고 졸라요. 처음에는 캠핑용품 없이 가서 나뭇가지랑 돌멩이를 주워 와서 불을 붙이고, 돌멩이로 텐트 고정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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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 믿겠다 AI, 설계자도 심층신경망 작동 방식 몰라
1956년 여름, 컴퓨터·정보과학계의 거물들이 미국 다트머스대학에서 머리를 맞댔다. 컴퓨터 과학자 마빈 민스키, 정보이론가 클로드 새넌, 미래의 노벨상 수상자 허버트 사이먼과 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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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는 짓이 예뻐야 예쁜 거지
마릴라는 리드 부인과의 일을 매튜에게 얘기하지 않으려고 했다. 하지만, 다음 날 아침 앤이 아침 식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자 말할 수밖에 없었다. 식사는 가져다줄 거냐고 앤이 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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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아이, 매일 캠핑 가자고 졸라요 (下)
카테리나 빌로쿠르(Kateryna Bilokur, 1900~1961)우크라이나의 국민 화가로서 자연물을 이용한 창작 그림으로 명성을 떨렸습니다. 피카소마저도 감탄하였다. “만약 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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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준일책]잘 뜯기고 오겠다
잘 뜯기고 오겠다 그의 인생. 이렇게 남의 인생을 집중하여 들여다 본 적이 있었을까. ‘양준일x시원스쿨’ 광고가 핫핑크로 온라인을 도배하고 있다. 방송국 녹화도 있었다. 거기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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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미가 뭐예요?
반년만에 소개팅을 했다. 40대를 앞둔 나이 든 여자로서 이 상황이 소개팅인지 선인지 정확히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오랜만에 낯선 사람을 만났다. 어릴 땐 누군가를 만날 때는 "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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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 이즈 웰!
어떤 코미디 영화들은 씁쓸한 웃음을 짓게 만드는 경우가 있다. 이때는 2가지로 나뉘는데, 첫째는 웃기지도 않은 코미디를 코미디라고 우기는 경우고, 두 번째는 영화에서 희화화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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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부터 잘 쓰는 사람이 어딨어요?
저는 오랫동안 광고회사를 다니며 카피라이터로 일했습니다. 카피라이터라는 직업은 쉽게 말해 TV나 라디오, 잡지, 인터넷, 극장 등에서 나오는 광고에 등장하는 모든 말이나 글을 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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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이 오지 않는 그대에게
엄마, 잠이 오지 않아요. 아이들이 눈을 비비며 나왔다. 눈에 잔뜩 잠이 들었는데도 잠이 오지 않는다는 녀석들이 원하는 것은 한 가지였다. "엄마, 옛날이야기 하나 해주세요." 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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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봇 윤리 강령 … 언제든 Off 가능해야, 책임은 인간이
그 자동차의 컴퓨터는 보았다. 한 여성이 자전거를 끌고 고속도로를 횡단하고 있었다. 충돌 6초 전의 일이었다. 시속 65㎞, 멈추거나 진로를 변경할 시간은 충분했다. 하지만 사고는 일어났고 그녀는 병원에서 숨졌다. 자율주행차량에 의해 보행자가 사망한 최초의 사례다. 2018년 3월 미국 애리조나주에서 우버가 운행하던 차량. 미 교통안전국의 예비조사 결과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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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아이, 권위에 반감이 있어요. (上)
우리 아이, 희재는 어른에게 되바라졌다는 말을 종종 들어요. 어른이 뭘 시키면 고분고분하게 대하는 게 아니라 두 눈을 똑바로 뜨고 “왜요?”라고 하거든요. 얼마나 당황하시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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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아이, 권위에 반감이 있어요 (下)
아방가르드, 먼저 나서서 길을 만드는 예술가에릭 사티(Erik Satie, 1866~1925)벨 에포크 시대, 프랑스에서 활약했던 작곡가로 기존 권력이었던 아카데미즘의 답답함에 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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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숨이 아무것도 아닌 전쟁에서 피어오르는 개인의 위대함
샘 멘데스 감독이 20년 만에 일을 냈다. 지난 1999년 세기말의 뒤숭숭한 분위기 속에서 미국 중산층의 민낯을 정교하게 까발린 데뷔작 <아메리칸 뷰티>로 센세이션을 일으킨 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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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에게 - 내가 이집트로 떠난 이유는 말이야
T. 잘 지내고 있는 거지? 어느새 3월이야. 하지만 올해 3월은 예년과 다른 모습이야. 코로나바이러스라고 이름은 예쁜데 못된 바이러스 때문에 온 나라가 난리거든. 우리가 처음 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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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회> 1월 17일, 드림팀의 시작!
1월 17일. 누군가에게는 보통 날이겠지만 나에게는 더없이 뜻 깊고 의미 있는 날이다. 지금도 내 기억 한 켠에 놓인 기억의 녹음기 그 재생 버튼을 누르면 누가 말하지 않아도 자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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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톱
밀쳐내고뜯어내도또 다시 자라 내 손을 감싸주는 너 바람에 흔들리는 사시나무가 되어 가쁜 숨을 내쉬어도진정이 되지 않을 때 너를 물고 뜯음으로 내 거친 숨이 편안 해진다 뭣하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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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의 기억
어릴 적 엄마가 해주신 음식 중 가장 기억나는 건 정어리 찌개이다. 맛이 좋다 나쁘다에 대한 기억보다는 자주 먹었던 음식으로 기억된다. 정어리 통조림을 꽁치찌개처럼 끓인 정어리 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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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양준일 덕질]배철수잼, 떡밥을 통하여
매체를 통하여 아티스트의 무엇인가를 보여주는 것을 팬덤들은 ‘떡밥’이라고 한다. 영상일 수도 있고, 사진일 수도 있고, 한 줄 기사 일 수도 있다. ‘떡밥’ 보는 재미로 팬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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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롭지만 기대고 싶지 않은
여전히 수치스러운 오늘다른 사람들을 볼 낯이 없거나스스로 떳떳하지 못한 느낌이 있다.수치스럽다는 말의 사전적 정의다. 굳이 사전적 정의를 찾아보지 않아도 대부분의 사람은 수치스러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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돕는 것과 함께 하는 것의 차이
4남매와 함께 행복한 삶을 살고 있는 자영업자이다 보니 직장생활을 하는 다른 아빠보다는 아이들과 함께 할 수 있는 시간도 많고, 가사에도 비교적 적극적으로 참여한다고 자부해 왔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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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첫 적들에게 보내는 편지 - 프롤로그
초등학교 1학년. 늦은 봄이 기억납니다. 실내화 주머니를 든 팔을 흔들며 학교에서 돌아오던 금요일 낮, 그리고 이틀 뒤 다가올 어린이날. 조금 생뚱맞게도 아, 행복하다. 이 순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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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타임, 내 삶을 채우는 예술
아침에 눈을 뜬다. 일단 생수 한 컵을 원샷한다. 자연스럽게 홍차 티백 하나를 가지고 와서 커다란 머그에 넣고 1/3 정도까지 상온의 물을 붓는다.전자레인지에 2분을 돌리고 난 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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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빛의 시간
2020년 2월 마지막 주. 자주 들렀던 열린 공간이 코로나 확산 예방을 위해 무기한 폐쇄에 들어갔고 나는 별수 없이 동네를 맴돌았다. 이렇게 점점 행동반경이 좁혀지다가 집에 갇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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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협단어] 연재를 시작하기 앞서.
첫 글을 씁니다. 프리즘에 30편가량의 글을 연재합니다. 내가 어떤 주제로 30개나 쓸 수 있을까 고민해봤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글을 써보고 싶으신가요? 저는 예전에 구상해두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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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기, 행복
문득 사직서를 내고, 사랑인지 연민인지 모를 감정의 옛 사람과 또 마음을 섞었다. 7년은 긴 시간, 그리고 지독한 시간. 순간의 결정은, 그리고 그에 따른 행동은 이렇 듯 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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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천방지축 푸들 쫑안녕하세요? 저는 올해 9살이 된 푸들 쫑이에요. 만나게 되어 반갑습니다. 한 살 두 살 나이를 먹다보니 어느새 9살이 되었네요. 사람 나이로 치면 환갑이 다 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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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코 폴로Marco Polo’ 이야기
마르코 폴로. 유럽에서는 중국이 미지의 땅이었던 1200년대에 그곳으로 들어가 원나라를 체험하고 24년 만에 고향으로 돌아온 남자. 돌아와서는 전쟁에 참여했다가 포로로 잡히는 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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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중력의 책임
‘가족’, ‘부모’라는 단어를 접할 때마다 우선적으로 떠올리는 단어들 중 하나에는 ‘책임’이 반드시 들어가 있을 것이다. 책임이라는 감정 때문에 가족 관계는 오묘해진다. 사랑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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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부터 새롭게 연재를 시작하는 작가를 소개합니다.
프리즘 독자 여러분, 3월부터 프리즘 연재물이 더욱 풍성해집니다. 새롭게 연재를 시작하는 11분의 작가님들을 반갑게 맞아주시고 앞으로 연재될 글들에 대해 많은 응원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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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회> 성공을 원하는 자, 멀리 뛰어라!
출발 드림팀을 보는 재미의 가장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단연 다양한 세트에 있다. 초창기에는 우리 주위에서 기본적으로 할 수 있는 종목 위주로 진행되었는데 점점 최강의 상대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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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 인생 최고의 대사는 무엇이었습니까?
뛰어난 소설가의 특징 중 하나는 대사를 잘 쓴다는 것입니다. 어떤 소설가는 묘사를 하는 건 쉬운데 대사 쓰는 게 너무나 어렵다는 고백을 한 적도 있습니다. 맞는 말입니다. 실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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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양준일 덕질] 직금 우리가 느껴야 하는 것들
글을 쓸 수가 없다. 양준일 덕질 두 달 동안 소재는 계속 올라오는데 그것을 정리할 시간이 없는 것이 아니고, 화가 나고 눈물이 나서 글을 쓸 수가 없다. 방금도 MBC 배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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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홀대 받는 그러나 거침없는 입담의 작은 인간
마릴라가 앤에게 옷을 만들어 주었다. 세 벌의 원피스(dress)를 자기 스타일대로 아주 검소하게 만들어주었다. 그리고는 "어때? (How do you like them?)"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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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아이, 따라하기를 기막히게 잘해요. (上)
우리 아이, 재희는 누구 따라 하기를 기막히게 잘해요. 연예 프로그램에서 나오는 성대모사 같은 건 아니고요, TV 드라마의 연기를 감정이입해서 잘 해요. 아주 그럴듯해서 친구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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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욱’빠는 많고, ‘욱’마는 적은 이유
얼마 전에 밥을 먹을 때마다 고생을 시키는 셋째한테 버럭 화를 내면서 어두운 옷방에 두고 반성하라고 소리친 적이 있었습니다. 여섯 살이 되면서 많이 나아지긴 했지만 여전히 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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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고 싶은 것, 콕 집어 삭제할 수 있다
“기억한다는 것이 바로 산다는 것이다(To remember is to live).” 신학자 마틴 부버의 말이다. 하지만 중요한 기억이 악몽이라면 어떻게 되나. 침몰한 세월호에서 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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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세계대전을 환상적으로 색감 어리고 활기차게 풍자한 동화
지난 2011년 처음 선보인 마블의 슈퍼히어로 <토르> 시리즈는 빛나지 못하는 캐릭터만큼 흥행에서도 상대적으로 좋지 못했다. 이야기와 액션과 유머 어느 하나 방점을 찍지 못했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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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아이, 따라 하기를 기막히게 잘해요(下)
끊임없는 재해석 과정에두아르 마네(Édouard Manet, 1832~1883)‘모더니즘의 창시자’로 불리며 인상주의의 태동에 영향을 미친 ‘인상주의의 아버지’ 마네는 19세기 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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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양준일덕질] 나를 버티게 한 노래, 앨튼존
음악과 책. 그게 없었으면 나는 죽었을지도 모르겠다. 나를 챙기고 버티게 해 준 것의 팔 할이 책이고, 음악이었다. 음악은 종합예술이라고 누가 그랬다. 자신에게 가장 힘이 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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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주받은 집의 한 송이 꽃
공포 소설 작가 아이리스(폴라 플렌티스)의 호스피스 간호사로 살 게 된 릴리(루스 윌슨)에게 벌어지는 이상한 일을 다룬 <저주받은 집의 한 송이 꽃>은 오프닝의 내레이션부터 독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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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f I Die Tomorrow
If I die tomorrow, If I die die die 빈지노(beenzino)의 곡이 떠올랐던 건 그녀와의 대화에서였다. 코로나19로 인하여 많은 것들을 빼앗긴 세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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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협단어] 그게 왜 불편하냐고 물으신다면
재미있다 - 시험 기간 중 공부 외의 모든 것불편하다 - 명절에 만난 큰아버지가 취직은 언제하냐고 물어볼 때 다들 TV를 보지 않는 시대입니다. 휴대폰으로 모든 걸 합니다.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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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첫 적들에게 보내는 편지-1
엄마, 잘 지내시죠? 꼭 그러길 바라요. 요새 코로나19가 너무 유행이어서 깜빡하고 엄마에게 전화할 뻔했지 뭐예요. 이젠 나도, 엄마가 그리 아끼던 남동생도 모두 코로나처럼 엄마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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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회> 성공을 원하는 자, 높이 뛰어라!
출발 드림팀의 얼굴과도 같은 최고의 세트 경기! 오늘은 그 두 번째 시간으로 온 국민에게 신드롬을 일으킬 정도로 대단히 선풍적인 인기를 불러일으킨 높이뛰기에 대해 알아본다.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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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기, 행복
40리터짜리 배낭을 샀다. 그리고 한 달 뒤 떠나는 독일행 비행기표를 샀다. 발이 닿지 않는 항공에서 머무는 것은 아무래도 썩 달갑지 않은 일이라, 직항으로 가는 것을 고르고 도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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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의 또다른 낯설음과 만나다
천방지축 푸들 쫑, “낯선 세상으로의 여행”(생후 3개월) "배 고파요. 밥 조금만 더 주세요." 엄마 젖을 떼고 어떤 아저씨 집에 왔는데, 아저씨는 하루에 사료를 열 알씩만 준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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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생각이 다른 이에게 가 닿는 것만으로도 벌써 기분이 좋아집니다
꽤 오랫동안 자전거를 타고 출퇴근을 했습니다. 가락동에서 혼자 살 때 신사동까지 타고 다닌 적도 있고 성수동에서 논현동까지 다닌 적도 있죠. 140만 원짜리 미니벨로였는데 5년 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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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소, 쓴 웃음, 가짜 웃음을 가려내는 법
웃음에는 여러 종류가 있다. 행복해서 짓는 미소, 좌절해서 짓는 쓴웃음, 분위기를 맞춰주는 ‘사회적 웃음’…. 진짜 웃음은 눈이 빛나며 가늘어지고 뺨의 근육이 올라가는 것이 특징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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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가 될까 두려워하는 아이
서울대도 졸업했고, 나름 입시학원 강사 생활도 했으니 아이들 교육은 무조건 내가 담당할거니까 걱정 말라고 큰소리치면서 실상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큰아이가 유치원을 졸업하고 초등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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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르케트 여신의 가호 아래 여행은 시작되고
T. 동네 화단에 매화가 피었어. 사람만 입방아 찧으며 할 일을 미루지 자연은 어쩌면 저렇게 제 할 일을 미루지 않는 걸까? 나는 매화 앞에서 입을 헤 벌리고 감탄했어. 걱정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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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년 넘게 이어져온, 앞으로 계속될 미국 대중문화의 신화
EGOT라고 하면, 미국 대중문화계를 대표하는 가장 권위 있는 시상식 네 개를 지칭한다. 텔레비전의 에미상(Emmy), 청각 매체의 그래미상(Gramy), 영화의 오스카상(Os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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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린 아이의 타임머신(밀레니얼)
기억 나진 않지만그때의 감성을 추구한다밀레니얼 모두가 영화관을 갈때나는 커튼을 치고 그때의 영화를 틀어과거로 돌아갈 준비를 한다 조금 촌스런 필름, 패션, 말투나를 둘러싼 공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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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사교육 종사자의 다짐
미술을 좋아했고 미대에 진학했다. 졸업 후 의류 업계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했는데, 팔리는 상품을 데이터화하여 디자인하고, 쌓이는 재고를 소진하기 위해 함께 판매할 제품을 연구해야 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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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공간을 침범하는 나의 불안
내 안엔 이미 '결정되어진 것'이 있다.<수치스러운 오늘을 향해> 1화를 쓰고 난 뒤 끊임없이 고민되는 부분이 있었다. ‘심리학 에세이’를 표방하고 있다는 점이 첫 번째. 그 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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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양준일덕질] 관계의 미학
양준일 덕질이 오늘로써 두 달 반 되었다. 그 두어 달 동안 얼마나 많은 것들이 있었는지 셀 수가 없다. 구랍 12월 20일에 입국하여, 12월 31일에 팬 미팅을 한 후, 책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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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빛의 시간
2020년 3월 첫 주. 집에 머무르는 시간이 점점 길어진다. 성인이 되고부터는 집에 있는 시간보다 밖에서 이것저것 하는 - 이라고 쓰고 ‘노는’으로 읽는다 - 시간이 많아 아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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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봄
그녀는 아프고 나서부터 점점 변했다. 아픈 티를 내지 않고 웃던 활동적인 성향도, 힘들어도 항상 긍정적이던 성격도, 남들과 잘 어울리고 당당했던 사람이 하루하루 피폐해지고 생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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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의 기본
늦은 밤 따뜻하게 마시면 좋다고 알려진 카모마일티, 카페인은 없지만 항산화작용이 뛰어나다고 알려져 알음알음 인기 있는 루이보스티, 치약을 마시는 기분이라며 거부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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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닮은 듯 다른 믿음, 믿음, 믿음 ······
T. 어느새 봄기운이 뚜렷해서 한낮에는 외투가 거추장스러워. 코로나바이러스로 전 세계가 난리야. 나는 집에서만 지낸 지 벌써 한 달째지만 건강해. 여기저기에서 수고하는 분들께 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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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의 마스코트
마스코트. 행운을 가져다준다고 믿는 사람, 동물, 물건을 지칭하는 단어. 프랑스어 ‘mascotte’에서 유래했고, 오늘날에는 단체나 사회를 대표하기 위해 자주 사용된다. 사람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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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 너랑 안 놀아줄 거야
서로가 전부인 세계에 살고 있다. 코로나19는 우리를 고립되게 만들었다. 바이러스 세계를 알지 못하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가능한 한 집을 벗어나지 않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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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첫 적들에게 보내는 편지-2
엄마, 남편에게 들었어요. 이전에 살던 빌라를 팔고 다른 동네로 이사 가셨다고요. -이이는 전화하지 말래도 번번이 이러네요.- 엄마는 아마 재개발이 될 때까지 버티고 싶으셨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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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독 그 짧은 글이 기억에 남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 에피소드는 「깊은 밤 깊은 곳에」, 「천사의 분노」, 「신들의 풍차」 등 수십 편의 소설과 영화 연극 시나리오를 썼던 베스트셀러 작가 시드니 셀던의 데뷔작 「벌거벗은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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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있는 건 정말 싫어요
천방지축 푸들 쫑, "혼자 있는 건 싫어요"우리 가족은 나만 혼자 집에 남겨놓고 다들 어디론가 나갈 때가 많아요. 그렇게 절 혼자두고 다들 집을 비우면, 저는 겁도 나고 어떻게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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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협단어] 당신에게 '코로나'의 무게는 얼마인가요?
코로나 바이러스가 한창입니다. 전염 속도가 빨라서, 밀폐된 공간에 사람이 많으면 확산되기 쉽습니다. 이런 경로로 확진자가 무더기로 쏟아졌습니다. 이토록 온 국민을 괴롭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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냄새로 처녀를 판별할 수 있을까
냄새를 맡는 것만으로도 어느 암컷이 처녀virgin인지 아닌지를 확인할 수 있을까. 일부 쥐, 도마뱀, 딱정벌레, 거미, 꿀벌, 귀뚜라미의 수컷이 이런 능력을 갖추고 있는 것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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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아이, 공부는 안하고 놀기만 좋아해요 (上)
개학이 3주 연장되었습니다. 아이들이 학교에 못 간다고 아우성칩니다. 어른들은 생각합니다. “애들이 학교에 가고 싶어 한다고?” 세상 참 많이 변했습니다. 학교가 많이 변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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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아이, 공부는 안하고 놀기만 좋아해요 (下)
시작부터 끝까지 놀이하는 예술작품 기욤 아폴리네르(Guillaume Apollinaire, 1880~1919)프랑스 모더니즘이 시작되던 시기에 시대정신을 가장 잘 나타낸 시인으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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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회> 살아남길 원하는 자, 깃발을 잡아라!
출발 드림팀의 얼굴과도 같은 최고의 세트 경기! 오늘은 그 세 번째 시간으로 한 번 뛰었다하면 멈출 수 없는 본능적인 스피드의 충돌을 볼 수 있는 경기인서바이벌 깃발잡기에 대해 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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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기, 행복
뉘른베르크 중앙역에서 이 곳 밤베르크로 오는 S반은 11,2유로. 참 예쁘고 아기자기한 도시, 밤베르크에 도착했다. 앞다리 하나가 없는 큰 개는 커다란 배낭을 멘 어리둥한 관광객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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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양준일덕질] 숭고한 밥벌이, 밥
라디오에서 밥 이야기 하는데 눈물이 난다.예전에 이금희 아나운서가 자신의 용돈 절반이 밥 사는 것이고, 유일한 사치가 밥 사는 것이다, 라고 했다. 그게 묘하게 울컥하더라고. 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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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의 행복의 컵이 가득 차다
마릴라는 다음 금요일이 되어서야 앤이 교회에 모자에 꽃을 잔뜩 꽂은 채 갔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왜 그리 우스꽝스러운 짓을 했냐는 마릴라의 말에 앤은 역시나 말대답을 조리있게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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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관계
인간관계란 뭘까?돕고 돕는 관계?더불어 사는 관계? 나와 제일 친한 인간이 누구지?아, 내가 제일 친한 건 너다컴퓨터 컴퓨터야, 넌 똑똑하니까정답을 알고 있지? 컴퓨터가 대답했다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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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영화' 계보를 이을 게 분명한, 살아 있는 고전
그레타 거윅, 미국 독립영화계의 총아에서 어느새 전 세계 영화제를 주름잡는 감독이 되었다. 2006년 단역으로 데뷔한 후, 조 스완버그 감독과 몇 작품을 함께하며 작가로 연출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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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때때로 스스로에게 기만당한다
스무 살, 운명이 낭만처럼 여겨지던 나이스무 살, 이상한 친구를 만났다. 소름끼칠 만큼 나와 닮은 친구. 같이 길을 걷다 뭔가를 보고 무심코 떠오르는 생각을 말하려는 찰나, 그 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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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빛의 시간
나는 2007년에 혼자 첫 해외여행을 다녀왔다. 장소는 도쿄였는데 눈에 띌 정도로 다르게 생기진 않은 데다, 국민으로 엮어진 동일 문화 속에서 형성된 잣대로 평가할 수도 없는 이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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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봄
생각해보면 가을은 늘 나의 세상을 바꿔주는 계절이었다. 더위가 한풀 꺾이고 잠자리가 날아다니기 시작하면 나는 가장 먼저 너를 만나던 날을 떠올리고는 한다.머릿속에 남아 있는 것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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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 도시, 뉴욕
보통의 전기 영화들은 대개 인물의 일대기를 다루거나 영광의 순간이나, 위기의 순간 등 인생의 드라마틱한 순간을 불러온다. 그런 측면에서 <배리>는 독특한 지점이 있다. 영화는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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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쫑, 너는 알파
천방지축 푸들 쫑, "알파야 너 왜그래?"저는 알파랑 같이 살아요. 알파는 저보다 한 살 어린 말티즈 왕자랍니다. 알파랑 같이 산 것도 8년 가까이 됐는데, 알파는 저랑은 다른 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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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기, 행복
당연하게도, 여행을 하면 꼭 들러야 하는 장소는 성당이다. 주름과 모공 걱정이 없던 어린 때의 나는, 배낭여행 중에 처음 성당을 만났다. 잠시 쉬어갈 수 있게 곁을 내어준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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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훈아는 나훈아가 될 수 없다
모창가수들은 노래를 참 잘 부르죠. 얼마 전에도 유튜브에서 김건모 모창하는 가수를 봤는데 너무나 똑같아서 징그러울 지경이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노래를 잘해도 모창가수는 모창가수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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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내지 못한 마음
벽장에서 박스 하나를 발견했다.이사에 앞서 물품들을 정리하는 중이었다. 아이들을 친정에 맡긴 날, 육십여권의 책은 인터넷 중고서점에 보냈고 장난감의 삼분지 일은 재활용 쓰레기통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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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협단어] 일상과 이상 사이에서
한 달 사이에 사회는 많은 변화를 겪었습니다. 개학도, 행사들도, 모임과 약속도 미뤄지고 취소되었습니다. 주위서나 sns에서나 일상의 소중함을 되새기는 사람들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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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리는 일이 절반의 기쁨
앤은 교회 주일학교에서 피크닉을 간다는 소식에 너무 흥분해서, 약속한 시간이 되어서도 집으로 돌아와 바느질을 할 생각을 않는다. 약속한 2시보다 늦게 집으로 돌아오다가 집 앞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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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를 내는 것도 참는 것도 심장에 해롭다
화를 잘 내는 사람은 심근경색(심장마비)나 뇌졸중(중풍)을 일으킬 위험이 크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고위험군의 경우 화를 벌컥 낸 직후의 2시간이 특히 위험한 것으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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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첫 적들에게 보내는 편지 - 3
엄마, 가끔 엄마도 어쩔 수 없었을 거란 생각을 해요. 가정파탄의 원인을 모두 엄마 탓으로 돌리는게 부당하다는 것도 알고. 엄마는 집 밖에선 명랑하고 씩씩한 사람이었으니까. 집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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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왜 좋아해?" 라는 말, 이젠 묻지 않습니다
쉬어가며, 연애를 시작하면 평소에는 궁금하지 않던 호기심이 피어오른다. 너는 어떤 음식을 좋아하는지, 그동안 봤던 영화 중 인생 영화라 꼽을 작품은 무엇이며, 가장 힘들 때 찾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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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즈의 마법사> 주인공 주디 갈란드를 세련되게 추모하다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되어 있기도 한 세기의 명화 <오즈의 마법사>, 1900년부터 20년 동안 계속된 라이먼 프랭크 바움의 소설 시리즈를 원작으로 하고 있는데 빅터 플레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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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그 이후
‘파블로프의 개’처럼 ‘조건반응’을 미리 준비하여 반복되는 삶의 패턴에 루틴을 만들어 미리 대비하는 게 나의 특기이다. 매년 봄이 오면 쑥이나 냉이 같은 봄나물을 직접 캐서 먹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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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다정함이 부족한 나지만
아픔을 나누는 사람이 되고 싶었지만나는 사람을 좋아한다. 그러나 이 말이 곧 타인에게 다정하고 허용적인 사람이라는 뜻은 아니다. 나는 사람을 좋아하고 흥미로워하며 대체로 모든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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뜬금없이 '황성 옛터'를 노래하다
T, 안녕? 그곳에서는 하루를 어떻게 보내니? 누구에게나 가장 공평하게 주어진 24시간이 그곳에서도 똑같은지 아니면 시간조차 다른지 궁금하네. 24시간을 48시간처럼 부지런히 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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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행선과 무관심의 거리
평행선과 무관심의 거리 평행선은 외롭다.닿을 수도잡을 수도없는 거리를 유지하며홀로 걷는다. 무관심은 외롭다.닿지도닿으려 하지도않는 관계를 유지하며홀로 무뎌진다. 무관심은 평행선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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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 교육을 위해 ‘대전’으로 이사 가는 사람들
작년 연말 모임에서 ‘대전’으로 이사 가는 중학생을 둔 학부모인 교수님 얘기를 듣고 현실이 점점 다가오고 있음을 느끼고 있습니다. 강북에 사시던 분인데 결국 와이프와 상의 끝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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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빛의 시간
불어오는 바람에 종종 봄 내음이 실려 오는 3월도 거의 지났다. 나들이하기 좋은 시기지만 코로나19가 얼른 물러나길 바라는 마음으로 집에 박혀 있다 보니 늘어나는 것은 허리 치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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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리된 봄의 티타임
프리랜서이고 글을 쓰거나 책을 편집하는 일을 주로 한다면 그 사람은 이미 자동적으로 사회적 거리 두기를 실행하고 있을 확률이 높다. 아니, 적어도 나는 그랬다. 다른 작가들은 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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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봄
그해 겨울은 사무치게 그립고도 행복했다.너를 만나 나의 세상이 넓어지던 나날들. 이제 곧 어른이라는 되지도 않는 자신감으로 새해를 기다리며 나는 그녀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주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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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 아이들은... <1/2>
그날 아침을 생각하면 아직도 어이가 없다. 내가 그 아이한테 왜 그랬을까? 무슨 자격으로 영문도 모를 아이에게 화를 냈는지… ‘차암… 내.’ 대학에 떨어지고 재수생을 위한 학원에 다녔는데 그 아이는 같은 반이었고 집에 가는 버스에서 서로 알게 되었다. 당시 우리들의 집은 정말 변두리(?)여서 버스 노선이 하나였고 제법 뜨문뜨문 와서 같은 버스를 탈 때가 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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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 아이들은... <2/2>
반쥴(응답하라 1988에 나왔던 레스토랑.. 이글은 1977)에서 클래식 음악을 틀곤 했었나? 헝거리언 랩소디 2번. 조심스럽지만 불현듯 깔리는 관현악… 압도하는 심벌즈 그리고 현란한 현의 튕김과 애절한 오보에.. 예기치 못한 만남과 그 아이의 변한 모습에 나의 심장은 터질 듯 뛰었고 머릿속은 혼란스러웠다. 그 아이의 아름다움엔 왠지 슬프기까지 했다. 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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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이 나타났다
우리집의 선악과는 커튼이다. 보기만 하여야 하는, 결코 만져서도, 탐하여서도 아니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나의 바람, 아이들에게 당부하는 말일 뿐이다. 사실 커튼은 아이들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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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 가슴뛰게 하는 선물
아이를 키운다는 건 내게 있어 선물 상자의 리본을 푸는 것과 같다. 리본에 묶인 상자를 보며 이리 기웃 저리 기웃하면서 ‘무엇이 담겼을까? 어떤 걸까? 어떻게 생겼을까?’ 등등을 생각하며 동그랗게 말린 리본을 엄지와 검지를 사용해서 푸는 그 설레임. 두근두근. 콩당콩당. 하늘에서 보내는 선물이 몹시도 궁금했다. 설레어 잠을 잘 못 이루었고, 아침이면 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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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첫 적들에게 보내는 편지 - 4
엄마, 내가 중학생 때 엄마에게 제일 많이 들었던 말이 뭔지 알아요? "그 X 같은 인간이"였어요. 그 말을 들으며 나는 아빠에 대한 증오를 무럭무럭 키웠죠. 이제는 나도 아빠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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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기, 행복
뮌헨에 숙소를 잡았다. 펜션 Bela는 혼자 묵기에 적당한, 아주 깔끔하고 편의한 싱글룸. 1박에 40유로면 가성비를 따졌을 때도 훌륭한 수준의 숙소를 고른 듯하다. 익스피디아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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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가 큰 개한테 물릴뻔 하셨어요
천방지축 푸들 쫑, "아빠 조심하세요"하루는 아빠랑 엄마가 밖에 다녀오셔서는 "큰일 날뻔 했어요"라며 말씀을 나누세요. 가만히 옆에서 두 분의 대화를 들어보니 아빠가 오늘 큰 개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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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협단어] 동심파괴 파워레인저?
어린 시절 여느 아이들처럼 만화를 좋아했습니다. 이틀에 한 번꼴로 만화방을 찾아가 비디오를 빌려오곤 했습니다. 파워레인저에 빠져 여러 시리즈를 섭렵해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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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국에 사연 보내서 선물 타는 방법
택시를 타고 어딘가 급하게 가고 있을 때였습니다. 택시 기사님이 틀어놓은 '9595쇼'라는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난센스 퀴즈를 하나 냈는데 마침 제가 아는 문제였습니다. '소금과 설탕, 간장이 달리기 시합을 했는데 설탕이 꼴찌를 했다. 왜일까요?'라는 문제였습니다. 정답을 보내주는 사람에겐 **치킨 한 마리를 준다고 했습니다. 흥분한 저는 택시 기사분에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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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차르트의 곡은 무슨 색을 띠고 있을까?
악곡에는 저마다 어울리는 색이 따로 존재한다. 모차르트의 곡은 무슨 색일까? ‘플루트 콘체르토 1번G장조’는 밝은 노랑색과 오렌지색이다. ‘레퀴엠 D단조’는 어두운 푸른빛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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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염병 전파의 간단한 수학 모델
위 그림은 영국 경제지 Financial Times의 특집기사 ‹Coronavirus Tracked›에서 따온 것이다. 수직축의 스케일이 감염자 수가 아니라 감염자 수의 로그값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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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나이 스물다섯, 3분의 1을 연애로 보냈다
내 나이 스물다섯. 지금의 연인과 연애를 시작한지는 갓 백일이 넘었다. 친구들에게 요즘의 근황을 말할 때면 “참 풋풋할 때지?”라는 말을 덧붙인다. 다른 이들이 나를 보고 풋풋하다고 얘기하는 게 아닌, 내가 나를 보며 풋풋하다고 말하니 지인들은 “당사자가 그렇게 말하는 건 처음 본다”며 신기해하곤 한다. 아무렴, 백일은 풋풋할 때지. 둘이서 한 계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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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과 조건문
월요일 아침, 마릴라의 표정이 좋지 않다. 부엌에서 랄라룰루 다이애나가 가르쳐 준 노래를 하며 콩깍지를 벗기고 있는 앤에게 자수정 브로치를 봤냐고 묻는다. 아무리 찾아도 보이지 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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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회> 빠르지 않으면 탈출할 수 없다!
출발 드림팀의 얼굴과도 같은 최고의 세트 경기! 오늘은 그 네 번째 시간으로 문이 닫히기 전에 탈출해야 하는 극강의 스피드 대결이라고 할 수 있는서바이벌 영광의 탈출에 대해 알아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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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노동자 살인 사건에서 머물러야 할 시선
2010년 5월 미국 뉴욕 롱아일랜드 오크 해변에서 섀넌 길버트가 홀연 자취를 감춘다. 당일, 엄마 메리 길버트는 섀넌과 통화하고 다음 날 놀러온다는 딸과의 만남을 고대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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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일강의 서쪽, 죽은 자들의 도시에서
T, 오늘은 한낮에 마스크를 끼고 검은색 외출복에 검은색 선글라스를 쓰고 집을 나섰어. 네가 예뻐하던 내 조카 꼬물이와 함께였어. 둘 다 집에서만 보낸 지 오래라 잠시라도 좋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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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양준일 덕질] 기승전, 양준일
코로나19가 많은 산업 시장을 바꿀 것이다. 단순히 오프에서 온라인으로 시장이 바뀐다는 것을 떠나, 다 같이 움직이지 않는 이 시간 동안 무엇을 들여다 보고, 무엇을 준비하는가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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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직하게 응어리진 생존본능
힘 빼는 거, 그거 어떻게 하는 건데.한글 프로그램을 딸깍 누르고 뭐든 써보라고 덤벼오는 흰 화면을 멀뚱히 띄워둔 채 한 30분은 그저 눈을 끔뻑이고 있다. 처음부터 기세좋게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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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명할 수 없는 감정
중학생 때 그 아이를 알았다. 초등학교 동창이니 만난 적이 있었겠지만 이름만 기억하고 있었다. 초등학교 졸업식 날 화장실 벽에 누군가의 낙서에서 내 이름과 그 아이 이름이 나란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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쑥부쟁이
가을 하늘 아래길가에 줄지어 흩날리는 코스모스 국화처럼 누구나 아는 꽃이 아닌 너 구절초인가계란꽃인가비슷한 이름만 수없이 불리다 끝내제 이름 한번 못 불리는 너 아무도 이름 불러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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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빛의 시간
3월 31일은 부모님의 결혼기념일. 내가 결혼을 하기 전까진 부모님의 결혼기념일도 응당 자식들이 챙겨야 하는 줄 알고 케이크를 사고 꽃을 준비하는 등 분주했었다. 하지만 결혼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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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하수
음악은 뉴에이지 피아노곡. 차분한 음악에 맞추어 초를 몇 개 켰다. 커피도 한잔 내려야지. 어둠에 초를 켜니 아버지가 아주 크게 보이던 어릴 때 캄캄한 밤길이 생각났다. 조금씩 다가오는 어두움이 무서워 슬쩍 아버지를 확인한 후에야 안도하며 밤길을 재촉하던 그날은 어느 강가에서 더위를 식히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훗날 그 무수한 별들이 이미 많은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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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다른 물 맛이 좋아.
학창 시절, 특히 고등학교 3학년을 추억할만한 기억은 거의 없다. 매일 짜여진 계획대로 쳇바퀴 도는 생활을 하느라 새로운 친구를 사귈 여유도 없었다. 옆자리 짝꿍, 앞, 뒤에 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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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봄
그때도 지금도 나는 아직 실감이 나지 않는다. 빈자리가 너무나 당연해서였는지 이리저리 치이는 시간이 진절머리가 나서인지. 그녀가 떠나고 처음 맞이하는 봄, 나는 원망과 우울로 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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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루꾸띠이(Milk Tea)
난생 처음으로 홍차를 맛본 날을 기억한다.그건 1991년이었고, 여름방학을 맞이한 나는 도쿄의 한 가정집에서 홈스테이 중이었다. 그 집에는 네 명의 아이들이 있었는데 아침이면 다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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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아직 내리지 않은 폭우에 나는 흠뻑 젖었다 아직 짓지 않은 감옥에 나는 묶여 있다 아직 두지 않은 장기판에서 나는 벌써 장군을 부른다 아직 마시지 않은 당신의 와인 한 잔에 나는 벌써 취했다 아직 전쟁터에 들어서지 않았는데 나는 벌써 상처 입고 죽임을 당했다 나는 더 이상 상상과 현실 사이의 차이를 모르겠다 마치 그림자처럼 나는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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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엄한 거리, 장엄한 꿈
<임페리얼 드림>을 보고 위대한 부성애나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남자에 관한 영화라고 한다면, 어쩐지 감질 난다. 그는 오롯이 아들에게만 집중하지 않고, 그렇다고 자신의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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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자를 건네준 고승
K형과 둘이서 지리산 뱀사골에서 피아골로 무박 3일 산행을 했었다 (서울역에서 밤 기차로, 그리고 하루 산행 후 다시 밤 기차로 귀경). 반야봉을 거쳐 피아골 대피소에 도착할 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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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서 저 하늘까지
T야, 잘 지냈니? 나는 슬기로운 격리 생활을 즐기고 있어. 사상 초유의 바이러스 때문에 평범한 일상의 소중함을 새삼 느끼고 있어. 바이러스가 전파되는 것을 막기 위해 집에 갇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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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나 좋아하냐?
엉겁결에 시작된 첫 연애는 생각보다 순탄했다. 나도, 내 남자친구도 연애라곤 관심 없는 초등학생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니 별 기대도 없었을뿐더러 실망으로 인한 갈등도 없었다. 그저 더블데이트 때나 만나는 비즈니스 커플이었던 게다. 그때는 무슨 바람이라도 불었던 건지 더블데이트가 유행이었다. 물론 동성 친구 앞에서 이성 친구만 챙겨서는 또 의리를 저버린 사람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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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협단어] 잠재적 가해자로 몰린 우리에게
우리는 같은 단어를 두고 싸우곤 합니다. 정치로 예를 들어볼까요. 두 쪽 다 자유를 위한다면 싸울 일이 어딨을까요? 그러나 그들은 늘 부딪히고 갈라섭니다. 그들이 말하는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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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4지 한 장 깔면 거기가 내 서재입니다
저는 글을 쓰기 전 책상 위에 A4지 한 장을 깔아 놓는 습관이 있습니다. 회사에 다닐 때도 출근해 책상에 앉아 카피를 쓰기 전에 늘 하던 버릇인데, 그렇게 하면 머릿속을 날아다니던 단어들이 하나 둘 연필 끝을 통해 종이 위에 몸을 드러내고 급기야 자기들끼리 어우러져 제가 생각지도 못했던 문장들을 만들어 낸다는 걸 알고 있었으니까요. 저는 촌스러워서 그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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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루지 못한 꿈
또 싸움에 관한 이야기였다.게으른 엄마는 즉석조리식품을 좋아하였기에 그날 아침 식사도 간단하게 데운 황태국밥을 먹는 중이었다. 큰애가 고명으로 올라간 빨간 고추 슬라이스 하나를 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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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회> 살고 싶다면 절대 끼지 마라!
출발 드림팀의 얼굴과도 같은 최고의 세트 경기!오늘은 그 다섯 번째 시간으로 문이 닫히기 전에 탈출해야 하는 최고의 경기이며 진정한 스피드맨을 가리는 최고정석의 경지라고 할 수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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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면서 배워요
천방지축 푸들 쫑, "알파는 따라쟁이"알파는 저랑은 6개월 정도 차이가 나요, 알파는 뭐든지 제가 하는 걸 따라해요. 따라쟁이 알파!(급식) 엄마가 먹을 걸 줘도, 알파는 제가 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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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첫 적들에게 보내는 편지 - 5
엄마, 나는 사라지고 싶었어요. 앞으로 펼쳐질 내 인생이 뻔한 불행이고 아등바등 노력해봐야 겨우 남들이 누리는 '보통 일상'을 얻을 수 있다는 게 막막했어. 그 모든 걸 이뤄낼 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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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의 세계, 형제자매의 세계
드라마를 너무 좋아해서 드라마작가교육원에도 다닌 적이 있고, 지금도 미국드라마, 한국드라마 등 드라마라면 가리지 않고 거의 매일 보고 있다. 특히 종영된 드라마를 연속해서 보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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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인생 그림책 - 인생은 곡선여행
태어나기 전, 어머니의 뱃속에서부터 한 사람의 인생은 시작된다. 하루, 이틀, 그리고 열 달 동안 엄마의 심장소리를 듣고 아빠의 목소리를 들으며 빛과 어둠, 해가 뜨고 지는 것을 느끼며 시작된다. 선택하지 않은 인생의 세상이 어떻게 생겼는지, 어떤 인생이 펼쳐질지는 아무도 모른다. 태어나는 순간부터, 인생이 펼쳐진다. 아기 때는 눈을 뜨면 아침이고 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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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기권자? 나는 투표자!...최고의 구호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내가 만드는 대한민국, 투표로 시작됩니다”라는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하지만 이보다 효과적이면서 간단한 방법이 있다. 투표 행위보다 ‘투표자 되기’를 강조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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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락 오바마 부부가 쏘아올린 작은 공
지난 2월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의 승자는 단연 <기생충>의 봉준호였다. 한국영화를 넘어 아시아영화 역사상 유례없는 작품상, 감독상, 각본상, 국제장편영화상 4관왕을 기록했던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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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기, 행복
엘베강변을 걸었다. 햇살이 가득 묻은 바람은 선선하게 불고, 자전거를 탄 사람들과 마주보며 걷는 길. 일광욕을 즐기는 사람들과, 똑같은 티를 맞춰입고 피크닉을 즐기는 할머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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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양준일 덕질] 외로움
외로움 양준일이 한국으로 돌아와 시중일관 집중하는 주제가 있다. 한국에 돌아와서 보니 사람들은 웃고 떠들고는 있지만 많이들 외롭게 보인다고. 그래서 외로움에 대한 음악을 만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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쇠가 영혼에 들어오다
이번 장에서는 빨간 머리 앤에서 가장 유명한 에피소드가 펼쳐진다. 미래의 남편이 되는 길버트 블라이스가 아주 인상적으로 등장하기 때문이다. 9월이 되고 앤은 다이애나와 학교에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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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빛의 시간
완연한 봄이다. 텅 빈 강의실에 울려 퍼지는 자신의 목소리를 들으며 수업하는 선생님과, 화면 속 영상으로 신학기를 맞이하는 학생의, 거짓말 같은 2020년, 봄. 세상에는 ‘사회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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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를 먹는다는 것
내 나이 열다섯, 인서울은 당연한 것이라 생각했다내나이 열아홉, sky 그들은 진정 신이다 내 나이 스무살, 지나가는 벤츠를 보고 애마로 찜했다 내 나이 서른, 귀여운 애마 스파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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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화 한 걸음 물러서기
몸에 밴 습관으로 샛길을 지나치다 며칠 전 네비게이션이 가리켜주는 멀리 돌아가는 길이 아닌, 인근 아파트 단지를 바로 질러가는 지름길을 발견하게 됐다. “오호!” 쾌재를 부르며 아이가 된 양, 발을 동동 구른다. 그런데 인간의 습관이 무서운 것이 짧은 길을 지나 시간을 단축했다고 좋아하는 것도 잠시, 몸이 이 시간차 공략에 익숙하지 않은 탓인지 외곽을 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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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봄
"나는 아직 당신을 놓지 못했나 봅니다."늘 이맘때가 되면 당신과 함께 했던 곳들이 생각나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하루를 보내요.한동안은 아무 일 없던 듯이 지내왔는데 오늘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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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유산이 된 나의 그늘
지금의 내게는 없는 '나의 것'때때로 나는 지금의 내게는 없는 ‘나의 것’을 만난다. 과거의 나를 지배하던 것, 오랜 시간 나를 제 그늘 아래 두었던 것. 그것들은 한때 내게 강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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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기, 행복
괴테거리와 페스탈로치 거리를 지나, 카이저빌헬름교회에 왔다. 이곳은 독일의 심장, 베를린. 예배당의 푸른 스테인드글라스와 황금의 예수상. 금을 두른 그리스도는 어딘가 낯설다. 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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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종이신문을 보긴 하나요?
새로 고침, 또 고침 설 연휴가 끝나고 나서부터 코로나19에 대한 신속한 정보를 얻고자 하루에도 수십 번씩 인터넷 포털사이드 속보란을 들여다봤다. 연휴의 마지막 날 회사 비품을 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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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들의 진심
침묵이 오랜 시간 공기를 짓눌렀다. 그날 이후로 오랫동안 입을 열지 않았다. 침묵이 침묵을 낳은 것이었으나 그날의 앞선 침묵의 의미를 제대로 풀어낸 건 이십여 년이 지나고 난 후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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걱정 말고 일단 마시고 봅시다
냉장고에서 케이크 한 조각을 발견했다.‘음, 차를 마셔야겠군. 홍차를 마시는 게 좋겠어.’가난한 작가에게 냉장고 속의 케이크란 흔한 일이 아니기에 이왕이면 예쁜 접시를 꺼내어 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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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드가 뭐길래
카드가 뭐길래 <걸프렌드 데이>는 척 보기에도 이상한 영화다. 연인용 카드 문구를 만드는 작가인 레이(밥 오덴커크)는 옛 영광을 잊지 못한 퇴물이다. 당연하게도 회사에서 더 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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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회> 무조건 달려라! 그리고 살아남아라!
출발 드림팀의 얼굴과도 같은 최고의 세트 경기! 오늘은 그 여섯 번째 시간으로 밀려나기 전에 탈출해야 하는 그야말로 촌각을 다투는 일촉즉발의 구출대작전!독수리 오형제에 대해 알아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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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소서를 잘 써야 뽑힙니다
제가 대학생 때 MBC TV에서 <맥가이버>라는 드라마를 방영했습니다. 맥가이버는 위험한 임무를 수행하는 공작원이지만 기존 히어로들과 달리 총을 가지고 다니지 않았고 종이클립이나 운동화 끈, 스위스제 주머니칼 같은 사소한 도구만으로 사건을 해결하는 매력적인 캐릭터였죠. 맥가이버 역을 맡은 리처드 딘 앤더슨이라는 배우가 원래 그런 사람이었다고 하더군요. 오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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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협단어] 후회하는 용기
‘후회 없는 삶 살기’가 좌우명인 친구가 있었습니다. 실제로 그에 걸맞게 살아가는 사람이었습니다. 하고 싶은 게 생기면 주저하지 않고 움직이는 친구였습니다. 운동, 알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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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아두면 유용한 동물병원 이야기
"쫑이야, 알파야 병원가자!", "쫑이야, 알파야 어딨니?"사람이나 동물이나 병원하기 싫어하는 건 마찬가지인가 봅니다. 오늘은 쫑이랑 알파가 동물병원 가기 싫어서 어딘가에 숨은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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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첫 적들에게 보내는 편지 - 6
엄마가 영영 집을 떠나고, 아빠의 술주정도 줄어들던 몇 달 후 말이에요, 그때 오랜만에 행복했어요. 갑자기 고요해진 세상이 적응 안 되도록 좋았죠. 평온하다 못해 불안해서 무슨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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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만·불임·천식·실명… 도시에 사는 댓가
도시 사람들은 알레르기 질환과 천식, 자가면역 질환 등에 많이 걸린다. 이는 자연과 접촉이 부족한 탓일 지도 모른다. 2012년 5월 미국 국립과학아카데미회보에 실린 논문을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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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첫 적들에게 보내는 편지 - 7
엄마, 나는 정말 순진했어요. 지금도 아니라고는 못하지만 그때는 정말 뭘 몰랐지. 우리 가족 내에서 벌어지는 정신적 학대가 공평한 줄 알았거든요. 마치 모든 감옥의 모든 죄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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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ly Wordventure (2) -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그리고 다음에 올 바이러스 유행병에 대비하기
이번 주 기사는 지금도 계속 확산되고 있는 코로나바이러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이 글은 새로운 바이러스들이 어떤 경로로 전파되는지 설명하면서, 이러한 흐름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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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둘째입니다 - 자식 사랑법
어릴 적 저녁 6시만 되면 텔레비전에서 하는 재밌는 만화영화를 보느라 바빴다. 캔디캔디, 짱가, 로봇 태권V, 독수리 5형제, 은하철도 999 등 볼만한 프로그램이 많았다. 동네 사람들은 울 집을 독수리 오형제(오빠가 셋, 나와 여동생 한 명)라고 불렀다. 8살 많은 큰오빠, 둘째오빠는 6살, 셋째 오빠는 4살이 많고, 남자와 여자 터울은 4살이자 큰 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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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대 화학 회사가 벌인 세계 최악의 사건
사회고발 장르 영화는 기본 이상의 퀄리티를 자랑할 수밖에 없다. 다큐멘터리로 정확하고 심도 깊고 치밀하게 보여 줄 수 있을 텐데, 굳이 영화로 보여 주려는 데는 이유가 있을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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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연애의 서막
따돌림 생활은 생각보다도 더 길었다. 제주도라는 지역 특성 상 한 다리만 건너면 모두 알 수 있을 정도로 좁았기 때문이었다. 초등학교 때의 소문이 중학교에 진학한 뒤에도 이어졌다. 나는 어느샌가 친구의 남자친구를 빼돌린 천하의 악역이 되어 있었다. 심지어 나를 보기 위해 찾아온 옆 반 애들도 있었다. (진짜다). 소문을 듣고 온 아이들은 “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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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 애호가의 출장 가방 싸기
일주일 정도 출장을 가게 됐다. 여행을 좋아하기에 한때는 출장 많이 다니는 직업을 가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적도 있었다. 남의 돈으로 어딘가 멀리 가서 일도 하고 여행도 하고 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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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슈르에서 만난 두 개의 피라미드
T야, 잘 지냈어? 너도 이곳 소식을 듣고 있니? 여전히 전 세계가 바이러스 때문에 난리도 아니야. 사람들이 그러더라, 다시는 코로나바이러스가 나타나기 이전의 세상으로 돌아갈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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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봄
당신을 제일 아껴주던 사람이 있어요. 어찌보면 당신의 아픔까지도 보듬고 울고 아파하던 사람일지도 몰라요. 그의 집이 나에게는 작은 쉼터였어요. 도망가고 싶을 때, 울고 싶을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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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픔을 말하지 못 하는 당신에게
오늘도어제처럼 그제처럼 늘 그랬던 것처럼울지 않는 당신에게얼굴 한번 본 적 없는 내가이름도 모르는 누군가가당신에게 손수건을 건네준다면당신의 마음이 편해질까요 속세를 버리고체취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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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콤하게 나를 망치는 책임전가
인생의 주요 순간마다 망가진 선택들나는 학업 콤플렉스가 있다. 학창시절 나는 공부를 정말 잘하진 않았지만, 그럭저럭 괜찮은 성적을 유지했다. 이후에 다룰 이야기지만 나는 어떤 시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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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장을 먹으면 어른이 되는 거야
과거에는 문화마다 다른 성인식을 치렀지만 요즘은 각자의 방식으로 성인식을 치른다. 어떤 이는 금기를 뛰어넘기도 하고 다른 사람들은 정해진 룰에 따르거나 특별한 경험을 하며 어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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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빛의 시간
오늘은 4월 16일. 기울어진 이름들이 기억의 수면 위로 떠 오르는 날. 화장대 위에 놓여있는 팔찌의 각인을 손가락으로 더듬어본다. REMEMBER 20140416. 식탁에 앉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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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화 열린 가슴🤞으로 지켜보기
불편한 상황을 소매 걷어붙이고 해결하려 드나 외면하기 십상이다 기존의 습관은 불편한 상황을 문제로 단정 짓고 해결부터 하려 든다. 이때는 에너지가 순간순간 들어 때론 진이 빠지기도 한다. 동시에 타인에 대한 저항과 회피는 마음과 다르게 더해만 가고 서로 등을 돌리기 십상이다. “아픔과 슬픔, 절망과 공포 속에 살아가면서 한 순간 한 순간이 바뀔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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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론을 잘하고 싶은 나, 비정상인가요?
비평을 경험하다내가 기억하는 첫 비평은 대학교 2학년 봄 학기의 전공 수업, 한 주 동안 그린 그림을 발표하는 시간이었다. ‘크리틱(critic)’이라는 단어를 사용할 뿐 특별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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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라지꽃
재수생이던 나는 그날도 다른 날과 마찬가지로 대입 체력장 시험을 위하여 야트막한 동네 뒷산에 올랐다. 삼십 분 남짓 걸리는 정상을 뛰듯이 오른 후 뒤돌아 내려와 늘 땀을 식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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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미친 세상, 착하게 살아라!<br />
언제부터인가 ‘선하다’라는 단어가 촌스러운 취급을 받는 세상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영화 안에서조차 마찬가지다. 마냥 선한 인물은 ‘비현실적’이라거나, 이상적이라고 핀잔을 받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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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기, 행복
과거를 기억하는 인간은 시냅 스회로에 아로 새기는 각자의 이야기를 지울 방법을 찾지 못했다. 이야기를 이야기로 덮고, 또 그 이야기를 덮어 단단하게 굳히는 것 외의 방법을 알지 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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쌓여있던 이별
그럴 때가 있다. 팽팽하게 균형을 맞추고 있던 감정의 무게중심이 한순간 휘청거릴 때가 있다. D-7, 이사를 실감하는 날이었다. 익숙한 도시와의 이별을 진행하기에 앞서 해결하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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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려동물을 위한 건강한 먹거리
천방지축 푸들 쫑, "오늘 간식은 뭐예요?""엄마, 오늘 간식은 뭐예요?"저랑 알파는 엄마가 주방에만 가면 쪼로록 쫓아갑니다. 엄마는 저희가 가면 항상 브로콜리, 파프리카 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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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ly Wordventure (10) - 감옥국가
이번 주 워드벤처는 미국의 형벌제도에 관한 글을 골랐습니다. 형벌과 관련한 유용한 단어들이 집중적으로 들어있어서 이런 단어들을 외우는데 꽤 유용한 자료가 될 것으로 여겨집니다.J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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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ly Wordventure (1) - ‘기생충’ 이후, 자막은 여전히 미국인들에게 1인치 장벽일까?
이번 주부터 미리엄웹스터 보캐뷸러리빌더 독자들을 위해 영문 읽기자료를 보내드립니다. 어떻게 구성할 것인지 고민을 했는데, 꾸준히 영문읽기를 계속하려면 아무래도 글의 내용 자체가 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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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ly Wordventure (3) - 신흥종교와 보수당파가 한국에 코로나바이러스를 퍼트리다
해가 뜨기 전에 가장 어둡다는 말이 있듯이, 어려운 시기일수록 함께 힘을 합쳐 서로 돕고 이겨내면 훨씬 좋은 날들이 펼쳐질 거라 생각합니다. 이번 주 워드벤처는 어제 포린폴리시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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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ly Wordventure (4) - K팝이 미국차트에서 정상에 오른 이유를 설명하는 두 가지 가설
여러모로 힘든 시기이지만 좋은 소식도 들리더군요. 새로운 앨범으로 컴백한 BTS가 빌보드 앨범차트에 또 다시 1위에 올랐다고 하네요. 빌보드앨범차트 1위만 벌써 네 번째라고 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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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ly Wordventure (5) - Z세대는 왜 가부장리더십을 싫어할까?
이번 주 워드벤처는 미리엄웹스터 보캐뷸러리빌더에 나오는 단어 하나를 주제로 삼아서 글을 선정해보았습니다. 이번주 단어는 21쪽에 나오는 paternalistic 으로 골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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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ly Wordventure (6) - 의사는 사람들이 선호하는 대체의학을 폄하해서는 안 된다
이번 주 워드벤처는 미리엄웹스터 보캐뷸러리 24쪽에 나오는 condescend가 사용된 글입니다. 단어해설을 보면 아시겠지만, 이 단어의 의미는 꽤 복잡합니다. 하지만 이 글을 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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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ly Wordventure (7) - 강경화 외교부장관 BBC 인터뷰
이번 주 워드벤처는 조금 쉬운(?) 것으로 준비했습니다. 최근 강경화 외교부장관이 BBC Andrew Marr Show와 인터뷰를 한 것이 화제가 되었죠.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원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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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ly Wordventure (8) - 다른 좀비드라마는 쓰레기통에 버리고 지금 넷플릭스에서 ‘킹덤’을 보라.
이번 주 워드벤처는 전세계적인 자가격리 시대에 상당한 인기를 끌고 있다는 넷플릭스 킹덤에 관한 영국 옵저버의 칼럼을 골랐습니다. 좀비의 역습은 전세계적인 바이러스의 역습과 절묘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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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ly Wordventure (9) - 판데믹은 어떻게 끝날 것인가?
이번 주 워드벤처는 세계적인 과학저널리스트 에드 용이 애틀란틱먼슬리에 기고한 코로나바이러스 이후 세계를 전망하는 글 중 일부입니다.그는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해 전세계가 단기적으로 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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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협단어] 사표(死票)를 던지는 마음
총선이 있었습니다. 선거를 하기 위해 주섬주섬 챙겨서 집을 나섰습니다. 사전투표였지만 기다리는 사람이 바깥까지 이어져 있었습니다. 코로나의 위협에도 이렇게나 오다니, 아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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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이야기가 긴 이야기를 만듭니다
심윤경의 『이현의 연애』라는 단편집을 읽다가 깜짝 놀란 적이 있습니다. 거기 실려 있는 「라 캄파넬라」라는 작품을 이미 어디서 읽은 기억이 생생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잠깐 기억을 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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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었다 살아나는 사람들…무엇이 진짜 죽음인가?
2013년 4월 유럽마취의학협회 회의에서 저명한 의사들이 촉구한 내용이다. 같은 달 23일 영국 BBC 뉴스의 보도를 보자 (출처 : Bringing people back fr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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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회> 이보다 더 무서울 수는 없다!
출발 드림팀의 얼굴과도 같은 최고의 세트 경기!오늘은 그 일곱 번째 시간으로 지금도 드림팀 역사에서 절대 지울 수 없을 정도로 최고로 손꼽히고 있는 Best of Best에 해당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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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당한 거리 - 상처받지 않는 안전장치
나이가 들어 사회생활과 결혼을 하면서 많이 바뀌는 게 있는데 그 중 ‘사회적 성격’과 ‘사람들과의 관계’라고 한다. 기본 성격은 그대로, 모양은 조금 변형된 성격으로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성격은 변하지 않는다고는 하지만 부딪혀서 깎이고 더 강해지거나 약해지기도 한다. 나도 모르게 타인에게 상처를 주기고 하고 받기도 한다. 더 이상은 당하고 싶지 않아 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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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람 - 찾아가는 교집합
함께 산다는 건 함께 여서 더 쉽고, 함께 여서 더 어려운 일이다. 연애는 이상이고 결혼은 현실이라는 말처럼 달라서 좋고 끌림의 연애시절이, 달라서 힘들고 버거운 시간의 굴레에 들어가는 결혼생활이 될 거라는 상상하지 못한다. 덜 꼼꼼해서 꼼꼼한 사람이 좋고, 덜 계획적이어서 철저히 계획적인 사람에게 끌리고, 덜 이성적이어서 군더더기 없는 이성적인 사람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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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즈베리 주스 사건
그린 게이블즈에 10월이 왔다. 아름답게 낙엽이 물드는 풍경 속을 돌아다니는 앤은 이렇게 표현되어 있다. Anne reveled in the world of color ab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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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자
가까이 잡힐 듯 잡히지 않고그렇다고 떠나지도 않고잡히지 않는 너 내가 사랑하는 이들이너처럼 알갱이 없는 나를 알아채고옆에 있어 줬으면 하는 헛된 욕심은 또다시 나를 주저앉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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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에서의 나이 차이
열다섯과 스물의 연애, 그건 맞는 걸까? 나는 십 년이 지난 지금도 가끔 이런 생각에 휘말린다. 물론 오래 생각하면 할수록 꼬리를 무는 상념으로 바뀌니 최대한 빠르게 잠에 들고자 노력한다. 그러니 이 글을 쓰기 위해 억지로 과거의 문을 열어버린 오늘은 원고를 끝내자마자 잠이 들 계획이다. * 이제야 10년이 흘렀다. 중학교 2학년이던 나는 벌써 대학 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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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일강의 남쪽 끝, 아스완
T야, 달력을 보고 깜짝 놀랐어. 4월도 어느새 막바지야. 그런데 오늘은 마치 한겨울처럼 바람이 세차게 불더니 기온도 뚝 떨어졌어. 강원도에는 눈도 내렸대. 집어넣었던 겨울옷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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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 멋있는 사람이에요, 좀만 더 힘을 내봐요."
2019년은 한국 독립영화계는 유례없는 호황을 누렸다. 해외 수많은 영화제에서 선을 보이고 뒤늦게 한국에 상륙해 신드롬급 관심을 얻어 흥행까지 이어진 <벌새>를 비롯 <우리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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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빛의 시간
우리 집의 익숙한 풍경 중 하나는 엄마 아빠가 마주 앉아 맞고를 치는 장면이었다. 부모님께 고스톱은 일과를 마친 저녁이나 휴일에 함께 나눌 수 있는 몇 안 되는 유희 거리였던 듯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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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내지 않더라도 인정해주세요
나에겐 '분노스위치'가 있다가끔 화나는 일이 생기는데, 생각보다 분노의 강도가 너무 심해서 당혹스러울 때가 있다. 원인이 된 일은 그 정도로 분노할 일이 아님에도. 내겐 그런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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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양준일 덕질] 절대적 환대, 양준일
EBS라디오의 윤고은 북카페에 양준일이 베스트셀러 작가로 출연했다. 솔직히 말하면 그 방송을 못 들었다. 일단 양준일의 책을 세 번 봤더니 그 행간을 거의 외우는 것 같고, 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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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봄
가끔 눈물이 나야 할 때 눈물이 나지 않아서 벙 쪄있을 때가 있다. 누가 정해놓은 건 아니라지만 새삼 내 눈물은 어디로 간 건지 '그렇게 많이 울었나?' 싶다가도 '아니다 그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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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좋아했던 건 아니지만
‘따다라라란 따라라란~ 네가 없는 거리에는…….’'널 그리는 널 부르는 내 하루는 애태워도 마주친 추억이 반가워…….' 전주와 첫 소절만 들려와도 몽글거리는 노래가 있다. 성시경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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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 애호가의 출장 중 티타임
이번 출장은 가는 길부터 심상치 않았다. 터미널로 향하는 버스가 급커브를 트는 통에 짐과 함께 그야말로 널부러지며 타박상을 입었다. 왼쪽 팔의 움직임이 원활하지 않았다.마침내 도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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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의 나라
여기, 미국에서 가장 미움 받는 여인이 있다. 권위적인 아버지에게 지지 않았던 딸이자, 자신의 자유를 침해하는 무엇이든 일갈을 날렸던 여자. 영화는 종교의 자유를 외치는 무신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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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기, 행복
생각해보면 그의 여유는 특별한 것이 아니었다. 몇 번 앞으로도 고꾸라지고 뒤로도 넘어져 보면 생겨났을 그런 류의 여유였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하는 정도의 그런 여유가 어쩜 그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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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ly Wordventure (11) - 저렴한 기름의 숨은 효과
이번 주 워드벤처는 유가폭락에 관한 글을 골랐습니다. 그런데 작성하고 보니 기사가 5년 전 거네요.The Hidden Effects of Cheap Oil저렴한 기름의 숨은 효과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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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한 양보는 없는 거야
계란 탁! 소금 촉촉!달구어진 후라이팬에 기름을 둘렀다. 기름이 고루 퍼지도록 좌우로 팬을 기울인 다음 계란 네 개를 깨뜨려 가지런히 머릿속에 계산된 자리에 올려 놓았다. 노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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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형 아니고 보석
아이가 갑자기 뛰기 시작했다. 반짝거리는 돌을 향해 달려갔다.반짝이는 것에 관심이 많아진 큰애는 길을 가다가 예쁜 돌을 줍기도 하고 이모에게 금반지를 달라고 조르기도 하였다. 보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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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협단어] 히틀러를 살려라?
'내가 어린 히틀러를 구했던 의사가 된다면 그를 살릴 것인가?’ 어릴 적 도덕책에서 본 질문입니다. 단순한 선/악의 세상을 살아오다 처음으로 마주한 딜레마였습니다. 머릿속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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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깨의 힘 빼는 데만 3년이 걸린답니다
아마추어 골퍼들이 어깨의 힘을 빼는 데 걸리는 시간이 대략 3년이라고 합니다. 처음 골프클럽을 잡으면 누구나 저절로 어깨에 힘이 들어가는데 꾸준한 연습과 자세 교정을 통해 불필요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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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바람 쐬러 고고씽!
천방지축 푸들 쫑, "산책할 때 가장 행복해요"내 몸이 왜이러죠? 가만히 있으려고 해도 몸이 말을 듣지 않아요. 저는 눈치가 참 빨라서 엄마가 산책줄 있는 근처에만 가시면, 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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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대에 걸쳐 8천㎞를 여행하는 제왕나비
캐나다 동부의 초원에서 여름 동안 번성하던 제왕나비 떼는 가을이 오면 무리 지어 남쪽으로 대이동을 시작한다. 수천만 마리의 나비 떼는 해마다 어디를 향해 여행하는 것일까?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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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조선 탈출기'였어야 마땅할 '사냥의 시간'
2011년 단 한 편의 영화 <파수꾼>으로 한국 독립영화의 중추이자 한국영화 최대 기대주로 떠오른 윤성현 감독, 10대들의 예민한 감수성을 섬세하게 표현해 찬사를 받았다. 꾸준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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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회> Made by 출발드림팀
출발 드림팀의 얼굴과도 같은 최고의 세트 경기!오늘은 그 여덟 번째 시간으로 그동안 소개한 종목들의 커다란 빛에 가려져 제대로 볼 수 없었지만 오직 드림팀에서 만들었기 때문에 지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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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로 에세이를 꾸리는 이유
하나의 주제로 30편을 묶는 일은, 단순히 한편의 시리즈를 꾸리는 것만은 아니다. 퇴사라면 퇴사, 취준이라면 취준, 가족이라면 가족처럼 하나의 주제에 관한 지식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혹 그렇지 않더라도 그와 관련한 경험이 뒷받침되어야 무사히 완결까지 다다를 수 있을 테다. 나는 셀 수 없이 많고 다양한 경험들을 해봤다. 그 덕분에 하나의 주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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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완성이어도 괜찮아
T야, 어느새 5월이 다가왔어. 집 앞 가로수에는 잎이 무성해져서 제법 시원한 그늘이 드리워져. 햇빛을 피해 초록 그늘로 걸어가면 나도 초록색 피가 흐르는 식물이 되고 싶어.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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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양준일 덕질] 웃고 웃었던 다섯 달 기록
2019년 12월 25일부터 2020년 4월 29일까지, 다섯 달 덕질이다. 처음 jtbc 손석희의 문화초대석 인터뷰를 보고, 거꾸로 찾아봤던 양준일이었다. 저 사람 누구인데 저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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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빛의 시간
이조년(1269-1343)의 <다정가多情歌>라는 시조가 있다. “이화(梨花)에 월백(月白)하고”로 시작해 “다정도 병인 양하여 잠 못 들어 하노라”로 끝나는, 임을 향한 연정을 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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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란한 빈 깡통의 변명
묵묵하고 싶은 떠벌이말을 아끼기란 생각보다 매우 힘든 일이다. 말하기 좋아하고 아는 체하기를 즐기는 이라면 누구든 이 힘듦의 강도를 알 것이다. 나 역시 그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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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사로운 기억
정확한 날짜도정확한 말귀도 기억나지 않고그저 흐릿한 기억 한줌이잔상으로 남아발목을 잡을 때가 있다 당최 명확하지 않아뭐라 따지지도 못할 것을 돌이켜 후회를 줍지도 못할 것을 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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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식남이지만 고기를 좋아합니다
인생은 매 순간 처음의 연속이다. 같은 경험을 했더라도 어제 했던 행동과 오늘 했던 행동이 다르듯이 어제 내가 먹은 고기와 오늘 내가 먹은 고기는 엄연히 다르다. 어쩌면 우리의 삶은 고기서 고기로 가는 길목 어디쯤일지도 모른다. 그중에서도 처음 맛보는 고기의 맛은 잘 잊히지 않는다. 그렇다면 나는 언제 처음 고기를 입 속으로 넣었을까? 너무나도 당연하게 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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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의 주말
반려견과 함께 즐겨찾는 커피숍을 방문했다. 일주일에 두세 번씩 방문하는 곳이라 근처를 지나갈 때면 강아지가 앞장서서 찾아가는 곳이다. 야외 테라스에 앉아 커피 한 잔을 시켜놓고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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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봄
바람이 부쩍 차가워졌다. 요 며칠 몸이 아파서 일이 끝나면 잠을 자기 바빴다.똑같은 아침, 그날따라 찬 공기를 타고 밥 냄새가 코 끝을 건드린다. 여느 때와 다를 것 없었는데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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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려놓지 못한 수도승
오래전 덕유산 종주를 한 적이 있다. 남덕유산에서 북덕유산으로. 밤 기차로 출발해서 동트기 전 캄캄한 새벽에 영각사로부터 산에 올랐다. 처음 남덕유산을 오를 때만 해도 옅어지는 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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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화 일상의 지평을 열다
경계에 서다 ‘마음’이라는 판도라의 상자를 열면 온갖 종류의 순간순간과 일상들을 선사받는다. 그 안에는 수많은 생각과 판단, 기억, 개념들이 섞여있다. 넝쿨처럼 얽혀있는 생각과 느낌을 자기 자신이라고 굳건히 믿기도 한다. 때론 내가 보거나 들은 넝쿨줄기 중의 하나가 나를 나타내고 있는 것이 맞다, 틀리다 저울질하기도 한다. 일상이 들려주는 마음의 속삭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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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를 둘러싼 모든 것이 궁금한 당신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
아무래도 차에 대한 책을 낸 작가이다 보니 이따금 어떤 책을 읽으면 차에 대해서 잘 알 수 있느냐는 질문을 받는다. 마음 먹고 차에 대해서 파고 싶다고 결심했던 십 년 정도만 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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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흥미로운 세상에서 너무 오래 슬퍼할 순 없잖아요
앤과 다이애나는 배리 부인의 허락 하에 마지막으로 10분 동안 손을 잡고 이별을 한다. 이 이별의 장면도 자못 낭만적이다. 앤은 구어체가 아닌 문어체, 그것도 몇 세기 전 영어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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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협단어] 캠퍼스를 떠나는 당신에게
졸업식이 없어져 인사만 전했던 마음이 못내 섭섭하여 글을 띄웁니다. 졸업식의 후련함과 아쉬움, 그 시원섭섭함을 느끼지 못한 당신에게 졸업은 어떤 것이었는지 궁금합니다. 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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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인분 먹을 건데요?
한국에 있을 때는 몰랐지만 외국에 가보니 우리나라에서 있을 때 느끼지 못했던 장점이 보일 때가 많다. 배달과 택배 문화, 빠른 인터넷 속도 등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먹부림을 좋아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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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이 짧으면 짧은 글을 쓸 수 없어요
칼럼을 연재하다 보니 글쓰기의 근본에 대해 다시 생각하는 기회가 많아집니다. 오늘은 문득 '나는 왜 이렇게 계속 짧은 글쓰기에 대한 얘기를 반복하고 있는 걸까?'라는 의문을 품어보았습니다. 1970~80년대는 대하소설의 시대였습니다. 박경리의 『토지』나 황석영의 『장길산』, 조정래의 『태백산맥』, 『아리랑』 등은 젊은 학생들부터 직장인들까지 한국인의 필독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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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첫 적들에게 보내는 편지 - 8
엄마, '미운 우리 새끼' 보셨어요? TV를 잘 보지 않는 저도 한 번씩 캡처 자료를 접할 정도니, 엄마가 그 프로그램을 못 봤을 리는 없겠죠. 여러 패널이 나오지만 포맷은 비슷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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폼생폼사 푸들 쫑
천방지축 푸들 쫑, "미용시간은 힘들어요""엄마 잠깐만... 잠깐만요...""엄마가 예쁘게 단장해주셔서 고맙긴 한데요, 저 그냥 이대로 살면 안될까요?"미용하고 나면 예뻐지니까 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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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물에 대한 네 가지 오해…주는 사람과 받는 사람, 생각 다르다
선물은 사회적 소통수단이다. “우리가 더 가까워지면 좋겠어요”, ”당신을 생각해요”, “그리워요” … 하지만 관심과 사랑을 전하는 완벽한 선물은 고르기 쉽지 않다. 게다가 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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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회> 장애물의 천국
출발 드림팀의 얼굴과도 같은 최고의 세트 경기!오늘은 그 대미를 장식할 마지막 아홉 번째 시간으로 출발 드림팀의 역사를 장식한 수많은 경기들 중에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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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위해 살아왔고, 살아가고 있으며, 살 것인가?
핀쥐이는 어릴 때 대만의 시골 '호미(타이거테일)'에서 할머니 손에 키워진다. 할머니는 그에게 울지 말고 말을 적게 하며 강해지라고 말하곤 했다. 1950년대, 장성한 핀쥐이는 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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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커피
유의미한 하나의 루틴을 만드는 데에 얼마만큼의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지만, 루틴이 깨지는 건 순식간이다. 매일 아침 글을 쓰고 책을 읽고, 알찬 오전 시간을 보내던 시절이 있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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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엄마 - 영원한 내 편
남아선호사상이 강한 친정엄마와는 많은 대화를 해 보지 못하고 자랐다. 청소년 시절에 가장 부러운 친구는 ‘친구 같은 엄마’를 가진 친구였다. 입고 싶은 옷에 대한 이야기, 친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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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기, 행복
언젠가 오빠를 낳았다는 부천을 지날 일이 있었다. 담담하게 37년 전의 이야기를 풀어놓는 아버지의 옆 얼굴을 보며, 내가 태어나지 않은 시간과 공간 속을 지나는 동안 난 문득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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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은 자존감이 연애상대에게 미치는 힘
최근 한 영상을 봤다.자존감이 낮은 사람이 도리어 연애를 해야 하는 이유를 다룬 내용이었다. 장점은 크게 두 가지였는데, 첫 번째는 우울에 허우적대는 나를 보듬어 줄 수 있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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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파라오의 땅에 어둠이 내릴 때
T야, 5월은 색깔 있는 달이야. 비록 마스크로 입은 가렸어도 온갖 색으로 물든 세상을 둘러보니 벅차게 좋아. 말은 줄이고 보고 듣는 데 충실한 날을 보내며 그동안 내가 얼마나 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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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에게 필요한 건 재능뿐일까
내게 재능이 있을까요즘 나는 종종 울적하다. 30대가 된 뒤로 감정기복이 없는 편이라 이런 상태는 스스로도 낯설다. 내 장점이자 단점 중 하나는 대책 없이 자신감이 넘친다는 것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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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MCN은 무엇인가? 재부팅 양준일에 즈음하여
드라이브 스루, 팬사인회한 양준일 지난 4월28일, 파주에 있는 한 아울렛 매장 주차장에서 세계 최초로, 드라이브 스루로 팬 사인회를 했다. 소위 ‘차를 탄 채’ 운전석과 차창 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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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빛의 시간
우리 가족은 아빠, 엄마, 오빠, 나 이렇게 넷이었다. 우리 넷은 각자 떨어져 있으면 가족인지 모를 정도로 외모가 달랐다. 보통 자식들 얼굴을 보면 대략 어느 집 애인지 알 것 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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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수
신 따위의 치수, 문수지금은 쓰지 않는 말 문수 내 발 치수 245내 동생 발 치수 270 신발장에 수많은 신발들치수는 딱 두 개뿐245 270 엄마 발이 몇이었더라아빠 발이 몇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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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rong>네, 제가 바로 그 청춘입니다.</strong>
I으으, 제가 정말 싫어하는 말들 중 하나에요. 나이의 앞 숫자가 2로 바뀌고 난 후부터 어른들은 이와 비슷한 말들을 줄곧 해주시곤 했어요. 하물며 어떤 분은 갓 성인이 된 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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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5화 - 깨어있는👀 삶의 언어
세상을 살아가는 삶의 시각은 가치관들로 가득 차 있으나 이는 오랜 습관과 성인이 될 때까지 깊숙이 뿌리 내린 언어와 행동의 패턴에 따라 움직인다. 때론 조직의 문화로 조건화된 자기의식의 부재가 만들어낸 허구이기도 하다. 더 이상 우리 자신의 이야기가 아니다. 서로의 삶에 기여할 때 기쁨을 느낀다 중재자이자 평화운동가이며 비폭력대화를 개발한 마셜 로젠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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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봄
어느 날의 나는 스스로를 돌아 볼 틈조차 없이 작디작아서 힘들다 말하며 손을 내민 네게 손을 잡아주지 못 한 채 그저 안타까워만 했다.나는 그리고 너는. 우리는. 살려고 살아보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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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좋은 순간에 생각나는 것
요즘 나의 관심사는 도시양봉이다. 그렇다. 도시에서 양봉, 즉 벌을 키우는 일을 하는 것이다. 원래는 그냥 양봉이었다. 언젠가는 시골에 가서 벌을 키워서 그 꿀을 먹으면 좋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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샌디 '웩'슬러
<샌디 웩슬러>를 말하기 앞서 그를 연기하는 아담 샌들러에 대한 이야기를 반드시 해야만 한다. 그만큼 영화의 중심축에는 아담 샌들러라는 배우의 잔상이 크게 작용하기 때문이다. 샌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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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 ] 배웁니다 - 사는 지혜를
배운다는 것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익히고 삶을 살아가는 지혜를 터득하는 것이다. 세상 밖으로 나오는 순간, ‘나’라는 존재를 알리고 보살핌을 받기 위해 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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戀人은 아니었지만 1
고등학생 때부터 학교에 가거나 집에 오는 버스 안에서 자주 보았다. 등교할 때 그 아이는 종점에서 버스를 탔고 나는 다음 정류장에서 탔다. 큰 키에 말라서 TV에 나오는 말라깽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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戀人은 아니었지만 2
책임이란 소리에 순간 발끈한 억울함이 목구멍으로 올라왔다."책임?"그러나 나의 움츠려 드는듯한 소심한 대꾸에 그 아이는 기다렸다는 듯이 조용하지만 단호하고 빠르게 말했다."너는 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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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내 봉기<i>Insurrection in South Korea</i> (뉴스위크 1980년 6월 2일자)
대한민국 내 봉기Insurrection in South Korea대한민국에서 6.25 전쟁 이후 발생한 최악의 폭력사태였다. 한반도의 남서쪽에 위치한 전라남도의 수도 광주에서 지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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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난 아이 - 내 반창고는 그림책
그 전과 다른 자신의 모습으로 쇄신하고 싶을 때, 새롭게 일을 시작할 때 ‘오늘 다시 태어나는 거야’라며 몸과 마음을 다지는 행위를 한다. 가령, 그간 길렀던 손톱을 바짝 자른다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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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협단어] 중요한 건 눈에 보이지 않지만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아” 어린 왕자는 말했습니다. 화려한 외제차, 스펙으로 가득 찬 이력서, 통장에 꽂히는 월급. 이런 거 말고. 사랑, 배려, 연대 같은 거 말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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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견카페 트렌드 2020
천방지축 푸들 쫑, "얘들아 반가워, 나 쫑이야!"가뭄에 콩나듯 가는 애견카페... 쫑이는 이 날이 너무 좋아요. 여러 친구들을 만나 신나게 놀 수 있으니까 말이죠. 애견카페에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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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로부터 2미터
귀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삐이이-순간 멍해져 무슨 상황인지 얼마간은 알아차리지 못하였는데, 두 아이가 옆에서 소리를 질러대고 있었다."대장님! 실패하였습니다.""알았다.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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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일들은 모두 작은 일들로 마무리 된다
이번 장은 맨 처음에 중요한 메시지를 박고 시작한다. ALL things great are wound up with all things little. 직역을 하면, ‘모든 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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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첫 적들에게 보내는 편지 - 9
인터넷 포털을 돌아다니다 보면 가끔 '사람과 전쟁' 같은 프로그램에서 나온 막장 스토리를 캡처한 걸 봐요. 사람들은 그게 실화 기반이라는 걸 알고 "드라마보다 현실이 더 막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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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억년 전 지구에서 작동한 원자로
1972년 5월 프랑스의 피에렐라트 우라늄 농축공장에서 함량 분석 작업을 하던 기사 한 명이 이상을 발견했다. 아프리카 가봉의 오클로 광산에서 들여온 원료 중 일부가 문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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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배를 피우느니 차라리 바람을 피워라
인간은 이성적이고 경제적인 일만 추구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의외로 쓸 데 없는 것에 집착을 보이는 존재입니다. 음주나 흡연, 도박처럼 중독성 있는 행위들이 대표적인 예가 아닐까 합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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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가지 질문 - 지금, 여기
니콜라이라는 소년이 살고 있었다. - 가장 중요한 때는 언제일까?- 가장 중요한 사람은 누구일까?- 가장 중요한 일은 무엇일까? 톨스토이가 일흔 살이 넘어 썼다는 <세 가지 질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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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회> 왕중왕전의 추억
출발 드림팀에서 최고의 역사를 장식했던 선수들이 모여 최강의 전사를 가리기 위해 펼치는 대결! 바로 출발 드림팀 왕중왕전이다.드림팀의 역사에서 왕중왕전이 펼쳐진 건 총 4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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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빛의 시간
아빠는 검진 결과를 보러 갔다가 갑작스레 입원했다. 2급 이상의 종합병원에서 당일 입원은 드문 일인데도 의사가 급히 입원을 시켰다는 건, 한시가 급한 위중한 상태였다는 뜻. 아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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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숙함에 속았다는 말이 더 이상 오글거리지 않을 때
'익숙함에 속아 소중함을 잃지 말자'는 초등학교 때부터 유행하던 말이었다.지금도 권태기를 앓는 연인들에게 자주 가닿는 이 문장은, 예나 지금이나 유명하다. 특히 2011년에는 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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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왜, 낯선 곳에서 깨어나 사냥당하는가?
작년 8월, 굴지의 장르 전문 제작사 '블룸하우스'가 제작하고 유니버설 픽처스가 9월 말경 배급할 예정이었던 영화가 갑자기 개봉을 취소하는 해프닝이 벌어졌었다. 해당 영화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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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일강에서 건져 올린 사랑의 신전
T야, 오랜만에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을 다시 읽었어. 우리 둘 다 무척 좋아하던 책이었지. 이번에 읽다가 밑줄 그은 부분이 어딘지 아니?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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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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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지키는 법
시간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모른 채 2020년을 맞이한 지도 벌써 다섯 달이 지났다. 작년 이맘때와 너무나 다르게 변화한 요즘의 일상이 감사하기도 하고 두렵기도 하다. 그럼에도 건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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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실에도 예의가 있다
30대가 된 후로 눈물을 흘리며 우는 일이 많이 줄었다. 원래 눈물이 많아서 기쁠 때 빼곤 웬만하면 우는 편이었고 그게 정말 싫었는데 이제 적당한 정도를 유지하는 것 같다. 슬프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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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at. 밤이 선생이다] 5월 2주차 아홉시 레터
이번주 ‘스승의 날’을 맞아, 불필요한 ‘의전’은 줄이되 스승을 향한 고마움은 더 새기는 사회야말로 좋은 사회라 할 것입니다. 자기 인생에서 만난 최고의 ‘선생[先生]님’을 추억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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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봄
요즘은 봄이 참 짧지요? 당신은 안녕한가요?아직도 내 주위에는 당신의 안부를 묻는 이들이 수두룩하네요.사람이 무서워서인지 나는 그냥 웃으며 지나가요. 나를 보여주기가 참 어렵더라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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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6화 고요하게✨ 귀 기울여 듣기
그리스 철학자 제논(Zenon ho Kyprios)은 “신은 인간에게 귀 두 개와 혀 하나를 주셨다. 인간은 말하는 것의 두 배를 들을 의무가 있다.”고 이야기 한다. 다시 말해 양쪽의 귀를 온전히 열어놓고 경청하고 나서 대화를 이어나가라는 의미이지 않을까? 집중된 마음으로 들어라 우리는 일상을 살아가면서 상대방이 말하는 것을 얼마나 세심하게 들을까? 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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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색 차Tea의 계절
하루가 다르게 나뭇잎의 색깔이 진해지고 있다. 아직 싱그러운 연두의 기운이 남아 있긴 하지만 어떤 나무들은 짙은 녹색의 기운을 흠뻑 뒤집어썼다. 봄은 이미 우리에게 이별을 고할 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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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수 좋은 날 (feat.신기루)
T야, 지금 네게 편지를 쓰는 내 방 창문 밖 풍경을 보여주고 싶어. 어제까지 봄비치곤 제법 많은 비가 내리더니 오늘은 하늘이 쾌청하고 그림에서나 본 뭉게구름이 흘러가. 창문 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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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협단어] 맛있는 빵을 먹어보지 못한 자, 인생을 논하지 말라
먹기 위해 살 것인가, 살기 위해 먹을 것인가? 이것은 답이 정해져 있는 질문입니다. 살기 위해 먹는 것입니다. 먹기 위해 사는 것은 본능적이고 일차적인 욕망에 삶의 궤적을 맞추는 삶을, 살기 위해 먹는 것은 조금 더 인간답고 고상한 목표를 향하는 행동을 의미합니다. 눈앞에 보이는 것에 매몰된 채 살아가는 인생을 일깨우는 문장입니다. ‘배부른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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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움직여야 스토리텔링입니다
똑같은 이야기라도 누가 하느냐에 따라 그 재미나 감동은 천차만별이죠. 성우 송도순 씨가 어렸을 때 친구들이 돈을 모아 자신에게 영화를 보여주곤 했다는 얘기를 하는 걸 들은 기억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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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의 수명이 짧은 이유, 엄마의 저주 탓?
남성의 평균 수명은 여성보다 5, 6년 짧다. 우리나라에서 2018년 태어난 남자아이의 기대 수명은 80세, 여자아이는 86세였다. 왜 그럴까? 그 이유는 모계로만 유전되는 D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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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첫 적들에게 보내는 편지 - 10
인생은 정말 알 수가 없는 게, 내가 결혼을 했다는 거예요. 집안 사정 창피한 건 둘째치고, 당시 내 심리상태가 엉망진창인 건 나도 알았는데 말이에요. 새 가정을 이룬다면 필연적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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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친구가 되었다
십오일의 금요일이었다.한 주를 그럭저럭 마무리하였다는 안도감에 마음이 가벼웠다. 아이들을 재우러 들어간 남편에게 고마워하며 쌓여있던 피로를 풀어내려 화장실로 향했다. 뜨거운 물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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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견훈련과 독스포츠 트렌드
천방지축 푸들 쫑, "기다려, 옳지, 먹어?""기다려!", 기다려?... 무슨 말이지?간식을 손에 올려놓고선 아빠가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알파랑 저랑은 간식이 먹고 싶어서 손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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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회> 해외원정의 추억
출발 드림팀이 국내에서만 펼쳐진 것은 아니었다.세계에서도 출발 드림팀의 인기는 정말 엄청났다. 미국을 시작으로 일본, 대만, 호주, 뉴질랜드, 괌, 캐나다, 홍콩, 사이판, 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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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달의 민족? 고기의 민족!
우연히 만난 친구와 커피를 마시다가 최근에 쓰는 육식에 관한 글 이야기를 했다. 그 친구는 채식주의자여서 고기 이야기가 매력적인 건 알겠지만 듣기 조금 거북하다고 했다. 충분히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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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보다 젊은 오늘
학창 시절 같은 반 친구들 이름을 ㄱ, ㄴ, ㄷ 출석 번호순으로 외우던 그녀는 꽤 괜찮은 기억력을 지녔었다. 특별히 노력하지 않아도 동네를 지나가는 대부분의 버스 노선을 알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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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빛의 시간
입원하고 일주일 정도 지나자 병원 측에서 혈액종양내과 전용 병동으로 옮기길 권유했다. 당시 나는 아빠의 자료를 가지고 간담췌 방면의 유명한 교수가 있는 병원을 찾아 대리진료를 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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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기, 행복
그 때의 나의 미숙함을 떠올려보자면 얼굴이 붉어지고 미간이 찌푸려지기 일쑤였다. 횡설수설했고, 중언부언했달까. 기분이 나쁘면 나쁘다고 하면될 것을 우물쭈물하다가 혼자 토라지곤 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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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매매 사업에 뛰어든 미성년자의 끔찍발랄 영리한 이야기
2018년 예능 <범인은 바로 너>, 2019년 드라마 <킹덤>의 성공 이후 넷플릭스 한국 오리지널 열풍이 시작되었다. 2019년에 몇 편의 드라마와 영화가 나왔고, 2020년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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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래의 남자들
미국 역사상 가장 멍청한 전쟁이었던 이라크 전쟁을 바라보는 방식은 다양할 것이다. 그러나 ‘전쟁 영화’라는 장르에서 대중들에게 필연적으로 상상되는 스펙터클함은 역설적인 부분이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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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고 싶으니까 믿지 않는 거예요
사람을 잘 믿는다 vs 잘 믿지 않는다?나는 사람들을 쉽게 믿지 않는다. 원인은 학문적인 이론을 대며 설명할 필요도 없이 간단하다. 많이 속았기 때문이다. 가끔 내가 사람을 쉽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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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봄
너는 어둑한 하늘을 보면 우울해진다고 했었다. 온 세상이 새카맣게 변하면 네 마음도 새카맣게 변하는 것 같다고. 사실 나는 어둑한 하늘에 햇살 한 줌, 코가 시큰거릴 바람이 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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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의 유통기한
차는 식품으로 분류된다. 그래서 상품화되어 나올 때는 유통기한이라는 걸 달고 나오기 마련이다. 대개는 2년으로 잡아서 내보낸다.차를 선물받는 사람들은 두 가지로 행동한다. 무작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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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7화 - 있는 그대로 바라보기👀
우리의 눈은 내 관심을 갖고 주목하는 대상은 또렷하게 보지만 거리와 상관없이 그 주변의 대상은 뿌옇게 보인다. 첫 아이를 세상에 마주할 때를 생각해보라. 온갖 기계와 도구의 차가움이 내 몸을 스치는 그 고통의 첫 순간에도 아이의 울음과 함께 모든 것은 흐릿해지고 핏덩이의 아이만이 확대되어 또렷하게 빛이 되어 내 시야를 사로잡는다. 그래 설까? 고슴도치도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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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 코로나 시대 속에 우리의 삶은?
I포스트 코로나 시대라고 한다. 수많은 미디어와 라디오 매체에서 코로나 사태 이후 인간의 삶의 양식에 대변동이 있을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다. 독자 여러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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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양준일 덕질] 콘텐츠의 포지셔닝
보름을 글을 못 썼다. 쓸 수가 없는 것이다. 무엇인지 모르겠지만 폭풍이 지나간 느낌이다. 덕질의 길은 멀고도 험 하구나,를 새삼 느낀다. 덕질의 시작에는 여러 가지가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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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끝까지 펼쳐지는 치마-네 꿈을 펼쳐라
오늘은 딸 바보 이야기.딸 어릴 적, 먹고살기 바빠 많은 걸 해주지 못했다. 다만 재미있다며 계속 들고 온 책들만은 다 읽어주려 엄마로서 최선을 다했다. 아이가 잠들 때까지 읽어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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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일강의 진주
T야, 내 손 좀 잡아 봐. 촉촉하게 땀이 배었지? 지금 나는 긴장했단다. 초등학교 2학년인 조카 꼬물이가 오프라인 개학을 맞이하게 되었어. 꼬물이는 드디어 가방을 메고 학교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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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협단어] 정의로운 불평등
커다란 경기장을 가득 메운 군중이 숨을 죽이고 있습니다. 선수들은 호흡을 가다듬으며 출발선에 서 있습니다. 적막을 깨는 신호탄이 울리고 그들은 순식간에 결승선을 통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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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속에서 친절함을 찾아내다
앤은 다이애나와 이제 친해도 친해도 너무 친하다. 학교에서 같이 하교하고 집에 들어오기 전 근 삼십 분을 서서 이야기하고도 저녁에 급한 일이라 다이애나를 보러 가야 한다고 앤이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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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단히 쓰겠습니다. 사랑하고 있습니다
지난주에 저와 아내가 함께 아는 시인이자 편집자인 분께서 선물과 편지를 보내왔습니다. 물론 손으로 직접 쓴 건 아니지만 트레이싱지 위에 검은색 잉크로 인쇄된 몇 장의 편지 글씨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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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말하지 마
"그렇게 말하지 마. 나 너무 속상해요." 남편이 부탁한 서류를 떼러 가는 길이었다. 횡단보도를 건너려고 큰애에게 손을 내밀었을 때, 그제야 아들 손에 한가득 쥐어져 있는 딱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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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려동물이 우리에게 주는 조건없는 사랑
천방지축 푸들 쫑, "언니들이 저를 예뻐해줘서 기뻐요"오늘은 아빠 엄마를 따라 차를 타고 어디론가 왔는데, 이곳에 오니 언니들이 많이 있어요. 제가 워낙 사람을 좋아해서 언니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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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첫 적들에게 보내는 편지 - 11
결혼하면 이제 내 인생은 엄마, 아빠의 영향력에서 벗어나 자유로워지리라 생각했어요. 지긋지긋한 싸움, 눈치 보기, 감정 쓰레기통 역할과 이젠 안녕일 줄 알았지. 그 빌라에 우울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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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히 戀人처럼
사내방송으로 A형 혈액을 구한다는 내용이 스피커를 통해 나왔다. 신체 건강한 사람이라는 단서에서 내가 적합하다는 의기가 생겼고 호기롭게 자원해서 서울대 병원으로 향했다. 첫날은 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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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신 초기 스트레스, 딸 낳을 가능성 높인다
임신 2,3개월째에 스트레스를 받은 산모는 조산하기 쉬우며 딸을 낳는 일이 많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태아의 성별이 바뀔 수는 없지만 아들을 유산할 위험이 크게 높아진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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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에게나 지우고 싶으면서도 지우고 싶지 않은 기억이 있다
오 년부터 십 년까지, 헉 소리 날 정도로 오래 연애한 이들을 존경한다. 결혼한 지 이십 년은 훌쩍 넘은 부모님 세대가 할 법한 말이지만, 연애 기간과 사랑은 비례하지 않는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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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회> 국제경기의 추억
드림팀과 외국 선수들의 경기는 직접 해외에 가서 펼친 것도 있지만 국내에서 외국 선수들을 초청해서 펼친 경기도 있다. 이번에는 대한민국에서 펼쳐진 드림팀과 외국 선수들의 경기 이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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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 하나
하루 끝 눈을 감기 전마지막으로 내 눈에 담기는창 넘어 별 하나 가버린 별일까머무른 별일까다가올 별일까 내 님처럼잡힐 듯손을 뻗어 쥐어보면 창 넘어아득히 반짝거리기만 한다 보이기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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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 코로나 시대 속에 우리의 삶은?
두 번째 교훈 빛 좋은 개살구 ; 자연존중 의식 『15. 만일 발이 이르되 나는 손이 아니니 몸에 붙지 아니하였다 할지라도 이로써 몸에 붙지 아니한 것이 아니요 16. 또 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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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다, 괜찮다, 괜찮다.
내게는 오랫동안 함께 해온 소중한 사람들이 있다. 1~2년에 한두 번쯤 경조사 때 겨우 만나는 게 전부이지만, 늘 고마운 사람들이다. 1999년 여고 2학년 시절, 이과와 문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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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rong>우울해도 괜찮아, 다 그래.</strong>
생각보다 오랫동안 집에 갇혀있는 바람에 요즘 전 하루하루 지루함의 끝을 보고 있는 것만 같아요. 물론 다들 똑같겠죠? 조금만 참으면 모두가 안전할 거라는 걸 너무 잘 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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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려동물 영화
천방지축 푸들 쫑, "엄마, 아빠 왜 울어요?"엄마랑 아빠가 TV를 보면서 훌쩍거리고 계세요. 알파랑 저는요? 옆에 앉아서 왜 그러시는지 궁금해 재롱을 피워봐요. 두 발을 들고 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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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그쇼 소개
천방지축 푸들 쫑, "난 푸들, 알파는 말티즈"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저는 푸들이고, 알파는 말티즈예요. 푸들은 프랑스가 고향이고, 말티즈는 기원전 1500년경 페니키아인의 중계무역 장소였던 지중해의 몰타섬에 유입된 개가 조상이라고 해요. 푸들도 덩치가 큰 스탠더드 푸들이 있는데, 저는 체구가 작은 토이푸들이랍니다. 푸들과 말티즈는 모두 털이 잘 안 빠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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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려동물 박람회
천방지축 푸들 쫑, "아빠 엄마 다리 아파요! 오늘은 엄마 아빠랑 반려동물 박람회에 왔어요. 사람들도 많고, 강아지 친구들도 많이 있어요. 엄마 아빠랑 한참을 구경했는데, 목도 마르고 다리도 아파요. 제가 사람을 좋아하긴 해도 이렇게 복잡한 곳에 오니까 정신이 하나도 없어요. 그래서 엄마 아빠한테 자꾸 안아달라고 보채게 돼요. 어떤 친구들은 보니까 개모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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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기, -
너는 스물 여섯이 되었다. 단풍은 색을 잃으며 골목마다 쌓이고, 축축하게 썩어가고 있는, 하늘이 부쩍 멀어졌다고 생각이 드는 계절. 눈 시린 파랑이 산너머까지 이어지는데, 느리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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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 아트
천방지축 푸들 쫑, "알파가 어딨다고 그래요?" 어느 날 미용실에 들렀는데, 때마침 6살 다인이도 놀러 왔습니다. 휴대폰 속 쫑이와 알파 사진을 본 다인이는 노트를 꺼내 그 둘의 모습을 그림으로 그렸습니다. 다인이의 그림을 사진으로 찍어와서는 쫑이랑 알파에게 보여주며 자랑을 합니다. "쫑이야, 알파야, 이게 너희야. 다인이가 그려줬는데 잘 그렸지?" 녀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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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견 캠핑, 애견 펜션
천방지축 푸들 쫑, "난 누구, 여긴 어디?" "아빠, 엄마 지금 어디 가는 거예요?", "지금 여기는 어디예요?", "얼마나 남았어요?" 오늘은 아빠, 엄마가 나랑 알파를 차에 태우고는 한참을 갑니다. 바깥 풍경이 재미있어 이쪽 저쪽 왔다 갔다 하면서 구경을 하는데, 어른들은 자꾸 저더러 뭐라 그러세요. 1시간, 2시간... 시간이 계속 흐르고, 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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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려견 놀이터
천방지축 푸들 쫑, "이곳은 진정한 멍뭉이들 세상" 오늘은 고양 호수공원에 있는 반려견 놀이터에 놀러 왔어요. 집에서도 가까워 금방 올 수 있고, 무엇보다 목줄 없이 맘껏 놀 수 있어서 좋아요. 새로운 친구들을 많이 만날 수 있고, 수도가 있어서 물을 마실 수 있다는 점도 마음에 드네요. 놀이터가 넓어서 신나게 달려도 끝까지 가는 데 한참 걸리네요. 알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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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견 동반 식당
천방지축 푸들 쫑, "쫑이 말을 안 들어주시는 아빠 엄마 나빠요" 아빠랑 엄마랑 식당에 왔어요. 이곳에 오니까 넓은 운동장이 있어서 좋아요. 알파랑 함께 운동장에서 이렇게 신나게 놀 수 있다니, 여기 자주 왔으면 좋겠어요. 놀러 온 친구들도 많아서 운동장에서 인사를 나눴어요. 나이 어린 친구도 있고, 저희랑 비슷한 또래의 친구들도 있어요. 그렇게 한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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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그조틱 애니멀
오늘은 이그조틱 애니멀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드리려고 합니다. 이그조틱 애니멀은 개나 고양이 이외의 동물을 가리키는 말인데요, 그래서 오늘 글에는 쫑이가 등장하지 않아요. 이그조틱 애니멀이란? 사전에서 찾아보니, exotic animal은 '이국적인 동물'이라고 나오는군요. 특수동물이라고도 부르는데, 여기에 포함되는 동물의 종류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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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려동물 보험
천방지축 푸들 쫑, "아빠, 뭐하세요?" 아빠가 낮에 누굴 만나고 오시더니 열심히 글을 쓰고 계셔요. 인터넷 검색도 하면서 눈이 빠져라 컴퓨터를 보고 계시네요. 우리랑 놀아주지도 않으시고 뭘 그렇게 열심히 하시는지 모르겠어요. "쫑이야 아빠가 잡지에 글을 기고해야돼요. 지금 글 쓰고 있으니까, 잠깐만 기다려줘요. 알겠죠?" 뭐 이런 말씀을 하시는데 어쩔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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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기 동물 그리고 동물권 단체
천방지축 푸들 쫑, "친구들 표정이 밝지 않았어요" 오늘은 아빠 엄마를 따라 유기 동물 입양센터에 다녀왔어요. 그곳에는 가족이 없는 친구들이 있었는데, 왠지 다들 표정이 어두워 보였어요. 아빠 엄마를 처음 만난 지 어느덧 8년이 되었네요. 처음에는 낯선 환경에 적응하기가 쉽지 않았지만 지금은 가족들이랑 잘 살고 있어요. 저도 어릴 때 파양당한 경험이 있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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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멀 커뮤니케이션
천방지축 푸들 쫑, "펫타로가 뭐예요?" "쫑이야 알파야, 오늘 아빠랑 엄마가 펫타로를 보고 왔어요!" 낮에 아빠 엄마가 어디를 다녀오시더니 저랑 알파를 붙잡고는 신이 나서 뭐라 뭐라고 말씀하시네요. '펫타로?, 그거 먹는 건가? 두 분만 좋은데 다녀오시고선 먹을 건 안 주시고 말로만 넘기시려고 그러는 것 같다. 아빠가 하시는 말씀을 들어보니, 알파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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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려동물 아로마테라피
천방지축 푸들 쫑, "이거 무슨 냄새지?" '이거 무슨 냄새지?' 엄마가 손님이 곧 오신다고 촛불을 켜셨는데, 이상한 냄새가 막 나요. 우왕 이거 무슨 냄새인가요? 향이 얼마나 독한지 몰라요. 아빠 엄마는 가끔 이렇게 촛불을 켜곤 하시는데, 쫑이는 이 냄새가 별로 맘에 안 들어요. 그런데 자꾸 이 냄새를 맡다 보니까 이제는 무덤덤해졌어요. 알파도 역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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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려동물 돌봄 서비스
천방지축 푸들 쫑, "파파 마마 언제 오세요?" '아빠랑 엄마가 밖에 나가실 때면 항상 불안하다. 나랑 알파만 남겨놓고 나가시면, 언제 돌아오실지 몰라 슬프다' 오늘 아빠랑 엄마가 또 어디를 가시네요. 저는 두 분이 하는 행동만 봐도 금방 척하고 알 수 있답니다. 오늘은 커다란 가방도 준비하시고, 그 안에 옷도 넣으시는 걸 보니까 어디 멀리 여행을 다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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펫비즈니스
'쫑이야 놀자' 스물하고도 일곱번째 글로, 오늘의 주제는 '펫비즈니스'입니다. 쫑이는 이번 글에서는 잠시 쉬어가겠다며 옆에서 낮잠을 즐기고 있습니다. '녀석 자기 돌보는 게 머리부터 발끝까지 돈인데...', '자기가 이 글의 주인공인지도 모르나 봅니다.' 펫비즈니스! 저는 이 주제를 '반려동물 생애주기(요람 ~ 성장 ~ 무덤)'를 기준으로 접근해볼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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펫로스
'반려동물을 잃은 슬픔에 회사에 출근하지 않는 회사원'... 블로그를 처음 시작하던 2012년에 봤던 뉴스의 내용입니다. 당시만 해도 반려동물을 잃었다고 회사에 출근하지 않는다는 것이 잘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그 즈음 쫑이와 알파가 저희 집으로 왔고, 시간이 지나면서 저 역시 같은 상황이라면, 회사에 출근하지 않게 될 것 같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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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라보
이 글에서는 반려동물 산업과 콜라보를 이루는 다른 분야들의 이야기를 들려드리려고 합니다. 반려동물에 관심을 갖고 블로그를 시작한 것이 2012년이었는데 벌써 8년이란 시간이 흘렀습니다. 세월 참 빠르네요. 그동안 반려동물이라는 주제로 많은 분들을 만날 수 있어 행복했습니다. 되돌아보면 2012년 당시만 해도 '반려동물'이란 말은 그리 널리 사용되지 않았습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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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필로그
천방지축 푸들 쫑, "여러분 다 같이 힘내요" 여러분 그동안 '쫑이야 놀자'를 사랑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여러분 관심 덕분에 저는 알파랑 사이좋게 지내고 있습니다. 아빠가 제가 하고 싶어 하는 얘기들을 제대로 전달했는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저는 아빠를 믿어요. 아빠, 그동안 글 쓰신다고 고생하셨어요. 요즘은 밖에 산책 나갔을 때, 어린 꼬마들이 오면 예전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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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서 먹다버린 걸 '아래'에서 받아먹을 뿐...
'수직 자기관리 센터'라는 이름의 수직 모양 수감 시설, 가장 윗층인 레벨 0부터 끝을 알 수 없는 레벨까지 내려가 있다. 각 레벨당 2명이 배정되고 각각 원하는 것 하나씩을 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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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빛의 시간
고등학교 3학년 때 <KBS 도전 골든벨>에 나갔었다. 학교 학생들이 강당에 모여 문제를 풀고 마지막 50번 문제까지 정답을 쓰는 사람이 최후의 승자가 되는 TV 프로그램. 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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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히 차를 마십니다
아주 긴긴 하루를 지난 뒤 조용히 우려 마시는 한 잔의 차는 축복과도 같은 것.모두 잠깐 바쁨을 멈추고 잠시 차 한 잔 마시며 쉬어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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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수는 나의 것
<굿맨 조>(원제는 Small Crimes)는 역겹지만 연약한 주인공을 내세워 다양한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또한 공간이 하나의 인물로 기능할 수 있음을 잘 보여주는 영화이기도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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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화 내 자신의 솔직한✨ 내면 인정하기 1
살금살금 나오다 바람결에 닫히는 문에 오른쪽 손가락을 그대로 찧었다 고통이 오른팔 전체로 삽시간에 퍼져버린다 정신을 차리고 살펴보니 세 번째 손톱 밑에 살갗이 움푹 파여 선홍빛 핏방울이 금방이라도 터질 듯 굵게 고여 있다 귀가하는 지하철역으로 발걸음을 떼지 못하고 약국을 찾는 시선만이 휘몰아칠 뿐 우두커니 서 있었다 아픔에 진하게 베이고서야 생명력의 꿈틀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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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봄
드디어 짐을 쌌다. 비행기 표를 끊고 떠날 날을 하루하루 숨죽여 세고 있다.아무도 나를 잡지 못하게 방심한 사이 나는 훌쩍 도전이라는 탈을 쓴 도망을 택했다. 나는 지금, 그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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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빛의 시간
2019년 12월 5일 목요일, 561205로 시작하는 아빠의 주민등록상 생일이었다. 진짜 생년월일은 1955년 음력 11월 10일. 그러므로 2019년 아빠의 진짜 생일은 가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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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기 속 허세 한 움큼
졸업식의 일인자, 고기나와 띠동갑인 막내 이모네 사촌동생 두 녀석은 유독 고기를 좋아한다. 우리 집이 사실상 외갓집이고 이모, 이모부인 어머니, 아버지가 외할머니, 외할아버지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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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와 맥주, 그리고 함께여서 좋은 시간
T야, 여름이 시작되는 6월이야. 진한 선글라스를 뚫고 들어오는 햇살에 너무 눈이 부셔서 양산을 쓰고 그늘 속에 몸을 숨긴단다. 그래도 초록이 짙어지는 계절이라 나도 모르게 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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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협단어] 우리는 왜 심리 테스트에 끌리는 걸까요?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성격 검사가 유명세를 탔습니다. 엠비티아이, 꼰대 검사, 동물 유형 검사 등 이런 종류도 있나 싶은 것들이 하루가 멀다 하고 실시간 검색어에 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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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싶지 않은 일을 하며 살기엔 시간이 아까우니까
<슬기로운 의사생활>이 끝났습니다. 1회부터 12회까지 참 유머러스하고 공감가는 대사도 많았고 울컥 울음을 터뜨린 장면도 많았던 드라마였죠. <응답하라> 시리즈를 만들었던 신원호 감독과 이우정 작가는 어쩌면 그렇게 디테일까지 다 챙기면서도 시청자들의 마음을 들었다 놨다 할 수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아무래도 그들은 천재인 것 같습니다. 이 드라마는 제작환경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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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첫 적들에게 보내는 편지 - 12
화목하지 못한 가정의 아이들은 빨리 철이 들곤 해요. 그런 변화는 사실 능동적인 선택이기보다는 강요에 의한 수동적인 선택에 가깝죠. 아직 보호자의 손길이 필요한 나이에, 부모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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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회> 드림팀 VS 개그콘서트
지금도 생각해보면 이 두 프로그램이 있을 때의 일요일은 더없이 행복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내가 변함없이 좋아하는 프로그램 ‘출발 드림팀’을 오전에 시청한 후 나만의 스케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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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에서 온 사람은 아직… 물리학계 시간여행 실험 중
“찾습니다: 소셜 미디어에서 예언을 하는 시간여행자(CNN)” “과학자들이 인터넷을 뒤져 시간여행자를 찾고 있다(허핑턴포스트)” “인터넷에서 시간여행자 탐색, 무위로 끝나…이번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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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슴도치의 방어기제 탈출기
오늘 아침, 현 남자친구에게 당분간 혼자 있고 싶다는 말을 전했다.답은 금세 왔다. 고민은 많이 하더라도, 자신을 일부러 밀어내거나 마음을 식히려 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는 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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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릴러로서의 미덕이 돋보이는, 사회파 드라마
알 만한 사람은 너무도 잘 알 그 이름, 에릭 칸토나. 1980~90년대 프랑스 리그를 주름잡던 그는 1992년 잉글랜드로 건너온 뒤 곧바로 알렉스 퍼거슨 감독의 눈에 띄어 맨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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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기, -
기억 속 아버지는 거의 비상(非常). 엄마는 매일 종교 회관에 갔다. 그곳에서 친구들도 만나고 기도도 하며 하루의 대부분을 보냈다. 가끔 아버지가 일찍 집에 들어오시는 날에만 종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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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기, -
매미가 울기 전, 너의 오빠는 엄마의 피와 땀과 눈물에 싸여 태어났다. 소리보다 입이 먼저 벌어지고, 온 힘을 다해 울던 엄마의 첫 애는 여름처럼 짧은 삶을 손에 쥔 생명이었다. 오빠가 세상에 나올 때 직업군인이었던 아버지는 비상이었는데, 그래서 엄마는 천장을 보며 첫 애를 낳았다. 그리고 두 해를 걸러 네가 세상에 나올 때도 여전히 아버지는 비상이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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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기, -
너는 사실 입관하는 이를, 너의 오빠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뒤통수는 터지고 얼굴은 부었다. 하얗게 분을 바르고 딱딱하게 굳은 몸은 아무래도 너의 오빠가 아니었다. 너는 뒷걸음질 치다, 다시 다가가고 또 주저앉아 무너지고, 울었다. 우리 오빠가 아니야, 우리 오빠가 아니야. 차가운 몸 사이에 두루마리 휴지를 통째로 넣으며 넌, 오전 내내 오빠를 거절했다.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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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으로부터의 초대
미세먼지, 초미세먼지 좋음에 볕은 뜨겁고 바람은 차가운 날이었어. 올해 여덟이 된 길버트는 거실 소파에 걸터앉아 마법천자문에 열중하고 있었고 다섯 살 찰스는 작은 방에서 레고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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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녀 사이에 친구, 할 수 있죠!
오늘은 조금 간질간질한 이야기를 한 번 해보려고 해요. 제 글의 소재는 항상 경험에서 나오곤 하는데, 막상 연애나 사랑에 관련된 이야기를 풀자니 조금 부끄럽긴 하네요. 아마 조금 유치할 것 같기도 해요. 하지만 뭐 어쩌겠어요. 20대 초반인 제게 사랑이란 카테고리 속 소재들은 넘치고 넘치는걸요. 쓰고 싶은 글도 많고, 하고 싶은 말도 많은 게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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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연예인 역할, 팬덤 역할
가끔 연예인은 공인인가, 아닌가, 를 생각할 때가 있다. 정치인들이 쏟아내는 말 보다 유명 연예인이 쏟아내는 말이 더 큰 영향력을 발휘할 때, 어떤 문제가 생겼을 때 연예인이라 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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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아침 10시가 되면
벌써 6월이다. 눈 깜짝할 사이에 겨울에서 봄을 지나 여름이 왔다. 올해는 유난히도 빠르게 흘러가는 시간이 야속하다. 늦은 아침밥을 챙겨 먹고 나니 벌써 10시다. ‘아, 벌써 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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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금 무엇에 바쁜가
도전은 즐거워, 짜릿해, 늘 재미있어나는 도전하는 걸 좋아한다. 조금 속되게 말하자면 일 벌리길 좋아한다. 뭐든 손을 대고 집적거린다. 관심분야가 넓고 욕심이 많기 때문인데,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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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 코로나 시대 속의 우리의 삶은?
( 반대 조직에게 습격을 당한 정청은 임종 직전에 있다 )정청 : 어이 브라더. 너 많이 힘들어 보인다. 그러지 말고, 이제 고만 선택해라. 형 말 듣고, 이놈아. 그래야 니가 살어 … 이자성 : 형님 … 아 형 … (호흡기를 끼우려 하지만) 정청 : 너 지금 뭐 하냐 …? 너 만에 하나, 천 만분의 하나라도, 내가 살면 너 어떡하려고 그래? 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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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워 머신>은 지난 13화에 썼던 <샌드 캐슬>(<샌드 캐슬>에 관한 글은 여기를 참조)과 연결된 미래 같다. 이라크 전쟁의 부시를 규탄하던 카메라는 이제 오바마 시대로 넘어와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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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봄
나는 겨울을 좋아한다. 뼛속까지 시큰거리는 바람을 좋아하고.반짝이는 것들이 가득한 깜깜한 밤을 좋아하고. 포근하고 새하얀 세상을 볼 수 있다는 것과, 세상에서 특별한 사람이 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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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화 내 자신의 솔직한✨ 내면 인정하기 2
일상을 살아가다 보면 ‘느낀다’라고 이야기하면서도 실제로는 느낌을 표현하지 않을 때가 우리에겐 종종 있다. “진행되는 일을 모두 마치고 보니 뭔가 이용당한 느낌이 든다.”라고 표현하는 학생이 있었다. ‘느낀다’라는 단어를 쓰고 있지만 뭔가 느낌과 생각 사이를 오고가며, 명쾌하지 않다. 그저 고개를 갸우뚱거리게 된다. 이럴 때 나의 내면의 소리에 따라 조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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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략하게 살펴보는 차의 역사 Part I
인류는 아주 오래전부터 찻잎을 활용해왔다. 그 기원이라고 여겨지는 것은 중국 남부 지방으로, 신농이라는 신적인 존재가 찻잎을 처음 발견했다고 알려져 있다.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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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똥별
청량리역에서 만나 함께 출발하기로 했다. 여자아이들, 남자아이들, 전부 모르는 아이들인데 왜 내가 그들과 함께 산에 갔는지.그 아이들은 서울에 있는 고등학교 학생들의 독서클럽 멤버들이었다. 그 클럽 멤버인 친구가 같이 가자고 해서 따라나섰는데, 청량리역에서 나만 소개해 주고 자기는 사정이 있어 함께 갈 수 없다고 했다.천마산이 목적지였다. 나는 그들이 준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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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어와 통과의례
고기에 관한 글을 쓰면서 내장과 관련된 글에 요리 연구가 백종원 씨의 말을 인용한 적이 있다. 성인식, 하나의 통과의례이자 어른의 세계로 가는 티켓을 주는 의식이다. 예전처럼 생존을 위한 성인식은 사라졌지만, 우리에겐 아직 정신적인 통과의례가 존재한다. 아이에서 어른으로, 다른 문화권에서 우리 문화권으로 넘어온다는 의미에서의 통과의례. 통과의례는 가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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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가 될 줄 알아야 여러 사람과 만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왜 글을 쓰는 걸까요? 사람에겐 표현 욕구가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이야기를 즐기고 또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존재입니다. 어쩌면 산다는 것 자체가 끊임없이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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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협단어] 중고거래인의 예의
흥미는 때론 한순간에 생겨납니다. 문득 젬베가 배우고 싶었습니다(젬베는 손으로 두드리며 박자를 타는 타악기입니다). 그러나 계속할 수 있을 거란 자신은 없었습니다. 그래서 보다 저렴한, 찢어진 제품을 중고로 샀습니다. 찢어진 북이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습니다. 그리고 저의 우려는 현실이 됐습니다. 악기는 몇 번 두드려지다가 5년 정도를 창고에 가만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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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선물 그리고 매와 하마
T야, 아는 분이 음반 한 장을 소개하는 글을 봤어. 아카펠라 그룹 '메이트리'의 새 앨범이었지. 마침 유튜브에서 찾아봤는데 우리가 좋아했던 곡투성이였어. 그중에서 '아름다운 이별'을 들으며 네 생각을 했단다. 기억나지? 우리 둘이서 부산 여행을 갔을 때 차에서 내내 들었고, 나중에는 누군가와 이별한 후 우리만의 이별 의식을 가지며 들었던 노래였지. 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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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룡의 멸종과 학제간 연구의 중요성
공룡의 멸종 이유에 대해서는 지구에 소행성이 충돌한 탓이라는 '충돌설'이 지배적인 학설이다. 그 증거를 발견한 경위는 흥미진진하다. 노벨상(1968)을 받은 물리학자 루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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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첫 적들에게 보내는 편지 - 13
사실을 고백하자면 우리 관계가 파탄 난 데에는 내 잘못도 커요. 무사히 결혼을 치르고 가정을 꾸려 나가면서, -이제는 친정이 된- 우리 집이 이제는 평화로워졌다고 믿었거든. 나도 친구들처럼 힘들 땐 든든한 친정에 기댈 수 있겠거니 생각했어. 아주 큰 착각이었지. 변명하자면 나로선 선택의 여지가 없기도 했어요. 우리 부부 둘 다 부모님께 손 벌리지 않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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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북아, 뭐 하니?-핑계대지 않는 여유 공간
특정한 시기에 각별하게 다가오는 '시절 인연'처럼, 힘들 때 유난히 마음을 울리는 '시절 음악'이 있다.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내 마음이 달라지듯 귀에 꽂혀 듣던 음악도 달라진다. 또 어느 순간에는 '시절 그림책'이 나를 위로해 주기도 한다. 딸아이의 돌 무렵 별거를 하던 시기에 내 마음을 후벼 파던 시절 음악은 조성모의 '가시나무'였다. 남편에게 바랐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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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의 취향
문득 시선이 닿은 사무실 한편에 디퓨저가 놓여있었다. 코로나 시대를 맞이하여 마스크 세상에 살게 되면서, 또 환기를 위해 창문과 문을 전부 열어두느라 존재 자체를 잊고 지내던 녀석이었다. '내 공간에도 향기가 함께 하고 있었구나.' 지난가을 무렵 일하는 공간을 향기롭게 만들고 싶어 동대문 방산시장에서 디퓨저를 구입해왔다. 좋은 향을 찾기 위해 여러 종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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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회> 최고의 녹화장소 (상)
출발 드림팀을 재미있게 만드는 요소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최강의 드림팀 멤버들과 상대선수들, 응원과 함께 방청하러 온 다양한 팬들, 훌륭한 경기 세트 등. 하지만 진짜 최고는 따로 있었으니, 이러한 모든 조건들을 실현 가능하게 만든 최고의 녹화 장소가 그 주인공이다. 드림팀 시즌 1과 시즌 2가 녹화된 여러 장소들 중 베스트급에 해당되는 녹화 장소 12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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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회> 최고의 녹화장소 (하)
출발 드림팀의 촬영지는 이전화에서 소개한 6곳 외에도 많다. 지금부터 만나볼 이 장소들도 수많은 관객을 수용할 수 있는 스케일과 화려한 외관에서 결코 밀리지 않으니, 설레는 마음으로 함께 떠나보자. ⑦ 강동대학교 연성대학교처럼 이름을 바꾼 학교가 또 있다. 극동대학교와 맞붙어있는 극동정보대학 역시 강동대학교로 이름을 바꾸었다. 극동정보대학이었을 때는 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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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빛의 시간
“어떤 하루는 인생만큼 길었던 적이 있습니다. 마음에 담아 둔 그날의 기억을 꺼내세요.” 최근 방영하기 시작한 드라마 <아는 건 별로 없지만 가족입니다> 1화에 나오는 대사다. 서로 아는 것 별로 없는 가족 중 둘째 딸인 은희(한예리 분)가 업무차 들른 명상원에서, 강사는 위의 문장으로 기억의 포문을 연다. 포탄이 빠져나간 지 4년이나 지났건만, 인생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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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사람을 만났다면 반절은 상대방 덕, 반절은 내 덕
지난 연애가 끝난 지 1년하고도 반이 흘렀다. 묵묵히 시간을 견딘 덕분에 그 힘을 빌려 지금의 내가 될 수 있었고, 이별의 고통은 이제 까마득한 옛날 일처럼 느껴질 정도에 다다랐다. 물론 그때의 고통과 상심은 나를 옭아맬 정도로 커다래서 (늘 그랬듯) 다시는 이별을 하지 않겠다고 굳게 결심했지만. 연애를 다시 시작할 용기를 얻은 결정적인 계기는 친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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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여성의, 한계를 뛰어넘는 여정과 모험
지난해 영화 <와일드 로즈>로 이름을 알린 톰 하퍼 감독. 제시 바클리를 내세워 시골 소녀의 컨트리 가수 성공기, 여성의 끈끈한 목소리와 연대를 한 데 담아 호응을 얻었다. 비슷한 이름 때문인지 <킹스 스피치>, <레미제라블>, <대니쉬 걸>을 감독한 톰 후퍼와 종종 혼동되곤 하는 그의 작품이 다시 우리를 찾아왔다. 톰 하퍼의 신작 <에어로너츠>는 작년 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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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나의 보물
정적이 머물던 화성은 찰스의 목소리로 활기를 찾았어. 찰스는 진지한 표정으로, 한쪽 손을 귀에 가져다 대고 먼 곳에 있는 길버트와 전화하는 듯 말하고 있었어. 옆에 있는 길버트는 깔깔깔 웃었고 개똥이가 대신하여 응답을 했어. 멍멍! 멍멍! 현무는 눈을 똥그랗게 뜨고 상황을 파악하다가는 곧 알아차렸지. 그러고는 큰 소리로 웃었어. 현무의 웃음에 길버트와 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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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화
조금이라도 맞지 않으면 내려보내지 못하고 한동안 정체시키곤 홀로 아파한다 기도 끝 걸린 음식물 유난히 원망스럽다 그리 크지도 않았다고 생각했는데 쉽게 생각했던 걸까 빨리 보내려 했던 걸까 약도 들지 않는 게 꼭 너다 지나갈 거면 빨리 지나가버리지 뭐 한다고 걸려 아프게 하는지 잠시라도 아프고 싶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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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미가 의무가 될 때
날씨가 하루가 다르게 점점 더워지고 있네요. 6월 초에 낮 기온 31도라니, 몇 년 전만 해도 이렇게까지 덥지 않았던 것 같은데.. 아마 지구가 우리 때문에 많이 아픈가 봐요. 우리 가족은 더위를 많이 타는 편이라, 지금부터 선풍기를 틀어놓고 자고 있어요. 혹시 다른 분들도 벌써 이렇게 지내고 있나요? 전 앞으로 더 뜨겁게 다가올 여름이 너무 무서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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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략하게 살펴보는 차의 역사 Part II
지난 시간에는 찻잎이 처음 발견되어 원나라에 이르기까지 어떤 과정을 겪으며 발전해왔는지 살펴보았다. 오늘은 명나라부터 현재까지 찻잎이 어떤 길을 걸어왔는지 이야기해볼까 한다. 당시에는 어린 잎으로만 만든 최상품의 덩어리진 차에 용과 봉황의 모습을 찍어서 왕실에 공납하는 하는 제도가 있었다. 명나라를 세운 주원장은 평민 출신으로, 그간 나라에 공물로 바쳤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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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봄
밤새 비가 왔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흐렸지만 다행히도 비는 그쳤다.도로 위 빗물 고인 웅덩이에 파란 하늘과 빼꼼 고개 내민 태양이 나를 반겨주었다.괜시리 기분이 들떠 한참을 바라보니 웅덩이는 바람에, 발에 채는 돌멩이에, 떨어지는 물방울에 일그러지더니 파동을 일으켰다. <파동> 한때, 난 파동을 줄 수 있는 사람이고 싶었다.좋은 사람 곁에 좋은 사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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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내'라는 말 뒤에는 사람이 있어야한다
어느 샌가 ‘힘내’라는 말이 위로가 되지 않는 세상이 되어버린 듯하다. 정신병적 징후가 뚜렷한 현대 사회에서 힘낼 기력조차 없는 사람에게 힘을 내라니, 사람에 따라서 무관심을 넘어 폭력적으로 느껴지기까지 한다. 여기 이 영화,<투 더 본>에 몰입한 사람들은 엔딩 크레딧이 올라간 뒤 두 부류로 나뉠 것이다. 자기 자신을 거부하는 사람들을 성실히 대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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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화 삶의 생기✨가 우리를 통해서 표현되다
욕구는 보편적인 것이다 욕구는 모든 인간이 똑같이 갖고 있는 보편적인 것으로 이념, 언어, 지역, 나이, 문화를 넘어선다. 욕구 차원에서 우리 모두는 연결되어 있다. 반면 그것을 충족시키기 위한 수단과 방법은 개인이나 문화권, 세대별로 다르게 나타날 수 있다. 상상력을 통해 욕구를 충족할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을 찾게 되면 우리의 삶은 풍요로워진다. 그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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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보약 한 첩 먹었습니다
며칠 폭풍이 지나갔다. 명색이 양준일 팬심으로 글을 몇 개월 동안 써 온 사람으로서 아무 일이 없었던 것처럼, 아무것도 못 본 것처럼 지나간다는 것은 나 스스로 용납 안 되는 부분이다. 물론 내 독자들 중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르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고, 양준일 팬으로서 처음부터 끝까지 다 들여다본 사람도 있을 것이다. 나는 후자이다. 다 들여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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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하철도 999
부산에서 서울 가는 새마을호 기차표가 매진되어 울산에서 출발하는 표를 겨우 구입했다. 어렵게 구한 서울행 새마을호 객실에 들어섰을 때, 나는 객실이 텅 빈 것을 보고 놀랐다. 조심스레 입구 쪽의 내 좌석에 앉았다. 기차가 출발한 후에도 객실은 혼자만의 것이었다. 나는 텅 빈 객실에 철이만을 태운 채 우주를 달리던 은하철도 999가 떠올랐다. 만화 영화 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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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문난 잔치에서 고기 먹기
흔히 '소문난 잔치에 먹을 거 없다'라고 하지만 생각보다 잔치에는 먹을 만한 고기가 많다. 특히 결혼식, 환갑잔치, 돌잔치 등 경사에 가면 대부분 뷔페를 준비하는데, 뷔페 음식 중에는 참 맛깔난 고기 요리가 많다. 며칠 전에 대학 동창의 결혼식에 갔다. 식단 조절을 하느라 사실상 1일 2식을 하고 있었지만 그날만은 예외였다. 아침저녁을 굶는 대신 점심에 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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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협단어] 거짓말의 깊이
“시란 비가 오니 네가 보고 싶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네가 보고 싶어서 비가 온다고 말하는 것이다.” 고등학교 시절 국어 선생님이 하신 말씀입니다. 여전히 시를 잘 모르지만, 저에게는 꽤나 인상적인 설명이었습니다. 전자(비가 오니 네가 보고 싶다)는 ‘사실 세계’의 문장입니다. 지금 화자의 시간에는 비가 오고 있고, 화자는 그 비를 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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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 코로나 시대 속에 우리의 삶은
『개개인의 신념들은 사회의 복리에 필수불가결하지는 않더라도 적어도 대단히 유익하기 때문에, 그러한 신념들을 보호하는 것은 사회의 다른 이익들을 보호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정부의 의무라는 것이다.』 존 스튜어트 밀, 《자유론》 코로나 사태는 우리 가까이에 있는 주변부(Circle Area)를 조명하고, 이 영역에 살아가는 사람들의 생활을 꼼꼼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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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tlassian Confluence를 배워보자! / Chapter 1: Confluence 시작하기
Atlassian은 2003년부터 저렴하고 사용 방법이 쉬우며 설치 및 유지 관리 비용이 거의 들지 않는 소프트웨어를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이러한 Atlassian의 원칙(?) 덕분에 Confluence의 가격은 저렴하고, 설치 과정은 비교적 간단합니다. 물론 Enterprise Class에 적용할 때는 상황이 좀 다릅니다. 가격도 비싸지고 성능 튜닝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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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적'이고 싶은 게 죄는 아니잖아!
아줌마가 낭만을 말한다고 하니 사람들이 웃는다. 낭만은 연애 때나 찾는 거 아니냐고. 그럼 연애할 때 말고 낭만을 찾으면 불법인가 싶어 부루퉁 화가 났다. 화는 났지만 한편으론 아줌마와 낭만은 어울리지 않는다는 말이 왠지 수긍이 됐다. 다 늘어진 티셔츠를 입고 과일값이나 깎아달라고 흥정하는 처지에 낭만을 논한다는 게 어째 좀 코미디 같긴 하니까. 그렇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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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첫 적들에게 보내는 편지 - 14
새벽에 가진통이 시작되었어요. 비몽사몽하는 첫째를 차에 태우고 남편과 함께 산부인과로 향했죠. 두 번째 아이라 그런지 진행이 빨랐어요. 병원에 도착한 지 한 시간도 안 돼 머리가 보이기 시작했거든요. 분만실 복도에 울리는 첫째의 비명을 메아리처럼 들으며 힘을 주는데 눈물이 났어요. "왜 우세요?" 간호사가 놀라 물었죠. 나도 이유를 몰랐어요. 무통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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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에는 많은 앤이 있어
빨간 머리 앤을 읽다 보면, 작가인 루시 모드 몽고메리가 그리는 캐나다의 자연에 흠뻑 빠지게 된다. 물론 표현력이 남다른 점도 있으나, 아름다운 자연에서 사는 사람 모두가 자연을 즐기거나 자연을 표현할 줄 아는 건 아니라서 더욱 그러하다. 모두에게 같은 일상이고 모두에게 같은 풍경인데, 그 풍경과 일상 속의 매력을 하나하나 찾아내어서 누리는 눈이 앤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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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완벽한 곳'에서 보낸 하루
T야, 6년 전에 밑줄 쫙 긋고 적어뒀던 문장이야. 저 문장이 무슨 말인지 이제야 조금 알겠어. 남이 부러워하는 직장도 잃었고, 이전에 비하면 모든 것이 불편한 곳으로 이사했고, 몇 명 안 되지만 마음을 나누던 벗과도 물리적으로 멀어졌어. 대신에 민얼굴인 나와, 맨몸뚱이인 나와, 맨정신인 나를 만났어. 장점도 단점도 다 인정하고 나와 화해했지. 다른 사람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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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아장성
내설악 용아장성 능선을 타기 위해 아침 일찍 수렴동 대피소를 나섰다. 계곡 바람은 차고 하늘은 가을의 청아한 빛깔을 닮았다. 여름의 끝자락... 가을의 냄새가 났다. 잠시 오르다 본격적으로 용아능을 타기 위해 숨을 고를 때였다. "용아장성 길이 맞나요?" 우리에게 물어 온 두 처자는, 초행이라면서 용아 능선을 당일 왕복할 생각이라고 했다. 용아 능선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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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 '퀴어' '여성' 서사의 21세기형 교과서
올해 초,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과 함께 '셀린 시아마'라는 이름이 극장가에 떠올랐다.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은 72회 칸영화제에서 〈기생충〉 등과 경합을 벌이며 각본상과 퀴어 종려상을 수상한 화제작이다. 칸영화제뿐 아니다. 전 세계 유수 영화제들에 초청되어 부문 후보에 오르고 또 수상하는 등, 이 영화는 일찌감치 2019년 최고의 영화 중 하나로 알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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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슴도치 X - 격렬한 자기 무기
‘남과 다르다’라는 말은 어떤 각도에서 인식하는가에 따라 그 의미가 달라진다. 겉으로 드러난 외모가 남과 다르다는 말인지, 한 공간에서 눈에 튀는 성격이 남과 다르다는 것인지, 남들이 하지 않는 일을 하는 직업적 다름을 말하는지는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보고 상황을 살피기 전에는 알기가 쉽지 않다. 남과 다르다는 것은 주관적 판단일 수 있으며 보편적 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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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의 연인에게
당신이, 이 글을 보지 않으리라는 것을 확신한다. 지나간 연인의 정보는 궁금해하지 않을 정도로 현명한 사람이니까. 아마도 당신이 아닌 미래의 연인이 이 글을 읽을 가능성이 훨씬 높겠지. 아직 얼굴도 모르는 미래의 연인에게 한 마디 하자면, 이 글을 읽으며 질투를 담지는 않았으면 한다. 과거의 연인 덕분에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성장한 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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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개
빛을 쏟아 내는 작은 상자들이 추억을 삼키자 서서히 세상이 흐릿해졌다 두 발이 편해지자 바퀴달린 상자들이 시간을 삼키자 서서히 세상이 흐릿해졌다 빛은 눈을 삼키고 바퀴는 목을 삼켰다 그들은 나를 세상을 삼켰다 아니 우리들 스스로가 우리를 안개 속에 방황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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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 업
악보 같이 보는 것을 어지간히도 싫어했다. 글을 쓰는 순간에 누군가가 기웃거리면 노트를 덮었다. 부르는 노래에는 청중이 필요하고 꾹꾹 눌러쓴 이야기는 독자를 원하는데도 마음속 내밀한 작업들이 진행되고 있는 순간에는 방해받는 것을 못 견뎌했다. 그게 어떤 존재라 해도. 함께 노래하는 순간에도 악보 앞에서는 혼자여야 했고 사람들과 왁자지껄 어울리던 날도 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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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과대평가 하는 버릇
시험은 항상 떨려요. 공부를 많이 하지 못한 사람도, 밤까지 새가며 책을 들여다본 사람도 문제만 달랑 적힌 백색의 시험지 앞에서는 아마 심장이 엄청 두근거릴 거예요. 아예 공부에 관심이 없던 사람도 시험지를 받고 나면 그날은 하루 종일 아쉬운 마음과 후회들로 가득 찰지 몰라요. 가만 보면 시험은 나를 되돌아보게 하는 힘을 가진 것 같아요. 전 요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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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사람들은 열정을 좋아한다
대중들은 열정적인 사람을 좋아한다. 그 열정에는 온전한 결과의 화려함을 좋아하기도 하지만, 오히려 조금 부족하지만 꾸준히 노력하면서 변화해 가는 그 과정의 열정에 박수를 더 보낸다. '슈퍼스타 K'를 시작하여 심지어 기성 가수의 무대 '나는 가수다'까지 인기이었던 이유도 그런 맥락이다. 과정의 열정을 보면서 환호한다. 지금의 트롯 열풍을 만들고 있는'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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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빛의 시간
결혼한 뒤 나는 한동안 반복되는 악몽에 시달렸다. 그리고 그곳엔 거의 아빠와 오빠가 있었다. 둘 다 비상식적인 말과 행동으로 나 혹은 주변인을 괴롭혔고, 내 말은 그들에게 가닿지 않았다. 아빠는 술에 취해 억지를 부리며 욕을 했다. 가끔은 나도 욕을 뱉으며 깨어나곤 했다. 그런 꿈을 꾼 날이면 새벽 내 잠을 설쳤고 아침을 지나 낮이 기울 때까지 기분이 좋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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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rong>철보다 무거운 원소는 중성자별 충돌로 만들어졌다</strong>
핵발전소 연료봉의 우라늄, 자동차 촉매 변환기의 백금, 결혼반지의 금. 이들의 공통점은? 철보다 무거운 원소라는 것이다. 이런 원소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는 우주 물리학계의 논란거리였다. 미국 라이고, 유럽 비르고 관측소중력파·빛 동시 관측으로 중성자별 충돌 확인지구 무게 100배의 금 생성 추정우리 은하에는 1만 년에 한 번 발생 우주에 있는 수소와 헬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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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봄
여기저기 새순이 돋아나던 싱그러운 날, 정말 호기롭게 한라산에 올라간 적이 있다. 얼마 되지 않은 날의 이야기지만 굉장히 오랜 시간이 지난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건 왜일까. 사실 산을 오르려 했던 이유는 단순하다. 맹목적인 도전이 필요했고 나를 시험하고 싶었고 아름다운 풍경을 만끽하면서 혼자 생각을 정리하고 싶었을 뿐이다. 첫 발걸음을 뗄 때만 해도 콧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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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화 자신의 욕구를 소중하게🌹 인식하고 표현하기
인간의 욕구를 이해하는 것이 그들을 만나는 일의 절반이다. -애들라이 스티븐슨(Adlai Ewing Stevenson) 생각하고 느끼며 그 순간 중요한 내면의 나를 따라가라 삶의 언어는 내가 원하는 바를 분명히 말할 수 있도록 돕는다. 타인에게 무엇을 바라는지, 내가 원하는 것이 분명해지면, 강요나 비난 혹은 강압적인 수단과 방법으로는 나의 욕구를 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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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운 여름의 열기를 식혀줄 아이스티 간편하게 만드는 법
여름이 돌아왔다. 연일 뜨거워지는 태양의 기세등등함에 놀라움이 경신된다. 더위에 반팔이나 민소매를 골라 입으면, 태양 아래 살갗이 드러나는 순간 '익는다'는 느낌이 들 정도다. 이럴 때는 당연히 시원한 음료를, 냉장고에서 갓 꺼냈거나 얼음을 잔뜩 넣어 잔을 잡기만 해도 시원해지는 것들을 찾게 된다. 차도 예외는 아니다. ‘아이스티’라는 말을 들으면 가루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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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 코로나 시대 속에 우리의 삶은?
『 이건 성실성의 문제예요. 비웃을지 모르지만, 페스트와 싸우는 유일한 방법은 성실성입니다. 』 - 알베르 카뮈 《 페스트 》 코로나 사태를 마주하며 중앙으로 똘똘 뭉쳐있던 리더십은 그렇게 분할된다. 오히려 코로나 사태는 구글 맵처럼 각 지역의 세세한 특성을 보여주고, 폭로한다. 알베르 카뮈의 소설 《페스트》를 보면 흑사병으로 인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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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은 보물 상자 – 소중한 감정
“우리 마음속에 웅크리고 있는 작은 것들을 위하여” -크리스틴 루세 가끔 상상하기 위해 먼 곳을 바라본다. 아니, 갑자기 떠오른 상상을 이리저리 굴리다 보면 멍 때리듯 초점 없이 어딘가를 응시하게 되는데, 종종 입꼬리가 올라가기도 한다. 흥미로운 상상을 하거나 어제 본 글귀들을 떠올리며 나를 견주어 볼 때다. 내 안에 숨어 꿈틀거리는 장난꾸러기 악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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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깥일과 집안일 사이
바깥사람 안사람, 집안일과 바깥일 같은 기준은 누가 정해둔 건지. 그 둘 사이에 객관적인 우선순위나 중요도 같은 게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내겐 바깥일이 훨씬 중요했다. 집안일 따위 아무나, 아무 때나 하면 되는 거 아니던가. 내가 어린이집에 다니던 시절, 우리 식구는 공동화장실을 사용하는 다세대주택 지하에 살았다. 30년 전 다세대주택의 지하방에는 화장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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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회> 그룹 단일팀의 기록
이런 경우가 드림팀 역사에 과연 얼마나 더 있을까? 가요계에서 활약하는 수많은 그룹 가수들. 보통은 1명 또는 2명 정도가 그룹을 대표해 드림팀에 출전하며, 그룹 멤버 전원이 나오는 경우는 그리 흔치 않다. 이렇게 그룹 단일팀을 이루어 출전한 가요계 스타들의 역사 속으로 지금부터 들어가 보자. ① god 시즌 1의 제80대 드림팀이자 드림팀 사상 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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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회> 역대 최고의 상대팀 (상)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날렵함, 최고의 스피드와 화려한 플레이로 드림팀을 울린 상대팀은 적지 않다. 보통은 한 번의 대결로 그치지만, 리턴 매치까지 이어지는 경우도 시즌1, 2를 통틀어 더러 있었다. 이번에는 드림팀이 리턴 매치를 간절히 원할 정도로 뛰어난 실력을 선보인, '역대 최고의 상대팀'을 정리해보았다. 역대 최고의 상대팀 TOP ① 연세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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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협단어] 이기적 사랑의 가능성에 대하여 (1)
사랑의 반대말은 무엇일까요? 우리는 많은 답을 들어왔습니다. 증오다. 미워함이다. 무관심이다... 어느 하나 틀린 대답이 없어 보입니다. 저는 이기적이라는 단어를 선택해보았습니다. 사랑에는 남을 이해하는 행위가 필수적으로 포함되어야 합니다. 남을 고려하지 않는 게 어찌 사랑일 수 있을까요. 그것은 오히려 이기심의 정의(definition)에 가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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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첫 적들에게 보내는 편지 - 15
내가 둘째 아이를 낳은 날, 엄마는 우리 집에 있었어요. 남편이 나 몰래 보낸 문자를 받고 시어머니와 남편을 내 집에서 따로 만나셨다죠. 내가 산부인과에 있는 동안 엄마는 그 둘을 붙들고 내 뒷담화를 하고 있었어요. 표면적으로는 '둘째 육아 문제를 의논하기 위해서'였지만, 그 내용은 눈치 없는 남편이 들어도 알아챌 만큼 그냥 험담이었어. 얼마나 억울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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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은 힘이 세다 (feat. 멤논의 거상과 메디넷 하부 신전)
T야, 조금 전까지 내가 무얼 했게? 구글을 검색해서 프로그램을 설치한 후 싸이월드 미니홈피에 있는 사진을 내려받았어. 이제는 아무도 관리하지 않는 네 미니홈피도 돌아보고 왔어. 미니홈피 일기장은 고통스러운 날들로 가득했지만, 사진첩에는 딴사람처럼 웃는 모습이 가득했어. 그 시절의 나는 겉과 속이 다른 사람이었어. 낯이 뜨거워. 그런 내 일기장과 사진첩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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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기, -
너는 작은 것에도 떨었다. 파르르, 하는 작은 곤충같이. 연약한 소동물같이. 감각을 곤두세우고 촉을 반짝 들어 늘 주위를 살폈다. 상처 입지 않으려 잔뜩 웅크린 너는, 아직 덜 여문 가시를 세우고 태세를 갖췄다. 그런 너의 곁에 가까이 닿으려던 친구는 너도 제어하지 못한 가시에 마구 찔려 아파했다. 친구는 피에 젖어 떠났다. 너는 또 그렇게 사람을 잃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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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기의 소리를 찾아서
마찬가지로 모든 물체는 자신의 특성에 따라 각기 다른 소리를 낸다. 이쯤 되면 무슨 얘기를 할지 다들 눈치챘을 것 같다. 고기 굽는 소리다. 고기도 저마다 다른 성질을 가지며 서로 다른 소리를 낸다. "치익~", "쏴악~!" 하는 소리를 안 들어본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고기를 먹을 때 사람을 흥분하게 하는 소리에는 굽는 소리 말고도 여러 가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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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로 또 같이 삶을 헤쳐나가는 가족, 공동체의 연대 목소리
'가족 영화'의 전형성을 탈피하기란 정말 어렵다. 가족의 중요성이 국가와 민족의 정체성과도 연관되어 있는 동아시아에서는 더욱 그렇다. 이들 가족 영화는 구성원 중 한 명에게 닥친 큰일을 계기로 가족들이 모두 모이는 것에서 시작해, 이런저런 우여곡절을 겪다가 '남는 건 결국 가족뿐'이라는 식으로 끝나게 마련이다. 물론 한·중·일 가족 영화에도 각각 나름의 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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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유튜브, 인물의 매력
책 한 권이 왔다. 요즘 인스타그램을 능가한다는 유튜브에 관한 책이다. '유튜브 마케팅의 정석'으로 구글 유튜브를 거쳐 샌드박스의 사업총괄이사로 일하고 있는 김범휴 CBO의 책인데, 마음이 동했다. 우리나라 MCN* 회사로는 다이아 티브이와 샌드박스가 양대 산맥인데 그동안 양준일 덕질 덕분에 다이아 티브이는 좀 들여다봤지만 샌드박스는 사실 그렇게 들여다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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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존의 법칙
머리를 잘랐다. 어깨 위의 무게가 한결 가벼워졌다. 정오 십 분 전이었다. 시계를 확인하고는 빠른 걸음으로 교문을 향했다. 몇 분 지나자 아이들이 하나둘씩 출현하기 시작했다. 익숙한 노란 모자가 보이자마자 손을 흔들었다. 아이는 한 걸음에 달려왔고 등굣길의 긴장 대신 스테이지 종결의 가벼움이 느껴졌다. 점심을 먹은 후 최애 간식 양갱을 주겠노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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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의 실수학 개론
계절이 변하듯 사람들도 들고 난다. 에이번리에도 떠나가는 이들과 새로 오는 이들이 있다. 학교에서 앤을 상당히 부당하게 취급했던 필립스 선생님이 떠나가고, 에이번리에서 18년 동안 목회를 했던 벤틀리 목사님도 사임을 해서 떠나간다. 필립스 선생님이 떠나갈 때, 예상과 달리 앤은 다른 소녀들과 함께 펑펑 운다. 떠나가는 이가 남기는 말에 감동하고, 주변 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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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의 철학
때는 대학교 1학년 철학과 전공 수업 첫날이었다. 전날 마신 술 때문인지 설레는 마음 때문인지 분간하기 힘든 두근거리는 심장을 부여잡고 겨우 제시간에 도착했다. 곧이어 누가 봐도 한껏 세련된 정장을 입은 한 중년 여성이 배낭을 메고 들어왔다. 어찌 보면 우스꽝스러운 차림이었다. 일순간의 정적. 군대에서 사령관이 입장할 때의 분위기랄까. 엄숙함이 감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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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가리 파이터'로 살아가는 삶
입만 살아서 속으로 민망해하는 아가리 파이터 나는 ‘아가리 파이터’다. 아가리 파이터는 ‘입만 산 놈’을 의미하는 속된 말인데, 나는 문자 그대로 진짜 ‘아가리’로만 ‘파이트’를 한다. 실제로 난 공격성이 좀 있는 편이다. 부당한 일을 당하면 당연히 짜증이 나고, 내 권리를 위해 맞서 싸울 준비도 되어 있다…고 생각하지만, 이렇게 기세등등하다가도 막상 진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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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화 풍요로운 삶을 위해 구체적인 행동을 요청하라
대화가 끊어지지 않게 이어질 수 있도록 상대를 존중하며 의사를 전달하라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하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에게 부탁할 때 원하는 것을 구체적으로 상대에게 이야기하는 태도가 중요하다. 때론 이야기가 유연하게 흐를 수 있도록 상대를 대화에 초대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타인을 동등하게 존중하며 경청하려는 의사가 전달될 때 연결과 부탁이 이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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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서 마시는 차, 같이 마시는 차
고요한 시간, 주전자에 물 붓는 소리로 금을 낸다. 차가웠던 물이 점점 뜨거워지는 동안 달그락달그락 차를 꺼내어 준비하고, 가장 잘 어울리는 다구들을 꺼낸다. 물이 끓으면 보온병으로 옮겨 담고 다구가 준비된 곳으로 가지고 와 차를 우리기 시작한다. 주변이 고요하면 고요할수록 찻잎이 차호나 개완으로 떨어지는 소리, 뜨거운 물과 마른 찻잎이 만나며 내는 미세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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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빛의 시간
아침을 먹고 나면 커피를 마신다. 하루 중 가장 좋아하는 시간이다. 날이 더워졌으니 컵 가득 얼음을 담고 에스프레소가 내려지길 기다리며 빨대를 찾는다. 얼마 전부터 다회용 빨대를 쓰기 시작했지만 가끔은 그걸 잊고 습관처럼 서랍을 연다. 멈칫, 서랍 속에 일회용 빨대가 있다. 병실에서 쓰기 위해 다이소에서 샀던 160개 빨대 봉지. 반년이 지났는데도 아직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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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 "안녕, 옛이야기야?"
요즘 가장 인기 많은 콘텐츠가 무어냐 누군가 묻는다면 '뉴트로'를 빼놓고 대답하기는 힘들 것이다. 옛날 얘기를 들먹이는 사람은 '꼰대'라 놀림당하기 일쑤였지만, '라떼는 말이야~'라는 표현이 등장한 이후로는 예전에는 어땠는지, 그야말로 '나 때는 어땠는지' 이야기를 꺼내는 일이 한층 편안해졌다. 그렇게 우리는 옛것을 자꾸 끄집어내고, '옛날에는 이랬다'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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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rong>100세 장수의 비결은? 유전자…성격…인간관계…식품</strong>
100세 장수의 비결은? 유전자…성격…인간관계…식품 100세까지 장수하고 싶은가? 그러려면 유전자를 잘 타고나야 한다. 그렇지 못했더라도 건강하게 좀 더 오래 사는 방법은 있다. 긍정적인 성격을 유지하며 가족·친구와 즐겁게 지내고, 균형 잡힌 식사를 하는 것이다. 그동안 과학적으로 밝혀진 장수의 비결을 알아보자. ◆100세 장수는 주로 유전자 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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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봄
어릴 때 비가 오면 학교 앞에 마중 나오는 부모님의 모습을 부러워한 적이 있다.우리 집은 가까운데 왜 한 번을 오지 않느냐고 싸우고선 우산 하나를 나눠 쓰고 걷는 모습을 상상해보기도 했다.사실 지금은 크고 튼튼한 우산이 최고다. 같이 쓴다는 건 말도 안 되고. 온전히 나 하나를 가리기도 벅차다. 언젠가 비가 오던 날 버스정류장 건너편에서 우산을 들고 기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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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 MBTI, 저도 그러고 싶어요.
요즘 우리 주변은 자유롭게 밖에 돌아다닐 수 없는 이유들로 가득 차있네요. 코로나도 사라질 듯 사라지지 않고, 뜨거운 햇빛도 점점 강해지니 말이에요. 하루는 산책 겸 집 주변을 천천히 걷고 있었는데, 10분 만에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히더라고요. 아마 가을이 오기 전까지 밖에 잘 돌아다니지 않을 것 같아요. 전 여름을 별로 좋아하지 않거든요. 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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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차피 다 허상일 뿐
좋습니다! 당신은 이백만 루블을 거세요, 나는 내 자유를 걸겠습니다! 체호프의 단편 <내기>는 캄캄한 가을밤을 배경으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한 노년의 은행가가 어둑한 사무실을 홀로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십오 년 전 이곳에서 있었던 일에 대해 골몰하고 있다. 당시 파티에 참석한 각계각층의 인물들은 저마다의 주제로 흥미로운 대화를 나누던 참이었다. 마침 사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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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제된 기억, 유리된 역사
부감 앵글 숏으로 보여주는, 바닥을 청소하는 물결. 〈로마〉의 이 첫 화면을 바라보며 파도와 닮았다고 생각했다. 이는 후반부에 등장하는 바다의 파도와도 조응한다. 그래서일까. 쿠아론이 역사를 재현하고 바라보는 태도에는 파도의 특성과 유사한 지점이 있다. 숏을 움직이는 방식에서 보이는 역동성도 그렇지만, 거스를 수 없는 파도의 형태를 역사에 비유하여 치환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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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이 빠져나간 날 1
호남선 완행열차에 몸을 실었다가 기분 내키는 역에 내려 이동을 했다. 홍성, 수덕사, 마곡사, 공주, 부여로. 해 질 무렵 부여 낙화암에서 연세 드신 할머니 한 분을 마주쳤다. 집을 나온 지 두 달이 넘었다는 할머니의 등에는 내 것보다 두 배는 큰 배낭에 솥까지 얹혀있었다. 이런저런 이야기 끝에 다음 행선지를 묻는 할머니에게, 나는 꼭 정해 놓은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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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tlassian Confluence를 배워보자! / Preface
월요일 오전 8시55분 회의실. 회의 시작 5분 전, 다급한 AA 사업 PM의 문자를 받았다. AA 사업 이슈사항이 누락되어 죄송하다며 누락된 내용을 메일로 보냈단다. (이 시간에!) 노트북을 열고 (다행히 켜져 있었다) 회사 그룹웨어에 접속했다. AA 사업 PM이 보낸 메일을 확인했다. 누락된 내용을 '회의 문서(Word')에 추가했다. 수정한 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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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기, -
알람은 꼭 맞춰두지만 늘 비슷한 시간에 잠에서 깬다. 알람이 울리기 전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눈은 계속 감은 채 잠을 깬다. 뭉친 이불을 다리 사이에 넣어 더 꽉 껴안고, 조금의 신경질을 부린다. 동시에 하루가 열리는 순간을 기다리며 숨을 죽인다. 카랑카랑한 알람이 울리면 번쩍 일어난다. 오늘은 꼭 알람 소리를 바꿔야지, 하면서. 욕실에 들어가 물 온도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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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래지 않는 사랑 (a.k.a. QV66 & QV55)
T야, 내가 이제부터 한동안 열심히 들을 노래 제목이 뭐게? 맞아, 듀스의 '여름 안에서'야. 벌써 몇 번을 들었는지 몰라. 여름이니까 당연한데도, 쨍쨍한 햇볕이 얄미운 요 며칠이었어. 너무 크게 투덜댔나? 하늘이 들었는지 장맛비가 내리긴 했어. 따가운 햇볕을 온몸에 받으며 곡식이 익어갈 테고, 열매는 당도를 높일 테지. 내가 편히 지내는 동안 보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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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ly Wordventure (13) - 팬데믹은 공공대학을 부활시킬 기회다.
이번 주 워드벤처는 유가폭락에 관한 글을 골랐습니외국 잡지들을 읽어보니 코로나 이후 세상을 준비하는 다양한 목소리가 있군요. 그중에 대학개혁에 관한 내용이 있어서 가져왔습니다. 지금 온라인으로 대학강의가 진행된다고 하는데, 이렇게 수업을 하다보면 과연 그 많은 돈을 내고 대학을 다녀야 할 가치가 있는 것일까 하는 의문이 들 수도 있겠죠. 아래 기사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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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ly Wordventure (14) - 야구의 기이하고도 뼈아픈 귀환
이번 주 워드벤처는 유가폭락에 관한 글을 골랐습니다이번 주 기사는 미국에서 상당한 인기를 끌고 있다는 한국야구에 관한 칼럼입니다. 한국야구를 보면서 팬데믹 이후의 스포츠와 일상의 모습이 어떻게 달라질까 그려보는 내용입니다. Baseball’s Strange and Poignant Return to TV 야구의 기이하고도 뼈아픈 귀환 The first l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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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ly Wordventure (15) - 코로나는 기후변화속도를 늦추는 데 도움이 될까?
팬데믹으로 전세계적으로 경제활동이 느려진 덕분에 온실가스 배출량이 줄어 전반적으로 지구환경이 깨끗해졌다고 합니다. 이 기사에 따르면 원래 온실가스배출량은 2030년대 정점을 찍고 하락할 것으로 예측되었는데, 팬데믹으로 인해 이 정점이 10년 이상 빨리 올 것이라는 예측이 힘을 얻고 있다고 합니다. (어쩌면 2019년이 정점이 될지도 모른다는 예측도 나온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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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ly Wordventure (16) - 백악관, 바이러스의 급격한 확산을 예측하는 보고서를 부인하다.
이번 주 워드벤처는 유가폭락에 관한 글을 골랐습니다. 오는 6월 코로나바이러스의 대규모 폭발을 예측한 미국 CDC 내부문건이 보도되면서 한바탕 소동이 일어났네요. White House Disclaims Projection Showing Surge in Virus Outbreak 백악관, 바이러스의 급격한 확산을 예측하는 보고서를 부인하다. By Alex 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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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ly Wordventure (17) - 미국의 경찰폭력, 인종, 저항
미국 전역에서 벌어지는 대규모 시위에 대한 글입니다. 이 글은 파괴적인 폭동으로 시위가 변질될 경우 본질적인 문제는 퇴색하고 아무런 역사적 진보도 이루지 못할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Police violence, race and protest in America Will protesters in American cities bring progress, 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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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ly Wordventure (18) - 직립보행하는 3미터 길이의 무시무시한 악어
[속보] 공룡이 이 세상을 지배하기 전에 악어가 두 발로 서서 돌아다니며 지구를 지배했다고 합니다. Revealed: the terrifying 9ft-long crocodile that walked upright새로운 발견: 직립보행하는 3미터 길이의 무시무시한 악어 US scientists say they have discovered fossils o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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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이 빠져나간 날 2
꼼짝없이 한동안 스산한 두려움 속에서 떨고 있었다. 하얀 소복을 입은 여인을 몰래 바라보며, 귀신일지도 모른다는 무서운 생각이 드는 동시에 상대가 여자인데 하는 조그마한 남자의 자존심도 고개를 들었다. 그러자 머릿속에 귀신은 발이 없다는, 언젠가 들어 본 듯한 불확실한 '귀신론'이 떠올랐다. 엉뚱한 기억을 확신하자 용기를 내어 조심스레 측면으로 다가가기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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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협단어] 이기적 사랑의 가능성에 대하여 (2)
이전 글에서 이기심을 사랑의 반대말로, '남을 헤아리지 않는 태도'라고 정의하였습니다. 그리고 사랑은 그 이기심에도 ‘불구하고’ 하는 것이라고 이야기해보았습니다. 그러나 조금 더 고민해보면 사랑이 정말 이기심에도 ‘불구하고’ 하는 것인지 의심스러워집니다. 제 아이에게만 낙하산을 입히고, 타인에게 해 끼치는 걸 개의치 않는 자식 사랑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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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울 속 내가 마음에 들지 않아
오후 6시가 넘은 시간, 사람들로 북적이는 번화가를 한창 걷고 있었어. 급격히 더워진 날씨에 시원한 커피가 고파져 발걸음을 재촉했는데, 학원가 분식집 앞에 모여 무거운 가방을 멘 채 떠들고 있는 고등학생들을 발견한 거야. '이런 상황에 공부하느라 참 고생한다.' 안타까운 생각도 잠시, 내 시선이 문득 학생들이 입고 있는 교복으로 향하더라고. 다시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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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미체조협회 팀닥터에게 선고된 175년 형의 전말
지난 2018년 1월, 미국에서 역사적으로 길이 남을 중요한 판결이 내려졌다. 정골의학 전문가이자 미시간주립대 교수였던 전 미국 국가대표 체조팀 팀 닥터 래리 내서에게 최대 175년 형이 선고된 것이다. 그는 이미 아동 포르노 소지죄로 60년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이었는데, 지난 30여 년간 치료를 빌미로 160여 명이 넘는 미성년 여성과 성인 여성을 성추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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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떠날 수 있을까
1998년 xx월 집 앞 횡단보도를 건너면 한성 여객 15번 버스 차고지가 있었다. 출발점이자 종점이라서 늘 앉아서 이동할 수 있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다른 버스에 비해 배차간격이 짧아서 기다리는 시간도 길지 않았던 것 같다. 15번 버스는 순환형 노선으로, 어느 방향으로 출발한 버스든 다시 이곳으로 돌아온다. 호기심 많던 어린 시절의 나는 15번 버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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굽부심
사람은 살면서 많은 친구를 만난다. 다양한 친구 가운데 곁에 두면 좋은 유형이 몇 있다. 성격이 잘 맞고 착한 친구, 돈이 많지만 허세 부리지 않는 친구, 조금 까다롭지만 깐깐한 입맛 덕에 맛집을 많이 아는 친구, 소소한 것까지 잘 챙겨주는 친구 등등. 그중에서도 고기 먹을 때 곁에 두면 좋은 친구는 단연 고기를 잘 굽는 친구다. 결국 내 이야기다. 고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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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만 토끼 - 하얀 페르소나
‘밝은 표정’에 ‘살아 숨 쉬는 생동감’, 그리고 ‘톡톡 튀는 매력'과 ‘편안함’, ‘꼼꼼함’. 평소 내게 붙는 이름들이다. 부모님이 지어주신 ‘김은정’은 호명되거나 서류를 작성할 때 기입하는 이름이고, 위에 나열한 표현들은 어떤 상황에서, 어떻게 만났는지에 따라 달리 붙는 '성격적 이름'이다. 성격적 이름은 내가 만들어내기도, 누군가에게 평가되어 만들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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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타깝게도 이별에는 내성이 생기지 않아요
도대체 연애가 뭐라고 1화에, 이런 문장을 썼다. 그리고 나는 우습게도 또 이별을 했다. 역시 그 어떤 감정이라도 쉽게 확신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한 번 더 깨닫는다. 나를 닮은 사람을 만나 오래오래 살고 싶었건만, 나는 그저 더욱 단단해진 나와 살아야 하는 걸까. 적어도 배신은 당하지 않을 테니까. 이상적인 경지에 다다르기까지는 너무도 험난하고 지난하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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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있다
꼼짝도 않고 서 있었다. 아이의 시선은 꽃반지가 끼워진 선생님의 손가락에 머물고 있었다. 지난 주말의 사건이었다. 작은애는 잠을 싫어한다. 다섯 살 어린이는 놀기 위해서, 잠에게 지지 않으려고 늘 안간힘을 쓴다. 금요일에도 어떻게든 눈을 뜨고 버티려다 밤늦게서야 잠이 들었다. 그러더니 토요일엔 새벽에 깨어났다. 짧은 밤과 기나긴 낮의 반복. 토요일 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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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악의 마약 알코올…코카인보다 3배 해롭다
알코올은 20종류의 주요 마약 가운데 가장 해로운 1위 마약으로 꼽힌다. 2012년 5월 영국 최고의 마약 전문가가 저서 『마약-과장과 헛소리를 뺀 진상(Drugs-Without the Hot Air)』에서 밝힌 내용이다. 저자는 당시 영국 신경과학협회 회장이자 임페리얼 칼리지의 신경정신약리학 담당 석좌교수인 데이비드 너트. 책에서 그는 ‘마약에 관한 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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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빛의 시간
초콜릿 향 클렌징 폼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아빠는 정말이지 자신을 잘 가꾸던 사람이었다. 결혼하기 전 의상실을 했던 엄마보다 더 옷차림에 관심이 많았던 아빠. 그렇다고 화려하거나 독특한 패션 감각을 가진 건 아니고 깔끔해 보이는 걸 중요하게 생각했다. 총각 때 밥 사 먹을 돈은 없어도 바지는 양장점에서 맞춰 입었댔는데, 장발에 칼주름이 빳빳한 세미 나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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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따위로 시작해도 될까 싶지만
사실 나는 책을 읽다 마음에 와닿는 문구를 발견하면 조금 흥분하는 타입이다. 이 책을 읽기 위해 들인 시간과 값, 또는 여러 가치를 순간적으로 보상받는 기분이 들기 때문인데, 그래서 그런지 완독에 집착하는 편이다. 혹시라도 마지막 페이지, 마지막 문장에서 귀문(貴文)을 만날까 기대하는 마음으로 끝까지 손에서 책을 버리지 않는다. 만남은 매번 극적이다. 졸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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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봄
어느 해의 가을, 나는 마음의 병에 잠식되어 색을 잃어가고 있었다.입은 웃고 있었고 나이는 어렸고 뭐든 할 수 있는 그런 날이었지만 하나도 행복하지 않았다. 그러다 혼자 바다를 보러 가겠다고 무작정 짐을 싸 비행기를 타고 기차를 타고 떠났다. 알 수 없는 흥분과 불안함이 공존했던 날이었다.누군가를 기다리는 일도 누군가를 위하는 일도 지칠 대로 지쳐있던 그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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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편 콩쥐팥쥐, 후일담도?
우리나라의 옛날이야기를 떠올릴 때 많이 언급하는 것 중의 하나가 바로 ‘콩쥐팥쥐’이다. 아무래도 어릴 때부터 읽어 본 경험도 있을 것이고, 워낙 유명한 전래 동화이므로 접하기 쉬워서 바로 떠올릴 수 있다. 사실 옛이야기는 언제, 누구로 인해 시작된 이야기라고 뾰족하게 말하기 모호하다. 일단 기록이 아닌 구전으로 시작했고, 비슷한 구성의 화소가 여러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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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의 얼그레이 만들기
이번 시간에는 블렌딩, 그중에서도 가향차에 대해서 적어보고자 한다. 기본이 되는 찻잎을 다른 재료와 섞어서 새로운 맛을 만들어내는 것이 블렌딩의 개념이다. 그렇다면 찻잎과 섞을 수 있는 재료에는 무엇이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매우 다양하다. 찻잎과 찻잎을 섞을 수도 있고, 꽃이나 과일, 곡물을 넣을 수도 있다. 맛을 낼 수 있는 재료는 무엇이든 가능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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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화 부탁과 강요 구별하기
강요를 받으면 사람들은 복종 혹은 반항의 방식으로 대응한다 부탁을 들어주지 않으면 비난이나 벌을 받을 것이라고 부탁받는 사람이 믿게 되는 경우, 그 부탁은 강요로 받아들여진다. 다시 말해 이전에 우리 부탁을 들어주지 않는 사람을 비난하고, 벌주고, 죄책감을 심어주었을수록 상대는 부탁을 강요로 듣기 쉽다는 뜻이다. 이때 부탁을 한 사람은 강압적으로 비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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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상, 들어오세요 - Prologue
4년 9개월 일본 생활을 정리하는 마지막 단계는 핸드폰 해약이었다. 해약서에 쓰여 있던 이용 기간은 4년 9개월. 그렇다. 나는 대략 5년 동안 자기만의 방에서 나름대로 혼자 잘 사는 생활을 유지해왔다. 애초에 고등학교 졸업 후 일본으로 날아간 가장 큰 이유가 독립이었다. 4년을 꽉 채워 교토(京都)에서 대학 시절을 보냈으며, 평범한 일본 대학생이 으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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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 제주에서 쓴 한 달치 일기, 한 권의 책이 되었습니다.
좋은 주제와 필력, 계속 쓰는 꾸준함만 있다면 누구나 책을 낼 수 있는 시대가 도래했습니다. 등단이나 투고를 통해서만 작가가 될 수 있던 과거와 달리, 최근에는 온라인 플랫폼이 작가와 독자, 출판사를 한데 모으는 구심점 역할을 하죠. 더 나아가 매주 일정한 요일에 한 편의 글을 쓰고, 이 원고를 바로 전자책으로 묶을 수 있다면 어떨까요? 북이오에서는 최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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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삶의 철학
“수업은 어려울 것이며, 평가는 엄중할 것입니다.” 철학과 인기 교수였던 그는, 매 학기 첫 수업 시간마다 이렇게 말했다. 즉 ‘긴장하라’는 것. 그러나 그의 강의는 장렬한 선전포고와는 달리 매우 재밌고 쉽다. 아니 쉬웠다. 시험문제를 보기 전까지는. 시험문제를 풀며 마침내 깨닫게 된다. ‘내가 들은 강의는 사실 어려운 수업이었구나’라는 것을. 그러나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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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소원이 이루어진 비결
T야, 지난번 편지를 읽고 동영상도 찾아보고 네페르타리 왕비의 아름다운 무덤 구경도 실컷 했니? 나는 소설 『람세스』를 다시 읽었어. 이미 여러 번 본 책이지만, 이번에 다시 읽으면서 새롭게 집중했던 부분이 있어. 오늘 들려줄 이야기와 연결된단다. 궁금하지? 자, 내 손을 잡고 따라와. 소원을 이룰 수 있는 숨겨진 마을로 갈 거야. 걱정하지 말고 따라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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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협단어] 폭력적인 화장실과 제국의 파라오
저는 뭐든지 잘 참는 사람입니다. 쉽게 흥분하지 않으며 차분한 편입니다. 그러나 그러지 못하는 상황이 있습니다. 바로 배고플 때입니다. 공복일 때와 그렇지 않을 때, 저는 다소 다른 사람이 됩니다. 허기지면 예민해지고 집중력도 떨어집니다. 정도가 심해서 주위 사람들이 다 눈치챌 정도입니다. 음식이 제때 충족된다면, 사람들은 나를 좀 더 온순한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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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기, -
한 사람의 흔적은 생각보다 그리 깊거나 진하지 않다. 너는 있어도 없는 너의 오빠를, 오빠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증명해내는 일들을 매일매일 성실하게 수행했다. 사망신고 후에 바로 떼어본 네 가족의 호적등본에는 너의 오빠가 여전히 올라있었다. 다만 이름 옆에 사망이라는 검은 단어가 추가로 쓰였다. - OOO 님의 주민등록이 말소되었습니다. 네 오빠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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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나를 중심으로 도는 게 아니라는 것을 배우다
"And what are your eyes popping out of your head about. Now?" asked Marilla, 이런 구절로 이번 장은 시작된다. 무언가 또 앤이 너무 흥분할 정도로 기뻐할 만한 일이 생긴 게 틀림없다. 앤은 작은 일에도 기뻐하고, 작은 일에도 슬퍼하는 아이니까. Eye-popping이라는 표현은 깜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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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보편에 속하는 그녀 그리고 나의 이야기
먼 옛날의 이야기가 아니다, 지금, 현재의 이야기다. 미국 뉴욕 브루클린의 윌리엄스버그, 유대인 하시디즘 공동체 소속의 에스티는 17살이 되자 중매로 결혼한다. 집을 떠난 엄마와 주정뱅이 아빠 대신 할머니 손에 길러져 결혼에 대한 기대와 환상이 남달랐던 그녀. 그러나 결혼한 그녀에게는 시댁 모두의 감시 아래, 오직 아이를 낳아 길러야 하는 의무만이 주어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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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람 상은 왜 일본으로 유학 오게 된 거예요?
나 혼자 잘 살 수 있을까? 고등학생 때까지는 모든 것이 순탄했다. 학원을 운영하는 부모님 덕분에 입시 전략에는 빠삭했고, 운까지 겹쳐 원하던 고등학교의 원하던 학과에 입학할 수 있었다. 고등학교 담임 선생님도 엄청난 노하우와 집념으로 아이들의 성적과 스펙을 관리하셨기에 나도 많은 상담 끝에 일본 유학이라는 좋은 선택을 할 수 있었다. 좋게 말하면 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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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루어지지 않는 단 하나, 성공적인 재회
이 원고는 어쩌면 내 인생에서 잊을 수 없는 글 중 하나로 자리매김하리라는 확신이 든다. 바로 지금 원고를 쓰는 장소의 특성 때문인데, 나는 지금 불과 일주일 전 내가 차 놓고 구질구질하게 매달리다가 연락이 끊긴 전 남자친구의 집 근처 카페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다. 일초마다 흑역사를 갱신하는 중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막차까지 기다리기로 한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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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회> 역대 최강의 상대팀 (하)
화려한 플레이와 최고의 운동실력을 앞세워 드림팀과 진검승부를 펼쳤던 수많은 상대팀들! 앞서 소개한 4개 팀 외에도 드림팀을 겁나게, 혹은 무섭게 만들 정도의 최강 전력을 자랑하는 상대팀은 많다. 이번에는 그 이름만으로도 쟁쟁한 실력을 가늠케 하는 역대 최고의 상대팀을 소개한다. 역대 최고의 상대팀 TOP ⑤ 스포츠 올스타팀 대한민국을 세계 정상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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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인의 철학
“자기야 나 오늘 뭐 바뀐 거 없어?” 주어진 시간 단 3초. 무엇이 바뀌었는지 찾아내야 한다. "됐어" "........" 철학과는 질문에 답을 찾는 공부를 많이 하는데, 그럼에도 도통 적응하기 힘든 예리한 질문이다. 꼭 답을 찾아야 한다는 강박관념에서 벗어난 건 최근이다. (한때는 전부였던) 그녀는 내게 tvN 드라마 ’응답하라 19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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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자를 보고도 삼겹살을 먹었어
초식남이지만 채식주의자는 아니다. 성격이 거칠거나 담대한 호걸 같진 않지만 고기를 좋아한다. 뭔가 언밸런스하지만 사실이다. 아는 맛이 무섭다고 TV에 고기가 나오면 입안에 그 맛이 맴돈다. 채식하는 분이 많은 요즘 "고기를 좋아합니다"라고 하면 뭔가 시대에 뒤떨어지는 느낌도 드는 게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고기를 먹지 말라고 한다면 글쎄. 고기 종류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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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들은 좋겠다
비가 내렸다. 장마가 시작되었다고 했다. "엄마, 배고파요." "밥 주세요." 밥 달라는 아이들의 성화에 눈이 번쩍 떠졌다. 아이들의 하루는 이른 새벽에 시작되었으나 나의 하루는 한참 늦었다. 그리하여 급하게 준비된 우리들의 아침은 코코아 시리얼에 우유였다. 오전 9시 반, 창밖을 확인하고 장화를 꺼냈다. 우비를 입히고 우산을 작은 손들에 쥐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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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민해결사 펭귄 선생님 - 마음 속 굴뚝
자기가 하는 일에 만족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자신의 외모에 만족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자기가 처한 현실에 만족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이런 말은, ‘고민 없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로 바꾸어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나의 첫 직장은 유치원교사였다. 평소 아이들을 좋아해서 천직일 거라 생각하고 시작했지만, 아이들을 좋아하는 것과 일은 별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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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빛의 시간
-2019년 12월 12일의 꿈 엄마는 집에서 분주하게 무엇을 하고 있다. 집에는 사람이 많다. 아이와 어른들이 빼곡하다. 부엌 옆에 하늘색 마고자를 입은 사람이 서 있다. 얼굴은 보이지 않는다. 다 앉아 있는데 그 사람만 서 있다. 누군가 내 귀에 대고 “아빠가 인사하러 오셨나 보네.” 하고 말한다. 그제야 나는 서 있는 사람이 아빠인 줄 안다. -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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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나만 모르는 449tv 마케팅 포인트
양준일 덕질을 하면서 개인적으로 학습하게 된 것이 있다. 유튜브 관련 콘텐츠와 유튜브 마케팅을 조금 더 깊게 들여다보는 것, 어쩌면 이것이 가장 큰 이득이다. 연예인 덕질을 하면서 관련 콘텐츠를 들여다보고 공부하면서 내 업무에 대입해 보는 것, 그것 개인적으로 좋다. 뭐든 명분이 만들어지면 들여다보고 공부하게 되는 것은 좋은 현상이다. 코로나 때문에 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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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바이, 마음의 소리
오랜 추억이 깃든 웹툰, ‘마음의 소리’가 끝났다.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 같던 14년 장수 만화의 1229화 마지막 편을 보게 되다니 기분이 이상하다. 웹툰이나 만화, 애니메이션에 관심이 없던 때에도 가끔씩 보곤 했지만, 2016년 우연히 웹툰의 재미를 느끼기 시작하면서부터 매일 밤 함께 해온 '마음의 소리'. 1화부터 순서대로 2~3편씩 정주행하면서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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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화 존재로 귀 기울여 상대의 영혼을 듣는 것
공감 능력은 누구나 타고난 능력이다 타인의 마음을 있는 그대로 이해하고 느낄 수 있는 공감 능력은 누구나 타고난다. 무엇보다 공감을 받은 사람은 자신이 이해받았다고 느끼므로 자신감도 생기고 타인과의 관계에도 더욱 마음을 열게 된다. 인본주의 심리학자인 칼 로저스(Carl Rogers)는 상담을 할 때 공감만으로도 치유가 일어난다고 주장한다. 한 마디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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텅장의 철학
때는 입대 1주일 전이었다. 철학과 동기 카톡 방에 글을 하나 올렸다. “나 입대 기념으로 오늘 저녁 6시 xx으로 오면 술과 안주 공짜” 새내기 시절을 지나온 21살의 어느 날. 술이 고팠던 철학과 학생들 약 20명이 모였고, 이들은 (말로만 듣던) ‘여기서부터 여기까지 주문할게요’를 시전했다. 대충 예상했다. 그날이 동기가 한자리에 모일 수 있는 마지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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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봄
오랜만의 적막 속에서 눈을 떴다.아무 냄새도 아무 소리도 없는 집에서 눈을 뜬 게 너무 행복했다면 나는 미친 걸까. 그럼에도 어제의 행복함은 채 하루를 넘기지 못하고 내게 피곤과 반복되는 악몽을 선사했다. 언제쯤 이 처절한 악몽에서 깰 수 있을까."나는 잘 지내고 있어."혼잣말을 해보지만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그저 하루하루 발버둥 치는 것뿐이다.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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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첫 티포트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잎차를 마시기 시작했는지 모르지만 내가 시작한 방식은 ‘티포트가 생겨서 우연히’였다. 그것도 마트에서 간장을 사니 딸려온 저렴한 티웨어 세트였다. 특별할 것 없는 평범한 손잡이가 몸에서 삐죽이 튀어나온, 도자기 재질의 제품이었다. 올리브 계열 녹색으로 꽃 모양 장식이 되어 있었다. 같이 딸려온 두 개의 잔도 세트였으니 당연히 같은 모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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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tlassian Confluence를 배워보자! / Chapter 2: Confluence 설치 및 실행
컨플루언스(Confluence)를 운영환경에서 제대로 사용하려면 외부 데이터베이스를 사용해야 합니다. 컨플루언스 설치 시에 내장형으로 제공되는 데이터베이스는 일부 기능에 제약이 있고 문제가 발생했을 때 아틀라시안(Atlassian)에서 책임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컨플루언스 7.5에서 사용 가능한 외부 데이터베이스는 아래와 같습니다. 본 학습에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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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된 내가 따뜻한 말을 하기까지
카페에서 친구들과 3시간 넘게 근황 토크를 나누고 있었어. 남자친구와 싸운 얘기, 기말고사 점수 때문에 망해버린 성적에 대한 얘기, 같이 다니던 친구와 싸워서 남이 된 얘기 등 그동안 못 만나서 나누지 못했던 사연들을 하나둘 풀어내다 보면, 다들 신나서 말을 한꺼번에 쏟아낸 바람에 어느 순간 더 이상 할 이야기가 없어질 때가 있어. 분명 친한 사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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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라우마를 마주 할 때
평화로운 어느 날, 한 부부가 소원해진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외딴 별장을 찾는다. 그리고 제시(칼라 구기노)에게 수갑을 채워 침대에 묶고 SM 플레이를 하려던 남편은 갑자기 심장마비를 일으키며 사망한다. 그 순간, 관객은 〈쏘우〉 시리즈와 같은 숨 막히는 심리 스릴러 장르를 기대하게 된다. 그러나 〈제럴드의 게임〉은 보기 좋게 이를 배신한다. 영화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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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라오의 저주는 없다
T야, 어느새 스무 번째 편지야. 첫 편지에서 네 이름을 부를 때 후두두 눈물을 흘렸어. 그렇게 울면서 쓰던 편지였는데 요즘 네 이름을 부르면 마음 한구석이 따뜻하고 나도 모르게 미소를 지어. 너는 어때? 이집트에서 가져온 희망과 재생의 힘을 너도 느끼고 있니? 꼭 그랬으면 좋겠어. 나의 답은 말이야 지난번 편지에 낯선 사람이 친절하게 다가올 때 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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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은 낭만인데 현실은 개똥밭일 때
누구나 낭만을 꿈꾼다. 그리고 낭만을 현실화 해준 사람과 결혼을 한다. 그런데... 그다음은? '낭만적으로 행복하게 잘 살았어요'라면 좋겠지만, 낭만은 개뿔. 사탕발림을 믿은 내가 바보지, 하며 포기하기에 이른다. 얼마 전 집 앞에 나갔다가 눈물이 난 적이 있다. 내 앞으로 젊은 새댁이 걷고 있었다. 한쪽 손엔 서너 살 된 아이의 손을 잡고, 한쪽 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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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이상형이요?
변치 않는 이상형 누군가 소개팅을 해주겠다며 이상형의 기준을 물었다. 나는 이 질문에 한결같은 답으로 응수한다. "나 같은 사람." 답을 듣는 순간 지인들의 반응은 두 가지로 나뉜다. 고개를 끄덕이는 사람 하나, 의문스러운 시선으로 고개를 갸웃하는 사람 둘. 부연 설명을 요청하면 잠깐 숨을 고르고 말을 토하듯 뱉어낸다. "나만큼 책을 읽고, 나만큼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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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협단어] 높은 백석과 낮은 윤동주
우리가 학창 시절 배우는 대부분의 시인은 일제강점기를 살았던 사람들입니다. 김소월, 한용운, 정지용, 이육사, 이상 그리고 오늘의 주인공인 백석과 윤동주가 그러합니다. 어려운 시대에 뛰어난 시인들이 넘쳤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여러 감정이 떠오릅니다. 시대의 감상을 누구보다 짙게 느꼈을 그들이니 더욱 그러합니다. 식민 치하라는 같은 상황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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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영화의 새로운 '믿보' 조합, 청궈샹 감독과 저우둥위 배우
엄청난 여배우 발굴 능력을 자랑하는 장이머우 감독에 의해 발탁되어, 2010년 〈산시나무 아래〉로 화려하게 데뷔한 저우둥위. 이후 차근차근 필모를 쌓은 그는 이제 중화권 최고의 여배우로 우뚝 섰다. 한국 관객들에게는 지난 2016년 이준기와 함께 열연한 〈시칠리아 햇빛 아래〉로도 얼굴을 비췄지만, 크게 이름을 알린 것은 이듬해 청궈샹 감독과 함께한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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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회> 미발견 흔적의 이야기
그동안 드림팀의 흔적에 대해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누었지만 미처 전하지 못했던, 이른바 '미발견 흔적들'도 각 화마다 하나씩은 꼭 있었다. 이번에는 정말 이야기하고 싶었으나 미처 다 담지 못했던, 드림팀의 흔적에 대한 추가적인 이야기를 풀어보려 한다. (1) 숨겨진 시즌 2의 녹화 장소 - 여주대학교 신분당선 판교역에서 경강선을 타고 곤지암ㆍ경기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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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치찌개 속 고기
각종 예능에서 '한입만'을 외치는 이유는 그 한입이 너무 맛있기 때문이다. 동생이 라면을 끓이면 형이나 누나는 "나 한입만 먹을게"라고 말한다. 하지만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한입이 진짜 한입에서 끝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남이 만든 음식이 더 맛있고 남의 떡이 더 커 보이듯이 남이 먹는 라면 한 젓가락이 더 당기는 법이다. 이와 비슷한 이치의 요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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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운을 찾아서 - 행운과 행복사이
여러분은 ‘행운씨' 일까요? ‘불운씨’ 일까요? 행운을 가지고 오는 사람을 우리는 ‘행운아’라고 부른다. 계획하지 않았는데도 마치 순서를 정해놓은 것처럼 술술 착착 풀려서, 의도하지 않은 즐거운 일들을 경험하는 사람들이다. 작은 것도 놓치지 않고 “와우~ 끝내주는 데?”, “어쩜, 내게 이런 일이. 정말 다행이야.”라며 기뻐하는 모습조차 스스로 발견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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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심히 옮겨 심는다
" 방울토마토는 언제 열려요?" 우리는 빨간 열매를 기다린다. 5월 초중순, 온라인 수업에서 씨앗을 심고 식물이 자라는 모습을 관찰하는 과제가 있었다. 선택의 문제인가, 필수적인 숙제인가를 따지다 며칠 후 씨앗과 화분, 흙을 구매했다. 아이가 씨앗을 심으면, 식물을 키우면 무엇을 먹을 수 있는지 물었기에, 우리의 선택은 방울토마토였다. 우리가 간 가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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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생을 걸고 말하는 건 쉽다
앤이 아무런 실수도 하지 않은 채 2,3주가 지나간다. 그러나 슬슬 새로운 실수를 저지를 때가 되었다 싶을 때, 과연 앤은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다. 다이애나의 집에 같은 반 여자아이들만 모여 파티를 벌일 때의 일이다. They had a very good time and nothing untoward happened until after t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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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가 뭐 어때서
한두 달에 한 번 정도 부모님께서 내가 사는 집에 다녀가신다. 양파, 고추, 옥수수, 방울토마토, 감자 등 텃밭 농사지은 채소도 가져다주시고, 그동안 잘 지냈는지 서로 사는 이야기도 나눈다. 과년한 딸자식이 결혼으로 완전한 독립을 이루길 바라셨지만, 사람 일은 계획대로 되는 게 아니어서 1년 전부터 가족이 함께 살던 큰 집에 나만 남게 되었다. 나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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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확실성의 시대에 단 하나 확실한 게 있다면 차를 마신다는 것
COVID-19 때문에 모든 것이 빠르게 재편성되어가는 요즘 고민에 휩싸인 사람들이 많다. 직장에서 해고당하거나 사직을 권유받기도 하고, 자발적으로 긴 휴가를 내는 이들도 있다. 매일 아침 아이들을 어린이집이나 학교로 보내던 부모님들은 컴퓨터 앞에 앉아 화면으로 선생님과 친구들을 만나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게 됐다. 물론 그들 중 몇몇은 집 안의 다른 한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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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화 자기 존중을 잃지 않으면서 내 여림으로부터 배우기
무엇을 도와줄 수 있을지를 생각하는 게 먼저예요. 내가 변화시킬 수 있다고 기대하고 가르치려는 생각을 버리세요. 바꾸려고 하지 마세요. 변화시키려고 교화시키려고 다그치지 마세요. 내가 변화시킬 수 있다고 기대하고 가르치려고 애쓰지 마세요. 아이들은 늘 ‘잘못되었다’, ‘넌 틀렸어’를 들으며 살아왔어요. 그래서 가르치려 하면 그들은 긴장해요. 또 지적받고 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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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빛의 시간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라는 김춘수 시인의 「꽃」을 들고 오지 않더라도 호명(呼名)의 의미를 우리는 어렴풋하게나마 짐작할 수 있다. 모름에서 앎으로, 낯섦에서 익숙함으로 가는 과정의 시작. 이름을 부르는 자와 불리는 자 사이에 ‘관계’라는 단어가 싹트는 순간. 이는 이름을 아는 것에 그치지 않는, 불러내어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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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의외로 팬들도 모르는 팬덤의 역할
점점 사회가 투명해지고 있다. 물론 아직 멀었다고 반론 제기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그럼에도 그 옛날을 상기하면 점점 투명해지고 있음은 맞다. 특히나 문화예술계는 정치계보다 더 많은 투명성을 원한다. 어떻게 보면 연예인들이 뭘 그리 투명해야 하고 사회정의적이어야 하는가,를 반문해 보면 사람들 심리에 깔려 있는 기저가 있는 것 같다. 소위 딴따라인데 너네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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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어로 말하고 공부하기 힘들지 않았나요?
학점만 잘 나오면 뭐하나 말을 못 하는데 처음부터 일본 회사에서 일할 수 있을 만큼 회화 실력이 빼어나진 않았다. 신입생 시절에는 자기 전에 '내일 무슨 말을 할까' 사전을 찾아보면서 대본을 만들어 가지 않으면 수업 시간에 아무 말도 하지 못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일본 유학 대비 학원을 다니면 일단 합격하고 보는 게 목표라 회화 연습은 뒷전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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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에서 내리는 법을 몰라
방 안에 짐이 가득 든 종이상자들을 들여놓았다. 오랜만에 입실한 기숙사여서 그런지 새삼스레 설레었고 앞으로의 생활에 대한 기대감이 한껏 차올랐다. 창밖으로 보이는 학교의 풍경은 여전히 푸르렀고, 어쩌면 더 평온해진 듯도 했다. 마지막 상자에 든 짐을 풀었다. 베란다 문을 열고 상자에서 꺼낸 빨래 바구니를 턱- 하고 내려놓았다. 그 순간, 베란다 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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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흔한 살 주부의 자취방
“엄마 자취방에 들어올 때는 미리 노크를 해야지 ” 내가 좀 매몰차게 말했나? 딸아이는 으앙 하고 제 아빠에게 이르러 간다. “아빠, 엄마가 자치방이라고 오지 말래 근데 자치방이 뭐야?” “엄마만의 방이라는 뜻이야. 엄마 방해하지 말고 아빠랑 놀자. 저 방은 들어가지 말고. 응?” 울음이 길어지면 어쩌나 했는데 아이는 금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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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소
덕풍 용소골은 토정 이지함 선생님이 알려준 환란을 피 할 수 있는 세 곳 중에 한 곳으로 실제 임진왜란, 육이오 전쟁 등을 모르고 지났다고 한다. 차가 다니지 않는 오지였다. 덕풍계곡을 따라 용소골이 있는 마을까지 걸어가다 보면 계곡이 없어진다. 계곡물이 땅속으로 흐르는 복류천이 되어 있기 때문인데 그러다가 다시 한 곳에서 커다란 호수같이 소를 이루는 곳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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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 수염을 단 여자 파라오
T야, 텁텁한 무더위가 더할수록 산책로에는 매미가 벗어둔 껍질이 가득해. 아마도 오래 기다린 만큼 서로 경쟁하듯 목청껏 울어댈 테니 난 적당한 귀마개를 준비할까 봐. 맞아, 여름이 한가운데로 걸어가고 있어. 나는 흐르는 땀을 닦으며 시원한 물 한 잔과 나무 그늘에 고마워하고 멀리 이집트에서 가져온 질문을 정리하며 씩씩하게 여름을 이겨내려고 해. 오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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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지만디아스여, 안녕!
T야, 8월이 코앞이야. 사람들은 슬슬 여름 휴가 이야기를 해. 예전과 달라진 세상이라 휴가를 보내는 방법도 달라졌어. 확실히 해외여행은 줄었고, 캠핑하거나 차에서 하룻밤을 지내는 형태가 늘었더라고. 남의 휴가 이야기에 설레고 부러워서 나도 계획을 세워 봤어. 어차피 백수라서 날마다 휴가지만, 일부러 기간을 정해놓고 휴대전화를 꺼두고 요새 통 못 읽었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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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협단어] 우리는 없던 길도 만들지
작년 퀴어축제엔 비가 억수처럼 내렸습니다. 그래서인지 여러 부스와 공연들 보다, 그날 내내 흥건히 젖어 찝찝했던 신발의 감촉이 먼저 떠오릅니다. 축제에 비가 온다는 것은 최악 중 최악의 상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적게 오고, 기획했던 것들을 하는 데 여러 제약이 생깁니다. 그날을 기다려 온 사람들의 실망감이 걱정되었습니다. 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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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의 콩쥐팥쥐1 - 베트남의 떰과 깜
옛날이야기는 우리나라에만 있지 않고, 전 세계적으로 내려져 왔다. 그래서 은근히 비슷한 분위기의 이야기도 얼마든지 많다. 지난주에 소개한 우리나라의 콩쥐팥쥐 후일담에 이어서 이번과 다음 주에는 외국의 콩쥐팥쥐 이야기를 해 보려고 한다. 외국의 사례도 사실 쉽게 볼 수 없는 내용이 많다. 그렇지만 알 수 있는 내용 안에서도 겹치는 것도 있어서 비교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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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기, -
사람이 들었다 난 자리는 생각보다 진하고 깊었다. 네가 하루 중 대부분의 시간을 들여 했던 건 오빠가 들었던 자리의 흔적을 지우는 일. 너는 오빠가 자주 입었던 옷과 신발을 태웠고 오빠의 러브레터, 사진첩, 통장, 전공 도서들에 차례차례 불을 놓았다. 네 오빠가 참 좋아했던 물고기언니는 오빠가 군대에 가있는 동안 누군가의 아이를 가졌다가 지웠다는 이야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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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아들
새벽부터 애달픈 바이올린 선율을 따라가고 있다. 다비드 오이스트라흐(David Oistrakh)가 연주하는 베토벤의 바이올린 협주곡은 기억을 거스르며 물안개 자욱한 깊은 협곡 속으로 빠져들게 했다. 다비드 오이스트라흐(David Oistrakh)에게는 이고르 오이스트라흐(Igor Oistrakh)라는 아들이 있다. 아들 역시 아버지와 함께 20세기를 풍미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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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미가 영화 감상이네요?
영화 예찬 Q. 이 시대에 영화가 무슨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믿나. 씨네21 스페셜 〈코스타 가브라스 감독 인터뷰〉 중 그리스 출신으로 프랑스에서 활동 중인 코스타 가브라스 감독은 영화의 역할을 위와 같이 정의한다. 그리고 저 대답 하나가 내가 영화를 보는 모든 이유를 담고 있다. 난 세상 구석구석을 탐험하기 위해 영화를 본다. 영화관에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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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tlassian Confluence를 배워보자! / Chapter 3: 사용자 관리
컨플루언스는 사용자 없이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이 Chapter에서는 컨플루언스에 사용자를 추가하는 여러가지 방법과 추가된 사용자를 관리하는 방법에 대해서 살펴보겠습니다. 이 Chapter에서는 다음 내용을 다룹니다. 인증(authentication) 이해 컨플루언스 인증은 데이터베이스에서 정보를 검색하거나 컨플루언스 페이지에 정보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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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는 거짓말을 하고 있다
"그때 누군가 발소리를 죽이며 내 곁으로 왔다. 나는 그쪽을 보려고 했다. ⋯누군가, ―그 누군가는 보이지 않는 손으로, 살며시 내 가슴에서 단도를 뽑았다. ⋯나는 그것으로 영구히 중유 [1]의 어둠으로 가라앉아 버렸다⋯⋯." 일본 헤이안 시대, 우거진 덤불 속에 한 구의 시체가 놓여 있다. 당신은 게비이시로서[2]이 사건을 담당한다. 시신은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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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별에서 빨리 헤어나오는 법
그리 나쁘지 않게 헤어졌다고 가정했을 때, 헤어진 직후라면 대부분 이런 생각에 빠지고는 한다. 아, 걔처럼 이런저런 면을 가진 사람은 다시 못 만날 텐데. 그 생각이 이는 건 당연한 수순이다. 아무리 상대가 미워 보이는 순간이더라도 그 단점을 살포시 덮어주는 연인의 장점에서 사랑을 지속할 원동력을 얻고는 했을 테니까. 하지만 연애를 이어나가게 해주었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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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1회> 불사조, 그는 영원하다!
출발 드림팀이 처음 방송된 지 올해로 21년째. 이 엄청난 역사는 어느 한 사람이 모두 채운 것이 아니다. 운동에 그야말로 타고난 소질을 가진 최고의 선수들이 한 페이지씩 써나가면서 이 거대한 역사가 완성되었다. 이번부터는 드림팀의 이 위대한 역사를 장식한 최고의 주인공들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그 첫 테이프를 끊을 주인공은 출발 드림팀의 시작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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릴리의 눈물 이야기 - 내 고민 던져버려, 퐁당!
아이들의 고민은 무엇일까? 친구가 가진 것과 똑같은 장난감을 가지고 싶은데 부모님이 안 사주는 거, 아빠랑 엄마랑 놀러 가서 신나게 놀고 싶은 거, 엄마 아빠가 직장에 가지 않고 하루 종일 집에 있어주길 바라는 거, 슈퍼맨처럼 하늘로 어디든 날아가 불을 끄는 소방관이 되고 싶은 거, 몸이 약해서 병원에 누워있지 않고 친구들과 놀이터에서 맘껏 노는 거 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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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아, 괜찮아
구름사다리에서 떨어졌다. 아이는 울었다. 구름사다리 앞에서 서성거리기만 하던 큰애가 어느 날 갑자기, 올라가 매달리기 시작했다. 첫 칸이나 둘째 칸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기를 몇 주 했다. 그러다가 지난주 목요일, 돌연히 한 칸씩 팔을 옮겨가는 것이었다. 대여섯 개쯤 되는 칸을 건너가 무사히 착지했을 때 나는 엄지를 올려 축하해 주었다. 아이는 성취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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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빛의 시간
우리 집 식탁은 밥을 먹는 곳인 동시에 글을 쓰고 책을 읽는 책상이다. 친구가 놀러 왔을 때 얘기를 나누고 술과 차를 마시는 장소이기도 하다. 그래서 ‘사각살롱’이라는 이름이 붙은, 식탁은 한 마디로 나의 아지트인 셈이다. 아빠에게도 집 안팎으로 몇 개의 아지트가 있었다. 매일 새벽 5시에 나가 공원을 걷고 잠시 앉아 쉬던 동그란 벤치. 안방 베란다에서 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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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밖에 없는 '그녀'를 응원하지 않을 수 없다!
'이주영'이라는 배우를 KBS 드라마 스페셜 2019 〈집우집주〉라는 단막극에서 처음 보았다. 연기력과 생김새, 목소리까지 모두 인상적이었는데, 얼마 후 영화 〈메기〉를 통해 그녀를 다시 한번 보게 되었다. 아니, 눈에 띄었다고 하는 편이 옳을 것이다. 공교롭게도 드라마와 영화는 하루 차이로 방영·개봉되었다. 이후 필모를 되짚어 보니 나는 이미 여기저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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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계는 살 안 쪄요
한때 살이 많이 찌는 바람에 세 자리 몸무게를 기록한 적이 있다. 물론 지금도 가장 날씬했던 시절보다는 살이 붙어있는 상태다. 그래도 '비곗 덩이' 시절은 아니니 조금 위안을 하며 살고 있다. 고등학교 3학년 때 좋아하던 친구가 있었다. 얘기도 많이 나누고 서로 고민도 들어주며 나름 친하다고 생각했었다. 꽤 오랜 시간을 기다리다 마침내 친구에게 고백을 한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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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봄
어느 한적한 오후, 바람은 산뜻하고도 차갑게 불어오던 날. 늦은 아침을 먹고 근처 카페에서 시간을 때운 적이 있다. 따뜻한 차 한 잔에서는 몽글몽글 수증기가 피어오르고 하얀 테이블에는 반사되는 눈부신 햇살 한 줌, 그리고 선물 받은 책 한 권. 그것만으로 나의 늦은 오후를 다 채울 수 있던 그런 날. 가만히 있어도 절로 나른해지고 아무 생각 없이 집중할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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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떼는 말이야, Latte is horse.
좋아하는 대학원 동기가 책을 냈다. 이번이 벌써 일곱 번째던가 여덟 번째던가. 함께 학교생활을 할 때엔 다들 비슷한 줄 알았는데 지나고 보니 같은 시기에 같은 장소를 지나쳤을 뿐, 모두 상황과 사정이 달랐다. 대학원 동기라는 것 외엔 접점이 없었으니 졸업 후 얼마 못가 동문 모임도 줄어들었고, 그나마 몇몇과 간간이 주고받던 연락도 끊겨버렸다. 아니, 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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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화 스스로를 공감하는 데 능숙하라
“용서하기 가장 힘든 사람은 바로 자기 자신이야. 때로는 길을 잃은 느낌이 들어.” 소년이 말했습니다. “나도 그래.” 두더지도 말했죠. “그렇지만 우린 널 사랑해. 그 사랑이 널 집에까지 데려다줄 거야.” 공감을 하기 위해 먼저 내면의 공감이 필요하다 공감은 우리에게 마음을 비우고 온 존재로 다른 사람의 말에 귀 기울일 것을 요구한다. 삶의 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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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의 효능
나는 자주 가방에 다구를 싸가지고 다닌다. 미팅할 때 함께 자리한 사람들에게 우려 주거나, 날이 좋을 때면 공원 혹은 어디 적절한 곳에 혼자 자리를 잡고 앉아 차를 우려서 홀짝홀짝 마신다. 그런 나의 모습을 본 사람들은 묻곤 한다. “도대체 차가 어디에 좋기에 그렇게 열심히 마셔?” 그래서 준비했다. 이번 시간에는 차의 효능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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룩소르 신전의 밤은 낮보다 아름답다
T야, 나는 요즘 수족관 속 물고기가 된 기분이야. 계속 비가 내려서 온 세상이 커다란 수족관 같아. 비가 그쳐도 공기가 축축해서 호흡하면 물을 들이마시고 내뿜는 기분이야. 습하면 몸이 아픈 체질이라 부지런히 움직이며 열을 내고 있는데 그보단 비가 물러가고 해가 나면 좋겠어. 생각해보니 비도 햇볕도 꼭 필요한 만큼이 좋아. 날씨 덕분에 지나치거나 모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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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 첫사랑을 정의해보세요
시험에 이런 문제가 나온다면, 나는 고민 없이 답을 적어내려갈 수 있을까? 나는 '지금 현재로선 답할 수 없다.'라는 결론을 내리고, 이 문제에 대한 나름대로의 답을 적기 위해 끝없는 고민을 시작했다. 어느덧 생각이 그동안의 삶을 몇 바퀴 돌고, 추억을 몇 번이나 다시 상영했음에도 쉽게 적을 수 없는 답안지에 끝내 난 인터넷을 켰다. 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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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오르가슴은 두 종류… ‘G 스폿’은 없어
오르가슴의 정체는 지난 1세기 동안 수많은 과학적 논란을 불러일으킨 주제다. 일부에서는 여성이 겪는 오르가슴은 2종류라고 설명한다. 클리토리스 자극에서 오는 것과 질 삽입에서 생기는 것이 따로 있다는 것이다. 이와 달리 절정은 오직 한 종류라고 보는 연구자들도 있다. 여성 해부학적 구조의 어느 쪽을 통해 평가하느냐에 따라 차이가 나는 것으로 보일 뿐이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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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어긋난) 가족
잊혀가고 있는 조각가 해럴드 마이어로위츠(더스틴 호프만)에게는 이제 자격지심과 매튜(벤 스틸러)에 대한 집착, 회한만이 남아있다. 그런 그의 회고전(그것도 자신이 재직했던 학교에 단체로 진행되는)에 선보일 작품들을 대니(아담 샌들러)와 진(엘리자베스 마블)은 선별하려 하지만 해럴드는 그들의 말은 듣지도 않고 매튜만 바라본다. 그러나 정작 매튜는 그의 집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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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의 철학
“이 사진은 86아시안 게임 때야. 이때 돈가스를 처음 먹었어” 엄마는 빛바랜 사진과 함께 추팔(‘추억 팔이’의 준말, 세종대왕님 죄송합니다.) 중이었다. 여느 추팔이 그렇듯, 이야기는 돈가스에서 끝나지 않는다. “그때 엄마가 고등학생이었거든? 근데... 벌써 50이 됐네. 나는 안 늙을 줄 알았어. 20대가 영원할 줄 알았어” 작년에 들은 이 말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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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tlassian Confluence를 배워보자! / Chapter 4: Content 만들기
이 Chapter에서는 컨플루언스를 최대한 활용하기 위해 배워야 할 '콘텐츠(Content) 만들기'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콘텐츠를 담게 될 공간(Space), 페이지(Page) 및 블로그 게시물(Blog post)의 개념을 알아보고 컨플루언스에 콘텐츠를 추가하는 방법을 설명합니다. 컨플루언스 콘텐츠는 '편집기'를 통해서 만들 수 있으며 살펴볼 내용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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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tlassian Confluence를 배워보자! / Chapter 5: Content 관리
작성된 콘텐츠를 찾는 것이 콘텐츠를 만드는 것 만큼 중요합니다. 이 Chapter에서는 레이블, 즐겨 찾기를 사용하여 콘텐츠를 구성하고 지켜보기(Watch) 기능을 사용하여 콘텐츠를 추적하는 방법을 학습합니다. 또한 빠른 검색 기능을 사용하여 관련 콘텐츠와 문서를 찾는 방법도 살펴보겠습니다 이 Chapter의 목표는 컨플루언스를 구성하는 방법을 배우고 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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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에게 그거 읽어줘도 돼?
아이가 잠들기 전 침대맡에서 책을 읽어주는 것. 이 장면만큼 아름답고 편안한 모습이 또 있을까? 나는 이 순간을 오래도록 마음에 품어왔다. 큰 아이가 태어나고 하루도 빠짐없이 잠들기 전 책을 읽어주고 있다. 큰 아이가 올해 열한 살이니 11년째 되는 셈이다. 아마 아이가 원한다면 중학생이고 고등학생이고 읽어줄 용의가 있다. 다행이 아이들도 책 읽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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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협단어] 흑인의 삶이 중요하다. 모두의 삶이 중요하기에
‘black lives matter’ 한 흑인이 백인 경찰관의 무릎에 목이 눌려 질식사합니다. 그의 이름은 조지 플로이드, 위조지폐를 사용했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의 진압으로 죽게 됩니다. 그 자리에 있었던 4명의 경찰이 바로 다음 날 전부 해고된 것으로 볼 때 분명 과잉 진압이라 할 수 있습니다. 위조지폐를 사용한 혐의만 있었을 뿐 어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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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의 콩쥐팥쥐2 - 중국의 섭한 이야기
이번에 다뤄볼 이야기는 중국의 ‘섭한 이야기’이다. 이것도 마찬가지로 중국판 콩쥐팥쥐로 이해하면 되지만, 은근히 신데렐라가 많이 떠오르기도 할 것이다. 실제로 이 이야기는 중국의 단성식이라는 사람이 당나라 때 지은 <유양잡조> 수필집에 실려 있다고 한다. 황당무계한 이야기와 여러 문학이나 잡다한 게 들어 있는 그 책에서 ‘섭한 이야기’도 실려 있다고 듣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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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식의 원죄
일전에 '육식 자체를 금하고 모두 채식을 해야 한다'는 사람들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렇다고 지금의 육식 생활과 생산 시스템이 최선이라고 말하고 싶진 않다. '고기의 인문학'과 함께 추천받은 제레미 리프킨의 '육식의 종말' 책을 읽고 나서 이에 대한 고민은 더 깊어졌다. 채식주의자 C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서로의 생각과 육식이 가야 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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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2회> 영원한 드림팀의 종합무술인
신고합니다, 파랑새는 있다, 대추나무 사랑 걸렸네, 경찰특공대, 야인시대....... 이상의 드라마에 공통적으로 나오는 사람이 한 명 있다. 바로 이상인이다. 출발 드림팀 역사의 중흥기를 이끌었던 주인공 중 한 명인 종합무술인 이상인! 그가 드림팀에서 보여준 활약은 워낙 많아서 아예 다큐멘터리를 만들어도 될 정도인데 여기서는 정말 잊지 못할 최고의 활약 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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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3회> 인간 탄환은 죽지 않았다
1999년에 청춘의 파워를 불러일으키며 최고의 하이틴 스타로 급부상한 남자! 지금은 KBS <살림하는 남자들>과 MBN <알토란> 등의 프로그램에서 종횡무진 활약 중인 남자! 바로 김승현이다. 김승현 역시 출발 드림팀의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 주인공 중 한 명으로, 그가 보여준 활약 또한 최고 중의 최고로 각광받고 있다. 시간이 흘러도 그는 여전히 배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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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차는 영원히 달린다 vs 죽기 싫다, 변화를 원한다
'설국열차'라는 콘텐츠는 2013년 봉준호 감독의 영화 <설국열차> 이후 널리 보급되었다. 수직 아닌 수평으로 되어 있는 세상에도 여전히 계급이 존재한다는 설정이 우리의 머릿속을 헤집어 놓은 것이다. 더 이상 계급 체계는 없다고 하지만 사실은 존재하고 있을 수 있겠구나, 하고 말이다. 영화가 개봉한 지 10여 년이 흘렀지만, '계급'이라는 단어를 떠올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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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를 해도 행복하지 않은 사람, 연애를 안 해서 행복하지 않은 사람
같이 있을 때도 외로운 건, 혼자 있을 때 외로운 것보다 더 힘들다는 말이 있다. 그 말의 전제는 연애를 하면 행복할 수 있다는 기저 심리가 깔려있기 때문인데, 내가 앓는 외로움이나 헛헛함을 모두 연인이 마법처럼 가져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 환상에서 비롯되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아니었다. 나 또한 아무리 사랑하는 사람을 만났다고 하더라도 우주에서 떨어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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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엄마 - 엄마의 변신은 무죄
자식은 성장하면서 순한 양으로 자라기도 하지만 벼락을 맞아 제정신이 아닐 때도 있다. 아이만 그러는 게 아니라 자녀를 키우는 엄마는 더 하다. 순한 양이었다가, 동네 싸움닭이 되었다가, 잡아먹을 듯한 여우가 되었다가, 무시무시한 악녀가 되었다가, 변화무쌍한 카멜리온이 되기를 반복하는 것이 자녀양육의 과정에서 겪는 최소한의 변화다. 하루에도 열두 번 이상 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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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듣고 있구나
장을 보고 돌아가는 길이었다. 큰애가 갑자기 달리기 시작했고 작은애도 따라 뛰었다. 무거운 짐을 양손에 쥔 채 천천히 걸어가면서, 아이들의 목표 지점이 놀이터임을 확인하였다. 여덟 살은 구름사다리에 올라섰고 두 손을 들었다. 하늘을 향해 놓여 있는 징검다리에 매달렸고 이윽고 다섯 걸음을 손으로 옮기며 성공 도장을 찍었다. 뿌듯한 표정을 지으며 나를 쳐다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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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밤을 유랑하는 또 하나의 방법
친애하는 P, 지금 오는 게 좋겠네. D와 F, 두 사람 다 내가 내일 자정을 넘기지 못할 거라고 한다네. 그리고 내 생각에도 그들이 시간을 거의 맞췄지 싶어. ―발드마르 추리 소설의 거장 에드거 앨런 포의 단편, <발드마르 씨 사례>는 최면과 죽음이 공존하는 상황을 그리는, 조금은 낯설고 기괴한 이야기이다. 최면과 죽음이 몇 가지 특징을 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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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어떤 장르 즐겨 보세요?
오전 열 시의 영화제 교토 집 근처 영화관은 매일 오전 열 시, 프리미엄 관에서 고전 영화를 상영해 줬다. 가격도 단 돈 500엔 (5,000원 정도). 동전 하나로 영화를 볼 수 있다는 사실도 기쁜데 DVD 구하기 어려운 작품들을 편안한 좌석에 앉아 볼 수 있다니!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 스낵바에서 파는 250엔짜리 커피 한 잔 사서 들어가면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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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늘 아픈가
2주 전, 갑자기 쌀쌀해진 날씨를 방심하고 민소매와 반바지 잠옷 차림으로 얇은 이불을 덮고 잤더니 바로 감기몸살에 걸렸다. 환절기도 아닌데 으슬으슬한 기운이 2주가 넘도록 계속되었다. 정신 바짝 차리려고 커피로 버티고 있지만, 이것은 단순한 몸살 기운이 아니라 내 몸이 보내는 이상 신호라는 것을 알고 있다. 급한 업무를 마무리하고 나니 밤 11시가 훌쩍 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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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봄
문득, 핸드폰을 들여다보다 외롭다고 느꼈다.사랑을 해도 외롭다는 사람이 있듯 나 역시 연락하는 이가 있음에도 지독하게 외로웠다.눈에 보이는 모든 것들에는 행복이 가득한데 나만 홀로 동떨어진 기분이라 나만 다른 장르의 이야기 속에 떨궈진 느낌이었다.순간순간 정신을 차리고 나면 시간은 계속됐고, 주변은 변해가는데 나는 혼자 그대로인 기분일 때가 많아서 멍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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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화 공감이라니까. 무늬만 공감이라구?
공감을 방해하는 장애물을 말하는 가운데 알아차려라 가족들과 대화를 나누다보면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이야기의 패턴들이 있다. 어느새 너무 익숙한 일상의 습관으로 자리 잡혀 있어 지속적으로 다람쥐 쳇바퀴 돌 듯 일어나고 있는지도 모른 채 살아가기 바쁘다. 설혹 그 순간을 알아차린다 하더라도 자녀는 학교로, 남편은 직장으로 각자의 역할들을 담당하느라 대화의 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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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빛의 시간
원론과 원론 사이에서 야구방망이질 핑퐁질을 해대면서 중요한 것은 죽음도 삶도 아니었다 중요한 것은 삶 뒤에 또 삶이 있다는 것이었다 죽음 뒤에 또 죽음이 있다는 것이었다 -최승자, 「중요한 것은」 中 2019년 12월 6일 오후 8시 30분, 아빠의 죽음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남겨진 자들은 죽음 이후의 일들을 마련해나갔다. 첫 번째 할 일은 장례식 준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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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음악의 힘, 초집중, 준비의 힘, 최진석 교수
유튜브 채널 449tv가 드디어 한 건 했다. 최근 '주객전도 양준일기'라는 토크쇼로 새롭게 단장해서 왔는데, 월요일과 수요일 주중에 두 번 편성했는데 최진석 교수 편이었다. 양준일이 토크쇼에서 그동안 게스트였다면 이번에는 진행자, 즉 호스트로 나온 셈이다. 최진석 교수를 섭외한 449tv의 반전에 한 방 먹은 느낌이었다. 신선했고, 충격이었고, 그럼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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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도깨비의 공유처럼
오늘부터 휴가다. 연휴 동안 밀린 업무를 처리할 계획이었지만, 오늘만은 그러지 않기로 했다. 휴가를 휴가답게 보낼 생각이다. 언젠가부터 휴가를 계획하지 않는다. 번아웃될 때까지 일에 몰두하는 편이라, 휴가 계획을 세우는 것마저 일의 연장선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일정을 정하고 스케줄을 배치하는 것도 버거웠다. 놀 궁리도 에너지가 있어야 할 수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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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생활 내내 혼자 지낸 건가요?
≪낭만적 연애와 그 후의 일상≫ 매너리즘에 빠지다 대학 졸업 후 간사이 공항에서 일하던 시절, 너무나도 외로웠다. 일은 익숙해지고 휴일엔 집에만 있기에 심심했지만 만날 사람은 없었다. 대리만족이라도 할 겸 휴가 때 한국에서 사 온 ≪낭만적 연애와 그 후의 일상≫을 집어 들었다. 초반 몇 장은 달달하다 못해 인상을 찌푸리게 했다. 하지만 몇 장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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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혼말고 졸부모 할 건데요.
내 친구의 꿈은 졸혼. 그 시기와 방법까지 구체화해서 플랜도 다 짜 놨다. 둘째 아이가 대학만 가면, 현 남편 냅다 버리고 멋들어지게 살 거라고 졸혼의 칼날을 서슬 퍼렇게 갈고 있다 졸혼 통장도 만들고, 취업도 하고 혹시 모를 사태에 대비해 재산도 공동명의로 다 바꿔 놓았다. 이토록 계획적인 친구를 봤나. 계획 알레르기가 있는 내가 보기엔 그저 놀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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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협단어] 나에게 어서 선악과를 달라!
그리스 로마 신화에는 판도라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 이야기는 인간에게 불을 준 신, 프로메테우스에게서 시작됩니다. 인간에게 불을 준 게 그리 잘못한 일인지 이해는 되지 않으나, 그로 인해 그는 날마다 독수리에게 간을 먹히게 됩니다. 프로메테우스에게는 동생이 있습니다. 에피메테우스입니다. 제우스는 동생도 대가를 치르게 하기 위해 판도라라는 여성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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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기, -
어린 오빠의 유골은 작은 도자기에 담겨 납골당으로 갔다. 바로 선 사람의 눈높이에 닿는 자리가 가장 값비싼 1등급 자리. 고개를 숙여야 하는 자리는 그다음, 무릎을 굽히고 어깨를 접어야 하는 자리는 그다음. 가난하게만 살아봤던 네 부모는 가격을 들으며 멈칫했고, 그 사이에서 가성비를 따지는 것은 이성이 아닌 본능의 영역이었다. 부모는 아랫자리, 혹은 윗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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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속적이고 반복적인 문제들로 '욕창'이 생긴 이 가족
퇴직 공무원 창식은 뇌졸중으로 쓰러진 아내 길순을 집에서 돌보고 있다. 그 둘을 모두 챙기는 이가 있으니 수옥이다. 조선족 불법체류자 수옥은 월 200만 원을 받으며, 창식을 대신해 길순을 돌보고 집안일을 한다. 언뜻 보기에는, 병든 노모 길순을 모시는 중년 부부 창식과 수옥인 듯하다. 그러던 어느 날, 길순의 등 아랫부분에 욕창이 생긴다. 창식은 큰 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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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편적인 신데렐라 이야기, 콩쥐팥쥐와 관계는?
우리나라 콩쥐팥쥐와 다른 나라의 이야기는 어떻게 다른지 그간 봤는데, 이번 시간에는 신데렐라 이야기를 해 보려고 한다. 사실 콩쥐팥쥐와 신데렐라 중에서 어떤 게 더 먼저라고 말하기에는 어렵다고 생각한다. 지난 시간에 소개했던 중국의 섭한 이야기가 외국으로 전파되었을 가능성도 있다고 하고, 반대로 그 이전부터 서양에서 들어왔다는 추측도 있다. 어떤 말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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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 젖은 고기는 왜 없는 걸까
인생의 고난과 역경을 이야기할 때, 우리는 이 격언을 자주 인용한다. 한국 사람들끼리는 빵 대신 밥을 집어넣어 우리만의 공감대를 만들기도 한다. 인생을 살다 보면 정말 힘이 들 때가 있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흐를 때, 특히 밥 먹다가 갑자기 복받쳐 하염없이 눈물이 흐를 때 감정은 최고조가 된다. 가슴은 쉼 없이 떨려오고 입으로는 흐느낌을 참기 위해 연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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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든 - 혼자 여행
‘아무도 모르는 숲에 들어가 살아 봤으면’, ‘일 년 동안, 아니 한 달만이라도 세상과 담쌓고 조용히 살 수 있다면’, ‘지금의 이 복잡한 속세에서 벗어나 자연에서 아무 생각 없이 살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런 생각을 누구나 한 번쯤은 해 봤을 것이다. 안 좋은 상황을 피하고 싶거나 머리를 식히고 싶을 때 떠오르는 생각들이다. 코로나로 힘든 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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숫자별에서 온 친구들
방학이다. 깊은 해방감을 느꼈다. 내가 어른이 되었음을 느꼈던 순간들이 있다. 물컹물컹하다는 이유로 좋아하지 않던 가지가 맛있어지기 시작한 때가 있었고, 더운 여름에 뜨거운 아메리카노를 마시면서 원두의 향과 맛을 풍성히 느끼게 된 날이 있었다. 무엇보다 또렷하게 내가 어른임을 알려준 것은 '방학'을 간절히 원하는 이가 학생만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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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이 대체 몇 시입니까? 그레고르 씨
프란츠 카프카. 이름의 어감만으로도 무게감이 느껴지는 소설가. 카프카. 오늘의 이야기는 어느 날 주인공 그레고르가 벌레―바퀴벌레 혹은 쇠똥구리, 어느 쪽이든 보기에 불쾌한 쪽으로 해석―로 변해버린 이야기 <변신>이다. *총 3장의 구성 중 1장의 내용을 현대식으로 가볍게 패러디함. 어느 날 아침, 그레고르는 잠자리에서 일어나자마자 무언가 잘못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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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중해를 만나다
T야, 파란 하늘과 해님이 몹시 그리워. 너도 보고 있니? 비가 너무 많이 와서 온 동네가 피해를 보고 많은 사람이 근심에 잠겨있어. "그동안 너희 인간을 많이 참아줬다, 이제 더 두고 보지 않겠다."라는 자연의 경고 같아서 두려워. 성장과 발전이란 목표만 바라보며 자연이 신음하는 데도 눈과 귀를 막고 달리기만 했던 건 아닌지 살펴봐야겠어. 한정적인 자원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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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tlassian Confluence를 배워보자! / Chapter 6, Confluence에서의 협업
지금까지 매력적인 콘텐츠를 만드는 방법과 흥미로운 콘텐츠를 직접 추적하는 방법을 배웠습니다. 이제 컨플루언스 작업박스(workbox)와 일상 업무에서 컨플루언스 기능을 사용하는 방법을 살펴보겠습니다. 컨플루언스에서 콘텐츠, 작업 목록 및 즐겨찾기를 공유하는 방법에 익숙해지고 콘텍츠를 전환(예: 이메일, 문서)하지 않고 신속하게 대응하는 방법을 배웁니다. 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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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봄
지독하게도 긴 장마가 하늘을 덮었다.해가 쨍하다가도 먹구름을 찢고 덮쳐오는 빗줄기가 이상하리만치 계속돼서 그날이 그날 같은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괜히 질척이고 찰방거리는 게 싫어서 밖을 나가지 않으니 남는 시간엔 자연스레 눈꺼풀이 내려앉고는 한다.눈을 뜨면 애써 감은 동안의 기억을 떠올려보고 그러다 보면 기억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나를 저편으로 데려가버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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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의 한낮에 마신 차
나는 한때 사막을 찾아 헤맨 적이 있었다. 벌써 10년 전의 이야기지만, 그때의 나는 '진짜 사막'을 만나고 오겠다는 마음을 굳게 먹고 아랍권으로 떠났다. 그러나 현실은 실망스러웠다. 처음으로 갔던 모로코의 사하라도, 두 번째로 향했던 튀니지의 사하라도, 세 번째로 들른 이집트의 바하리야 사막도, 네 번째인 요르단의 와디럼 사막도… 모두 비슷한 프로그램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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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세 가지가 무엇인가요?
삶의 우선순위 세워보기 간사이(関西) 지역 광고 회사 그룹 면접에서 받은 첫 번째 질문이었다. ‘다섯 가지라…... 보통은 세 개만 물어보는데 많이도 물어보네’라고 생각하며 머리를 굴렸다. 다른 사람들은 스마트폰, 자동차 (20대 자동차 소비량 증가를 위한 해결책을 주제로 그룹 토의를 끝낸 뒤였다), 취미 등을 얘기했다. 나도 비슷하게 대답했고 영화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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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화 듣기 힘든 말을 들었을 때 네 개의 귀를 열어라!
제2의 천성처럼 기존의 선입견에서 나오는 습관적인 반응을 할 것인가? 삶의 언어인 비폭력대화를 개발한 마셜 로젠버그(Marshall B. Rosenberg) 박사는 우리가 듣기 힘든 말을 들었을 때 네 가지 선택을 할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그는 대화의 모델을 자칼과 기린이라는 동물을 들어 비유하고 있다. 자칼은 우리가 살아온 교육과 문화 속에서 당연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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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아프지말자
내 울음소리에 내가 깬 건 오랜만이었다. 일어나 보니 얼굴은 비라도 맞은 듯 젖어있었고, 베개는 이미 축축해진지 오래였다. 어스름한 창밖으로 가장 좋아하는 새벽녘이 흘러가고 있었지만, 쉬이 눈물이 멈추지 않아 무릎 사이에 얼굴을 묻고 계속해서 흐느꼈다. 꿈 때문이었다. 그 안에서 내 주변 사람들이 하나씩 죽어나갔다. 처음은 내 친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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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을 듣지 않는 남성들
0. 〈결혼 이야기〉를 보면서 찰리(아담 드라이버)가 대변하는, ‘남의 말을 듣지 않는 남성들’이 떠올랐다. 이는 〈결혼 이야기〉에만 등장하는 특별한 캐릭터는 아니다. 수없이 많은 로맨스, 로맨틱 코미디 영화에 등장하는 남자들은 입으로는 사랑하노라 말하지만, 결국은 자기가 원하는 대로 하기만을 바란다. 그런 남성들은 대부분 관계 속에서 여성들의 행동을 이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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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어가기 1. 숯 검댕이 친구들의 존재 이유
일하지 않는 자의 죄의식은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 저번 이야기에 이어 내가 취업 전선에 뛰어든 또 다른 이유를 꼽자면, 그건 바로 ‘감투를 걸치기 위해서’ 다. 내 돈으로 월세를 낼 능력과 하루 종일 누워서 사탕 깨뜨리기 게임을 해도 손가락질 받지 않을 방패, 소속감, 도피처를 얻기 위해 백 통이 넘는 자필 자기소개서를 쓰고 일본 곳곳을 전전하며 면접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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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그립지 않아요?
그리움과 반비례하는 마일리지 일본 살이 중 한국이 그립지 않냐는 질문의 대답만큼은 면접장에서나 사석에서나 똑같았다. 비행기로 12시간 떨어진 것도 아니고, 마음만 먹으면 충분히 왔다 갔다 할 수 있는 거리였다. 공항에서 일할 때는 심심하면 2박 3일이든 3박 4일이든 한국 본가로 놀러 갔었다. 대학 시절에는 방학, 연휴 시즌만 되면 한 달 넘게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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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tlassian Confluence를 배워보자! / Chapter 7, Content 보안
이제까지 우리는 풍부하고 매력적인 콘텐츠를 만드는 방법과 콘텐츠 제작 프로세스에 동료를 참여시키는 방법을 살펴보았습니다. 이 Chapter에서는 개인 콘텐츠를 비공개로 유지하는 방법을 배웁니다. 또한 콘텐츠를 보호하는 다양한 방법을 살펴보겠지만 컨플루언스 전체를 어떻게 보호할 수 있는지도 살펴볼 것입니다. 살펴볼 주제는 다음과 같습니다. 콘텐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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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을 대하는 철학
친구의 장례식장을 찾는 것은 어렵다. ‘가야 한다’는 의무감과 ‘현실을 마주하기 싫어’ 쉽게 발이 떨어지지 않는다. 중학생 시절, 나에게는 더더욱 그랬다. 여느 방학 때와 다름없이, 못 다한 숙제에 치여 사는 평일 오전 9시. 친구에게 전화가 왔다. 보통은 첫마디를 욕부터 시작하는, 그래서 인사라는 것을 하지 않는 사이에서 ‘뜸 들이기’는 심상치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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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를 그만두며 쓰는 일기
변덕스러운 성향의 나는 글을 쓰는 이유를 명시하는 것조차 어려워했다. 아, 사실 변덕스럽다고 할 것도 없다. 생각해보면 속으로는 늘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으므로. 그냥 내 감정을 풀어내어야지. 이 알 수 없는 마음들. 모르겠다. 때로는 참으로 타인에게 도움이 되고 싶고, 도움이 되는 글을 쓰고 싶다. 그러나 타인만 고려하여 쓰는 글은 쓰는 나도 읽는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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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낮에 이웃이 초인종을 눌렀다.
두 아이, 모두 학원 간 시간. 맘이 급하다. 앞치마를 벗어던지고 고도의 집중력을 발휘해야 한다. 글도 빨리 매듭지어야 하고, 추천 영화도 봐야 하고 인터넷 쇼핑도 해야 한다. 앗! 어제 친구와 통화도 하다 말았지. 어디까지 얘기했더라... 아이들이 있을 땐 '하는 것도 아니요, 안 하는 것도 아니오.' 상태가 되므로 온전히 혼자인 이 시간을 백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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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협단어] 살아간다는 불행
"정말로 중요한 단 하나의 철학적 문제가 있다. 그것은 자살이다. 삶이 살아갈 가치가 있는지 결정하는 것은 철학에서 가장 우선적으로 답해야 하는 질문이다." 카뮈가 한 말입니다. 조금 친숙한 버전으로는 햄릿이 있습니다. "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불행이 있기 위해서 필연적으로 존재해야 하는 것이 삶입니다. 무에는 어떤 불행도 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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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 싶지 않은 것, 알 수밖에 없는 것
"이봐요! 아래 거기!" 나는 사주팔자를 보지 않는다. 그것은 신뢰의 문제라기보다 재량에 대한 문제이다. 그 흔한 오늘의 운세 역시 들여다보지 않는 이유는 나의 선택에 대한 어떠한 영향과 침해도 거부하기 때문이다. '파란 옷을 입어라', '물가에 가지 마라' 등 사소한 지침―다행히 나는 파란 옷도 없고 물도 무섭다―으로 인해 하루의 폭이 현저히 줄어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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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육점에 고기가 없다?!?
나는 여러 고기 요리를 좋아하지만 그중에서 순대를 특히 좋아한다. 통통한 창자에 꽉 찬 고기, 선지, 채소, 당면 등등. 종류에 따라 만드는 방법에 따라 이름도, 맛도 천차만별이다. 다양하다는 점 외에 내가 순대를 좋아하는 두 번째 이유는 고기를 최대치로 활용한 음식이기 때문이다. 고개를 갸우뚱할 사람이 있을 수도 있겠다. 정확히 말하면 버릴 수도 있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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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기, -
그날은 정말 너무 아파서, 수업도 멈추고 기다시피 상경관을 나왔다고 했다. 생리통이었다. 배꼽 아래 어딘가에서 고인 피가 흘러넘친다는 건 유쾌하지 않은 일이다. 뭉근거리는 그 느낌. 따뜻하면서도 찐득한. 더군다나 이런 여름에는 더 찝찝한. 너는 겨우 잡아탄 택시에서 밀려오는 토기를 어쩌지 못해, 여러 번 울컥거리며 차를 세웠다. 택시 기사는 백미러를 통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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뱀 이야기1 - 우리나라편 구렁덩덩 신선비
이번에 소개하려고 하는 이야기는 뱀 이야기다. 다들 뱀을 떠올린다면 아마 대체로 한 가지 단어만 떠올릴 수도 있을 것이다. 바로 ‘징그럽다’라는 이미지다. 실제로 본다면 기겁을 할 정도로 우리에게 좋은 이미지는 아니다. 그러니까 구렁이는 더욱 심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필자도 실제로는 파충류를 볼 수 있는 동물원 같은 곳에서만 봤는데 아마 산속에서 혼자 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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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질은 재미있어
팀플레이가 매력적인 농구를 좋아한다. 개개인의 실력도 중요하지만 함께 잘해야 빛을 발하는 게 농구이다. 농구를 모를 때에는 골대에 골을 넣은 숫자로 승패를 겨루는 구기 운동 정도로 생각했는데, 패스와 드리블로 움직이는 공을 따라가다 보면 긴장감과 속도감으로 짜릿함이 기가 막힌다. 실력이 뛰어난 한 명의 선수가 있는 팀보다, 호흡이 잘 맞아 실수 없는 팀플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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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님, 나의 스승님
두 번째 직장을 다니던 20대 중반 시절, 나의 사수이자 우리 팀 소재 실장님은 누가 봐도 멋진 분이셨다. 탤런트 오연수를 닮은 우아한 외모에 상냥함과 애교를 더하면 실장님과 비슷한 분위기가 된다. 소재 관련 업무는 처음이라 이제 막 알을 깨고 나온 병아리처럼 모든 것이 서툰 내게 소재 업무에 대한 모든 것을 알려주신 감사한 분이다. 유치원생 딸아이를 키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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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이야기
2020년 1월의 어느 날, 이메일을 확인하다가 우연히 ‘프리즘 작가 모집‘ 공고를 보게 되었다. 신청 마감 시간을 한두 시간 남겨두고 호기심에 접수한 것이 운이 좋았는지 프리즘 작가 1기로 함께하고 싶다는 연락을 받았다. 1월 22일 수요일, O.T를 하러 북이오 사무실을 찾아가던 날을 기억한다. 수서에서부터 타고 온 빨간 버스에서 내린 후 길 건너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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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4회> 진정한 승부욕의 화신
노래와 연기 거기에 운동실력까지 타고난 진정한 만능 엔터테이너! 드림팀 역사에 커다란 한 획을 그은 남자! 그는 바로 임창정이다. '출발 드림팀'은 물론 'MC 대격돌'까지 정말 〈슈퍼TV 일요일은 즐거워〉에서 그야말로 종횡무진 대단한 활약을 보여준 임창정은 지금도 더없이 많은 그리움을 자아내고 있다. 임창정의 활약상 역시 수도 없이 많은데, 하이라이트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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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5회> 불멸의 근육 파이터
현재 SBS <런닝맨>과 KBS <날아라 슛돌이 - 뉴 비기닝> 등의 수많은 프로그램에서 변화무쌍한 활약을 보여주고 있는 남자! 지금도 변함없는 연예계 최고의 헬스보이! 감히 힘으로 그를 이길 자는 절대 없다고 할 정도로 힘의 절대강자로 군림하고 있는 남자! 그는 바로 김종국이다. 그룹 터보의 보컬로 처음 세상에 이름을 알리고 나서 강한 힘과 빠른 스피드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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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밀한 그의 취미
주변을 둘러보았다. 아무도 보는 이가 없었다. 작은 방구석 한쪽에 놓인 노트를 조심히 펼쳤다. 커다란 글자들, 맞춤법에서 어긋나 있는 단어들, 이상한 기술의 끝없는 목록에 입이 턱 하고 벌어졌다. 불현듯 십여 일 전의 오후가 떠올랐고 그게 이 모든 일들의 시작이었음을 깨달았다. "종이 주세요!" 급한 목소리였다. 그러나 나는 쌓인 그릇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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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때문에 - 그럴리가!
아이들은 부모님이 다투는 것이 자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살면서 생각이 다르거나 상황이 어려워 의견을 조율하다 보면 다툴 수도 있다. 다투지 말고 살라는 게 아니라, 다투는 모습을 보였다면 화해하는 모습도 보여야 한다는 말이다. 그러지 않으면 어린아이들은 이유도 모른 채 죄책감을 느낄 수 있다. 확실하게 서로를 이해하고 존중하며 받아들이는 화해의 모습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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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빛의 시간
아침은 틀림없이 찾아왔고 나는 기다렸다는 듯 눌은밥을 끓였다. 이틀 전 아빠가 위독하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위경련이 난 엄마는 며칠째 죽조차 제대로 씹지 못하고 있었다. 앞으로 3일, 이 시간을 견디려면 밥물이라도 넘겨야 했기에 나는 억지로 엄마를 식탁에 앉히고 숟가락을 건넸다. 쓰러지면 안 돼, 마지막까지 잘 지켜보자, 우리 아빠 잘 보내 주자, 나는 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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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대 이상의 여성 액션과 빼 때리는 현실 메시지가 만났을 때
샤를리즈 테론이라는 배우를 영화 〈몬스터〉로 처음 알게 된 이들이 많지 않을까 싶다. 그녀는 일찍이 90년대 중반에 데뷔하여 할리우드의 숱한 그렇고 그런 주조연 배우로 활약하다, 2003년 〈몬스터〉로 연기력을 폭발시키며 단번에 최정상급 배우로 우뚝 섰다. 하지만 곧바로 승승장구하지는 못했고, 2010년대 들어서 장르를 불문하고 크고 작은 영화에서 주연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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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봄
어떻게 하면 더 나은 사람이 되는 건지 고민하던 때가 있었다. 하늘은 높아져만 가고 주변은 성숙해져만 가는데 나는 점점 작아지는 것 같았다. 코 끝을 괴롭히는 고약한 은행 냄새가 마치 기폭제가 된 것처럼 나는 갈피를 잡지 못하고 몸집만 불려갔다. 그맘때쯤 친구가 카페를 차렸다. 크지도 작지도 않은 딱 적당한 공간, 곳곳에 그의 취향이 묻어나고 준비하던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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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에게 사랑받을 순 없잖아
잠이 안 오는 날이 많아졌어요. 좋지 않은 상황이죠, 제게 불면증은 우울의 다른 말이기도 하거든요. 다른 사람들은 잠이 안 올 때면 어떻게든 자려고 노력한대요. 눈을 감고 양이나 숫자를 세는 게 일반적이라는데.. 뭐 요즘은 ASMR 인가? 자려고 그걸 듣는 사람도 있다네요. 전 잠이 안 올 땐 그냥 침대 벽에 기대서 베개를 끌어안아요. 그리곤 이어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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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깨지는 연습하기
늘 사용하는 개완이었지만 그날따라 유난히 뜨거워서 잠시 정신줄을 놓은 사이 사고가 발생했다. 개완의 뚜껑이 원래 있어야 할 궤도를 벗어났고 바닥에 떨어지면서 깨지고 말았다. 잡기 편하고 차 우러나는 모습을 감상하기 좋아 자주 사용하던 것이라 속상했다. 아무리 속상해도 이미 깨어진 것을 다시 붙일 수는 없는 법. 마음속으로 잠시 묵념을 하고 그간 고생했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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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 앞에서‘도’ 철학..?
“맛은 화학적 실체라기보다는 정서적 현상이다. 맛은 우리가 그것을 입안에서 누리고 있을 때만 유효한 현실이다. 맛은 추억이나 결핍으로 존재한다.” <라면을 끓이며>, 김훈 作 부유한 사람, 빈한 사람, 뚱뚱한 사람, 날씬한 사람, 유명한 사람, 평범한 사람 등 우리 모두는. 씹는다. 입안에 들어가는 음식의 종류가 다를지언정 매일 같이 씹는다. 때로는 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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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배워야 할 것은 무엇일까
어릴 적의 학교는 나에게 그다지 좋은 인상을 심어주지 못했다. 그리고 가장 슬픈 것은 내가 선생님이 되었을 때 아이들에게 꼭 가르치고 싶은 것들이나, 어린 아이들을 대하는 현명한 방법을 배우지 못했다는 점이다. 수업을 듣는 이유는 뭘까? 학교에 다니는 이유는? 아마 많은 아이들이 생각하지 못하고 지나쳤을 질문들이다. 나는 꽤 일찍부터 이런 질문에 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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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tlassian Confluence를 배워보자! / Chapter 8: Confluence 사용자 정의
컨플루언스를 회사에 소개하려는 경우 회사 브랜딩과 로고를 사용하면 큰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이 Chapter에서는 컨플루언스의 모양새(룩앤필: look and feel)를 '사용자 정의(customize)'하는 다양한 방법을 살펴보겠습니다. 컨플루언스를 비교적 쉬운 방법으로 사용자의 요구에 맞게 '사용자 정의'하는 방법을 살펴보겠습니다.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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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참! 전업맘도 회식 좀 합시다.
듬성한 눈썹을 아이 펜슬로 채워 넣고 코랄 빛 립스틱을 바른 후 입술을 오므렸다 폈다 마무리는 볼터치로 ‘톡톡’.간만에 하는 화장이라 괜히 공을 들여본다. 눈치 빠른 딸아이가 쪼르르 달려와 묻는다. “엄마, 어디가?” “응. 엄마 오늘 약속있어.” “밖이 깜깜한데? 우린 어떻게 해?” “아빠 일찍 오실거야” 때마침 칼퇴한 남편이 현관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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뱀 이야기2 - 프랑스편 뱀과 포도 재배자의 딸
지난 시간에 이어서 두 번째 뱀 이야기를 주제로 소개하겠다. 동물이나 식물과 결혼(교합)하는 이야기는 ‘이류교혼담’이라고 하는데 여러 나라에서 다양한 형태의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뱀 이야기도 거기에 속해 있고 제법 서사 구조가 탄탄하여 읽는 사람에게도 큰 재미를 부여하기도 하다. 이번에 소개할 이야기는 프랑스에서 전해지는 민담인데 제목은 ‘뱀과 포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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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둘기 꼬치
채식주의자를 제외한 전 세계인이 사랑하는 고기가 하나 있다. 바로 닭고기다. 문화권에 따라 닭을 안 먹는 곳도 있긴 하지만 거의 대부분의 국가에서 닭을 먹는다. 돼지고기를 금기시하는 무슬림도, 소를 신성시하는 힌두교도들도 닭고기만큼은 맛있게 먹는다. 그러니 치킨 케밥도 있고 탄두리 치킨도 있는 게 아니겠는가. 어쩌면 B와 D 사이에 있는 건 선택(Cho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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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작곡] 고생 안 하고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 몇 개 남은 글은 '불협단어 자작곡'이라는 이름으로 진행됩니다. 어울리지 않았던 두 단어가 만나는 공간을 쓴 게 '변주곡'이었다면, 흔히 같은 묶음이라고 생각한 단어를 짓궂게 갈라놓는 작업이 '자작곡'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아직 군대 안 갔다 와서 그래.” 미필자의 ‘어린’ 행동에 따라붙는 꼬리표입니다. ‘군대 가면 바뀐다, 빨리 군대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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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에 띄지 않는 배경이 전체 그림을 완성한다.
다시 10월이 되고 앤은 다시 학교로 돌아간다. 학교에는 스테이시 선생님이 새로 부임해 와 있다. In the new teacher she found another true and helpful friend. Miss Stacy was a bright, sympathetic young woman with the happy gift of winn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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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팽이 계단 아래에는
T야, 네가 내 기도를 들어준 덕분인지 파란 하늘이 나왔어. 눈이 부신 하늘을 보자니 막바지 불볕더위조차도 고마워. 조카 꼬물이가 방학 숙제로 감사일기를 쓰는 모습을 지켜보다 생각했어. 무엇을 더 가지고 채울 때만 감사했던 과거보다 그저 순간마다 내게 있는 것과 나를 둘러싼 주변에 저절로 감사한 지금이 훨씬 행복하다고 말이야. 게다가 나는 다른 사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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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기, -
엄마는 자신의 가족 자랑을 좋아했다. 어린 나이에 너와 오빠를 낳고도 여전히 젊은 자신과 자신의 배우자를 추켜세우는 것 외에는 할 줄 아는 것이 없는 것처럼 살았다. 너의 엄마는 요리를 참 잘했다. 된장찌개를 끓일 때 고추장과 쌈장을 섞어 끓였고, 찌개에 넣고 남은 호박이며 감자며 두부의 자투리를 잘게 다져 고소한 채소전을 부쳐낼 줄 알았다. 자글자글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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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름대로 멋을 부린 도라지 위스키
스마트폰과 SNS가 범람하는 21세기에 로맨스가 사라졌다고 생각하는 이가 더러 있다. 대개 그들은 과거를 추억하며 과거의 낭만에 젖어 현대를 살아가곤 한다. 손 편지를 쓰다 손날이 거뭇해진 기억을 못 잊거나, 행여 떨어질까 꾹꾹 눌러 붙이던 우표의 설렘을 무선통신기기가 빼앗아 갔다고 생각―삐삐는 빼자 솔직히―하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나이가 들어갈수록 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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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빛의 시간
삼우제까지 마치고 나니 당장 해야 할 일이 없어, 한동안은 적막과 울음으로 간신히 하루를 보냈다. TV 소리마저 거북하게 느껴지던 시기였다. 나는 갑자기 혼자가 된 엄마를 보살피기 위해 본가에서 머물렀다. 명목상 엄마를 위한 것이었지만 본가에서 지낸 시간은 엄마와 함께 끊임없이 아빠 얘길 나누며 내가 위로 받았던 시간이기도 했다. 우리는 눈만 마주치면 아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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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날 이야기
물이 엎어졌다. 손에서 컵이 미끄러져 내렸다. 떨어진 물방울들은 점차 더 많은 분포의 면들을 덮으며 퍼졌다. '괜찮아.' 그 한 마디가 수건을 집어 드는 손보다 빠르게 튀어나왔다. 아이에게 하는 말이었는데 내가 나에게 말하고 있었다. 마음이 평온해졌다. 이례적인 기나긴 장마와 예상치 못한 호우경보, 그 가운데 여름휴가를 맞이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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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재 교육 10 년 경력의 교사가 말하는 '예술가의 씨앗'
어지르고 미루고 놀기만 하고… 아이들은 좀처럼 어른 마음대로 움직여주지 않습니다. 그게 아이들의 사랑스러운 점이기도 하지만 혹시 무책임한 어른으로 자라는 것은 아닌지, 아무런 성취도 이루지 못하고 우울한 삶을 살게 되는 것은 아닌지 때때로 걱정이 되기도 하지요. 유달리 한 가지 일에 집착하는 아이들도 있습니다. 공부를 하랬더니 노트 필기에만 목매고, 인터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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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2년에 무슨 일이 일어났나?
스티븐 킹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1922>는 공포 영화의 외형을 띠고 있으나 공포를 자아내는 일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어 보인다. 물론 끔찍하고 잔인한 이미지들은 불쾌하긴 하지만, 이는 공포와는 거리가 먼 감정이다. 시골에서 아내, 아들과 함께 농사를 짓고 사는 윌프레드(토머스 제인)는 도시로 이주해 살고 싶은 아내 알레트(몰리 파커) 와 결정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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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마구마 - 사이다
고구마는 갓 찌어져 김이 모락모락 날 때 손으로 호호 불면서 먹으면 더 맛나다. 뜨거운 고구마를 이 손 저 손으로 굴리며 먹다가 입천장이 데일 것 같으면 슬쩍 뱉었다가 식혀서 먹기도 한다. 너무 맛있어서 정신없이 삼키다가 목구멍이 꽉 막혀 숨이 막힐 거 같을 때면 급하게 마신 물 한 모금이 정신을 돌아오게 하기도 한다. 옛 어른들이 삶은 달걀, 감자나 고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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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의 공간과 제2차 세계대전의 시간이 실존 차원에서 엇갈린다
나치 독일이 프랑스 파리로 진군하자 마르세유로 탈출을 시도하는 게오르그. 탈출 직전, 그는 지인의 제안으로 유명한 작가 바이델에게 아내가 보낸 편지와 멕시코 영사관으로부터 온 비자 허가서를 전하고자 한다. 바이델이 머무는 호텔을 찾아갔지만, 그는 마지막 작품의 원고만 남긴 채 자살한 후였다. 게오르그는 한쪽 다리를 잃은 친구와 함께 몰래 기차를 타고 탈출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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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tlassian Confluence를 배워보자! / Chapter 9: 고급 Confluence
지금까지 컨플루언스가 설치와 함께 번들로 제공하는 모든 기능, 템플릿 및 매크로를 살펴보았습니다. 그러나 이게 전부가 아닙니다. 컨플루언스는 사용자가 원하는 고유한 기능, 템플릿 및 매크로도 추가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하면 컨플루언스를 회사나 조직의 필요에 맞게 변경할 수 있습니다. 이 Chapter에서는 콘텐츠를 구조화하기 위해 템플릿을 만들고 적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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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tlassian Confluence를 배워보자! / Chapter 10, Add-on 관리하기
이전까지의 Chapter에서 우리는 컨플루언스의 모양새를 변경(사용자 정의)하고, 구조를 추가하고, 콘텐츠를 생성하고, 다른 사람들을 컨플루언스 작업에 참여시키는 방법을 살펴보았습니다. 이번 Chapter에서는 추가 기능(Add-on)을 관리하는 방법, 컨플루언스에 새로운 기능을 추가하는 방법, 컨플루언스의 '응용프로그램 연결'을 사용하여 다른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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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tlassian Confluence를 배워보자! / Chapter 11, Confluence 확장하기
컨플루언스에 추가하고 싶은 기능이 '추가 기능(Add-on)' 설치 및 적용을 통해서만 가능한 것은 아닙니다. 유사한 기능을 갖고 있는 '추가 기능'을 수정(사용자 정의)해서 요구되는 기능을 구현할 수도 있지만 '아틀라시안 플러그인 소프트웨어 개발 키트(Atlassian Plugin Software Development Kit)'을 사용하여 '추가 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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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봄
학비를 벌며 야금야금 아껴둔 돈으로 첫 해외여행을 갔다. 친구가 그곳에 살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친구에게 의지했던 그런 기억. 나의 두 번째 해외여행은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3주간의 이야기다. 유난히 추위를 타지 않던 겨울, 호기심이었는지 어린 날의 치기였는지 모를 그 여행의 시작. 그때의 나는 남은 학업과 꾸역꾸역 학비를 벌던 일자리, 이러지도 저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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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화 침묵 속에서 공감의 꽃이 핀다
꽃이 열리고 나무가 자라는 소리 나는 너무 작아 듣지 못했네. -홍순관, ‘춤추는 평화’ 깊은 연결이 이루어질 때 무수한 말들은 순식간에 사라진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끊임없이 말을 하도록 강요받는다. 타인들과 함께 있을 때, 잠시라도 대화가 끊어지면 곤혹스럽기까지 하다. 어쩌면 잡담을 통해 불편한 고요는 피하고 그저 대화가 계속 흘러가도록 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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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차에 관한 몇 가지 소소한 정보
홍차나 녹차 다음으로 유명한 차는 아마 보이차가 아닐까 싶다. 다이어트나 건강에 좋다는 각종 간증이 인터넷의 바다를 떠다닐 뿐만 아니라, 유명한 연예인들이 마시는 모습이 이따금 미디어에 포착되기도 한다. 이 차는 오래전부터 중국의 원난성(운남성) 지역에서 생산하며 마셔왔고, 세월이 지날수록 가격이 비싸져 재테크로도 활용된다. 세상의 모든 재테크가 그러하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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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둘의 난 비혼주의자다
SNS를 보다 보면 결혼 생활에 대한 온갖 불만을 토로하는 글들이 올라오곤 해. 자칭 유부녀, 유부남이라는 사람들은 자신의 구구절절한 사연을 막 쏟아내는데, 보고 있으면 결혼하고픈 생각이 뚝 떨어진다니까. 물론, 최소 십몇 년을 남으로 살아온, 집안도, 성격도, 가치관도 다른 두 사람이 한 집에서 앞으로의 몇십 년을 함께 꿈꾸는 건 쉬운 일이 아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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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기, 삶으로 존재하기
어렸을 때부터 정답이 있었던 사회에서 살았던 나는 틀린 길, 옳지 않은 길로 갈까 봐 늘 노심초사했다. 사회나 어른들이 정해주는 길을 따르지 않으면 큰일이 일어날 것만 같은 느낌. 누군가가 미리 겪고 찾은 답을 그대로 따라야 했는지도 모른다. 아이들에게 칼을 만지지 말라고 하면 그들은 평생 요리를 할 수 없다. 칼을 조심하라고 이야기를 해 줄 수는 있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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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렁이 이야기1 - 우리나라편 우렁각시
여태 소개했던 옛이야기는 대체로 전해지는 버전이 많은 편이다. 그렇지만 이번에 소개할 우렁 각시 이야기는 제법 단순하게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일단 우리나라 편은 많지 않고 거의 비슷한 이야기를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렁 각시는 여러 곳에서 많은 활용을 하는 이야기 구조라고 생각한다. 꽤 다양하게 모티브를 하는 것도 볼 수 있으므로 친숙하게 다가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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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세라피움
T야, 3월에 두꺼운 외투를 여미며 무거운 목소리로 너를 불렀어. 그로부터 어느새 다섯 달이 흘렀어. 오늘은 아이스팩을 껴안고 선풍기 바람을 쐬며 네 이름을 불러봐. 막바지 무더위로 몸은 더운데, 마음은 시원한 요즘이야. 이집트에서 가져온 질문도 이제 끝이 보여. 그래서일까, 내 목소리가 통통 튀게 들리지 않니? 이집트 이야기를 마칠 때까지 더 시원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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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의 철학
해군에서 근무했다. 일평생 태어나 서울을 벗어난 적이 없었던 청년이 처음으로 타의에 의해 바닷가라는 곳을 가게 됐다. “저 해외파병 가고 싶습니다.” 갓 들어온 이병이 이런 말을 한다는 것은 일종의 선언이었다. 당신들과 싸우겠다는 선언. “체력검정 특급 맞고, 6개월 안에 상 받아와. 그러면 추천서는 써줄게. 만약에 6개월 안에 못하면, 너는 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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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작곡] 변명하지 않는 법
고등학교 야자 시간이었습니다. 뒷자리 앉은 친구가 지우개를 떨어뜨렸습니다. 주워서 친구에게 건네주는 그 순간, 교실을 지나가던 감독 선생님이 그것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저를 불러냈습니다. 떠들면 어떡하냐며 저를 혼냈습니다. 그렇게 복도에서 엎드려뻗친 채 1시간을 있었습니다. 당연히 어이없는 상황입니다. 말 한마디 하지 않고 지우개만 주워줬을 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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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6회> 영원한 바람의 아들
드림팀 시즌 1의 역사를 장식한 수많은 영웅들. 그중에서도 국보 아니 세계 유적의 수준을 자랑하는 최고의 영웅을 꼽으라면 나는 단연 이 사람을 이야기하겠다. 뛰었다 하면 바람을 가르는 최고의 스피드를 자랑하는 드림팀의 슈퍼 소닉! 바로 신화의 전진이다. 항상 앞만 보며 달리는 남자, 전진! 그 이름만큼 정말 거침없었던, 드림팀에서의 수많은 활약! 이번에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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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7회> 보고싶다! 태풍의 눈
오늘따라 더없이 보고 싶고 그리운 한 사람이 있다. 내가 출발 드림팀을 보면서 알게 된 연예인들 중 유일하게 형님이라고 부르면서 좋아한 단 한 사람! 지금은 흔적만 남아있지만, 최고의 체력을 자랑하며 드림팀 시즌 1을 풍미한 히어로 중 한사람. 드림팀 태풍의 눈, 박용하! 그가 오늘따라 더욱 보고 싶어진다. 1) 첫 출연에 우승! 박용하가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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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두 번째 인상은 자신있습니다.
나는 첫인상 덕을 본 적이 없다. 표정이 많지 않아서일까? 덕은 커녕 뜻하지 않은 오해를 산 적이 더 많다. 얼마 전 한 지인이 나에 대해 안 좋은 얘기를 하고 다녔단 사실을 알게 됐다. 그런데 그 이유가 내 인상이 안 좋아서란다. 자길 쳐다보는 눈길이 기분 나빴다나 어쨌대나. 고작 그 사람과 두 어번 만난 게 다인데… 더 이불 킥 할 사건은 내가 그 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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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용과 멸종 사이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전 세계를 강타하고 있다. 마치 아포칼립스 영화를 실제로 보는 듯한 느낌이 들 정도로 거리는 한산하고 사람의 흔적을 찾기 힘들다. 바이러스로 죽기 전에 소비 위축에 가게들이 문 닫을 것만 같다. 나라 전체가 숨을 죽일 정도로 난리가 난 가운데 언론에서 내 눈을 사로잡은 기사 하나가 흘러나왔다. 「코로나19, 박쥐에서 발현해 천산갑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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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남는다는 것
데자뷔인가? 2월 말 교육부의 휴원 권고로 영업장 문을 닫은 지 40여 일 만에 다시 열었는데, 8월 말 집합 금지 행정명령에 따라 또다시 문을 닫게 되었다. 당장 먹고 살 길이 깝깝하지만, 그때처럼 원통하거나 두렵진 않다. 이불 빨래를 하고, 신문을 좀 더 느긋하게 보고, 책도 읽고 절임음식을 만들고, 밤늦게까지 예능 TV 프로그램도 보고, 늦잠도 자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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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이 보내는 신호
눈을 들었다. 깜깜한 하늘에 반짝이는 것들이 보였다. 한두 개쯤이라면 인공위성이라 생각하였을 텐데, 그 밤에는 유독 반짝이는 것들이 많았다. 별이었다. 별이다! 오랜만에 맑은 날이었다. 볕이 나고 공기도 깨끗한 오후였다. 날씨에 어울리는 청량한 배경 음악을 재생하고는 고개를 사뿐사뿐 흔들며 감자를 썰고 있었는데 아이들이 갑자기 웃기 시작했다. "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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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깨비를 빨아버린 우리 엄마 - 스트레스 날리는 방법
가슴이 시원하게 뚫리기를 바라는 때가 있다. 생각한 것처럼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 타인에게서 전해 들은 어떤 말이 내게 자극이 되어 신경 쓰일 때가 그렇다. 가까운 친구나 가족이 나를 고민에 빠지게 할 때, 개인적인 업무나 공적인 일들이 복잡하게 얽혀 실마리가 보이지 않을 때도 마찬가지다. 이렇게 뭔가 체한 듯 가슴이 꽉 막혀서 뚫고 싶을 때, 아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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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야 글로 쓸 수 있게 됐네, 오래 걸렸다.
오늘은 좀 창피한.. 남들이 들으면 오글거린다며 손사래 칠 수도 있는 이야기를 할 거야. 그동안 혼자 있을 때, 슬퍼지고 싶을 때만 살짝씩 꺼내봤던 기억이라 문장으로 만들어 공개된 장소에다 표현하려니 새삼 부끄럽다. 그리고 사실 좀 많이 떨려. 이 일을 어떤 방식으로든 말해보려 하는 게 오늘이 처음이거든. 시간이 멈춘다는 느낌. 마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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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화 "아니요"가 "예"와 연결됐다고?
윌터: 사진은 언제 찍어요? 왜 안 찍어요? 숀 : 어떤 때는 안 찍어. 아름다운 순간이 오면 카메라로 방해하고 싶지 않아. 그저 그 순간 속에 머물고 싶지. 월터: 순간에 머문다고요? 숀 : 그래 바로 저기... 그리고 여기... -'윌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 영화 속 일부 상대방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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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료가 부족한데 계속 운전하니 고장 날 수밖에
인간관계가 귀찮아졌다. 그간 기록하기도 어려울 정도로 많은 일이 있었다. 남편의 표현을 빌리면 ‘거의 드라마’였다. 많은 게 정리된 지금에 이르러서야 내게 남은 생각은 ‘그래도 난 역시 운이 좋은 사람’이라는 것. 감사한 일이다. 그런 과정을 거치던 중 ‘내가 어딘가 변한 것 같다’는 감각이 있었다. 나는 이런 감각을 제법 민감하게 인지하는 편이고, 그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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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봄
있지, 세상이 온통 하얘지는 날이었어바람 타고 흩날리는 것들이 가득한 세상이 까매지면 유독 고요하게빛을 따라 반짝이는 것들이 가득하지만닿으면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사라지는 게 슬퍼서담배 하나를 입에 물고 고요 속에 숨었어 눈앞을 메우는 매캐한 연기는 바람 따라 흩어지고들이마신 호흡 속에는 쓸쓸함이 가득해 너는 하얗고 반짝이는데 나는 빨갛고 사라져가숨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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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빛의 시간
코로나19로 인해 생활 반경이 줄어든 지도 벌써 반년이 지났건만 전파력은 더 강해지고 있다. 상황이 이러하니 때 되면 삼삼오오 모이던 친구들도 약속을 미루거나 취소하고 각자도생(各自圖生)하며 여름을 지나는 중이다. 내 경우 하루 한 번 강아지 산책할 때 빼곤 집에 박혀 그늘 속 화초처럼 시들해지고 있었는데, 얼마 전 오랜 친구가 모처럼 집으로 찾아와 즐겁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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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온통 회색일 땐 가장 좋아하는 머그컵을 꺼내세요
몸도 마음도 너무 지쳤을 땐 모든 것이 온통 회색입니다. 그럴 때 좋아하는 머그컵을 꺼내어 한가득 맛있는 차를 우립니다. 찻잎을 고르고 맛있게 우려낼 다구를 고르는 것은 쉼표를 찍는 것. 주전자 옆에서 잠시 눈을 감으면 물이 끓어오르는 소리 ASMR. 다구를 데우고 옆에 머그를 둔 채 정성을 담아 차를 우리는 건 움직이는 명상. 맛있게 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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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 계엄령 시대의 지옥 같은 학교를 공포로 빗대다
게임을 원작으로 한 영화는 거의 매년 꾸준히 관객을 찾았다. 비록, 평단으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고 관객으로부터 많은 인기를 받은 작품은 찾기 힘들지만 말이다. 그 시작은 1990년대이다. 최초는 아니지만 시작점에서 유명한 것으로는 <모탈 컴뱃> 시리즈가 있을 테고, 2000년대 들어 <툼 레이더> 시리즈와 <레지던트 이블> 시리즈가 있을 테다. 이중 <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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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소문 들었어? - 마음 근육 키우기
스트레스 상황은 참 다양하다. 예상한 일에 대한 스트레스도 있고, 예상하지 못한 스트레스도 있다. 어느 하나 강도가 더 약하다 말할 수 없고, 어떤 스트레스라도 받아서 좋을 리 없다. 항상 준비된 태도로 스트레스를 받아들이고, 더 나아가 스트레스를 즐길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살면서 스트레스가 좋았다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본 적이 없다. 늘어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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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는 웃는다- 반가운 옹알이
새벽에 눈을 뜨면 어떤 소리가 제일 먼저 들릴까? 아침에 제일 먼저 듣고 싶은 소리는 무엇일까? 사랑하는 사람이 안부를 묻는 목소리를 들어도 좋고, 이마나 입술에 굿모닝 키스를 받아도 좋다. 창밖에서 들리는 참새 소리는 아침을 상쾌하게 하고, 시원하게 내리는 빗소리는 하루의 시작을 설레게 한다. 이런 아침의 소리에 갓난아이의 옹알이가 더해진다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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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담 쓰담 - 마음통장
예상하지 못한 일을 겪을 때, 아니 예상했던 결과라 하더라도 사람들은 자신이 겪는 일이 세상에서 가장 크고 위태롭다고 느낀다. 그래서 슬픔과 아픔을 나누고 싶어 누군가에게 자기감정을 전한다. “나 이런 일을 겪어서 너무 힘들어.”라고 말할 때 상대방이 체중을 실어 위로하는 말을 전달하면 우리는 그 진정성을 안다. 이 사람이 가짜로 위로하는지 진심으로 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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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에게 물었다. "너희들의 꿈은 뭐니?"
제주에서 독서 글쓰기 과외를 하고 있다. 내가 아이들에게 알려주고 싶은 것을 가르치기에, 수업은 내가 원하던 방식대로 이루어진다. 특별한 것은 없다. 수업은 지극히 유연하게 흘러간다. 함께 주제를 정하고 그 주제에 맞는 책을 스스로 골라 읽는다. 그리고 거기에서 질문하고 싶거나 대화 나누고 싶은 주제를 몇 가지 뽑아 함께 자유로이 이야기한다. 이야기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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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럼프를 겪은 적 있나요?
내면의 공허함 이력서에서도 면접에서도 항상 마주쳤던 질문이다. 역경 극복을 어떻게 했냐는 둥, 실패 경험담을 들려 달라는 둥, 일본 기업은 면접자의 위기 극복 능력에 많은 관심을 보인다. 이런 질문을 받을 때마다 ‘내가 슬럼프가 올 정도로 무언가에 열심히 매진했던 적이 있던가?’라고 되묻게 된다. 아니, 애초에 살면서 슬럼프라는 걸 겪었던가? 아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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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 여름, 강
T야, 9월이야. 나는 습관처럼 Earth, Wind and Fire가 부른 'September'를 흥얼거려. 예전에는 9월이 온 것이 좋아서 흥얼거렸다면, 올해는 갑자기 몰려오는 두려움을 잊으려 더 열심히 흥얼거려. 바이러스 때문에 달라진 일상에 적응하기가 생각만큼 쉽진 않아. 괜찮다가도 두려워. 그럴 때면 생활습관을 다시 점검하고 마음을 보살펴.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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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계인이 만든 거 아닌가요?
T야, 태풍이 지나간 하늘을 보다 생각했어. 점성학에서는 올해가 명왕성과 토성이 염소자리와 일직선에 놓이고 태양과 같은 방향에 서는 해래. 그런데 과거 명왕성과 토성이 일직선에 놓였을 때 제1차 세계대전, 제2차 세계대전, 1960년대 문화대혁명과 1980년대 경제 위기가 있었대. 그래서 올해 이렇게 많은 변화와 사건·사고가 생기나 봐. 내 수첩에는 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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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마지막일지도 모를
T야, 아침에 우편물 한 통을 받았어. 어떤 단체를 통해 내가 후원하던 어린 친구와 가족이 이사해서 새로운 친구를 소개한다는 내용이었어. 이번에는 스리랑카에 사는 친구와 연결되었어. 다부진 얼굴을 한 12살 남자아이 사진이 들어 있었어. 지금 그 친구는 네게 편지를 쓰는 내 책상 위 액자 속에서 나를 보고 있어. 나는 새 친구가 순간마다 평안하기를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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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 Dolce Vita (달콤한 인생)
T야, 며칠 전 정말 오랜만에 신월(新月) 기도를 올렸어. 새로 뜨는 달님에게 진심으로 원하는 것을 비는 신월 기도를 잊고 살았어. 나 혼자 잘난 척하며 다 할 수 있으리라 교만했나 봐. 나를 반성하며 차분하게 원하는 것을 적고 기도했어. 예전과는 결이 다른 소원을 적고 혼자서 빙긋 웃었어. 오늘 밤하늘엔 어느새 살이 통통 오른 달님이 떴어. 머지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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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가포르에서 철학하기
‘싱가포르 국립대학 2015 아시아 대학 1위 선정’을 읽고 그날 바로 싱가포르로 향하는 비행기 티켓을 끊었다. 그야말로 갑자기 떠나는 해외여행이었기에 숙소도 알아보지 못했고, 정보도 없었다. 두 가지 생각이 있었는데, 하나는 “도대체 뭐 하는 사람들일까?”였고 다른 하나는 “가면 어떻게든 되겠지”였다. 그렇게 도착한 싱가포르에서 느낀 것 또한 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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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작곡] 신은 죽었다, 질식사로..
요즘 기독교 문제로 시끄럽습니다. 최근의 코로나19 확산의 지대한 부분을 개신교인들이 차지하고 있습니다. 신천지와 게이 클럽에서 확진자가 나올 땐 ‘신의 심판’인 줄만 알았던 교회가 이제 당사자로 변해버린 웃지 못할 상황이 되었습니다. 이제 교회의 이미지는 바닥을 치게 되었습니다. 많은 이들이 실망하고, 분노하였습니다. 남을 돕기는커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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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구려 고기를 먹는다
이제는 해체해 추억 속의 이름이 된 그룹, 장기하와 얼굴들. 그들을 생각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노래가 있으니, 바로 '싸구려 커피'다. 노랫속 주인공은 싸구려 커피를 먹었을 때 나타나는 여러 가지 증상을 소개한다. 미지근해서 기분이 좋지 않은데 한 모금 마시니 속이 쓰린다. 속이 쓰리다가 바닥을 밟았는데 쩍 하고 달라붙었다 떨어지는 게 영 개운치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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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렁이 이야기2 - 중국편 우렁각시(白水素女백수소녀)
지난 시간에 우렁이 이야기의 한국판을 소개해 봤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 나오는 우렁이 이야기는 사실 설화 자체가 한 가지밖에 없다고 한다. 반면에 중국은 몇 편의 설화를 더 발견할 수 있다고 하는데 우리나라보다 우렁이의 분포도 많고 식용으로 이용하면서 많은 사람의 관심을 기울이는 재료 중에 하나라고 한다. 심지어 우렁이를 파는 직업도 있을 정도이므로 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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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기, -
네 엄마의 삶에 대해 좀 더 이야기해볼까. 일곱 남매의 네 번째 딸로 태어난 너의 엄마는 그다지 주목받지 못하는 순서에 태어난 딸임에도 불구하고 남다른 면이 있었다. 어릴 적부터 괄괄하고 활발한 성격 탓이었을까, 욕심이 많고 그만큼 주장도 강한 기질 탓이었을까. 네 외할머니는 그런 너의 엄마가 '호랑이띠'여서 그렇다며 기(氣)를 눌렀다. '가시나'가 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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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1화 보호를 위한 힘의 사용 꼭 필요해!
내 손이 필요하면 손을 빌려 줄게요. 내 어깨가 필요하면 내 어깨를 빌려 줄게요. 내 의자가 필요하면 내 의자를 빌려 줄게요. 혹시, 내 마음이 필요하면 내 마음도 빌려 줄게요. 내가 가진 것은 다 빌려줄 수 있어요. 제발 혼자라고 생각하지 말아요. 세상에는 좋은 사람들이 많답니다. 그리고 우리는 친구가 될 수 있어요. 친구끼리 서로 돕는 것은 당연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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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양준일 덕질의 이유, do, don't
<덕질의 이유-양준일> 편으로 글을 쓰기 시작한 지 6개월이 지났어요. 처음 애초에 일주일에 2편 쓰면 4월 중순이면 서른 편을 마무리하겠다 싶었는데 그게 생각처럼 되지 않았어요. 글감을 계속 끄집어내는 것의 애로사항도 있었지만 그것보다 발목을 잡는 것은 <덕질의 이유>에 대한 원초적 물음이었어요. 내가 연예인을 이렇게 열심히 덕질하는 이유가 뭐지, 타당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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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에 갈 수 없어 바다를 불러왔다
택배가 도착했다는 알림문자를 받았다. ‘이상하다, 뭐 시킨 적 없는데.’ 고개를 갸우뚱하며 문 앞에 덩그러니 놓인 상차를 집어 들었다. 부산 친구가 보내온 선물이었다. 그러고 보니 그녀는 얼마 전에 나에게 황차를 조금 보내주겠다고 했다. 그야말로 최근에 황차가 똑떨어진 터라서 반가운 마음에 덥석 고맙다고 말했던 터. 차 전문가에게 비전문가인 자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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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봄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다.한 번쯤 정말 아프고 힘들어도 후회하지 않을 사랑을 해보겠다고.하지만 그건 생각보다 어려운가 보다."그런 거 다 한때다.""뭐 하러 사서 고생을 해. 그냥 너 좋아해 주는 사람 만나.""할 거면 더 늦기 전에 해라."주변의 반응은 시큰둥하거나 뜯어말리거나 옛 기억에 울기 바빴다.시간이 흐르면서 나도 모르게 세상과 타협 중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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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빛의 시간
요즘 엄마는 밖에 나가지 않고 종일 집에서 <미스터트롯> 참가자들이 나오는 프로그램을 본다. 그들이 탄생했던 경연 프로그램뿐만 아니라 ‘Top7’과 ‘F4’라는 이름을 붙여 활동하는 예능+다른 프로그램의 패널로 나오는 것까지, 끊임없이 재방송 채널을 돌려가며 내내 TV를 본다. 코로나19와 태풍, 장마 등으로 인해 집안에 갇혀 옴짝달싹 못 하는 어르신들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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겁쟁이인 내가 혼자 여행을 다녀왔다
한 달 전부터 여행을 계획해놨어. 난 즉흥적일 것 같지만 생각보다 굉장히 계획적이거든. 버스는 몇 시 차를 타고 가고, 도착한 날 저녁은 뭘 먹고, 다음날 아침은 어디에 가보고... 이렇게 짜놓은 스케줄이 한바닥을 넘어갈 만큼 말이야. 근데 그거 알아? 사실 난 계획을 짜는 건 좋아하는데, 잘 지키지는 않아. 이번 여행도 그랬어. 짜놓은 계획표를 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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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의 판타지
우리의 환상을 자극하는 것을 일컬어 ‘판타지’라고 한다. 그와 연결 지어 환상을 자극하는 문화 장르 역시 ‘판타지’라고 한다. 어렸을 적 [해리포터]를 읽은 사람이라면 한번쯤 자신이 소설 속세계로 빠져드는 상상을 해봤듯이 말이다. <브라이트> 역시 마찬가지다. ‘만약 판타지 소설에 등장하는 종족들이 현대에도 우리랑 함께 살아간다면?’이라는, 누구나 한 번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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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할 땐 타인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봐
내 마음을 들여다보는 것은 좋지만 그에 너무 깊게 빠져버리면 헤어날 수 없는 감정을 느끼게 될 때도 있다. 처음 느껴보는 어두운 감정의 소용돌이에 놀란 적이 있다. 나는 이 감정의 원인을 찾으려 노력했지만 도무지 찾을 수 없었다. 호르몬의 영향이 아닐까? 나는 두려웠다. 문제의 원인을 모르니 해결책을 찾을 수도 없었다. 어떻게든 거기서 빠져나와보려고 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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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NS는 주로 어떤 거 쓰세요?
나이만 SNS 2.0세대 실체는 후기 다수자이자 눈팅족 난 미디어학을 전공한 광고 카피라이터다. 이 말만 들은 사람들은 내가 SNS란 SNS는 다 섭렵했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오해다. 가끔 업로드 하긴 해도 내 일기장 같은 용도로 쓰고 있다. 카카오톡이 처음 나온 게 내가 고등학생 때였었는데, 어떻게 하는 건지 잘 이해가 안 갔다. ‘메시지를 주고받을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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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스타그램의 철학
“너 그거 알아? 냉면과 낭만은 자음이 같아” 순간 리액션이 고장 났다. 선배라서 맞장구는 쳐야 했지만 마음속으로는 전혀 공감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상과 다르게 이 말을 그대로 인스타그램에 박제한 게시물의 반응은 가히 폭발적이었다. 자신을 '냉면충'이라 소개하는 선배의 '값비싼 평양냉면을 먹는 것은 가난한 대학생에게는 낭만을 먹는 것과 같다'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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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 봄에는 도다리를 먹을 수 있을까?
"광어랑 도다리, 구분할 줄 알아?" 여느 날처럼 친구 A와 회를 먹던 그때, 갑작스러운 질문에 적잖이 당황했다. 그동안 회를 먹을 줄만 알았지 구분할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눈이 뭐 반대로 있다고 하던데… 그냥 먹으면 안 되나"라고 얼버무리던 내게 친구는 "그래. 광어나 먹자"라고 답했다. 순간 '도다리를 구분할 줄 모르는 놈과 겸상하지 않겠다는 뜻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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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기, -
매년 보건복지부 장관은 국민의 수입과 지출, 생활실태, 물가 상승률 등등의 요소들을 따져 최저생계비 수준을 결정한다. (물론 이 글에선 언급하지 않을 다양한 조직기구와 위원회의 심의, 의결을 거칠 것이다.) 빈곤은 이 최저생계비를 토대로 정의 내려진다. 경제력의 수준이 빈곤을 결정짓는 것이다. 빈곤은 두 가지로 나뉜다. 소득과 상관없이 최저라고 생각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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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이 이야기1 - 효부와 호랑이, 알고 보면 호랑이는 착하다?
옛날 옛적,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이라는 말을 다들 들어봤을 것이다. 옛날에 진짜 우리나라에도 호랑이가 살았다고 하는데 솔직히 우리는 더 낯설 수 있다. 일단 그런 시대에 살지 않았고 호랑이라는 동물은 동물원에 가야만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옛이야기에서 나올 법한 동물 중의 하나인 호랑이 이야기를 이번 주에 하려고 한다. 알고 있는 이야기도 다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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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작곡] 당연함은 당연히 당연하지 않다
인간은 동물일까요? 다윈이 『종의 기원』을 발표한 지 약 150년이 지난 오늘날엔 당연한 사실로 여겨집니다. 이와 더불어, 과거 만연했던 인간 우월적인 개념들도 점차 힘을 잃었습니다. ‘만물의 영장, 자연을 지배하는 인간’은 빛바랜 담론입니다. 과학이 발전할수록 인간이 자연에 깊이 연루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그러다 보니 ‘본능’,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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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8회> 아름다운 전사
H.O.T의 메인 보컬이자 드림팀 역사의 주인공들 중 한 명으로 남아있는 변화무쌍한 남자! 최고의 싱어송라이터이면서 드림팀의 아름다운 전사, 강타! 그전까지 드림팀에 나온 사람들을 살펴보면 ‘다른 가수들은 나오는데 왜 H.O.T랑 젝스키스는 안 나오는 거야?’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었다. 그동안 계속 들었던 이 생각을 가장 먼저 깨버린 주인공이 바로 강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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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9회> 영원한 수원의 영웅
하모하모로 시작해 NRG의 리더가 되기까지 그의 시간은 빠르고 속도감 있게 흘러갔다. 가요계를 ‘빠삐용’처럼 ‘팡팡’ 뛰어다니면서 ‘할 수 있어!’라고 외치고 다니다가 출발 뉴 드림팀의 시작과 함께 얼굴을 비춘 남자! 그는 바로 NRG의 리더 이성진이다. 시즌 1을 풍미한 영웅이자 드림팀 최고의 히어로 중 한 명인 이성진에 대한 이야기를 지금부터 시작하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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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빛의 시간
올 초, 아빠를 잃은 슬픔과 그 이후 몰려오는 감정들로 힘들어 보였는지 친구가 상담을 받아보는 게 어떠냐고 했다. 날 아끼는 주변 사람이 상담을 권유하면 그건 그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일 거라고 평소에도 생각했었기 때문에 나는 바로 상담을 신청했다. 그리고 봄이 완연해질 때까지 상담을 받았다. 매주 월요일, 오후 5시, 광화문역. 갈 때는 괜찮다가도 돌아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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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2화 스스로를 좋아한다면 온전한 나로 사는 것이 쉽다
자신감이란, 그동안의 실수로 얻어지는 것. 처음에는 만두소를 너무 많이 넣었고 그다음에는 만두피가 너무 얇아 속이 다 터졌다는 것을 알게 된 것. 자신감이란, 자기가 무엇을 잘할 수 있는지 아는 것. 수영은 잘 못하지만 태권도는 잘한다는 것을 아는 것. -채인선 글, 김은정 그림 『아름다운 가치사전』 중 자책과 내면의 노예에서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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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봄
유난히 늦고 긴 태풍이 지나갔다.창문에 불어오는 바람은 어느새 가을의 냄새를 묻히고 집안을 휘졌다 사라졌고.밖은 날씨가 맑아지고 바람이 시원해지던 여름의 끝자락이었다. 그 밤, 세상은 온통 별천지였다. 하던 일을 제쳐두고 며칠 전부터 짐을 싸기 시작했다. 혼자가 처음은 아니지만 이번만큼은 정말 혼자일 것 같은 불안함과 기대감을 함께 고이 접어 차곡차곡 쌓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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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차의 종류, 6대 다류에 대해서
'카멜리아 시넨시스'라는 학명이 붙은 동백나무과의 차나무에서 나는 잎으로 적절한 과정을 거쳐 만들어진 것이 차라는 이야기를 2화 ‘차의 기본’에서 소개한 바 있다. 그걸로 끝이라면 좋겠지만 참으로 기이하게도 세상에는 너무나 많은 차의 종류가 있다. 색깔도 투명한 연둣빛이나 누르스름한 것부터 탕약에 가까울 정도로 새카만 느낌의 것까지 다양하다. 마른 찻잎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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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외모가 대체 당신들에게 무슨 피해를 줬나요?
SNS에서 글을 하나 봤어. 학교폭력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써놓은 거였는데, 난 그 문장이 참 냉정하고 차가워서 눈을 비비고 한참을 쳐다봐야 했어. 잘못 봤나 싶었으니까. '따돌림을 당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이게 결국 글쓴이가 말하는 요점이었는데, 우선 화가 났지만 한편으론 이해가 되기도 하더라. 왕따를 당하는 사람에게도 문제가 있긴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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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의 배신
"나는 밤을 열렬히 사랑한다. 누가 조국이나 애인을 사랑하듯 나는 밤을 사랑하는데, 본능적이고 깊은 무적의 사랑이다. 나는 내 모든 감각으로 밤을 사랑한다." 당신이 기다리는 밤이다. 모두가 잠든, 마피아가 조용히 일어나 누군가를 지목해야만 할 것은 칠흑 같은 밤이다. 당신은 낮이 아닌 밤을, 피곤하고 지루한 낮보다 온몸에 기쁨이 넘치는 밤을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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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우명이 뭔가요?
똑바로 서고 신발을 잘 닦아야 해. 무슨 일이 있어도 기침을 하면 안 돼. 입국 관리국의 묘한 기류 대학교 3학년 1학기 여름이었다. 유학 비자를 갱신할 때가 왔는데 멜랑꼴리한 기분이 나를 감쌌다. 몇 달 뒤면 시작될 취업 준비와 졸업 논문의 압박, 입국 관리국에 가야 된다는 부담감, 과연 내가 일본에서 잘하고 있는 걸까라는 의문이 한 데 섞여 가슴이 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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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이 우연히 건네주는 것들
북적거리는 아침의 베이커리 카페. 파티시에들이 돌아다니는 소리, 흘러나오는 재즈 오보에 소리, 이야기 나누는 어느 한 가족의 테이블. 그리고 시간대마다 구워져 나오는 빵 냄새. 빵을 아기 다루듯 정성스레 반죽하고 꺼내어 놓는 모습들이 괜스레 다정하다. 발길 닿는 대로 도착한 빵집이 꽤나 마음에 든다. 그제야 가방 속에서 책과 노트, 펜을 꺼내 든다. 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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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지 것이 제주서 고기 먹다 목이 멘 이유
거리두기가 강화되면서 집에 있는 시간이 늘었다. 그래도 요즘은 회사와 집을 오가니 조금 숨 쉴만하지만 지난 3월만 해도 집을 벗어나기 힘든 상황이었다. 아무리 집을 좋아하는 집돌이라도 강제 집돌이 상황은 만만치 않았다. 2월 말부터 시작된 변화 때문에 개인적으로도 방역에 신경 쓰며 사람을 만났었다. 하지만 그마저도 쉽지 않아졌고 몇 날 며칠 혼자 작업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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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에서 철학
“오늘 굉장히 ‘발라드’스럽게 입으셨네요?” 그녀는 지나가듯, 마치 길에서 파렴치하게 담배를 피우면서 역한 냄새를 풍기는 사람처럼 무심코, 다만 강렬하게, 말했다. 하얀색 와이셔츠에 검은색 슬랙스 바지였고, 그저 모나미 볼펜 패션과 다를 바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말을 참 예쁘게 하신다’라는 감정은 지금까지도 남아있다. 물론 그녀와 더 이상의 진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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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작곡] 물음표 살인마
정상이란 무엇일까요? 영어로는 대개 'normal'로 옮겨집니다. 즉 보통, 일반적인 것을 의미합니다. 사람들 대부분에게 인정받고 공유된다면 그것은 정상이라고 여겨집니다. 그러나 그게 다일까요? 보편성의 확보만이 정상을 규정할 수 있을까요? 이런 질문들을 하기 시작할 때, 우리는 두 단어의 어긋나는 소리를 듣습니다. 이 정상이란 개념에 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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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기, -
너의 부모가 신실하게 믿었던 종교는 너의 가족을, 특히 네 오빠를 지켜주지 못했다. 너는 그다지 강하지도 않던 믿음을 완전히 놓아버렸다. 너의 부모님도 크게 달라졌다. 종교 중심으로 사고(思考)해 내리던 모든 결정은 동네 어른의 말이나 TV 속 유명한 스님의 가르침, 같은 처지인 - 자식을 먼저 보낸 - 이들의 경험을 따르는 것으로 대체되었다. 자식을 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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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이 이야기2 - 호랑이 물리치는 법
옛날 우리나라에는 호랑이가 많았다. 사람을 해치거나 가축을 잡아먹으면서 여러 피해를 주었고, 삼국 시대부터 조선까지 호랑이가 사람을 잡아갔다는 말을 듣는 것도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고 한다. 그래서 보호물을 설치하기 시작했는데 바닷가에 가까운 지역에서는 그물을, 보통의 산간 집에서는 두꺼운 빗장 등 장치를 두었고, 그런 빗장이 일부 산간 마을에 남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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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3화 내면에 귀 기울일 때 연민의 꽃이 스스로 피어난다
우리가 하는 행동 뒤에는 순수한 영성과 에너지가 있음을 의식하라 삶의 언어는 지금 이 순간 진행되고 있는 것에 대해 말함으로써 치유와 회복을 만들어낸다. 물론 그것이 과거의 일로 자극받는 일이나 과거의 어떠한 행동이 현재에 영향을 끼친다는 사실을 부정하지는 않는다. 그러면서도 우리는 과거에 얽매이지 않을 수 있다. 각각의 존재를 통해 행동으로 구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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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빛의 시간
아빠가 없어지고 난 후, 당연하게도 가족은 생소한 상황을 맞이했다. 아빠가 있던 공간의 물리적 변화는 물론, 눈에 보이지 않는 내부적인 변화도 시작된 것이다. 그러면서 기존의 항상성은 깨어지고 아빠 없는 가족의 새로운 항상성이 만들어졌다. 또한 아빠가 맡았던 역할은 분해되어 나머지 구성원에게로 옮겨가거나 전혀 다른 역할로 생겨났다. 그러는 동안 여태 겪어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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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봄
학교에선 늘 부모님 사인을 받아오라고 했다.아빠는 바쁘셔서 엄마는 꼭 두 번의 사인을 해야 했었다.엄마의 글씨체는 수려하고 곧았는데 꼭 두 번째 사인을 할 때면 흘려쓰기를 하고는 했다. 왜 그렇게 쓰는 거냐고 물었더니 엄마는 같은 사람이 쓰지 않은 것처럼 하려는 거라고 답했다. 글씨체는 사람의 성격을 보여준다는 말이 있다. 그 때문인지 나는 엄마의 글씨체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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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린 날의 홍차
아침에 눈을 떠 커튼을 치고 창밖을 내다봤는데 하늘이 온통 회색이라면, 창문을 열었을 때 훅, 촉촉한 기운이 들어온다면 나는 즉시 맑은 홍차를 마시고 싶어질 것이다. 특히 이런 날에 특화된 홍차가 몇 가지 있는데 주로 훈연의 기운이 느껴지는 것들이다. 지극히 개인적인, 나의 '흐린 날을 위한 홍차 베스트 3'를 차례로 소개하려 한다. 1. 정산소종 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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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이 이야기 3 - 호랑이와 곶감, 맛있는데 괴물이라고?
지난 시간에 이야기한 호랑이는 첫 번째, 의외로 인정(?)이 많은 모습이었고, 두 번째는 사람을 잡아먹는 무서운 모습이었다. 이번에는 익살스럽고 바보 같은 모습을 하는 호랑이를 만날 차례이다. 우리나라 설화에서는 이렇듯 다양한 호랑이의 면모를 볼 수 있는데 맹수이고 무서운 존재이므로 더 자극적이면서도 여러 보여주고자 하는 모습을 나타낼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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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리 크리스마스!
‘엘 카미노’는 스페인어로 ‘길’을 뜻한다. 물론 엘 카미노가 영화의 배경이 되는 마을이기는 하지만, 씁쓸한 웃음을 짓게 만드는 이 미국 영화에서 스페인어가 차지하는 비중이라곤 영화의 주 배경인 슈퍼마켓의 주인 비센테 산토스(에밀리오 리베라)가 멕시코인이라는 사실뿐이다. 그럼에도 영화의 제목에서 영어가 아닌 다른 언어가 튀어나오는 까닭은 <엘 카미노 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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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쁨과 슬픔
걷거나 버스 타는 것을 좋아하는 나지만 비 오는 날 시골의 정류장까지의 거리는 무척이나 멀고 험난하게 느껴진다. 오늘도 역시 택시를 탈지 버스를 탈지 고민했다. 그때마다 재미있는 결정을 하는데, 바로 택시 값으로 디저트 하나를 테이크아웃 해서 정류장까지 걸어가는 것이다. 걸어가는 내내 만족스럽다. 오늘도 그랬다. 비 내리는 날 예쁜 종달리 마을도 회색빛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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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세미나에 4년 동안 있었네요?
'내 속에서 솟아 나오려는 것, 바로 그것을 나는 살아보려고 했다.'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싸운다. 알은 새의 세계다. 태어나려고 하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리지 않으면 안 된다. 새는 신을 향하여 날아간다. 그 신의 이름은 아프락사스다.” 대학 1학년 2학기, 나의 은사님을 만났다. 우리 과는 1학년 1학기와 2학기에 랜덤으로 세미나 교수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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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벨트, 케이크, 마스크의 공통점
“초는 몇 개 넣어드릴까요?” 빵집 점원은 마스크를 껴서 표정을 알 수 없었지만, 목소리에 이미 피곤함이 녹아있었다. 퇴근하는 길에 무심결에 들른 빵집에 케이크가 너무 맛있어 보였다. 심지어 유통기한이 얼마 남지 않아 할인 판매 중이었다. 어느 누구도 생일이 아니었고, 축하할 사람도, 축하받을 일도 없었다. 단지 케이크가 먹고 싶었을 뿐이다. 그런데 아르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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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에게는 지식이 아니라 생각하는 힘이 필요하다
제주에서 소수의 아이들과 개인적으로 과외 수업을 한 지 벌써 한 달이 넘었다. 말은 독서논술 수업이지만 아이들에게 맞는 철학 수업에 가깝다. 내가 하는 철학 교육이라 하면 철학의 역사나 철학자의 이론을 배우는 게 아니라 삶 속에서 스스로 생각하는 힘을 기르는 것뿐이다. 그것 또한 내가 뭘 가르칠 수 있겠냐마는, 내가 살면서 느낀 점들을 이야기하고 더불어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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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처음과 끝에 탕수육이 있었다
많은 사람이 이사를 하고 나서 배달음식, 그중에 중화요리를 시켜 먹는다. 짜장면 한 그릇과 탕수육, 서비스로 함께 온 군만두까지 먹으면 풀었던 이삿짐을 다시 쌀 수 있을 거 같은 힘이 생긴다. 새집과 함께하는 시작의 시기에 중화요리는 우리 곁에 있다. 시작뿐 아니라 끝도 함께 한다. 졸업식이라는 마무리의 장에서 중화요리가 다시 등장한다. 요즘은 고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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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필로그] 쓰며 산다는 건
어느덧 마지막 글입니다. 글 30편이 말이 30이지, 한 주마다 글을 써내는 건 만만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매주 매주 새로운 글을 쓰다 보니, 글마다 들어가는 노력과 완성도에 편차가 생기는 것 같았습니다. 또 발행되고 나서 고치고 싶은 게 떠오르기도, 더 좋은 주제로 연재할 걸 하고 후회하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어설픈 시간들이었습니다. 그렇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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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0회> 스피드 하나로 유명 인사가 되다
드림팀에 출전한 사람들은 저마다 내세우는 대표 이미지가 있는데 이번에 이야기할 주인공은 '스피드'가 대표 이미지다. 그는 바로 클릭비의 베이시스트에서 보컬로 전향한 가수 겸 뮤지컬 배우 오종혁이다. 오직 스피드 하나로 드림팀의 유명 인사가 된 남자, 오종혁! 이번에는 오종혁이 드림팀의 유명 인사가 되기까지의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1) 감출 수 없는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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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기 -
탈레스에게 세상의 뿌리는 물이었고, 피타고라스는 모든 것을 숫자로 보았다. 우리에게는 세상의 시작, 처음, 태초를 향한 항상의 관심이 있었다. 사춘기 무렵에는 그 시작의 중심에 자신을 두었다. 너에게도 세상의 시작, 만물의 근원은 중요했다. 하지만 알 수 없었다. 다만 너의 모든 시작과 처음의 순간에는 누가 있었는지는 알았다. 오빠가 있었다. 네가 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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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으를 때 보이는 세상 - 하늘
세상이 바뀌면 삶이 바뀌어야 하고, 삶이 바뀌면 행동이 바뀌어야 하는 건지... 내가 바뀌면 세상이 바뀌는 걸까? 세상이 바뀌면 내가 바뀌어야 하는 걸까? 올봄에 시작된 코로나가 세계를 덮어버리고, 팬데믹이 지속되면서 BC(코로나 이전)와 AC(코로나 이후)는 완전히 다른 세상이 되었다. 우리는 새로운 규칙으로 돌아가는 다른 세상의 삶을 살아야만 하는 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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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4화 행동 뒤의 욕구를 인식하면 삶은 즐거운 놀이가 된다
당위성•의무감•책임감을 넘어 자발적 선택을 하는 삶 코로나19 사태에서 빨리 벗어나고 싶다. 당연했던 일상들을 당연하게 살아내고 싶다. 어쩌면 이는 지금을 살아가는 모두의 바람일 수 있다. 그러나 세상은 변했고, 우리는 변화해야 한다. 인정하고 싶지 않으나 이것이 우리가 마주한 냉엄한 현실이다. 싫어도 어쩔 수 없다. 당연했으나 이제는 당연하지 않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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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기를 원하는 사람은 불쌍하지만 죽음을 두려워 않는 사람은 더 불쌍하다.
언젠가의 나는 9월 24일에 죽고 싶었다. 이 글이 발행되는 9월 24일은 내 31번째 생일이다. 한 살, 한 살 나이를 먹어갈 수록 생일이 그다지 특별하지 않고 둔감해지는 듯하다. 이번 생일에 대해서는 ‘약간 초조하다’고 느끼는데, 만으로도 30대가 되는 생일이라 그렇다. 이제 정말 빼도 박도 못하는 30대구나. 나 잘 살고 있나. 나라에서 청년으로 인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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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빛의 시간
잘 지내? '잘'이 뭔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묻고 싶네. 아빠랑 헤어지고 나서 줄곧 끝이 지나면 또 다른 시작이 있는 걸까 궁금했어. 만약 있다면 안부를 물을 수 있을 테니까. 조금 더 욕심내서 아빠가 생각을 할 수 있다면, 그래서 우릴 생각하고 있었으면, 생각하는 아빠를 추측하고 상상할 수 있다면 좋겠어. 입관식 때, 귀는 마지막까지 열려 있으니 하고 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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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봄
자그마한 바닷가 마을에 살 때, 보일러가 없어 전기장판으로 밤을 지새우던 겨울이 있었다. 장판을 뚫고 올라오는 한기에 슬리퍼는 필수였고 몸에 딱 맞는 삐그덕 침대에 내 몸보다 작은 1인용 전기장판을 최대로 틀어두고는 행복해했었다. 혼자만의 공간이 생겼다고. 좋아하는 가수의 콘서트를 생일에 맞춰 예매해 놓고는 하루하루 기대하던 겨울도 있었고 잊지 못할 순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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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련의 향기
대만차 브랜드에서 판매할 차를 결정하기 위해 떠나는 출장에 몇 차례 동행한 적이 있다. 남들은 대만, 하면 타이베이의 101 빌딩이나 스펀의 소원 담아 날리는 풍등을 떠올리겠지만 나는 그 앞을 지나가다 여기가 거기라기에 SNS에 올리려고 기념사진을 찍은 적이 있을 뿐. 나의 대만이란 내비게이션이나 맵에도 잘 나오지 않는 좁고 깊은 산길을 따라 올라가면 나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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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하진 않는데, 뛰어난 건 아니야
'전문가'. 한 분야에서 상당한 지식과 경험을 가진 사람을 지칭하는 말이야. 전문가 칭호를 붙이려면, 그 분야에서 적어도 A? 못해도 B+ 정도의 점수를 받아야 하겠지. 얼마 전에 이런 생각이 들었어. 지금 우리가 공부하고 있는 건, 혹은 열심히 일하고 있는 건 결국 어떤 것의 '전문가'가 되기 위한 사전 준비 같은 게 아닌가 하고. 수많은 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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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생활에서 가장 열심히 한 일이 뭐죠?
갑작스러운 산책 산책을 하러 나가기까지의 과정은 카프카의 단편처럼 꼬리에 꼬리를 문다. 한 페이지가 넘어가도록 한 문장이 끝나지 않는데, 나 역시 한 번 밖으로 나가기 위해선 그만큼의 시간과 수고가 필요했다. 어디를 갈까 고민하다가 혹시 사람이 많으면 어쩌지, 괜히 나갔다가 기분 나쁜 일이 일어나면 어쩌지 걱정을 하는 한편, 마음 한구석에서는 신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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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기, -
너는 꼭 그랬다. 질투가 많았다. 누군가의 축하를 오롯이 받을 줄 몰랐고, 누군가의 성공에 온전히 기뻐할 줄 몰랐다. 그런 기능이 애초부터 없었던 것처럼, 어쩌면 아주 큰 사고로 그 기능을 잃어버린 것처럼. - 원래부터 그랬던 건 아니었어. 난 모든 게 다 오빠의 죽음 이후라고 생각해. 네 오빠는 어디에서나 주목받는 사람이었다. 활발한 성격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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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석같은 하루의 가치
뉴스에는 걱정되는 기사들이 잦다. 우리는 늘 후회하고 걱정하도록 만들어진 걸까? 지금 이 순간에 존재하는 하늘과 공기와 바람을 마주하는 사람이 얼마나 되려나. 하루하루가 삶을 만들지 않나. 오늘 하루가 충분히 감미로웠다면 그것으로 될 일인데 말이다. 한 번은 아주 호화로운 장례 행렬을 봤다. 까만 옷을 차려입은 사람들, 차분한 분위기와 구슬픈 걸음걸이.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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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자탕 등뼈 같은 사람
비가 내리는 날이면 사람들은 특별한 음식을 찾는다. "막걸리에 파전이 땡겨"나 "어묵에 사케나 한잔할까?"가 흔히 나오는 대사다. 나도 크게 다르진 않지만 비가 잔잔하게 바닥에 스며들듯이 적실 때 가장 생각나는 음식은 따로 있다. 감자탕이다. 어제도 약속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있는 24시간 감자탕 집을 한참이나 쳐다보다가 꾹 참고 귀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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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빛의 시간
1. -2019년 12월 1일의 기록 아빠를 보고 가는 길. 산등성이에서 황달이 올라온다. 맥마다 관을 꽂고 아빤 뜨고 있나, 지고 있나. -2019년 12월 4일의 기록 슬픔에 잠긴다는 말. 어쩜 이렇게 적확할까. 슬픔의 수면 아래, 빛도 산소도 없는 곳. 발버둥 쳐서 올라가도 다시 밑으로 가라앉는다. 잠겨있다면 눈도 귀도 입도 무용지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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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호랑이 녀석1 - 해님달님(해와 달이 된 오누이)
지난 시간까지 호랑이 이야기를 했는데 모두 의외의 모습을 봤다. 효 앞에서 인정 있는 모습과 어리숙하고 쉽게 속아 버리는 바보 같은 면모를 볼 수 있었다. 그렇지만 이번부터 다음 시간까지는 나쁜 호랑이를 소개할 예정이다. 특히 이번 시간에는 익숙하게 느껴지는 ‘해님 달님’이다. 정확하게 ‘해와 달이 된 오누이’라고 알려졌는데, 이 이야기를 함께 보도록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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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영화를 보고 찍으며 느낀 것
한량이었다. 나의 대학교 1학년 시간들을 정의하자면, ‘한량’ 그 자체였다. 철학을 배우고 세상을 논했던 그 시간은 나에게 밑거름이 되었다. 특히나 영화 동아리는 나의 대학교 1학년에서 빼놓을 수 없는 존재였다. 철학과 과방에서 신나게 술을 먹던 4월 초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선배들은 4월의 벚꽃은 그저 눈요기일 뿐 중간고사가 다가왔음을 뜻하니 흔들리지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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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덟 살 오지마! - 징크스 엎기
‘징크스’ 라는 건 어떤 일을 할 때 불길한 것을 예측하는 신호다. 불안 예측이라 대부분 부정적일 때 사용되는 단어다. 여러 측면에서 사용되지만 오늘은 ‘나이’에서 비롯된 징크스를 말하고 싶다. 우리나라는 예전부터 ‘아홉 수’를 조심하라는 말이 있다, 즉 숫자가 커질 대로 커져서 앞 자리수가 바뀌기 전 숫자를 조심하라는 것으로 숫자 ‘아홉 징크스’를 의미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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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봄
햇살 한줄기가 쏟아져내리는 대청마루에 누워 조금은 이른듯한 봄을 온몸으로 느껴본다. 괜스레 마음을 살랑이게 하는 꽃잎이 떨어지고 여기저기 숨어서 지저귀는 새들의 울음소리는 잠들어있던 내 몸을 깨우기에 충분했다. 이렇게 온전히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을 마주 할 때면 순간이 영원하길 바랄 때가 있다. 나의 이야기가 조금은 평화롭길, 내가 나로 남아있길 소원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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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어가기 2. 이 선글라스 때문에 모든 게 까맣게 보였구나
피하면 마음이 좀 편해지니? 나는 두려움을 직시하는 일에 젬병이다. 결과가 안 좋을 것을 뻔히 알면서 발표를 기다리는 시간도 두려운 것 중 하나인데, 불안, 초조, 신경과민이 나를 따라다닌다. 가끔은 발표일까지 잠이나 자다가 일어났으면 좋겠다 싶을 정도로 그 시간은 나에게 고문이다. 무언가 좋지 않은 예감이 들 때, 그 시간을 유효하게 쓰지 못하는 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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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소속은 어디신가요?
소속. 인간은 좋든 싫든 어디에든 ‘소속’ 될 수밖에 없는 존재다. 소속감은 관계에 있어 중요한 감정 중 하나이지만, 우리를 옥죄는 굴레이기도 하다. 여기, 소속이라는 양가적 감정을 그대로 표출하고 있는 영화가 있다. 이곳은 인종과 성별이 철저하게 분리되어 있는 세계가 있다. <스텝 시스터즈>는 미국 대학의 소로리티 클럽 문화의 폐쇄성을 미국에서 가장 민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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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도 없이 넓은 티타임의 바다
망망차해(茫茫茶海)라는 말을 좋아한다. 한없이 넓고 큰 바다를 뜻하는 ‘망망대해(茫茫大海)’의 패러디란 의미에서 '대'의 'ㅐ'에서 'ㅣ' 하나를 뺀 ‘망망다해’라고 읽는 사람도 있겠지만 나는 왠지 여기엔 ‘차’라는 발음이 더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茫茫茶海, 끝도 없이 넓은 차의 바다. 라고 해석하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겠지만 이 또한 나만의 해석은 ‘끝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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닭가슴살을 튀겨 버렸다
방송인 최화정 씨가 음식 프로그램에서 뭔가를 먹을 때마다 강조하는 말이다. 물론 그녀와 같이 자기 관리가 철저하고 날씬한 사람은 맛있게 한 끼를 먹고 나서 부담이 덜할 테지만 살이 쉽게 찌는 체질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공허한 외침일 뿐이다. '맛있으면 0칼로리 그런 건 없어...' 예전에는 운동만으로 30kg 넘게 빼기도 했지만 나이가 들수록 어림없는 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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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술이 없었다면
술이 없는 세상을 상상해본 적이 있는가. 술이 없는 20대를 상상할 수 있는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상상할 수 없다. 과격하게 술을 권유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술이 그만큼 우리의 삶에 밀접하게 관련이 돼있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다. 통계청에 따르면 2017년 소주 소비량은 36억 3600만 병으로 집계됐다. 2017년 주민등록 인구 중 20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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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는 것을 읽고 쓰는 수업
"추리 소설을 써 볼까?" 아이들이 신났다. 좋아하는 책이 무엇이냐고 물어봤을 때 아이들은 고민도 하지 않고 추리소설이라고 말했다. 좋아하는 독서 분야가 있다는 것은 아이들이 책과 가까워질 수 있는 좋은 일이다. 상상 속에 빠져드는 것을 좋아하는 아이들이니, 즐거운 경험을 하게 해 주기로 했다. 바로 추리 소설 속에 나올 것만 같은 공간에서 책을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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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호랑이 녀석2 - 토끼의 재판
이번 시간까지 우리는 호랑이 이야기를 볼 것이다. 나쁜 호랑이 녀석의 두 번째 이야기를 소개하려고 한다. 우리나라 이야기 안에서는 생각보다 호랑이의 모습이 다채롭게 등장한다. 지난 시간에는 아이들을 위협하고 엄마까지 잡아먹는 무서운 면모를 봤는데, 이번에는 일명 ‘속물(?)’ 호랑이를 보도록 하겠다. 은혜를 모르는 동물을 호랑이에 빗대어 표현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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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프레드, 거기 있니?-따가운 시선 말고 따뜻한 온기
“나를 진정 걱정하며 위해주는 친구가 있다면 좋겠어요.” “내가 힘들어할 때 그냥 가만히 내 이야기만 들어줘도 좋아요. 조건부 이런 거 말고, 그냥 이야기 들어주는 거, 저는 그런 걸 원해요.” “내가 뭔가를 하고자 할 때, 이유를 묻지 않고 그냥 믿어주었으면 좋겠어요.” “잣대를 대지 말고, 결과만 생각하지 말고 과정을 지켜봐 주셨으면 좋겠어요.” “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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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5화 화 뒤에 단절된 나의 필요와 연결하라!
먹지도 삼킬 수도 만져도 넘길 수도 무작정 이러지도 어찌하지 못하는 뜨거운 안타까움을 내지르며 네 탓한다 그릇이 넘치면 내용이 쏟아지는 내면의 흔들림은 나에게 있는 것을 스스로 깨치고 나서야 세상과 마주한다 -이현주, 「뜨거운 감자」 화는 나를 일깨우는 자명종이다 사회적 거리두기로 온라인 학업이 늘다 보니 온·오프의 경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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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영화 업계에 지원했나요?
인생 영화란 무엇인가? 영화 평론에도, 관련 콘텐츠에도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표현이 있다. 언제부턴가 미디어에서 왕왕 쓰이기 시작하더니 이제는 흔한 문구로 자리 잡았다. 그렇다면 인생 영화란 어떤 작품을 칭하는 것일까? 클리셰이긴 하지만 사전적 정의부터 보고 시작하자. 검색창에 ‘인생 영화’라고 치니 제일 먼저 나오는 정의는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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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년... 그 기억
서울에서 강릉을 가려면 시외버스로 열 시간 넘게 걸렸었다. 아흔아홉의 굽이가 있다는 대관령, 버스가 오르기 시작하면 새파란 하늘과 하얀 구름이 걸려 있는 높은 산의 전경은 어린 마음에도 감동을 줬다. 구름이 걸려 있는 산봉우리로 찻길이 구불구불 나 있기에 버스가 그곳에 오르면 구름 한 조각을 가져가야지 하고 생각했다. 어느덧 버스가 대관령을 넘어 하늘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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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우누이 이야기 - 옛이야기 속의 차별?
옛이야기에도 차별은 존재한다. 오늘은 딸을 더 예뻐하는 모습을 소개할 예정인데, 제목은 ‘여우 누이’이다. 우리나라에도 예로부터 구미호를 비롯한 여우 이야기가 많이 전해져 내려온다. 이들은 대부분 요물로, 집안을 망치는 무서운 존재다. 예쁜 여우는 왜 그렇게 인식되었을까? 오늘 소개할 '여우 누이' 속 여우는 남매간 갈등을 불러일으키기도 하고, 결국은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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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위키는 인간의 역사와 궤를 같이 한다
'나무위키'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는가. 나무위키는 일종의 사전이다. 일반적으로 사전은 전문가들이 모여서 집필하기 때문에 신뢰성을 갖지만, 나무위키는 정 반대의 성격을 띤다. 일반인들이 여러 정보를 모으는 일종의 플랫폼 사전으로 매우 광범위한 정보를 다룬다는 특징이 있다. 2015년에 처음 시작된 이래로 현재까지 매우 활발하게 이어지고 있는 나무위키야 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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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 숲에는 함부로 들어가지 마시오
선과 악, 직선과 곡선, 옳음과 그름. 이분법적 사고는 단순하고 생각하기 편하다. 방향이 주어진 생각은 당사자가 좌우로 치우치지 않게끔 다음 이정표를 끊임없이 제공한다. 나의 기준이 선善이라면, 걸음은 곧고 방향은 옳다. 의심보다 가벼운 건 합리화다. 사람은 서 있으면 앉고 싶고 앉으면 눕고 싶은 법이다. 나의 잠을 방해하는 건 악이고 굽어진 길이며 그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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닭 다리의 룰
사람들이 많이 모인 자리에서 통닭을 주문하면 대부분 순살치킨을 시킨다. 뼈를 바르고 손으로 뜯다 보면 손가락에 기름이 묻기 쉽다. 물티슈로 닦아내면 되긴 하지만 애초에 포크로 깔끔하게 찍어 먹는 편이 나을 때가 많다. 확실히 깔끔하게 통닭을 즐기려면 순살이 편하다. 그리고 부위를 나눌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장점도 있다. 이런저런 이유로 주로 순살을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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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려견 사랑-이럴 수 있는 거야?
예전에는 집에서, 방에서 애완동물을 키우는 건 상상도 하지 못했다. 집에는 사람들이 살고 가축은 마당에 사는 거라 생각했으며 '가축'의 범위에는 닭, 돼지뿐 아니라 강아지도 포함됐다. 가족이라기보다는 알을 낳고 새끼를 낳아 생계에 보탬을 주는 의미 정도였다. 그러나 이제는 마당이 없어진지 오래고 단독주택보다는 빌라나 아파트에 거주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다 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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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영화를 만들고 싶나요?
만약에 말이야... 영화 <너의 이름은.> 신드롬이 터졌던 건 2016년 대학 3학년의 여름. 두 번째로 거지 같았던 기말고사가 끝난 뒤였다. 일본 매스컴이 <너의 이름은.> 흥행 성적을 보도하며 신카이 감독과 OST를 맡은 래드윔프스RADWIMPS에게 스포트라이트를 비출 때, 한국에서는 ‘세월호 선체 인양’이라는 키워드가 헤드라인을 차지했다. 대학 1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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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고기 한 점, 누가 먹어야 하나
혼술을 마시듯이 혼자 고기를 먹으면 내가 먹고 싶은 고기를, 먹고 싶은 양만큼 맞춰서 먹을 수 있다. 그게 돼지고기든, 소고기든, 닭고기든 상관없다. 고기를 좀 먹어봤다는 사람이라면 내가 어떤 고기를 먹을 때 얼마만큼 먹는지 정도는 다 알고 있을 것이다. 삼겹살은 2인분 먹지만 닭고기는 반 마리를 먹을 수도 있고, 소고기라면 3인분은 먹지만 돼지고기는 싫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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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북스, 계간 《에픽》 창간…"논픽션 아우르는 문학잡지"
다산북스의 계간 문예지 《에픽》이 창간되었습니다. 정기구독자는 북이오 플랫폼을 활용한 《에픽》의 온라인 페이지에서 픽션과 논픽션을 넘나드는 다양한 텍스트와 오디오북을 마음껏 열람할 수 있습니다. 《에픽》은 어떤 문예지일까요? 지금 커버스토리를 만나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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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랑 히어로
전기 영화가 가지는 가장 큰 장점이자 약점은, 당연하게도 영화가 다루려고 하는 실존 인물의 거대한 아우라다. 어떤 드라마보다 강력한 실제의 힘은 감독들에게는 오르기 어려운 산인 동시에 반드시 넘어야 하는 산이기도 하다. 부정할 수 없는 그 실존 인물의 그림자에 어떤 영화들은 의존하고 어떤 영화들은 결국 무너진다. 통제하기 쉽도록 인물을 왜곡하는 영화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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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장수 우뚜리 - 아들이 있는 곳을 왜 알려줬을까?
지난 시간에는 여우 누이 이야기를 통해 집안 안에서 남매간의 차별 이야기를 엿보았는데, 이번에도 부모와 자식 사이의 일을 담은 이야기를 살펴볼 예정이다. 다들 학교에 다니면서 설화를 배울 때 ‘아기장수 우뚜리’를 본 기억이 날 것이다. 겨드랑이에서 날개가 솟는 부분이 특히 인상적이었을 바로 그 이야기를 오늘 소개할 것이다. 유명한 설화인 만큼 변이도 다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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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이 더 배운 아이들의 용서 수업
모두가 나와 같으리라 생각했을 때에는, 나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에 대해서는 실망하고 원망하면서도 나는 그들을 이해하지 못했다. 다름에 대한 무지는 그렇게 나와 타인에게 상처를 입혔을지도 모른다. 사람들 각자가 모두 달라서 사는 방식이 다르구나 하고 인정하게 되었을 때에, 비로소 내 중심은 나 스스로 잡아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으며 타인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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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 욕하기
언론은 거대 권력이다. 흔히 대한민국 권력을 정치권력과 경제권력으로 양분되어 있는 것처럼 착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언론권력은 대한민국 사회에서 매우 중요하고, 규모가 큰 깡패 집단이다. 깡패라는 과격한 단어에 많이 놀라는 사람들이 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언론은 이런 표현을 듣기에 매우 합당한 행동들을 해왔다. 지난 2014년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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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기, -
유독 꿈이 생생한 날은 한동안 멍했다. 방금 내가 생시로 들어온 게 맞는지, 아니면 여전히 꿈인 건지. 혹시 그동안의 모든 일들도 다 꿈이었는지. 저 방의 문을 열고 나가면 어제와는 다른 오늘이라 혹시나 핸드폰 안에 오빠의 연락처가 그대로 살아있진 않을까 하고 몇 번을 찾았다. 꿈속에서 오빠를 만난 날은 더 했다. 있었거나 있지 않았던 일들을 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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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이 강을 따라갔을 때 – 개성 발현 도전하기
그림책 모임이나 그림책 나눔, 그림책 심리지도사 과정을 할 때면 여러 상황에 관한 다양한 이야기를 주고받는다. 함께하는 사람들 중에는 자신의 강점을 무시한 채 타인을 동경하고, 타인의 말에 마음이 쏠려 팔랑귀가 되는 이들이 있다. 내가 보기엔 재주도 많고, 누가 봐도 엄지를 치켜세울 정도로 인심과 인성이 좋음에도 자신이 보잘것없다며 초라한 스스로를 외면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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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관의 존재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세요?
달콤한 호접몽 영화관은 나에게 현실 도피의 공간이었다. 관객을 마주 보는 거대한 스크린을 뚫고 들어가 영화 속 그네들의 삶에 집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일은 하기 싫지만 주머니에 어느 정도 여유가 있을 때 나는 영화관 의자에 앉아 상영관 불빛이 꺼지기를 기다린다. 그리고 영화가 시작되면 내가 배우라도 된 듯 영화에만 집중하고 망상에 빠져 현실 따윈 잊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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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녀와 나무꾼 - 나무꾼의 선택은?
이번에는 선녀와 나무꾼 이야기를 할 차례이다. 오래전부터 있던 얘기라서 많이 익숙할 것 같은데 생각한 것보다 변이형이 다양하고 약간 다르게 전해 내려온 버전도 몇 가지 있어서 흥미로웠다. 필자는 이번에도 『세계 민담 전집 01-한국 편』에 소개한 것을 토대로 이야기를 들려줄 테니, 자신이 알고 있는 이야기와 비교해 보는 것도 좋겠다. 장가를 들지 못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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쌈 싸 먹어!
"쌈 싸 먹어~!!!" 학창 시절에 친구들은 서양에서 가운뎃손가락을 내듯이 손을 쌈 모양으로 한 채 내게 장난을 치며 말했다. 다른 친구들은 그 말을 들으며 기분 나빠했지만 난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쌈을 좋아했기 때문이다. '뭐 맛있는 거 준다는데'라고 생각하며 아무렇지 않게 넘겼다. 어릴 적엔 유독 쌈을 싸 먹었다. 사촌 형제들이 처음 쌈을 먹는 걸 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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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부터 다르게 생각하기
“저는 좀 다르게 생각하는데요.” 철학과에서 너무 자주 말했고, 자주 들었던 말이다. 때는 2017년 초였다. 당시 대한민국 행정부의 수장인 대통령이 파문되는 이슈와 함께 학과에서는 ‘민주주의 바람’이 불었다. 한두 강의 정도면 이해를 하겠지만, 유행은 상상이상이었다. 하다못해 교양과목에서도 민주주의를 가르치기 시작했다. 지겹다 못해 질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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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기, -
시간이 약이라는 말을 너는 믿지 않는다. 왜냐고 물었던 날, 너는 시큰둥하게 답했다. - 문제는 단순히 시간이 흐르는 것만으로 해결되지 않거든. 양극단에 위치한 감정의 간극은 저절로 좁혀지지 않는다. 한쪽의 감정은 주장하는데 다른 한쪽의 감정은 침묵한다면 그 교착은 장기화되기 마련이다. 시간이 흐른다고 해서 그 교착이 자연스레 물렁해지거나 혹은 시기가 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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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시대, 학부모가 된 1학년 엄마의 서툴지만 치열한 대답
『엄마도 1학년』 - 신에스더 어느것 하나 마음대로 되지 않는 코로나 시대, 새내기 학부모의 ‘1학년 일기’ 곰인형을 꼭 끌어안은 소녀가 햇살 가득한 창가에 앉아 있습니다. 그 옆에는 소설에 집중한 소녀의 엄마가 있지요. 『엄마도 1학년』 신에스더 작가가 상상한, 엄마가 된 자신의 모습입니다. 이런 상상 속 이미지는 아이의 탄생과 함께 산산조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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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아빠 결혼이야기 – 고무장갑
지금이야 고무장갑이 없어도 설거지를 아무렇지도 않게 하지만 예전에는 구멍이 난 고무장갑이라도 끼고 남은 일들을 하곤 했다. 언제부터인지는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바쁜 엄마를 대신해 가끔 밥을 했고, 설거지는 내 몫이었기에 결혼하기 전까지 도맡았다. 어렸을 때도 우리 집에 고무장갑이 항상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러나 고무장갑을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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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근무 괜찮나요?
면접에서 마지막으로 꼭 물어보던 질문. 대도시에서 일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가족들은 한국에 있고 결혼 생각도 없는 나에게는 딱히 상관없는 문제였다. 나는 조금이라도 적극성을 어필하기 위해 라고 대답하고 면접장을 나왔다. 결혼하지 않는다 연애도 안 하겠다고는 말 안 했다 공기업에 취직한 친구 얘기를 들어보니 기혼자들에게 전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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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가을밤의 꿈
솔직히 까고 말하자면 ‘타임 리프’라는 소재가 진부해진 지는 오래되었다. 할리우드 SF의 한 갈래처럼 여겨지던 이 장르는 이제는 한국 드라마에서도 자주 등장하는 소재가 되어 우리에게 익숙해졌고, <우리 처음 만났을 때> 역시 로맨틱 코미디와 결합한, 흔하디흔한 타임리프물이라는 점은 부정하기 어렵다. 그러나 이 진부한 소재를 가지고 어떤 이야기를 만들어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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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오랑과 세오녀 - 일월의 빛을 잃다?!
이번에는 역사와 관련된 설화를 소개해보려고 한다. 실제 <삼국유사>에도 실려 있는 설화로, 우리나라 일월신화日月神話로 분류되는 ‘연오랑과 세오녀’ 이야기다. 신라 시대 이야기이면서 일본의 건국 신화와도 관계가 있다고 하니 더욱 흥미롭다. 포항에는 '연오랑세오녀 테마공원', 호미곶의 부부 동상 등이 있으니, 포항에 방문할 기회가 있다면 설화의 의미를 되새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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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벼운 삶에 대하여
가벼운 삶은 큰 비용을 들이지 않는다. 무언가를 더 바라지 않고 작은 것에도 만족할 수 있다면, 언제 어디서든 자유롭고도 자신답게 지낼 수 있다. 매일 신선한 채소와 식재료로 요리를 하고, 결이 맞는 사람들과 함께 지낸다면 몸과 마음 모두 건강하고 편안할 수 있게 된다. 이토록 단순한 삶 속에서는 스치는 사람들이 감사하고 귀하다. 작은 연락들이 소중하고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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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감독은 고기 넣을 계획이 다 있었구나
식품이나 요리 전공이 아니면서 고기에 대한 글을 쓰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영화에 대해 1도 모르면서 영화 글을 쓰고 있다. 지난주 글을 기고한 영화 잡지에서 연락이 왔다. "필진 대담이 있을 예정이니 참석 부탁드려요"라는 메시지와 함께. 잡지의 이번 호 주제는 봉준호 감독의 <플란다스의 개>였고, 우리는 영화를 보고 아파트라는 장소에 꽂혀서 관련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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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의 시대
우리는 '그냥의 시대'에 살고 있다. 교양과목에서 재밌는 과제가 있었다. 주어진 논제에 대해 2시간 동안 토론을 하며 이를 녹음하라는 것이었다. 나는 녹취된 토론 내용을 재생해 들어보며 자신의 논리가 얼마나 탄탄한지 되돌아보는 것이 이 과제의 목적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교수는 논리성에는 추호도 관심이 없었다. 그가 이 과제를 낸 건, 우리들의 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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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고 싶다고 했다
사랑하고 싶다고 했다. 나는 너에게 ”사랑한다“가 아니라 ”사랑하고 싶다“라고 했다. 모호한 표현을 사용한 명백한 나의 잘못이었다. 나는 군인이었고, 너는 대학 휴학생이었다. 우리는 사귀는 사이가 아니었지만 나는 휴가를 나오면서 네 생각만 절실했다. 사실 어디서부터 사귀는 사이고 어디까지가 썸을 타는 관계인지 아직도 모르지만, 나는 분명 너를 사랑했다.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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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1초의 승부
때는 2016년 2월, ‘넥슨 아레나’에서 카트라이더 리그 2016 시즌이 진행됐다. 당시 프로게이머였던 문호준과 유영혁은 대한민국 카트라이더 역사상 그야말로 위대한 경기를 펼쳤다. 일대 일 매치로 진행된 해당 경기는 0.001초 차이로 승부가 갈렸다. 아무리 게임이라지만 엄연히 냉혹한 승부의 세계. 0.001초로 결승전 트로피의 향방이 판가름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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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기, -
넌 오빠의 사진 하나 가진 게 없었다. 매일 생각하며 그리워하는 것과는 달리 네 방, 네 지갑 속 어디에도 오빠가 없었다. 무례하지만 궁금했기에 물었던 적이 있다. 넌 얇은 쌍꺼풀이 진 눈을 느리게 뜨고 감으며 말했다. - 잃어버렸어, 다. 난 너의 그 버릇을 안다. 네가 눈을 느리게 뜨고 감기를 반복할 때, 너는 눈꺼풀 움직임의 속도에만 변화를 준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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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흔은 정말 '불혹'의 나이일까? 서른아홉 싱글 여성의 마흔 미리보기
『마흔, 오늘도 시작』 - 김세윤 세상 일에 정신을 빼앗겨 판단을 흐리는 일이 없는 나이. 마흔의 다른 이름, ‘불혹不惑’이 지닌 의미입니다. 정말 마흔이 되면 누구나 그런 경지에 오를 수 있는 걸까요? 아니, 애초에 그런 나이라는 게 존재하기는 하는 걸까요? 불혹을 코앞에 두고 『마흔, 오늘도 시작』을 쓴 김세윤 작가의 마음은 여전히 자주 흔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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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방어를 바라보는 두 가지 시선
10월부터 예술인 지원을 받아 심리 상담을 다니고 있다. 상담 일정은 총 6회기로, 예술인복지재단 지원범위에 맞춰진 횟수다. 사실 지원이 된다는 사실을 보고 ‘한 번 받아나 볼까’ 가벼운 마음으로 갔기 때문에 처음엔 막막했다. 내겐 털어놓을 만한 고민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5회기 상담을 마치고 마지막 상담일을 앞둔 지금은 내 안에 해결되지 못한 문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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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기는 절대 하기 싫었다
오늘도 역시나 힘들었던 하루를 끝내고 기숙사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하늘을 올려다본 지가 한참 된 것 같아 살며시 고개를 들었다. 까만 배경 사이로 빛나는 몇 개의 별이 보이자, 귀로 흘러들어오는 음악에 순간 꽤나 감성적인 사람이 되었다. 감정이 넘쳐 눈물로 흐를 것만 같은 느낌에 고개를 다시 떨어뜨렸다. 너무 많이 지쳐있었다. 내가 감당하기엔 너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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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커리어 우먼이 되고 싶으세요?
여자이기 전에 사람입니다만 내 주변에는 특정 성 역할을 요구하는 사람들이 없다. '딸은 이래야지' '여자는 이래야지'가 아니라 '너는 이런 성격이니까' '너는 이런 걸 좋아하니까 이렇게 하는 게 좋지 않겠니?' 이런 식이랄까. 좀 꾸미고 다니라고 잔소리하는 사람도 없고 여자다운 직업을 가지라는 사람도, 여자니까 결혼해서 애 낳고 집에 있으라는 사람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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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건 레스토랑에서 고기 찾기
고기에 관한 글을 쓰면서 지인들에게 연락을 많이 받았다. 그중 가장 많이 받은 것이 채식을 선호하는 사람들로부터의 연락이었다. 그들은 "기왕 글쓰는 거 비건 레스토랑에 가서 채식을 해보는건 어때?"라고 권했다. 평소에도 채소는 많이 먹는 편이라 '채식을 하려고 비건 레스토랑에까지 가야 되나'라는 생각이 들었다가 문득 비건들도 고기를 먹을지 궁금해졌다. 채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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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일홍의 전설 - '확실한 말'이 중요하다!
이번에 소개할 설화는 꽃과 관련이 있다. 모든 꽃에 이야기가 담겨 있지는 않지만, 설화를 가진 꽃도 종종 있다. <그리스·로마 신화>에 나오는 ‘수선화’가 그렇고, 우리나라의 ‘백일홍’이 그렇다. 백일홍이라는 이름은 저절로 붉은 꽃을 연상케 하는데, 이름은 왜 그렇게 붙여졌고 어떤 설화가 담겨 있는지 주의 깊게 보면 좋겠다. 참고로 백일홍의 꽃말은 다양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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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고 싶은 사람
제주에 끌린다. 요가와, 명상에 끌린다. 류시화 시인이나 루미의 시에, 여러 시인들의 글귀에 끌린다. 분명 덜 가질수록, 더 자유로울수록 나는 편안하고 행복하다. 누군가와 자유로운 사랑의 관계를 맺을 때에 행복하다. 관계의 지속을 위해 노력하기보다 그저 마음으로 끌려 다가갈 때에 진심이 담기게 된다. 지금은 프리랜서로 일하고 있다. 나름대로 사랑하는 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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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겨우, 이것은 온전히, 이것은 어디까지나 고독에 대한 이야기일 것이다
1 시를 쓴 지 4년 만이었다 지면이라 부를 만한 곳에 내 글이 실리게 되었다 지방에 있는 작은 문예지였다 등단을 잘못하면 등단을 다시 해야 한다는 선배의 말을 곱씹었다 선배는 신춘문예로 등단했고 그것도 중앙지였다 나는 재능이 없는 게 맞는데 그럼 내 노력은 어디서부터 잘못되었고 과연 어디까지 실패할 수 있을 것인가, 허우적거리던 나였다 그러나 그 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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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기, -
저녁 이후의 전화에 심장이 떨린다. 발신인이 가족일 경우 더 그렇다. 꼭 누군가 쓰러졌다는, 사고가 났다는 그런 소식을 전할 것 같아 무섭다. 모르는 전화는 받지 않는다. 낮에 울리는 낯선 전화는 으레 스팸이겠거니, 대출 안내 전화겠거니 하지만 저녁에 울리는 벨소리는 상상의 범위가 다르다. 부지불식간에 '그날'이 떠올라버린다. 한참을 울렸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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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닥을 쳐도 좋았다 날마다 특별한 악몽을 꾸기 위해서 무릎을 꿇고, 두 손을 간절히 모아보는 장면에서는
아침에 눈이 떠지질 않으면 아침의 눈을 오래도록 들여다보고 있는 것이었다 * 애인은 피아니스트였다 애인은 작게 교습소를 했다 침묵만이 입을 열어 온 도시의 결항을 끌어올릴 그때 학원들은 급히 문을 닫고 있었고 애인의 교습소만 홀로 명랑한 공장처럼 돌아가고 있었다 마스크를 벗어도 좋아 재즈를 꼭꼭 씹어 부르거나, 문득 꿈이 살해당하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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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톱 먹은 들쥐 - 도플갱어?
‘도플갱어Doppelgänger’라는 말을 모두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오늘은 그와 관련된 설화를 나누고자 한다. 독일어 단어인 이 표현은 ‘이중으로 돌아다니는 자’라는 의미를 가지며, 분신이나 복제를 뜻하기도 한다. 또한 도플갱어는 스코틀랜드에서 죽음이 임박했을 때 보이는 자신의 환영을 가리키는 말로도 쓰이는데, '도플갱어를 만나면 죽는다'라는 말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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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어가기 3. 연애와 섹스가 결혼만을 위한 건가요?
이런 엔딩은 싫어 배우 서현진 씨의 팬으로 드라마 <또 오해영> (2016, tvN)과 <사랑의 온도> (2017, SBS)를 재미있게 봤지만 두 작품 모두 결혼식 장면으로 마지막 회를 장식해서 허무했다. 결혼식 장면을 찍어야 모든 스텝과 배우가 모여 쫑파티 하기 편해서 인가? 젊은 층을 겨냥한 로코물은 물론이요, 일일 드라마, 주말 가족 드라마는 거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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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키운 조직의 단말과 쓴말
국어사전에 ‘조직’을 검색하면 나오는 결과다. 쉽게 말해, 어떤 목적을 위해 모인 집단이 조직이다. 따라서 우리가 매일 아침 출퇴근하는 회사도 조직이지만, 신앙 모임인 교회도 조직이 될 수 있고, 취미로 모인 동호회나 동아리도 조직이 될 수 있다. ‘목적’과 ‘집단’이라는 조건만 충족된다면 말이다. 어느덧 조직에 몸담은 지 5년이 되었다.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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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대 좋아해요?
며칠 전 순대국밥을 먹다가 방송인 신동엽 씨가 예능프로그램 '마녀사냥'에서 했던 이야기가 떠올랐다. 그는 아내를 만나면서 결혼을 결심한 순간으로 순대국밥 먹던 날을 꼽았다. 예상치 못하게 소탈한 모습이 나타나면 사람이 달리 보일 때가 있는데 딱 그 경우인 듯하다. 국 중에 어머니가 해준 시래깃국 다음으로 순댓국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순댓국에 소주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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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나이에 그런 사람을 알고 있는 게 이상한 거지."
첫 직장에서 내가 맡은 업무는 사보를 만드는 것이었다. 분명 내 상식으로는, 월간지를 만든다고 하면 최소한 3~4명의 인원은 있을 줄 알았는데 주어진 인력이라곤 달랑 1명이 다였다. 그리고 그 1명은 다름 아닌 나. 아직도 내가 만든 첫 번째 사보를 기억한다. 메인 컬러는 분홍색이었다. 처음으로 사보가 발행되어 건물 곳곳에 비치되던 날, 동료와 동기들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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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심히 하지 말고 잘해."
첫 직장에서 갑자기 ‘사보’를 담당하긴 했지만, 사실 아주 뜬금없는 일은 아니었다. 당시 신입사원이었던 내가 (보통 3년 차 이상이 담당하는) 사보 제작 담당을 맡은 까닭은 나의 모든 경력이 그것을 가리키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 나는 대학교 학보사에서 4년 이상 일한, 나름 편집 쪽에서는 짬밥을 먹은 ‘경력자‘였다. 그리고 학보사에서 들었던 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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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기, -
삶과 죽음은 언제나 닿아있었다. 살면서도 늘 죽음을 생각했고, 죽음 뒤의 새 삶을 떠올렸다. 너는 입버릇처럼 말하곤 했다. 숨쉬고 있어봐야 엄마 아빠 곁이고, 숨을 멈춘 후에는 오빠 곁일 거라고. 그래서 더 이상 죽음이 두렵지 않다고. 어두운 밤, 혼자 바람에 닫힌 문소리에도 심장이 꽝꽝거리며 울던 너였다. 이젠 묘지를 혼자 걸어도 무서워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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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 모자 - 원본의 결말은?
어릴 적 한 번 정도는 누구나 ‘빨간 모자’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그만큼 접하기 쉽고 익숙한 이 이야기가 바로 오늘의 주인공이다. 빨간 모자는 프랑스 동화 작가인 샤를 페로가 발표한 『옛날이야기』에 수록이 되기도 했는데, 오늘은 샤를 페로 버전이 아닌 프랑스 민담으로 전해져 내려오는 ‘할머니 이야기’를 소개하겠다. 이야기는 이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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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일은 한국 가서나 하시지...
취준 끝 무렵에 든 여러 생각들 티 없이 해맑던 예전의 넌 지금 어딨니 *부제는 모두 비투비의 <괜찮아요> 가사를 인용했습니다. 대학교 4학년 여름 방학, 한국 본가로 돌아와 가족들과 저녁을 먹던 중 취업 얘기가 나왔다. ‘잠깐 한국 들어와서 머리도 식히고 새로운 곳 알아보는 게 어떻겠니?’라는 질문에 갑자기 헛구역질이 올라왔다. 화장실에 한참을 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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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아이에게 딱 맞는 양육법이란 없다
어느 날 부츠를 벗으려고 부엌 구석 의자에 앉은 매튜는 앤과 소녀들이 앞으로 있을 콘서트 준비를 하느라 즐거이 떠들며 들어와 어울리는 것을 본다. Anne stood among them, bright eyed and animated as they; but Matthew suddenly became conscious that there was som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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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기를 먹지 못하는 때가 온다면
"영원히 널 사랑해"라고 말하는 연인들이 있듯이, 사람들은 한순간을 살아가면서도 모든 것이 영원할 거라 생각한다. 음식도 마찬가지다. 20대에는 돌도 씹어 먹을 기세로 음식을 먹었던 기억이 난다. 술을 위장에 들이부어도 다음 날이면 멀쩡해져서 아침 강의를 듣곤 했지만 요즘은 술 먹다가 새벽 1시를 넘기면 다음날 피로로 인해 하루 종일 멍하게 있게 된다.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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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도전이 남긴 것
MBC 예능프로그램 ‘무한도전’은 2005년부터 2018년까지 매주 토요일 저녁에 방영됐다. 무려 560회가 넘는 예능 프로그램은 사실상 전무했다. 대한민국 평균 이하의 남자들을 자처했던 이들이 대한민국 최고의 예능 프로그램을 만들며 흥행시킬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우선 독창적 캐릭터의 덕을 톡톡히 봤다. 무한도전에 고정 멤버로 출연했던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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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소개] 팀의 모든 작업을 한눈에! '아틀라시안 컨플루언스' 학습을 위한 가장 쉽고 확실한 방법
『아틀라시안 컨플루언스를 배워보자!』 - Alex Seol 월요일 오전 8시 55분 회의실. 회의 시작 5분 전, 다급한 AA 사업 PM의 문자를 받았다. AA 사업 이슈 사항이 누락되어 죄송하다며 누락된 내용을 메일로 보냈단다. (이 시간에!) 노트북을 열고 (다행히 켜져 있었다) 회사 그룹웨어에 접속했다. AA 사업 PM이 보낸 메일을 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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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토를 떠날 의향이 있으신가요?
나를 우울하게 했던 것 지금이야 아무렇지도 않게 대학 4학년 시절을 웃으며 되돌아보지만 당시 나는 진지하게 모든 것을 끝내려고 했었다. 4학년 2학기가 끝날 때까지 취업이 안 되면 그냥 죽어버리고 말아야겠다는 생각으로 하루하루를 버겁게 살아 내고 있었던 것이다. 취준 스트레스, 오후 4시에 일어나 새벽 5시에 자는 불규칙적인 생활 패턴, 쿨한 척했지만 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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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살 것인가! 『그리스인 조르바』
어느 날 내가 작은 마을을 지나가고 있었어요. 아흔 살 먹은 고루한 영감탱이 하나가 아몬드 나무를 심고 있습디다. ‘저기요, 할아버지.’ 내가 물었죠. ‘정말로 아몬드 나무를 심고 계신 건가요?’ 그러자 허리가 땅속으로 기어 들어갈 것 같은 그 영감탱이가 돌아서서 나를 보고 이렇게 말하는 겁니다. ‘젊은이, 난 영원히 죽지 않을 것처럼 행동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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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 살아있는자의 의무』라는 필독서
누구나 '최고의 하나'를 기억하곤 한다. 최고의 영화, 최고의 음식, 최고의 여행 등. 가끔은 상대방과의 어색함을 풀기 위해 '인생 책'이 무엇인지 묻곤 한다. 물론 "당신이 읽었던 최고의 책은 무엇인가요?"라고 묻는다면, 대부분 "제가 책을 잘 안 읽어서.."라는 기대 이상의 대답을 받게 될 것이다. 차라리 성경이라고 하는 게 기분은 덜 나쁠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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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의 글쓰기 개론
콘서트가 끝난 여파는 쉽게 가시지 않는다. 특히 앤의 경우 일상생활로 돌아오는 게 힘들었다. 앤은 다이애나에게 이렇게 토로한다. "Perhaps after a while I'll get used to it, but I'm afraid concerts spoil people for everyday life. I suppose that is why 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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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주먹을 쥐었다 펴보는 것뿐이었다 나의 손과 나의 애원과 나의 온몸이 이해하지 못하도록
나는 개가 있었고 개를 사랑했다는 사실과는 무관하게 나에게는 언제나 나의 작은 개가 있었다 나의 작은 개는 나의 애원보다 크고 빛나서 나의 사랑을 몰라보았던 것일 수 있었다 꽃을 꺾으면서 어디가 아픈지 이곳이 어디인지 떠올려보고 있었다 나의 작은 개가 더 작아지도록 여기, 꽃이 가득하도록 내가 나를 번쩍 들어올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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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먹을 쥐었다 폈다 물때가 껴있었다 그리고 다시 주먹을 쥐었다 펴보는 것이다
하바리움, 절대 시들지 않는다고 한다 특수 처리된 용기에 꽃을 가두고 가둔다는 말 안쪽에서 하얀 꽃잎이 날리기 시작하면 흠칫 자유로워도 좋을 기분이 든다 동시에 이상하고 무서운 것이다 나는 아직 나를 풀어놓을 만큼 철저하지도 멍청하지도 않고 아쉽지만 꽃잎은 꽃과 잎 사이에 내려앉지 않는다 봄이 봄과 길항하는 것처럼 꽃과 잎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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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에서 아빠와 보낸 25일, 그 뒤로 이어진 길고 깊은 애도의 기록
『아빠는 자라서 나무가 된다』 - 조아해 “아빠의 증거인 내가 아빠의 끝을 목격하고 있어. 그러니 걱정하지 마.” 3주 남짓의 간병, 그리고 작별. 담도암으로 세상을 떠난 아빠를 향해 쓰는 애도의 일기 완순 씨, 남식 씨. 조아해 작가는 엄마와 아빠를 종종 그렇게 불렀습니다. 부모님에게 역할이 아닌 이름을 돌려주고 싶었고, 내심으로는 성인으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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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 있으면 해 보세요
첫 면접 이야기 첫 면접 장소는 도쿄 소재의 모 영화사였다. 우리 팀 순서가 되어 들어가니 자리도 정해져 있었고 테이블 위에 설문 조사지가 올려져 있었다. 면접관 세 분과 진행자 역할의 인사 담당자 한 분 앞에 나를 포함한 다섯 명의 면접자가 앉았다. 인사 담당자분은 굉장히 진지하고 엄숙한 태도로 면접을 진행하셨다. 설문 조사 작성 시간과 답변 시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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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6화 두려움 속에 숨은 빛을 발견하라!
때로는 엄청 무서울 때가 있어 말없이 스르르 다가와 발끝에서부터 온몸으로 서서히 펴져 가는 공포 너무 무서워 슬그머니 다가와 날 겁에 질리게 하는 너 으... 너무 무서워 -마크 패롯Marc Parrot 글, 에바 알머슨Eva Armisen 그림 「내 마음이 말할 때」 중 두려움은 아직 일어나지 않은 나의 생각이다 “친구가 치매에 걸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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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에게 코로나19란
"트루먼 쇼 아닐까요?" 20살 청년 A는 술을 먹다가 문득 말했다. 대학교 1학년, 신입생이라는 찬란한 시기를 허무하게 보낸 사람이 내뱉은 그 말은 그저 탄식에 가까웠다. 침묵이 길게 이어졌다. “니가 트루먼이면 잘생기기라도 하든가.” 면박 주듯 답한 건 그저 분위기를 띄우기 위해서였다. “맞아 짐 캐리 잘생겼지.. 나는... 이게 뭐야...” 분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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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rong>Off Licence... 면허가 꺼져?</strong>
그렇게 자신감을 가지고 영국에 왔는데 길거리 표지판 앞에서, TV 앞에서, 또 영국인의 말 한마디에 멍해질 때가 있다. 영어 원어민도 못 알아듣는 영어가 있기 때문이다. 학교와 학원에서 배우던 영어와 다른 표현도 많다. 영드를 보다가, 영국 소설을 읽다가… 문득 의문이 들 때가 있다. 왜 미국 영어와 다를까? 영국에 와서 살기 전까지는 나도 몰랐다.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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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rong>Fun? 재미? 무슨 주제의 전시회인가요?</strong>
아래의 표현은 영국의 어린이들이 좋아하는 것을 가리킨다. 사전을 이용하지 않고 무슨 뜻인지 추측해보자. - Dodgems - Fun Fair - Helter-Skelter 힌트 1 모두 ‘놀이공원’과 관련된 표현이다. 힌트 2 아래 각 사진을 참조하자. 1. Dodgems Dodgems는 범퍼카를 뜻하는 영국식 단어이다.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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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설공주 - 계모가 사실은 진짜 엄마?!
‘거울아, 거울아, 이 세상에서 누가 제일 예쁘니?’ 『백설공주』에 나오는 이 질문은 누구나 한번쯤 들어봤을 것이다. 나쁜 계모와 예쁜 백설공주의 모습을 가장 먼저 떠올리게 되는 이 이야기는 독일에서 전해 내려오는 민담으로, 생각보다 다양한 이본과 '썰'이 있어 꽤나 흥미로웠다. 그중 가장 충격적인 것은 『백설공주』 속 계모가 사실 초판본에서는 친엄마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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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피아노가 치고 싶어진다.”
나의 전투적(?)인 독서는 2007년부터 시작되었다. 내 삶의 주변에 대해 아는 것이 없었을 뿐만 아니라 속고 있었다는 충격 때문이었다. 그래서 닥치는 대로 읽었다. 장정일 작가의 『장정일의 공부』라는 책을 시작으로 정말 많이 읽었다. 그런데 이놈의 책 중에는 꼭 읽어야 될 놈도 있었지만 정말 읽을 필요가 없는 놈도 있었고 ‘이 책을 읽으세요’라는 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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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탈북자, ‘나’를 발견하다》는 북한을 탈출해 남한으로 온 한 탈북자의 이야기입니다. 저는 태어나 보니 ‘이방인’이었고, 살아남기 위해 제3국을 떠돌다 남한에 입국한 이후에도 여전히 ‘탈북자’ 꼬리표가 달린 이방인으로 살아갑니다. 이 굴레는 누가 씌운 것인가, 따져 물을 곳 없고 책임질 위인도 없이 저는 이데올로기를 온몸으로 맞고 있습니다. 문신처럼 낙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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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rong>나이스 팬츠라고?...어머, 민망해라</strong>
아래의 단어는 모두 몸에 걸치는 것을 뜻한다. 무슨 뜻이 있을까? - Y-fronts - Knickers - Pants 힌트 1 모두 ‘속옷’을 가리키는 단어이다. 힌트 2 아래 각 사진을 참조하자. 1. Y-fronts 거리에 이런 차림으로 달리는 사람이 있더라도 놀라지 말자. 노출에 관대한 편인 영국에서 나는 속옷마저 안 입고 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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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화창한 토요일, 우리들의 피터
시와 수필, 소설 등 창작 전반에 걸쳐 업적을 남긴 영국 출신의 작가 올더스 헉슬리의 마지막 유언은 이렇게 전해진다. 'LSD 100마이크로그램, 근육 내 주사.' 소설 『멋진 신세계』로 현대 미래를 예견한 작가 올더스 헉슬리의 단편소설 「반공일」― 또는 「토요일」이라는 제목 ― 은 화창한 오후, 런던의 하이드 파크를 거니는 한 남자의 짧은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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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은, 어떻게든 풀리게 되어 있어."
처음으로 보직을 옮겼다. 직장에 들어간 지 6개월 만이었다. 그리고 그 보직은 앞선 글에 쓴 것처럼, 사보 만드는 일이었다. 아직 직장에 제대로 적응도 못한 신입이(심지어 첫 사회생활이었는데!), 모든 소식을 샅샅이 알고 있어야 하는 사보 편집 업무를 맡다니? 나름의 내부 사정이 있긴 했지만, 이유야 어쨌든 업무를 하는 주체인 나로서는 무척 견디기 힘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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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고하셨습니다.
5년짜리 취업비자 아깝지 않으세요? 대학 졸업 후 간사이 공항 지상직으로 근무하게 되어 재류 자격이 유학에서 취업으로 바뀌었다. 염원하던 일이 일어난 것이었다. 비자 분류는 기술/인문지식/국제업무. 보통은 1년짜리가 나온다는데 나는 5년짜리 비자를 발급받았다. 2023년 3월 26일까지 일본에서 일할 수 있는 특권이 주어진 것이다. 하지만 난 유효 기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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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7화 생활 속 작은 갈등에서부터 모두의 욕구를 충족하기
느리더라도 작은 갈등에서부터 모두의 욕구를 충족하라 삶의 언어로 갈등을 해결하는 것은 갈등을 겪는 사람들 사이에 연결을 이루어가는 과정이다. 서로에게 연결하려는 마음이 있을 때 상대방의 느낌과 원하는 바에 의식을 집중할 수 있다. 이 방법은 자신이 원하는 행동을 상대방에게 의도적으로 시키려는 것이 아니다. 갈등 당사자들이 이 점을 이해하면 그다음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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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
지하철이 성내역에 진입하였다. 퇴근 시간이라 많은 사람들로 붐볐지만, Y는 쉽게 눈에 띄었다. 항상 그러하듯 평온하면서 조금은 어벙한 표정이었다. 나는 지하철에서 내려 무리하게 사람들을 해치면서 Y가 간 곳으로 뛰어갔다. 출구 계단까지 살펴보았지만 찾지 못하고 다시 돌아와 다음 지하철에 몸을 실었다. Y는 나에게 비와 모닥불은 상념을 일으키게 한다는 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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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한다’고 말해야 할 사람
“내일 지구가 멸망한다면 나는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라고 말한 스피노자는 복에 겨웠음이 틀림없다.(실은 스피노자가 아니라 마틴 루터가 했다고 한다.) ‘내일 지구가 멸망한다면 무엇을 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 보았다. 철학과 출신들의 공통적인 문제는 하나의 생각을 하면 도무지 끝을 모른다는 점이다. 그렇게 결국 막다른 길에 들어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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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내 안으로부터 넘쳐흐르는 것
사랑에 대한 감정은 그 누구에게는 짧고 강렬하며 어떤 누군가에게는 그 강도가 약하고 길다. 잘 맞는다는 것은 그 강도가 서로 알맞으며 무한한 신뢰와 사랑이 끊이지 않고 강처럼 흐르는 관계겠지. 누군가는 마음이 이끌리는 대로 만난다. 다른 누군가는 관계 설정을 확실히 하고 서로의 관계에 대한 책임을 바탕으로 안전한 사랑의 길로 들어선다. 사실 그 어떤 사랑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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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은 있으나 볼 수 없는 자들을 위하여! (비권장→권장)
지난주 책 한 권을 ‘권장’했으니, 이번 주에는 한 권을 ‘비권장’하기로 맘먹었다. 그래서 다시 읽은 책은 주제 사라마구의 『눈뜬 자들의 도시』다. 2007년에 국내 출판된 이 책을 나는 2014년 10월에 처음 읽었다. 아래는 당시에 블로그에 작성한 『눈뜬 자들의 도시』 리뷰다. “[비권장] 눈뜬 자들의 도시 / 주제 사라마구 지음 / 정영목 옮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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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자기다운 게 가장 아름답다
겨울이 가고 봄이 다시 그린 게이블즈에 찾아왔다. 아직 낯선 봄, 그래서 진창이 된 길을 걸어 자선모임에 다녀오던 마릴라는 집으로 향하며 역시 내 집이 최고! 하는 그런 기분에 빠져들었다. 그러나 앤이 자기 몫의 집안일을 하지 않고 없어진 것을 알고는 곧 화가 난다. Marilla, as she picked her steps along the d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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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보다 엄마
나를 알려면 나를 품고 키워낸 엄마를 알아야 되지 않을까. 엄마이기 전에 한 사람, 채경례의 인생을 알고 싶었다. 어린 시절에 본 엄마는 유난히 꽃을 사랑하는 사람이었다. 겨울이면 눈밭에서 진달래 가지를 꺾어와 따뜻한 아랫목에서 피워내고, 산에 들에 꽃이 만발한 봄이면 철쭉을 한 아름씩 꺾어와 창가에 두었다. 밤이슬이 차가운 가을엔 이삭 배낭을 짊어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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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샌프란시스코로 향하는 배를 기다렸다
오래전 가까운 이가 내게 신을 믿으라 권유한 적 있었다. 언젠가는 강요한 적도, 간곡한 적도 있었다. 어렸던 마음은 믿음에 대해 생각했고 이유와 의문을 오래 간직했다. 물으면 물을수록 질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었고 도돌이표 같은 질문 끝에는 나의 부덕 혹은 무지가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면 나는 그쯤에서 입을 다물었다. 부덕도 무지도 티를 내고 싶지는 않았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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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 돼지 삼 형제 - 엄마는 왜 첫째, 둘째의 부재를 묻지 않을까?
‘아기 돼지 삼 형제’ 이야기는 모두에게 아주 익숙할 것이다. 어릴 때 누구나 동화책을 읽으며 자랄 텐데 공주가 나오는 책은 남자아이들의 흥미를 그리 끌지 못하겠지만, 아기 돼지 삼 형제는 누구나 좋아할만 한 이야기다. 일단 귀여운 돼지가 나오고, 무서운 늑대가 등장하는 데다 ‘꾀’를 내어 상황을 반전시키는 막내 돼지를 응원하게 되니까. 극적인 부분도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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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기, -
위험은 낯선 곳에서 잉태되고, 익숙해지는 순간 태어난다. 네 오빠의 죽음이 그곳에서 기다리고 있었을 줄 누가 알았을까. 한 번도 밟아보지 못한 지역의 차가운 도로에서 너는 오빠의 흔적을 찾을 때마다 울었다. 잘게 부서진 자동차의 조각은 오빠를 태운 차의 속도를 짐작게 했다. 이미 늦은 밤, 마지막 중간고사 기간. 선배 아버지의 상을 그냥 넘어갈 만큼 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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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은 흐르고
“이거 가지고 얼른 가봐” “힝~ 무서워 네가 가” 지희가 고개를 숙이고 땅바닥에 도리어 주저앉자 영식이는 조심스레 두 손을 모으고 일어섰다. 점심때부터 영식이는 달고나 뽑기(1원을 내고 스페이드나 별 모양이 찍힌 조그마한 달고나를 모양대로 뜯어내면 1원과 또 한 개의 달고나를 받지만, 모양이 부서지면 조그마한 달고나를 1원에 사게 되는 뽑기)를 하고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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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면서 운전을 한다 많은 사람을 태웠었다 가장 안전하게
의자가 있고 의자 옆에는 의자에 씐 내가 있다. 나는 정확하게 씌었다. 의자가 내 몸에 들어갔다 나왔다 한다. 나의 결말도… 강변을 누비던 아이들과 아주 멀리의, 아주 언젠가의 엄마도. 거쳐간다. 꿋꿋이. 꿋꿋이 비틀거리는 비탄과 숨이 다 죽어버린 땅거미도. 거쳐간다. 거쳐간다. 내 몸은 너무 다른 이름들의 집이구나. 다시 의자가 있고 의자는 의자에 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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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rong>크리스마스에는 판토를 보러 가요</strong>
아래는 영국인들이 연말에 많이 쓰는 단어이다. 물론 지금은 코로나 때문에 덜 쓰고 있다. 사전을 이용하지 말고 무슨 뜻인지 추측해보자. - Panto - Interval - Cloakroom 힌트 1 모두 ‘공연’과 관련된 단어이다. 힌트 2 아래 각 사진을 참조하자. 1. Panto 몇 년 전, 토크쇼에서 한 배우가 자신이 연말에 출연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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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가민가하다면 일단 보고하는 게 좋지."
‘신입사원일 때 가장 어렵게 느껴지는 부분은?’ 이런 질문을 받는다면, 나는 최소한 30% 이상은 동일한 대답을 할 거라고 생각한다. 바로 ‘보고’이다. 신입일 때는 유난히 보고할 게 많다. 때로는 업무일지도 보고해야 하고, 회의록도 보고해야 하고, 당연히 주요업무도 보고해야 하고, 사무행정 업무도 보고해야 한다. 아참, 연차를 쓰거나 출장을 갈 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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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가 울던 바다
엄마와 아버지는 일본에서 태어났다. 훈장이던 증조할아버지가 일찍 세상을 떠난 후, 10대 소년이던 할아버지는 징용으로 끌려간 일본 탄광에서 해방을 맞이했다. 그곳에서 살아남기 위해 할아버지는 야쿠자가 되고 고생 끝에 온천을 운영하면서 슬하에 6남매를 두었다. 6남매 중 맏이였던 나의 아버지는 대학에 입학하면 자동차를 사준다는 고모의 제안에 열심히 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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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살던 고향은...
할아버지 환갑 잔칫날이었다. 그날 할머니 집에는 할아버지 할머니는 물론 삼촌, 고모, 사촌들 온 가족이 모였다. 잔칫날이라 모두들 배가 불렀고 어른(남자)들은 술 한 잔에 기분이 좋아 보였다. 친척들이 돌아가며 노래를 부르고 엄마 차례가 되었다. 나의 살던 고향은 꽃 피는 산골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 진달래… 노래 부르던 엄마 눈에 눈물이 흘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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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큰 딸을 믿소"
갓 성인, 사회인이 되던 즈음이었다. ‘학생’, ‘아이’로 불리다가 성인이 된다는 것은 그리 반가운 사건이 아니었다. 오히려 혼란스럽고 불안하고 두려운 시간들이었다. 조숙한 친구들 중에는 엄마의 화장품으로 허옇게 분칠을 하고 어른 흉내를 내는 친구들도 있었지만 나는 또래들보다 발육이나 성장이 늦되었다. 낮잠을 자던 어느 날이었다. 엄마와 친구 엄마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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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긋난 풋사랑
17살, 중학교 6학년이 시작되던 시기였다. 당시 북한은 11년제 의무교육제[유치원 1년, 인민학교(초등학교) 4년, 중학교 6년]였고 남자학교와 여자학교가 분리되어 있었다. 나는 10년 동안 여학교에서 여학생들하고만 공부하고 뛰어놀았다. 남학생과 공부하거나 대화를 해본 기억은 거의 없었다. 중학교 6학년에 올라가는 개학날이었다. 학교에서 남녀혼합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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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의 행군'과 탈북
1994년 즈음부터 ‘고난의 행군’이 시작되었다. ‘고난의 행군’은 1938년 말∼1939년 초 김일성이 만주 벌판에서 추위와 가난을 견디며 일본군 토벌대와 싸우던 100일간의 행군에서 유래되었다. 극심한 경제난을 겪던 90년대 중반 북한은 ‘고난의 행군’ 구호를 내걸고 수령(김일성)이 고난의 행군 시기에 추위와 굶주림과 싸워 나라의 독립을 이룬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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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ilogue
처음 <안 상 들어오세요>를 끝내던 날의 기억 일본 생활을 글로 풀어내겠다고 다짐한 게 2018년 12월의 일입니다. 어떻게 써 내려갈까 고민하다가 내린 결정이 '면접에서 받았던 질문에 솔직하게 대답하자.'였습니다. 실제 면접에서 내뱉지 못했던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 '진짜 나'를 알아가자는 취지로 일본에서 보낸 5년이란 시간을 되새김질하였습니다. 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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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8화 나와 너를 공감하며 현재의 고통을 덜어내라
현재형으로, 긍정적인 동사를 사용하라 고통이 너무 심해 상대방의 이야기를 들을 수 없을 때, 우선 상대방의 마음에 공감해 줄 필요가 있다. 긴급 위기 지원을 나갔을 때의 일이다. △△△는 공직에 있을 때 갈 곳이 없는 OOO의 딱한 사정을 듣고 그를 자신의 옥탑방에 머물게 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 OOO가 건강이 약해지면서 밖에도 나오지 않고 술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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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 처자 몸값이 3000원
다시 압록강을 넘었다. 장사하러 왔다는 중년의 사내가 우리를 도시에 있는 식당에서 일하게 해주겠다며 검은 손을 내밀었다. 식당 일을 하면 한 달에 300원, 3개월만 일하고 집에 돌아갈 수 있다는 말도 덧붙였다. ‘900원이면 쌀이 얼마야~’ 석 달만 고생하면 엄마 아버지 쌀밥 먹을 수 있다는 생각에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사내를 따라나섰다. 깊은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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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분은 ‘도망자’ 이름은 ‘이모’
사춘기 소녀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달도 없는 캄캄한 저녁 할머니 댁에 심부름을 가는 길이었다. 밤하늘에 무수하게 빛나던 별들 중 어느 별똥별 하나가 아주 밝은 빛을 발산하며 지구로 날아들었다. 그 찰나의 순간 소원을 빌어야겠다는 생각이 머리를 스쳐 나는 두 손을 모으고 눈을 감았다. “상해에 있는 예쁜 집에서 살고 싶어요.” 그날은 아마도 ‘민족과 운명’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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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 불가능한 시간들
누구나 한 번쯤은 죽음 이후, 혹은 죽음 당시의 자신에 대한 상상을 할 것이다. 어떤 형태로 죽든 간에, 인간이라면 죽음에 대해서 생각하는 순간이 반드시 온다. <대체불가 당신>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그런 측면에서 다른 인간상을 추구한다. 다른 영화의 인물들이 죽음 앞에 삶의 의지를 불태우고, 남겨진 시간을 대하는 숭고한 의지 혹은 후회, 회한 같은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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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불편하게 하는 책!
『정의를 위하여』 강남순 지음 / 동녘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 『완벽하지 않은 것들에 대한 사랑』 등 베스트셀러의 작가이자 스님인 한 분이 예능 프로에 출연하셨다. 평소 이 분의 책을 재미있게 읽었고 호감이 있었기에 관심을 갖고 보았다. 그러나 오랜 시간 지나지 않아 채널을 돌려버렸다. 남산타워가 보이는 삼청동의 집을 갖고 있으며 맥북, 에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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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좋은 사람이 되도록 하는 것들을 가까이 두세요.
사회생활이란 것을 하면서 쓸데없이 배우게 되는 것이 있다. ‘예의’라는 이름으로 인간관계에서 머리를 쓰는 것. 누구라도 당연하게 지켜야 한다는 예의범절이라는 것은, 사실 배우지 않고도 사랑하는 마음만 있다면 어린아이들도 자연스레 행할 수 있는 것이다. 충분히 사랑받은 아이들은 머리를 쓰지 않고도 사랑을 내어주는 법을 안다. 상대방에게 진심 어린 관심과 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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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외로워?
크리스마스가 지났다. 거리에는 캐롤이 울려퍼졌어야 하고, 커플들은 데이트를 위해 거리에 쏟아져 나왔어야 한다. 그러나 올해에는 다를 것이다. 솔로들에게는 축복, 커플들에게는 저주의 크리스마스였을 것이다. 연애상담을 해달라고 연락한 친구가 있었다. 이제 졸업하고, 심지어는 취업도 했고, 연애도 잘하고 있는 친구였다. 나에게 대뜸 “외롭다”라고 했다. 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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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간만 로맨틱하기까지
앤과 다이애나, 제인과 루비는 배리 씨 네 연못가에 모여 논다. 아더 왕 전설을 그린 알프레드 테니슨의 시를 읽다가 백합 아가씨(lily maid)라 불리는 아스톨라트의 일레인 (Elaine of Astolat: 아스톨라트 지역의 일레인)의 일화를 연기한다. 죽은 일레인이 조각배에 실려 멀리멀리 배가 멀어지는 싯구가 나오자 이들은 이 ‘로맨틱’한 장면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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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강 구두 - 춤의 저주
‘빨강 구두’ 이야기는 어릴 때 접했을 때 의외로 거부감이 들 것 같다. 왜냐하면, 아이들이 보기에는 약간 자극적인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어린아이들이 접하게 되는 것은 아무래도 안데르센이 정리한 동화이기 때문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했다. 이 이야기를 보면 춤을 좋아하는 사람의 생각이 어떨까? 아마 좋아하는 춤이라고 해도 멈추지 못한다면 싫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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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망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하게 되었을 때 한 사람 속에는 한 사람이 생략되어 있었다
자 그래서 어떤 기분이야? 너는 말했다 미러볼을 켰다 껐다 하면서 어느 허름한 파티의 주인공으로 지목당한 사람들처럼 다정하고 엄숙하게 즐기고 있었다 하고 싶은 게 없는 것처럼 * 다리가 없는 기분이란 다리가 있었을 때보다 아프고 건강한 기분이지 너는 부럽다는 표정이었다 마냥 부러워서 눈물이 날 정도로 부럽고 부럽다는 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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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존재 자체가 도움이 되는 거야."
중학교에 입학하기 전까지는 운동을 꽤 좋아했었던 것 같다. 방과 후에는 늘 태권도 도장을 들락날락했고, 마음이 맞는 친구들과는 놀이터에서 ‘탈출’을 하거나 학교 운동장에서 공을 차기도 했다. 하지만 중학생이 된 후, 고등학교 에 입학하기 전까지 거의 공을 차본 적이 없었다. 그렇다고 공부를 열심히 했거나 다른 운동을 했냐면, 그렇지도 않다. 나는 도서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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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왠지 곧 죽을 것 같아.
점점 숨이 막히는 기분이 들었다. 정신이 멍해지고 이상하게 눈앞도 갑자기 흐릿해진 듯했다. 분명 내 호흡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지만 난 마치 공기가 부족한 사람처럼 이상하게 숨을 쉬기 시작했다. 그리고 가슴속에서 막연한 두려움이 커져갔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내가 왠지 곧 죽을 것 같다는 두려움이 말이다. 난 익숙하지만 처음인 것처럼 비틀거리며 침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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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t’s say “Hello” to 2021
2020년을 잊을 수 있을까. 새해를 맞이하며 들었던 생각이다. 절대 잊을 수 없을 것이다. 네이버 실시간 검색어에는 ‘2020년 다들 너무 고생하셨습니다’라는 키워드가 오르기도 했다. 코로나19로 많은 사람들이 힘들었고, 아팠고, 외로웠다. 우리는 언제나 그렇듯이 해답을 찾았고, 백신에 관한 소식들과 함께 2021년을 열었다. 아니, 2021년이 열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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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이 우주가 되리라
그동안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를 봐왔던 관객들이라면, <패러독스>는 꽤나 당황스러울지도 모르겠다. 사건이 거의 없는 내러티브와 갑자기 등장하는 음악들. 뛰어난 배경 앞의 조악한 세트의 부조화는 70여분이라는 짧은 시간에도 집중하기 힘든 아득한 감정을 선사한다. 공교롭게도 <패러독스>는 코엔 형제의 <카우보이의 노래>와 같은 웨스턴 뮤지컬인데, 웨스턴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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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숙한 어른'이 되기 위하여
언제부터인지 모르겠지만 칼 마르크스의 ‘자본론’이나 ‘공산당 선언’을 읽을 수 있다면 커다른 깨우침이 있을 거라는 막연한 상상을 했다. 그래서 아주 가끔 서점이나 도서관에서 칼 마르크스 책을 서가에서 집었다, 놓았다 했던 기억이 있다. 그러다 중년이 다 되어서 아주 우연히 칼 마르크스의 ‘공산당 선언’을 읽을 기회가 있었다. “그래서 18세기의 독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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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어진 것에 감사하는 눈
어릴 때부터 명절을 좋아하지 않았다. 아니 의례적인 것이라면 그 어떤 것도 좋아하지 않았다. 친척들이라면 무조건 모여야 한다는 것. 굳이 내가 하고 싶지도 않은 것을 의무적으로 참여해야 한다는 것이 싫었다. 제사나 하루 세 끼 음식, 그 모든 것. 그러나 사람은 생각하는 대로 느낀다고 하지 않나, 삶이 결국에는 한 번 주어진 기회라고 생각이 든 이후 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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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나보아야 아는 여기의 소중함
9월이 되었다. 아름다운 에이번리의 자연 속에서 소떼를 몰고 내려오고 있던 앤은 다이애나가 중요한 소식이라도 있는지 길목에서 기다리고 있는 것을 보게 된다. 바로 다이애나의 조세핀 대고모님이 다이애나와 앤을 샬럿 타운으로 초대한 것. 프린스 에드워드 섬(PEI)의 주도 (capital)인 샬럿 타운에서는 마침 박람회가 열리고 있었고, 이미 친구들 몇 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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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 버린 배신자
탈북하고 2년 후, 99년 초봄이었다. 그날은 시어른들의 성화에 떠밀려 처음으로 짠지 장사(중국의 조선족 반찬으로 김치, 도라지무침 등의 절인 밑반찬)를 시작하는 날이었다. 당시 나는 공안의 감시에 맘 졸이고 중국어가 서툴러 불안한 데다 장사는 말만 들어도 벌렁거리는 나약한 심장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돈에 팔린 여자는 1푼어치의 자유도, 1%의 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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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부터 대한민국 국민입니다
중국에서 숨어 지낸 지 10년 만에 4개국(중국, 라오스, 베트남, 태국)을 돌고 돌아 남한에 입국했다. 어릴 적 학교에서 배운 남조선(대한민국)은 ‘미제의 앞잡이’, ‘남조선 괴뢰도당’ ‘철전지 원수’ ‘적대국’이던 곳이다. 그곳으로 나는 살기 위해 밀입국했다. 국정원 조사 과정을 마치고 두 달 후, 내 얼굴과 이름이 박힌 신분증을 받아 들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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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자, 부모 버린 불효자?
누가 교회에서 간증을 해달라고 부탁했다. 그전에도 몇 번 다른 교회에서 간증을 했던 경험이 있던 터라 별생각 없이 “네”라고 대답했다. 간증이라고 해봐야 대개 탈북 이야기와 하나님을 믿고 세상을 견뎌온 나의 이야기였다. 간증이 끝나고 사람들이 다가와 “그동안 고생했어요.” “한국에 잘 왔어요.” 위로하며 손을 잡아주었다. 그들 중 장로님이라는 사람이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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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겨우 세 살입니다
모임에서 만난 남한 사람이 몇 살이냐고 물었다. “이제 겨우 세 살입니다.” 그는 이해되지 않는다는 듯 미간을 찌푸렸다. 나는 정중하게 이렇게 말했다. “저는 남한에 온 지 3년 되었습니다. 인생 연수는 30이 넘었지만 자본주의 사회는 이제 3년 차입니다. 보고 부딪치는 모든 것이 생소하고 낯설어서 마치 갓난아이가 된 느낌입니다. 보기는 보아도 이해하지 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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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를 마치고 짜장면을 먹지 않았다 너무 아득해서 자꾸만 심장이 뛰고 있을 것만 같은 아이스크림을 먹었다
뉴스를 보는 것이다 멍청해지려면 먹고 살 만큼 멍해지려면 * 창문이 하나 더 생겼다 풍경은 하나 더 줄어들었다 깊이 생각하지 않는다 107호에서 207호로 나는 내가 한 층 더 슬퍼졌음을 느낀다 한층이 아닌 한 층이라는 것에, 나는 그것에 안도한다 집주인은 상냥했으므로 월세가 만원 더 올랐다 방은 같고 창문이 하나 더 생긴 것뿐이다 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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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직의 단말쓴말] "이게 통보지, 보고야?"
조직의 직급체계는 부차과대(부장-차장-과장-대리)를 비롯해 여러 가지로 나눌 수 있지만, 딱 두 가지로 나누라고 한다면 ‘관리자/실무자(담당자)’로 분류할 수 있다. 전형적인 피라미드 구조로서, 실무자가 일을 해서 관리자의 결재를 받는 형태다. 관리자는 일을 시키는 대신 책임을 져야 하고, 실무자는 일을 직접 하는 대신 책임을 지지 않는다. 조직에서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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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의 나에게 건네는 화이팅은 이제 그만
이 글을 이 지면에 쓰기까지 정말 오래 걸렸다. 주제는 네 번 정도 엎었다. 괴로워하던 끝에 아예 이 감정을 옮겨보자 다짐했다. 옴짝달싹 못하는 상태를 벗어나게 도운 건 내가 이전에 써 둔 글들이었다. 시간이 지난 뒤 다시 마주한 내 글들은 생각보다 괜찮았다. 나쁘지 않았다. 나는 원래 손이 빠른 편이다. 구상하고 구체적으로 가닥을 잡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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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 Let... 혹시 Toilet을 잘못 쓴 건가?
이번에는 영국의 주택가와 부동산 시장에서 볼 수 있는 문구를 모았다. 무슨 뜻인지 추측이 되는가? - To Let - Removal Service - Property Ladder 힌트 1 모두 ‘집’과 관련된 표현이다. 힌트 2 아래 각 사진을 참조하자. 1. To Let 영국의 주택가에는 이런 표지판을 흔히 볼 수 있다. ‘Let’은 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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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와주는 게 뭐 어렵다고요."
‘도움은, 주긴 주더라도 받지는 않겠다.’ 모임의 장을 맡아 일을 하게 되면 늘 되새기는 말이었다. 자존심이 셌던 나는 일을 할 때 누군가의 도움을 받는 걸 극도로 싫어했다. 도움 주는 것까지 인색하지는 않았으나, 도움받는 일에 대해서는 상당히 엄격했다. 선뜻 도와달라고 하지 않았고, 누군가 도움의 손길을 내밀어도 애써 괜찮은 척 거절했다. 웬만해선 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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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9화 '보호의 힘' VS '처벌의 힘'
교복을 벗고 발을 디딘 세상. 출구 없는 미로처럼 깜깜하고 외롭겠지만 날갯짓을 멈춰서는 안 돼. 꿈의 한계는 학교 울타리가 아니야. 너의 식어버린 열정이란다. -이정재, ’이제 내 이야기 좀 들어줄래요?‘, <낙인을 벗고 꿈을 입어라> 오직 생명이나 인권에 초점을 둘 때 보호하는 힘을 사용할 수 있다 상대가 대화할 의사가 없거나 위험이 임박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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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등은 체질에 안 맞아요
제목만 보고 이런 생각 한 사람 분명히 있을 거야. '대체 무슨 자신감이야? 누가 1등 시켜준대?' 라고 말이지. 조금만 참고 더 읽어봐. 지금부터 내가 말 하려는 건 단순히 자랑할 목적이 아니란 말이야. 내 경험에서 비롯된 솔직한 감정이라고. 대학 입시는 예상대로 참 어려웠어. 3년 내내 나름 노력했다고 생각했는데, 글쎄 지원한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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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부터 들려줄게, 록샌의 이야기
힙합은 어쩌면 음악에서 가장 ‘나’에 충실한 장르일지도 모르겠다. 그 말은 곧 ‘이야기’에 주목한다는 뜻일테고, 이는 멜로디보다는 가사에 집중하는 특성을 만들어낸다. 그 선후는 반대일 수는 있겠지만. 아무튼 힙합 속의 이야기가 어떻든 필연적으로 자신의 일부분이 떨어져 나가 가사로 승화되는 것은 분명하다. (물론 모든 예술이 그런 측면에 있지만) 그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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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모르겠다. 불편한 『가족어 사전』!
『가족어 사전』 나탈리아 긴츠부르그 지음 / 이현경 옮김/ 돌베개 강원도 춘천인지, 홍천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버스 정류장에서부터 집까지 아버지와 달리기했던 동네 골목길(이미지)에 대한 ‘분명치 않은’ 기억이 있다. 분명치 않다고 말하는 이유는, 내가 아는 과거 혹은 지금의 아버지를 떠올리노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모습으로 아버지가 등장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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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모두는 혼자의 시간이 필요하다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 지내고 있다. 그러나 아무리 좋아하는 사람들과 지낸다고 하더라도 나를 잃는다고 느낄 때가 있다. 나 자신과 대화하는 시간이 부족했기 때문이리라. 신년을 맞아 혼자만의 방을 찾아, 책이 있는 곳에 홀로 머물다 왔다. 그 누구와도 접촉하지 않고 책과 나와 글과 함께 하루를 보냈다. 외로울 법했으나 전혀 그렇다고 느껴지지 않았다. 내 안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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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랑블루
“난 당신이 해낼 줄 알았어요”, “당신이 아니고 딴사람이었으면 큰 사고 날 뻔했어요” 이 말들은 어려운 일이 있거나 사고가 날뻔했을 때 아내가 나한테 했던 말이다. 나를 기운 나게 하고 나쁜 상황에서도 스스로를 추스르게 하는 말들이다. 스킨 스쿠버는 깊은 물속에 들어간다는 자체로 공포를 느낄 수 있는 스포츠이다. 요즘은 장비가 워낙 좋아져서 크게 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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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양과 돌봄부터 문화·산업까지! 당신이 반려동물에 대해 알아야 할 모든 것
『쫑이야 놀자』 - 이동현 《야호펫》 이동현 편집장이 소개하는 2020-2021 반려동물 트렌드 2013년, 쫑이를 처음 만나던 때만 해도 이동현 작가는 동물과의 반려 생활에 대한 준비가 부족한 상태였습니다. 한 해 전부터 관련 분야에 관심이 생겨 ‘제1회 반려동물관리사’ 자격증을 취득해 두었지만 실전 경험은 빈약했고, 아내는 집에 동물을 들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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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아이와 어른의 시선
거짓말은 창의적이어야 한다. 다시 말해 새로운 내러티브를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봉준호 감독이 마틴 스콜세지 감독의 말을 인용해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인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사실 ‘가장 거짓된 것이 가장 창의적인 것’이다. 일상적인 혹은 너무나 진실한 이야기에서는 창의적인 것이 나올 수 없다. 변형과 비틂이 있어야 거짓말이 된다. 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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헨젤과 그레텔 - 가난이 죄야
‘과자집’하면 바로 ‘헨젤과 그레텔’ 이야기가 떠오른다. 만일 진짜 과자집이 눈앞에 있다면 먹고 싶을까? 물론 아이들이라면, 혹은 과자를 아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뜯어 먹고 싶은 마음도 들 것이다. 외국에는 민담으로 전해 내려오는 과자집을 실제로 구현해 보는 행사도 있다는데, 케이크 정도의 크기로 과자집을 만들어 보는 체험은 한국에도 종종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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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수(把守)] 언젠가는 무릎을 꿇지 않아도, 우리의 간구는 우리의 신과 우리의 부재와 우리의 언젠가를 안아줄 수 있으리
너는 내게 기도를 부탁한다 너는 나의 기도가 아니면 안 된다고 한다 너는 누구인데 네가 누구인데? 너는 내가 사랑하는 사물 중 하나인가? 내가 책임지고 어겼던 사람 중 하나인가? 내게 복수하러 왔어? 네가 뭔데, 내가 내가 아니고 내가 그 누구도 아닌 것처럼 너는 그저 완전한 그 누구 그 자체인가? 네가 너 자신의 빈틈없는 부재인 것처럼 혹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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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 Fly Tipping...팁을 날리지 말라고?
아래의 표현은 영국의 거리에서 볼 수 있는 문구 혹은 물품이다. 무슨 뜻인지 추측이 되는가? - No Fly Tipping - Skip Hire - Wheelie Bin 힌트 1 모두 ‘쓰레기’와 관련된 표현이다. 힌트 2 아래 각 사진을 참조하자. 1. No Fly Tipping Fly-Tip은 ‘쓰레기를 불법 투기하다’라는 뜻의 영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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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만 사랑할 거라는 게, 가능해?
“ 네가 날 이 정도로 좋아하는 줄은 몰랐지.” “ 너 생각보다 연애하는 데에 진지하구나.” 내 전 남자친구들이 나한테 했던 말들이야. 대체 평소 내 이미지가 어땠는지 모르겠지만, 자신과의 관계에 임하는 내 태도가 생각보다 진중하다며 걔네들은 놀라곤 했어. 그렇게 안 봤는데, 자신들한테 꽤나 순종적이고 바보같이 군다고 말이야. 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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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0화 낡은 규범에서 자유로워지기
사회적인 조건화에 의식의 빛을 밝히라 우리는 오랜 시간 동안 부모, 교사, 성직자 등의 사람들로부터 우리를 인간적으로 제약하는 문화를 학습하며 성장했다. 그리고 어느덧 수백 년간 우리 삶과 일상 속에 관습이 깊이 뿌리박혀 있다는 사실조차 의식하지 못한 채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아이가 자라 중학교에 진학했을 때의 이야기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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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에게 외로움이 있다는 위안
유난히 흐린 날. 쌀쌀한 비가 떨어져 올 것 같을 때. 구름인지 먼지인지 모를 회색빛 하늘이 깊은 속 마음을 대변할 때가 있다. 요즈음은 스스로 외로움을 선택하는 시대란다. 예전에는 고립됨으로써 외로워졌다면, 이 시대에는 은둔하며 스스로 외로움을 택한다고. 타인과의 연결이 쉬워진 만큼 공허한 마음이 들기도 쉬워서가 아닐까 싶다. 이 공허한 마음은 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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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란 무엇인가?' 번역이나 제대로 하자!
『역사란 무엇인가』 E.H.카 / 김택현 옮김 / 까치 조금 젊었을 때, 읽어두면 ‘폼(?)’ 잡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 때문에 이 책을 샀다. 그런데 매번 30페이지 정도 읽다가 포기했다. 책 내용도 어려웠지만 번역도 이상하고 오타도 많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번역자를 욕하면서 책장 한 쪽에 방치해 두었다. 그리고 적지 않은 시간이 흘렀다. 다시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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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향한, 첫 번째 대결
<퍼스트 매치>의 제목을 1차원적으로 해석한다면, 다시 말해 레슬러로서의 첫 번째 대결을 의미하는 것으로 받아들인다면 그 장면은 영화 초반 너무나 빠르게 등장한다. 그러나 스쳐지나가듯 휙 지나가버리는 이 부분은 영화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여성인 주인공이 남성 레슬러를 극복하는 순간인데도 어떤 카타르시스도 없다. 그도 그럴 것이, 도전을 위한 단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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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수(把守)] 바다를 좋아해서 물속에 발을 담가본 적이 없었다는 것을 나는 문득
보행기 몇 개를 부쉈다 * 애인의 손을 잡는다는 건 슬픔을 슬며시 속이는 일 * 나의 몸보다는 내 영혼의 재활이 더 빠를 것이라고 딴청을 부렸다 이렇게 저렇게 함께 찍게 된 사진들 속에서 아무도 알아볼 수 없는 브이를 하고 끝까지 남아있는 사람처럼 집중해서 몰입해서 * 진통제를 맞은 후가 제일 아팠습니다 진단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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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흑역사를 남겨둡니다
오늘은 남편에 대한 이야기를 쓰고 싶다. 아무래도 같이 사는 사람이니 그간의 글에서 간간이 등장하긴 했으나 3화에서 전면으로 다룬 것 외에 본격적으로 얘기하는 건 처음이다. 그도 그럴 것이 나는 남편 이야기를 하면 무조건 자랑을 하게 되기 때문에 말을 꺼내기가 두렵다. 진지하게 흉을 보거나 욕을 한 적도 거의 없다. 남편을 욕하는 게 내 얼굴에 침 뱉는 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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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들 왜 자꾸 싸우려고 들어?
오늘은 살짝 무거운 주제에 대해 얘기해보려고 해. 난 그동안 내가 겪었던 일들을 토대로 감정과 질문들을 나열하는 방식을 사용해서 글을 써왔어. 하지만 오늘 얘기할 주제에 내 경험은 어쩌면 하나도 중요하지 않아. 그만큼 예민하고 뜨거운 주제여서 말하기 꺼려지는 것도 사실이야. 그래도 누군가 내 얘기를 들어주는 유일한 이 공간에서, 내 의견을 말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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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1화 감사
감사 VS 칭찬 일상에서 감사의 표현을 나누는 것은 무언가 보상받고 싶은 마음이 아니라, 온전히 서로의 기쁨을 나누는 데 초점을 둔 행위다. 이는 오로지 서로 덕분에 충만해진 삶을 함께 축하하는 것이다. 삶의 언어로 감사를 표현하면 듣는 사람도 깊은 감동을 받는다. 동시에 말하는 사람도 자기표현의 기쁨을 알게 된다. 그런데 타인에게 감사의 말을 듣고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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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가 아닌 ‘그들’
‘인간관계’와 ‘인연’은 같은 말이다. 인연은 인간관계를 줄인 말이다. 실제로 국어사전에서는 ‘사람들 사이에 맺어지는 관계’를 인연이라고 정의한다. 그러나 나는 인간관계보다 인연이라는 표현이 더 좋다. 좋은 이유는 상상의 나래를 펼칠 수 있기 때문이다. 인간관계와 인연은 의미가 같고, 한자어라는 특성도 같다. 사람들에게도 동일한 단어로 인식된다.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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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이런 곳에서 수술을 한다고 그러지
아래의 표현을 알아두면 영국의 뉴스를 볼 때 도움이 된다. 무슨 뜻인지 추측해보자. - Surgery - MP - The noes have it 힌트 1 모두 ‘정치’와 관련된 표현이다. 힌트 2 아래 각 사진을 참조하자. 1. Surgery & MP 정치 현장에서 쓰이는 Surgery는 MP와 떼어놓고 설명할 수 없으므로 두 단어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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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서!' 그래서 읽고 싶다!
『일식』 히라노 게이치로 지음 / 양윤옥 옮김 / 문학동네 나는 이런 유의 소설을 ‘탐미주의耽美主義’ 로 분류한다. 글을 통해 아름다움을 탐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소설을 읽기 전까지는 탐미주의[1]의 의미를 잘 알지 못했다. “그 풍경에 나는 일순 전율했다. 소년은 할 수 있는 한 커다랗게 입을 벌리고 소리도 없이 웃고 있었다.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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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의 작은 새벽
시골의 새벽이 밝아옵니다. 새소리와 벌레소리가 친근하게 들려와요. 이토록 맑게 깨어있었던 적이 언제였나 싶어요. 잠들기 전에는 마음속에 먼지가 뿌옇게 차 있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꼭두새벽에 깨버린 잠에 오히려 마음이 깨끗해지는 것을 발견합니다. 모두가 잠에 빠져들어 조용할 때, 새와 풀벌레 소리만이 고요한 공기를 채울 때에 자연스레 맑아집니다.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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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워서 마냥 누워서 모든 것을 다 했지 천사처럼 마냥 천사처럼 세상에서 제일 쓸모없는 천사처럼
‘나’라는 단어가 지나갔다 그냥 지나갔다 * 침대에서 내려오기 위해 까마득한 절벽 위에서 까마득함보다 높이 떠있는 창문 없는 창가에서 뛰어내렸다 * 내려온 나는 가장 먼저 손때 묻은 것들 나의 흔적들을 뒤지기 시작했다 살아있었나 죽어있었나에서부터 왼쪽 엉덩이 점 전공서적 햇빛과 햇빛 사이의 눈사람들 꽉 쥔 손에서 자꾸만 빠져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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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푼젤 - 긴 생머리 그녀
긴 머리에 대한 로망을 가진 여성이라면 누구나 라푼젤을 부러워해 본 적이 있을 것이다. 필자 또한 긴 머리를 선호하는데, 라푼젤만큼 머리를 기르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엉뚱한 의문을 가진 적도 있었다. 물론 그런 방법이 정말 있다 해도 실행하기는 어려웠겠지만 말이다. 라푼젤 이야기도 사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버전이 원형은 아니다. 독일의 설화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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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이오가 창작자를 찾습니다.
글쓰기의 시작, 북이오 〈프리즘〉 북이오 작가는 북이오의 연재 채널 〈프리즘〉에서 매주 한 편씩, 총 25~30편 내외로 기획된 콘텐츠를 연재합니다. 작가가 글을 연재하는 동안 북이오는 온라인 매체(SNS, 뉴스레터 등)를 통해 노출을 지원하며, 연재 완료 전까지 작가가 든든한 독자층을 확보할 수 있도록 힘씁니다. 출판의 시작, 북이오 에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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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슴이 뭘 한다는 거지?
아래의 표현은 사람들의 모임에 관한 것이다. 사전을 이용하지 않고 무슨 뜻인지 추측해보자. - Stag Do - Hen Night - ABC Party 힌트 1 모두 ‘파티’와 관련된 표현이다. 힌트 2 아래 각 사진을 참조하자. 1. Stag Do Stag - 수사슴 Do - 파티 (비격식) Stag Do: 총각 파티 미국식: B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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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 대하여...
『너무 시끄러운 고독』 보후밀 흐라발 지음 / 이창실 옮김 / 문학동네 이런 유의 소설을 읽으면 기분이 더러워진다. 삶의 모든 것을 바쳐 폐지 압축공으로서 살아온 주인공이 끔찍한 죽음으로 삶을 마감하기 때문이다. 일부 평론가들은 ‘장인 정신’이니 ‘예술혼’이니 하고 떠들지만, 비전문가인 내가 볼 때는 헛소리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인생의 황혼녘 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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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2화 에필로그
“내가 너처럼 어렸을 적엔 세상 모든 게 무서웠지.” “정말요?” “그럼. 하지만 이렇게 나이가 들고 보니, 내가 사랑하는 것을 잃는 게 가장 무섭단다. 그러니까 이 할머니 얘기는 바로 그런 거야.” “그럼 저를 못 보는 것도 무서우세요?” 윌리엄이 물었어요. “그렇고말고. 우리 윌리엄을 못 볼까 봐 정말 무섭지.” 할머니의 말을 듣고 윌리엄이 다시 말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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캠퍼스 커플_1
대학생인 친구와 재수하던 나는 함께 술을 마실 때면 내가 합격만 하면 여자친구를 책임지겠노라고 서로 호언장담했었다. 결국 난 친구와 같은 대학에 들어갔고 입학한 지 한 달이 채 안 되었을 때 친구가 강의실로 찾아왔다. 우리가 교양학부 건물을 나서자 대학 내 각종 클럽이 신입생 대상 홍보를 위해 진을 치고 있었다. 친구도 전단지 한 장을 가져와 가입하라며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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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인문학
한 인터넷 뉴스사에서 대학교 신문사(이하 학보사)별 기자들의 칼럼을 싣고 싶다는 연락을 받았다. 어떤 내용을 써야 할지 고민하다가, 다른 학보사 기자들, 편집국장들이 작성한 칼럼의 내용들을 염탐해보았다. 그들은 각자의 관심사를 주제로 삼았다. 누구는 청년 주택난, 누구는 세월호, 또 다른 이는 양천구 아동학대 살인사건이었다. 패기. 나는 그들을 ‘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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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라는 여행
삶과 여행은 비슷한 점이 참 많은 듯하다. 인생은 여행이며, 삶을 마친다는 것은 하나의 여행을 끝내는 것과 같은지도 모른다. 끝나가는 여행을 아쉬워하는 사람도 있는가 하면 얼른 여행을 끝내고 싶어 하는 사람도 있다. 여행 스타일 또한 사람마다 참 다르다. 누군가가 정해준 패키지 상품을 통해 여행사에 여행 계획을 맡기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오롯이 자유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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캠퍼스 커플_2
강의실이 변경되어 과 대표가 강의실을 알아보고 돌아왔는데 날 보더니 놀란 표정으로 말했다. “어? 너 여기 있었네.” “어떤 이를 봤는데 넌 줄 알았어.” 자세한 이야기를 안 해서 그런 줄 알았다. 우리는 변경된 강의실이 있는 문리대 건물로 이동하였다. 이동 중 멀리 호숫가 길에 그 아이가 어떤 남학생과 걷는 모습이 보였다. 과 대표가 그 아이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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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어의 관계를 재설정하며 되짚어보는 일상과 세계
『불협단어 변주곡』 - 신비 일상과 이상, 아끼다와 낭비하다, 인정하다와 부정하다. 이 세 쌍의 단어를 보고 여러분의 머릿속에 가장 먼저 떠오르는 생각은 무엇인가요? 맞습니다. 이들은 서로 반대되는, 혹은 반대에 가까운 의미를 지닌 단어들입니다. 사전에서 뜻풀이를 찾아보면 이런 생각은 확신으로 굳어지지요. 그런데, 정말 꼭 그렇기만 한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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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rong>호기심이 사라졌다</strong>
집 나간 호기심을 찾아라! ‘너는 어떻게 살고 있니’로 시작되는 여행스케치의 노래에는 우리네 인생살이가 담겨 있어 즐겨 듣는 편이다. 가사 전체에 따뜻한 말들이 가득하지만, 내가 특히 좋아하는 구절은 ‘알 수 없는 내일이 있다는 건 설레는 일이야’라는 부분이다. 우리는 늘 두려움과 설렘을 겪으면서 살아간다. 하지만 설렜던 일보다 두려웠던 기억을 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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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커서 집이 될 것이었다 아무도 초대하지 않아 외로울 틈도 없는
집의 심장은 빈집 산책이 와서 산책을 나갔다 산책을 가기 위해서는 긴 산책만큼의 준비가 필요했다 물론 산책이 문을 두드려주지 않았다면 산책을 나가지 않았을 것이다 새가 뜨지 않는 도시에서 아주 우연히 다친 새를 만난다면 좋겠다 만난다면 내가 더 아프다는 것처럼 환하게 웃어줄 것이다 없는 다리로 번쩍― 손을 내밀어줄 것이다 산책이란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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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지 말고 빌려 읽자! 시오노 나나미의 '전쟁 3부작'
시오노 나나미 전쟁 3부작 : 『콘스탄티노플 함락』, 『로도스섬 공방전』, 『레판토 해전』 시오노 나나미 지음 / 최은석 옮김 / 한길사 시오노 나나미의 대작 『로마인 이야기』를 읽어 보았기에 그녀가 쓴 이 작품을 선택하는 데 망설임은 없었다. 그녀는 문명과 문명 사이의 전쟁을 그려보고 싶었다. 그러나 그녀가 글을 쓸 수 있는 범위는 르네상스 시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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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하다 보면
이 글을 보는 사람은 누구나 다 살아가는 중이다. 우리는 살아왔고, 살고 있고, 살아갈 것이다. 그러나 누구는, (보다 정확히) 나는, 버티는 중이다. 사람들은 누구나 각자의 걱정을 가지고 살아간다. 아직 걸음마를 떼지 못한 어린아이도, 지혜는 많지만 몸이 따라주지 않는 노인도, 팔팔한 이십대의 청춘도 각자의 걱정이 있다.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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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할아버지처럼 살지 않을 거예요
그때를 기억하세요? 제가 제일 좋아하던 닭꼬치를 사러 갔던 날이요. 할아버지의 반보다 조금 컸던 전 주름진 그 손을 꼭 붙잡고 논길을 걸어갔어요. 하나에 천 원씩 하던 닭꼬치를 할아버지는, 제가 좋아한다는 이유만으로 스무 개나 사주셨었죠. 그 논길을 두 시간 동안 천천히 되돌아가면서 닭꼬치를 열 개나 먹어버린 저를 보고도 할아버지는 꾸중은커녕, 혹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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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rong>나 아니면 안 된다는 생각들</strong>
불안증은 선물이자 축복이다. 직장 생활 초기를 회상해보면 제2의 인생에 대한 희망과 기대도 컸지만, 조직에 적응해 가면서―그 당시에는 깨닫지 못했으나―불안증이라는 독초도 마음속에서 점점 자라나고 있었다. 여러 번의 인사이동 끝에 기획팀장을 맡은 적이 있었다. 전체 부서 업무를 조정하고, 회사가 나아갈 방향에 대한 기획을 총괄하는 자리다. 자리의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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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aol이 아니라 Goal 아닌가요?
아래는 영국의 신문과 TV 방송 등에서 볼 수 있는 단어들이다. 생소하지만 문맥으로 맞출 수는 있다. - Kerb-Crawling - Gaol - Nick 힌트 1 모두 ‘범죄’와 관련된 단어이다. 힌트 2 아래 각 사진을 참조하자. 1. Kerb-Crawling Kerb - (도로) 연석, 경계석 미국식: Curb Kerb-Craw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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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에 대해 생각하기보다 삶으로 존재하기
무언가 한 가지 생각에 사로잡히게 될 때, 쓸데없는 걱정과 좌절감이 들 때가 있다. 일어나지 않은 일에도 미리 걱정하고 불안해하거나, 막막함에 우울해지기도 한다. 삶에 대해 지나치게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삶의 의미가 무엇인지, 삶이란 무엇인지. 영화 〈소울〉은 이렇게 지나치게 생각하기보다는 삶으로 존재하는 것, 그저 ‘주어진 삶을 사는 것’에 대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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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만화는커녕 텔레비전 보는 것 자체를 탐탁잖게 생각하시던 부모님께서 시간만 되면 꼭 보라고 말씀하셨던 프로그램이 있었으니, 바로 〈동물의 왕국〉이다. “사람은 뉴스를 봐야지” 이야기하시는 아버지도, 그때나 지금이나 한결같이 드라마를 좋아하시는 어머니도 그 시간만 되면 리모컨을 쥐어주셨다. 나에게는 〈동물의 왕국〉이 뉴스였고, 드라마였다. 암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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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너는 소녀였고 애인이었고 미인이었다 내가 모르는 이름으로 나의 모든 순간을 건너오고 있었다
과거의 나는 멈추지 않고 이렇게, 아름다워지고 있을 뿐인데 * 너의 손을 잡고 뛰었다 내가 혼자라는 것을 혼자에게 들키지 않으려고 너는 안중에도 없었다 너는 고맙다고 말했다 자기를 안중에도 없어 해줘서 우리,라는 말에는 너도 나도 모르는 우리만의 결말이 있었고 특히나 밤이 깊다고 느껴지는 날에는 책상 밑으로 숨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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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실력은 위기에서 드러나는 법이지."
첫 직장에서 나의 부서는 홍보팀이었다. 아마 홍보팀을 경험한 사람이라면 공감할 텐데, 홍보는 진중함과 가벼움 사이에서 아슬아슬 외줄 타기하는 것에 가깝다. 너무 진중하면 ‘노잼’이라고 욕을 먹거나 그보다 무서운 ‘무관심’을 받게 되고, 그렇다고 너무 가벼우면 ‘생각 없이 만들었냐’는 비난을 받거나 사과문을 작성해야 하는 일이 생긴다. 메시지는 메시지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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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점이 적은 사람보다 장점이 큰 사람이 되렴.”
‘이럴 줄 알았으면 학부 때 디자인 자격증이라도 따 놓을 걸.’ 비록 학보사 편집장까지 맡아본 바 있지만, 본격적인 ‘업’의 세계는 학생 때의 그것과 달랐다. 학생 때는 주어진 일만 잘 수행해도 100점이었고, 조금만 더 나아가면 ‘오오 능력자 오오’하는 소리를 듣기도 쉬웠으니까. 하지만 실제 업무의 세계는 달랐다. 내가 갖고 있는 기술이 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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냅킨이 육아용품이라고?
아래는 영국의 부모들이 주로 사용하는 물품이다. 무슨 뜻인지 추측이 되는가? 사전을 먼저 펼치면 추측하는 재미가 없다. - Nappy - Dummy - Pushchair 힌트 1 모두 ‘육아’와 관련된 단어이다. 힌트 2 아래 각 사진을 참조하자. 1. Nappy Nappy는 기저귀라는 뜻의 영국식 단어이다. 위 사진처럼 활동량이 많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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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말리는 차 애호가와 떠나는 망망차해(茫茫茶海)로의 여행
『찻잔의 곁』 - 노시은 우리 모두에겐 운명적인 ‘첫 만남’이 적어도 하나씩은 있습니다. 집 마당에 들락거리던 길고양이 한 마리를 사랑하게 되면 모든 고양이가 예뻐 보이고, 술이라면 질색을 하던 사람이 눈이 번쩍 뜨일 만큼 맛있는 와인을 마시고는 매혹적인 술의 세계에 빠져들기도 하지요. 『찻잔의 곁』 노시은 작가에게는 학창 시절 선물 받은 홍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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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위에 사람 있다
다들 실시간 검색어 봤어? 서울의 유명한 어학원에서 일어난 강사의 배달원 폭언 사건 말이야. 일을 겪은 배달 대행업체가 강사와의 통화 녹취록을 공개하면서 큰 파장이 일어났어. 상황이 담긴 그 동영상을 직접 들어볼 사람은 인터넷에 검색해봐. 단, 듣기 전에 마음의 준비를 좀 하도록 해. 스스로 굉장히 대단한 사람이라는 그 여자의 말이 못 들어줄 정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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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rong>프롤로그</strong>
“너, 인생이 뭔지 아니? 그냥 목적지 없이 걷는 거야. 물론 걷다 보면 길을 잘못 들 수도 있고, 물가에 빠져 허우적댈 수도 있지. 하지만 계속 가다 보면 그곳에서 웃고 서 있는 너 자신을 발견하게 될 거야. 누가 아무리 네 다리를 걸어도 그냥 걷다 보면 목적지가 나와. 때론 너에게 달려들어 우는 사람들도 있을 거야. 그러면 덜컥 안아줘 봐. 그게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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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이냐 '예술'이냐 그것이 문제로다! 클라우스 만의 『메피스토』
클라우스 만 『메피스토』 클라우스 만 지음 /오용록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 클라우스 만의 ‘메피스토’는 권력자가 요구하는 예술과 빵을 위하여 예술가로서의 자존심을 팔아가는 ‘헨드릭 회프겐’의 변절 과정을 묘사하고 있다. 헨드릭 회프겐은 출세를 위해 브루크너 추밀원[1] 고문관의 딸인 ‘바르바라 브루크너’와 결혼한다. 그러나 바르바라에 대한 자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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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년 만의 동거
제주에서 6개월간 지내다가, 잠시 본가에 올라왔다. 자연스레 부모님과 살게 됐다. 독립했던 기간이 8년이라 처음에는 걱정도 많이 했다. 서로 사랑하지만 가치관이 너무나 다른데 함께 지낼 수 있을까? 걱정한 것과 다를 바 없이 함께 산 지 얼마 되지 않아 거의 1주일간은 부모님과 불같이 다투었다.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에 대해서 서로의 입장을 고수하면서.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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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누구인가
네이버 NOW에서 진행했던 오디오 쇼 ‘철부지들’을 드디어 마무리했다. 철학을 쉽게 풀어내고, 인문학적인 내용을 오디오로 나누고자 시작한 라디오 방송의 진행을 맡았었다. 예상과 달리 대부분 시간이 청취자들의 고민 상담과 나의 쓸데없는 이야기로 점철되면서 마무리가 되어 조금 아쉽긴 했지만. 매번 시작할 때는 자기소개를 했다. 매주 “안녕하세요. ○○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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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어떻게 돈이 될 수 있어요
약속이 법이라니요? 시간이 어떻게 돈이 될 수 있어요. “언제, 어디에서, 몇 시에 만납시다.” 프리랜서로 일하는 나는 일을 할 때나 친구를 만날 때 약속과 시간 엄수에 민감한 편이다. 일주일간의 스케줄을 관리하고, 가족을 만날 때도 먼저 상대의 의사를 묻고 약속을 잡는 것이 이제는 습관이 되어있다. 처음 정착을 시작하던 시기에는 상상도 못 하던 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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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비되지 않은 자유
“무엇이든 할 수 있어. 어떤 일이든 시작해봐. 선택했으면 책임을 져야지. 그게 자유야.” 자유를 찾아온 나에게 만나는 사람마다 우격다짐으로 ‘자유’를 설교하려 들었다. 이런 건 내가 원하던 ‘자유’가 아니었다. 나는 궁지로 내몰리는 생쥐처럼 점점 두렵고 숨이 막혔다. 하나원[1]을 나와 임대주택을 배정받은 후 처음 집 문을 두드린 사람은 도우미 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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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자’ 나도 내가 싫다
하나원을 나오면서 인천의 임대아파트를 배정받았다. 빈집에서 첫날을 보내고 난 후 이런 생각이 들었다. ‘뭐 먹고살지?’ 하나원에서 지하철 타는 법, 은행에 돈 넣고 빼는 방법을 배웠다. 그게 다였다. 남한 사회에 대해 아는 거라곤 그것밖에 없었다. 만나는 사람마다 어떻게 살아야 되는지 설교를 늘여놓았다. 하지만 귀에 담기지 않았다. 몇 달을 멍한 상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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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망과 희망 사이 49 vs 51
남한에 온 후로 ‘탈북자’인 내가 뿌리 없는 나무 같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었다. 겉모습은 멀쩡해 보이지만 실상은 뿌리가 잘린 채로 남의 땅에 위태롭게 서있다는 느낌이었다. 추석이나 설이면 갈 곳이 없어 빈집에 덩그러니 혼자 있었다. 생일날은 엄마 생각에 울 것 같아 애써 바쁘게 지나 보냈다. 좋은 일이 있어도, 투정 부리고 싶은 순간에도 기대어 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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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꿈이 뭐야?
‘꿈’에 대해 처음 고민한 것은 남한에 와서 몇 년이 지난 후였다. 그전까지는 살아내는 게 버거워 꿈을 꾸는 것도 사치라고 생각했다. 대학교를 중퇴하고 일용직으로 하루를 버티던 시기, 거지 같은 내 운명을 한탄하며 우는 시간이 많았다. 그러던 어느 날 번개같이 강렬한 소리가 뇌리에 날아와 꽂혔다. ‘너는 왜 벽을 밀겠다고 울고 앉았니? 문을 찾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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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깨어있어야 한다! 『상군서』
『상군서』 상앙, 장현근 지음 / 살림출판사 나는 이 땅의 지식인들을 존경하지 않는다. 아니 경멸[1]한다. 지식과 양심을 팔아 권력자에게 야합[2]하고 결국엔 이 나라를 망치고 있기 때문이다. 종교, 정치, 사회, 교육, 군, 사법 등 이 나라 어떤 구석을 보아도 멀쩡한 곳이 없다. 2017년 광화문의 ‘촛불혁명’도 지식인들의 힘으로 이루어진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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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logue
맹자가 어머니와 처음 살았던 곳은 공동묘지 근처였다. 맹자는 장례 지내는 놀이를 하며 놀았다. 이를 본 맹자의 어머니는 시장 근처로 이사를 했는데, 맹자는 주변 시장의 장사꾼들을 따라 하며 놀았다. 이 모습을 본 맹자의 어머니가 학교 근처로 이사를 했더니 그제서야 공부하는 모습, 제사 지내는 모습 등을 흉내내며 노는 것이었다. 맹자 어머니는 그곳에 머물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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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은 건 많지만 가고 싶은 덴 없다
새벽에 깨서보니 나는 아직 꿈속이었고 주변은 내 땀으로 흥건했다 옷을 벗었다 옷을 벗는데 하루가 다 가버렸다 무척 중요한 약속이 있었는데 지키지 못했다 다시 옷을 입어야지 밤을 새 옷을 갈아입고 아직 꿈속이라는 생각에 조금 무서웠다 그렇게 공포가 문을 따고 들어왔다 (실은 공포였는지 권태였는지 아니면 내 그림자였는지는 확신할 수 없었다) 그는 휠체어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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받음, 그리고 나눔
굳이 MBA를 텍사스로 간 이유가 뭐예요? MBA 입학을 준비할 때, MBA를 하면서, 심지어 졸업 후 버지니아에 옮겨와서까지 꽤 많이 들은 질문이다. 아무래도 텍사스에 대한 한국 사람들의 인식은 ‘사막, 석유, 그리고 카우보이’ 정도여서일까? 텍사스에도 한국 사람이 많냐? 라든가 거기도 사람 살만한 곳인가? 하는 등의 질문에 어디서부터 대답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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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p] 착석 못하는 아이를 위한 코어 운동 - 1
코로나로 인한 온라인 수업이 계속되는 요즈음, 수업에 집중하지 못하고 집 안을 날아다니는 아이들과 씨름하느라 고생하는 부모들이 많다. 성인들도 쉽지 않은 것이 온라인 수업인데 아이들에겐 하루에 몇 시간씩 모니터만 쳐다보는 게 얼마나 고역일까. 보통 아이들이 힘들다면, 그렇지 않아도 집중력이 짧은 자폐 아동들의 온라인 수업이 얼마나 어려울지는 말씀드리지 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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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자폐아를 위한 학습 교구-1
필자가 자폐 아동을 키우고 있기에 아무래도 일반 아동을 키우는 부모보다 교습법에 더 신경을 많이 쓰게 되고, 다양한 테라피와 교구에 대해 찾아보고 체험해보곤 한다. 이번 글에서 다룰 ‘텐 프레임 보드Ten-Frame Board’도 덧셈과 뺄셈을 쉽게 가르치는 방법을 찾다가 알게 된 교구이다. Magnetic Ten-Frame Answer B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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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가 어디에 있나요?
아래는 영국의 건물마다 볼 수 있는 장소와 관련된 단어이다. 사전을 이용하지 않고 무슨 뜻인지 추측해보자. - Queue - Loo - Tap 힌트 1 모두 ‘화장실’과 관련된 단어이다. 힌트 2 아래 각 사진을 참조하자. 1. Queue Queue는 줄 서서 기다리는 것을 뜻하는 영국식 단어이다. Queue: 줄, 줄을 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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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같은 만남_1
2박3일에 일요일로 이어지는 양양으로의 출장은 휴가 같은 일정이었다. 오전에 모든 일을 끝냈지만, 잠깐이라도 동해나 설악산에 들르기 위해 서울 가는 고속버스 표를 다음날 마지막 시간으로 예매했다. 주말이어서 이곳 직원들과는 일찌감치 송별 겸 회식을 하고 헤어졌다. 이미 해가 떨어지기 시작해서, 별도의 다른 일정을 잡기보다는 숙소에 비디오 기기가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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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는 말
시골로 이사와 땅을 구입하고, 집을 짓고 살기 시작한 지 올해로 꼭 19년이 되었다. 강산이 바뀐다는 말을 절감하고 있고, 세월이 흐른 만큼, 내 생각과 생활도 바뀌었음을 알 수 있게 되었다. 도시에서 태어나 자라 시골에 관해 아무 것도 아는 것 없이 무작정 귀촌을 했고, 그만큼 많은 시행착오와 우여곡절을 겪으며 이제 겨우 시골생활에 관해 조금 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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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 빼기의 기술
카페 안에서 창 밖을 바라보니, 다양한 사람들이 각각 다른 스타일의 코트를 입고 빠르게 지나쳐 간다. 문득 궁금해진다. 이 사람들은 각각 무슨 일을 하는 사람들일까. 자신의 일을 사랑하고 있을까? 일과 자신을 얼마나 일치시키고 있을까. 일과 나는 얼마나 닮아있어야 할까. 혹자는 이야기한다. 직업은 그저 돈을 벌기 위한 수단이고 인생의 다른 부분에서 정체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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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같은 만남_2
그녀가 길모퉁이를 돌아갔다. 돌아선 담벼락에는 작은 불빛에 흔들리는 포장마차가 서 있었다. 그녀가 안으로 들어갔고 나도 따라 들어섰다. 포장마차는 붕어빵, 어묵 등을 팔고 있었고 영업이 끝났는지 주인처럼 보이는 젊은 여자가 마칠 준비를 하며 들어서는 나에게 말했다. “죄송한데요. 영업 끝났습니다.” “아니, 나 따라온 아저씨야.” 그녀가 나를 변호하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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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무엇이든
한 정치 정당이 주최하는 간담회가 있었다. 정치인들이 대학 신문사 기자들과 함께 청년의 고민을 나누는 장을 가지겠다는 의의였다. 그런데 주제가 좀 이상했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20대 청년들의 일자리, 주거지 등 고민을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하는 자리’가 이 간담회의 주제였다. ‘~등 고민을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하는 자리’라는 표현은 애매할 뿐 아니라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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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라고 쓰고 '반성'이라고 읽는다. 『권력과 교회』
『권력과 교회』 김진호 지음/ 강남순, 박노자, 한홍구, 김응교 대담 / 창비 중년의 어느 시점인가, 이 땅의 ‘기독교(가톨릭을 제외한 개신교를 의미)’가 정상적이지 않음을 깨달았다. 헐벗고 굶주린 이웃을 보살피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외면하고 세상일에만 열심을 다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 언제부터 이 땅의 기독교는 하나님의 말씀을 외면하고 헐벗고 굶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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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것들과 나쁜 것들
- 이솝 우화 「좋은 것들과 나쁜 것들」 중에서 “[00대] 합격을 축하합니다! 등록 기간 2월 00일.” 문자 한 통에 가슴이 그렇게 뛰기는 처음이었다. ‘대학 가면 너 하고 싶은 거 다 해’ 말씀하셨던 부모님의 이야기가 곧 현실이 된다. 시간표를 내가 직접 짤 수 있다니, 캠퍼스 생활은 또 얼마나 멋질까? 와, 나도 대학생이다! ‘어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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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rong>나는 죽지 않을 줄 알았다</strong>
죽음은 가장 확실한 가능성이다. 비가 추적추적 내린다. 오늘은 이 빗줄기를 타고 한없이 올라가고 싶다. 비록 그 끝이 어디인지 모르지만, 무작정 오르고 싶은 날이다. 어린 시절, 세상 곳곳을 누비는 상상 여행을 떠나곤 했다. 마음속에서 상상의 나래를 펴다 보면 가지 못할 곳이 없었다. 어느 날인가는 미국에서 포틀랜드 등대Portland He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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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이월과 십삼월 사이에 부는 바람은 나무에 걸어둔 잎마다 죽은 별들의 지문을 새겨놓는다
어디론가 몰래 자주 사라져버리는 나를 보았다 자주 자주가 아니라면 나라는 가끔도 성립되지 않았다 다만 오로지 어디론가를 위한 일이라 다짐하면서 배회하고 있었다 손을 흔드는 대신 새를 붙잡고 다리 대신 펴두었던 일곱 번째 다음의 일곱 번째 날개를 질질 끌면서 잘 지내고 있었다 너라는 가혹과 나라는 가끔은 이렇게 단 한 번의 마주침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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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빼미의 본능은 밤에 나는 것이다
한국 사회에서는 정해진 루틴에 맞추어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걸 ‘부지런하다’고 표현한다. 사회는 반복적이고 고정된 생활을 오래 수행할 수 있는 사람을 좋아한다. 이는 내가 존경하는 인간상 중 하나기도 하다. 나는 전통적이고 보편적인 사회적 틀 안에서 항상 게으르고 미숙한 사람이었다. 실제로 규칙적인 생활은 내게 맞지 않았고, 낮보다는 밤이나 새벽이 더 좋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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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릉도 여행기
여행을 가고 싶다. 업무의 압박에 시달려 매일 악몽을 꾸는 이 현실에서 도피하고 싶다. 생각 외로 일이 많고 버겁다. 오죽하면 퇴근하는 길에는 아무 생각 없이 보는 예능과 먹방만 보게 된다. 조금이라도 생각을 요하는 영상은 구토가 올라오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우연치 않게 여행을 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지난해 혼자 울릉도에 갔었는데, 그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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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도 여행기
이 여행기 시리즈를 지금 처음 보는 독자는 반드시 이전의 「울릉도 여행기」를 읽고 오기를 추천한다. 이 글이 울릉도 여행기의 연장선상에 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독도는 우리 땅’이라는 사실을 부정하지 않을 것이다. 이전 글에서 밝혔듯, 책에서 배우지 못하는 것도 있다. 그것을 독도에서 더욱 확실히 깨달았다. 흔히 말하는 ‘국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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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다시 돌아와서
“교수님 돈 많으세요?” 당돌했던 1학년 시절의 질문이었다. ‘수십 년 전에 철학을 했다→철학을 하려면 돈이 많아야 한다→수십 년 전에 돈이 많으셨다→지금도 많으실까?’로 이어지는 생각의 프로세스였다. 실제로 집안 대대로 병원을 물려준다고 하니 그 의문은 더욱 커졌고, 교수님은 사람 좋은 웃음으로 위기를 넘겼다. 그렇게 식사를 이어나가려던 찰나 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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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 그토록 바쁜 직장인이 이토록 글을 쓰는 이유
불과 수개월 전만 해도 직장인인 내게 글쓰기는 사치였다. 직장인의 글쓰기란 워라밸이 확실하거나 몸과 마음이 편한 회사를 다닐 때만 가능하다는 편견이 있었고, 과거에 썼던 글을 이제 와서 읽어보면 어디론가 숨고 싶을 정도로 창피한 경우가 많아서 제대로 글을 쓰는 것에 대한 두려움도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아무리 바쁜 직장인이라고 하더라도 더욱 치열하게 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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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이란 무엇인가
우리의 삶에서 ‘집’이 갖는 의미는 무엇일까. 세상에는 사람 하나가 겨우 누울만한 좁은 공간인 쪽방, 닭장집부터 아흔아홉 칸 고대광실高臺廣室 한옥집, 백 평이 넘는 펜트하우스 최고급 아파트까지 다양한 ‘집’이 있다. 집은 그 안에 살고 있는 사람의 ‘존재’를 증명하는 아이콘이기도 하다. 아니, 자본주의 사회에서 ‘집’은 철저하게 계급적 아이콘이 맞다. 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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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rong>지하철을 타고 길을 건너라고요?</strong>
아래는 영국의 거리에서 볼 수 있는 표현이다. 사전을 이용하지 않고 무슨 뜻인지 추측해보자. - Subway - Lay-by - Hard Shoulder 힌트 1 모두 ‘도로’와 관련된 표현이다. 힌트 2 아래 각 사진을 참조하자. 1. Subway Subway - 미국식 ‘지하철’ / 영국식 ‘지하도’ Underground - 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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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한 것을 주저 않고 밀고 나가면 돼
오랜만에 고향 친구를 만났다. 나는 결정이 아주 느린 편인데, 심지어 결정 후에도 내 선택이 옳은 것이었나 다시 곱씹어 고민하는 경향이 있었다. 글로 쓸 때에는 늘 확고해지는 것이, 글로 쓰지 않을 때는 결정이 정말로 옳았는지 검열하기 바빴다. 그래서, 내 선택이 옳지 않은 것일까 봐 더더욱 노력하지 않은 것일까. 한 가지 길에 몰입하지 못하고 잠시 헤매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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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주치는 사람들이 결정하는 도시의 온도
눈이 아주 많이 오는 날, 혼자 목포에 왔다. 혼자 낯선 곳에 떨어져 보는 것은 또 오랜만이라 마음이 쿵쿵댔다. 꽤 무거운 캐리어를 택시에 겨우 실었다. 택시 아저씨가 퉁명스러운 말투로 목적지를 묻는다. “거기가 어디라고요? 거기가 어디여.” 구수한 사투리로. 전남권의 사투리가 친근하게 느껴져서 웃음이 나왔다. 아저씨에게 목포가 좋으냐고 여쭸다. 좋으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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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료 후기] 미국에서 경험한 Music & Horse Therapy
* 필자 부부가 함께 만드는 YouTube 채널 “자폐, 함께 걸어요”에 소개된 영상을 글로 옮긴 것입니다. 태민이는 2017년도에 미국에 왔을 때부터 각종 치료Therapy를 받기 시작했다. 학교 시간표에 언어치료Speech Therapy, 작업 치료Occupational Therapy 등이 포함되어 있기는 하지만, 아무래도 만족스러울 만큼 충분한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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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갈 수 없는 이유
격무에 지쳐 들어온 2019년 어느 날 저녁, 전혀 예상치 못했던 반가운 이메일을 받았다. 전 회사에서 같이 일했던 S 차장님이 사보 문화공간에 실을 원고를 부탁해 온 것이다. 재직 중에도 종종 다양한 칼럼을 쓰곤 했지만 유학을 나오면서 어쩔 수 없이 그만두었었는데, 퇴사한 이후에 다시 글을 실을 기회가 오다니? 기쁘면서도 뭔가 묘한 기분이었다. 모두 잠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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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rong>나는 내가 싫었다</strong>
역사는 지금, 이 순간에도 만들어진다. 어려서부터 중학생 시절까지는 나 자신을 꽤나 싫어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키는 컸으나 많이 마른 편이라 왜소하게 보여 싫었고, 내성적인 성격으로 남들 앞에 나서길 꺼리는 나 자신이 너무도 싫었다. 하체보다 상체가 빈약하여 어떤 옷을 입어도 잘 어울리지 않는 점도 싫었다. 남들보다 잘하는 분야가 없다는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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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도르 마라이의 인생 이야기. 『열정』 그리고 『유언』.
『열정』, 『유언』 산도르 마라이 지음 / 김인순 옮김/ 솔출판사 산도르 마라이의 『열정』은 24년 동안 우정을 쌓아온 친구 콘라드와 사랑하는 아내 크리스티나의 배신을 기억의 한구석에 묻어두고 41년을 기다려온 헨릭과 콘라드의 하룻밤 대화를 기록한 작품이다. 그래서 『열정』은 헨릭의 콘라드에 대한 분노와 극적인 반전을 수반隨伴한 복수 이야기리라 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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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혀진 독립운동. 『조선공산당 평전』
『조선공산당 평전』 최백순 저 / 서해문집 “이승만? 우리 민족을 왜놈(일본)으로부터 해방시킨 분이지.” “박정희? 대한민국을 잘살 수 있게 만드신 분이지.” “전두환? 위기에 처한 이 나라를 빨갱이들로부터 구한 분이지.” 세 명의 전직 대통령에 대한 어느 80대 노인분의 말씀이다. 그러나 이는 사실이 아니다. 이승만. 친일파를 색출하고 처벌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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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써라! 『글쓰기의 최전선』
『글쓰기의 최전선』 은유 지음 / 메멘토 중학교 학습 과정의 일부로 시작된 나의 글쓰기 키워드는 ‘서론, 본론, 결론’이었다. 당시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을 읽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이러저러한 이유로 데미안을 읽게 되었으며 줄거리는 이러하고 이러해서 결론은 저러한 ‘교훈’을 얻을 수 있었다.”라는 식의 모범적(?)인 독후감을 썼다. 그러나 이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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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장이 물었다. 그래서 네 의견은 어떤데?
인생이 그러하듯이 직장 생활에도 몇 번의 전환점이 찾아온다. 그 전환점이 부서 발령, 승진, 이직과 같이 눈에 보이는 것일 때가 있고, 누군가와의 대화와 같이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일 때도 있다. 내게도 그런 전환점들이 있었는데, 그중에 한번은 내 일상에도 큰 변화를 가져온 소중한 경험이었다. 당시 갑자기 팀장님이 바뀌었다. 멀찌감치 바라봤을 때 합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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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점짜리 이메일은 포기하고 세 가지만 기억하자
직장인들이 하루 업무 시간 중에 가장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것은 이메일 관련 업무다. 조사 기관에 따르면 업무 시간의 20~30%를 이메일을 읽고 답하고 관리하는 데 사용하고 있다. 그래서 그런지 이메일을 잘 쓰는 법, 관리하는 법에 관한 글들이 넘쳐난다. 이런 글들을 읽고 있으면 내가 정말 이메일을 못 쓰는 사람처럼 느껴질 정도다. 이거 해라, 저거 조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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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표 자료 준비하는 게 어렵다고? 자, 따라 해 봐
발표 자료 만드는 것이 어렵다는 직장인이 많다. 발표 자료는 말 그대로 ‘발표’ 더하기 ‘자료’다. 발표도 잘해야 하고, 자료도 잘 만들어야 한다. 발표는 외워서 하든 리허설을 백 번 하든 어떻게든 해볼 수 있다. 하지만 발표 자료 만들기는 오로지 자신과의 싸움이다. “김 과장, 이번에 정부가 발표한 정책 관련해서 사업 영향 보고서 다음 주 초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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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주 업무 80%를 월요일에 한다면 미친 짓일까
9년 전 컨설팅 프로젝트를 하고 있을 때였다. 하루는 친한 컨설턴트 동생이 나에게 미친 제안을 했다. 주 5일 근무니까 1/n 하면 하루에 20%인데, 3~40%도 아닌 80%라니 무슨 소리인가 싶었다. 그의 말을 그냥 흘려들을 수도 있었지만 하필 내가 가장 실력을 인정했던 동료여서 귀를 기울일 수밖에 없었다. 그의 이야기는 간단했다. 월요일에 출근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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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타임스 1면에 내가 나왔다
2020년 9월 9일 이른 6시. 컨설팅회사 임원 마크는 여느 때처럼 시끄럽게 울리는 휴대폰 알람 소리에 힘들게 잠에서 깼다. 머리가 살짝 지끈한 걸 느끼며 어젯밤 있었던 고객사 임원 매튜와의 저녁 자리가 떠올랐다. 고객이면서 30년 지기 친구이기도 한 그와 개인적으로 만난 건 정말 오랜만이었다. 코리아타운 한식당에서 식사를 끝내고 집 근처 단골 와인바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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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한 동료 관계에서 생기는 세 가지 위기
1. 우리는 서로 다른 만큼, 서로 더 알아가야 한다 후배 A: 마크, 저 요즘 관계 때문에 엄청 힘들어요. 마크: 누군지 알겠어요. C 때문이죠? 후배 A: 아니요, 틀렸어요. C는 원래 그런 사람이라고 인정하니 괜찮아졌거든요. 이번엔 B 때문이에요. 마크: 아니 두 사람 많이 친하지 않아요? 후배 A: 예 친하죠. 정말 친해요. 그런데… 여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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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년 직장 생활에서 잊지 못하는 말들
최근 본 〈유 퀴즈 온 더 블럭〉 70회는 Z세대, Y세대, X세대, 386세대, 산업화 세대 사람들의 이야기로 꾸며졌다. 세대에 따라 서로 공유하고 공감하는 추억이 다른 것이 재미있으면서도 예전의 기억들이 잊혀 가는 것 같아 아쉬운 마음도 들었다. 꽉 찬 15년이 되어가는 직장 생활의 기억 중에도 가물가물해지는 것들이 많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마치 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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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능한 선배가 무능한 사람은 아니더라
내가 경험했던 퇴사자들이 몇 명이나 될까? 수백 명은 될 것이다. 범위를 좁혀 따로 식사할 정도로 친했던 관계로 한정한다면 100명 정도. 굳이 분류한다면 동기, 선배, 후배, 직속 팀장과 팀원, 임원까지 다양하다. 누군가를 떠나보내는 것은 유쾌한 일은 아니다. 다만 이제 와서 생각해보니 흥미로운 부분이 하나 있다. 바로 40대로서 퇴사자를 바라보는 자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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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한 직원들과 멀어져야 성장한다
벌써 4년이 흘렀다. 우물 안 개구리였던 내가 우물을 박차고 나온 게 4년 전 이맘때였다. 난 우물 안 개구리였지만 슬프지 않았다. 우물 안에서는 우물 밖 세상의 존재를 모르기에. 회사는 우물을 닮았다. 우물 같아도 회사는 꽤 괜찮은 곳이다. 안정적이면 더욱 괜찮고, 친한 직원들이 있다면 더더욱 괜찮은 곳이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안정적이면서 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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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 생활 동안 나를 키운 건 팔 할이 바람이다
직장인은 누구나 성장에 대한 욕구가 있다. 성장에 관심이 없다고 말하는 이들이 있지만 대화해보면 정도의 차이일 뿐 정체를 원하는 사람은 없다. 성장은 가만히 있으면 절대 이뤄지지 않는다. 물가도 상승하는 마당에 가만히 있으면 정체가 아니라 뒷걸음질이다. 누구나 성장에 대해 생각할 때 결국 고민은 방법이 아닐까? ‘어떻게 하면 성장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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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계 기업이 외국'계' 기업인 이유
어느 날 친한 동생이 갑자기 나를 ‘리스펙트’하는 눈으로 바라보며 물었다. 뜬금없는 질문에 자초지종을 들어보니 내가 외국계 기업에 다니며 여러모로 좋은 환경에서 일한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했다. 반면에 〈미생〉과 같은 드라마에서 비치는 국내 기업의 모습은 여전히 불합리한 일들로 가득하니, 그런 질문을 하는 것도 이해가 갔다. 이 동생은 졸업하면 무조건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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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트업 면접 전에 점검해야 하는 10가지
1년 전 감사하게도 평소 존경하던 분이 창업한 스타트업 회사로 이직했다. 20여 명 규모의 작은 회사지만 직원들 평균 나이가 30살인 역동적인 곳이었다. 입사 후 채용 때마다 면접관으로 들어가 1년 동안 30명 정도 면접해서 그중에 10명 정도 채용했다. 어떤 면접자는 ‘이런 분과 함께 할 수 있다니!’라는 생각에 설레기도 했지만, 어떤 면접자는 면접을 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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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세 시간, 직장인들에게 꼭 해주고 싶은 말들
2020년 8월 13일 17시 45분, 서울역으로 향하는 KTX가 부산역을 막 출발했다. 21시 10분 도착 예정이니 총 세 시간 25분 일정이다. 부산역으로 향하는 택시 안에서 머리를 스쳐간 생각 하나. KTX 안에서 글을 써보자. 열차 여행 시간이 내가 글을 쓸 수 있는 마지막 시간이라 가정하고 어떻게든 직장인들에게 도움이 되는 말을 남겨보자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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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의 내가 2005년의 신입사원 나를 소환하다
이상하게도 직장 생활 4, 5년 차 때보다 더 오래된 신입사원 시절의 기억이 더 또렷하다. 아마도 모든 것이 처음이었기에 더 강렬한 기억으로 남아 있는 것 같다. 문득 신입사원 당시의 나를 만나고 싶어 졌다. 처음에는 그때의 나에게 조언을 해주고 싶은 생각이었는데 얘기를 나누면서 오히려 내가 더 위로를 받았다. 2005년 신입사원이었던 나는 지금의 나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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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회사는 일잘러만 필요하지 않아
일잘러. 일 잘하는 직원을 가리키는 말이다. 반대말은 일못러. 태어날 때부터 일잘러인 사람도 없고, 한번 일못러가 영원한 일못러도 아니다. 나 역시 신입사원 시절 일못러였다. 글쓰기를 좋아해 홍보팀에 들어왔지만 소위 말하는 말랑말랑한 글만 쓰다가 회사에서 정한 형식과 틀에 맞춰 글을 써야 했으니 적응하지 못해 자괴감이 들 정도였다. 반대로 MBA를 다녀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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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송하지만 당신의 피드백은 사양합니다
넷플릭스에 지원한 적이 있다. 넷플릭스가 한국에 들어와 팀을 한창 꾸리던 때였다. 어느 회사든 지원할 때면 그 회사의 문화에 대해 여러 방면으로 알아보는데, 넷플릭스는 정말 독특한 문화를 가지고 있었다. 바로 ‘가차 없이 피드백을 주고, 강도 높고 어색한 실시간 360도 평가’를 하는 문화였다. 넷플릭스는 성과를 높이기 위해서 피드백을 자주, 솔직하고, 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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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사하듯 퇴근하기 입사하듯 출근하기
직장 생활은 단거리가 아니라 마라톤이다. 단거리로 생각하고 뛰겠다던 많은 후배들도 여전히 나와 함께 마라톤을 뛰고 있는 걸 보면 확실히 단거리는 아니다. 단거리라고 하면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 끝장을 보겠지만, 마라톤은 요령 같은 것이 통하는 그런 유의 것이 아니다. 직장 생활이 마라톤이기에 확실히 몸과 정신의 건강이 중요하다. 옆자리 선배의 모습을 유심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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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능도 써먹어야 강점이 된다
나에게는 사람에 대한 강한 믿음이 하나 있다. 바로 모든 사람에게는 자신만의 재능이 있다는 것이다. 직장인들도 예외는 아니어서 모두 하나 이상의 재능을 갖고 있다고 믿는다. 차이는 누구는 재능을 강점으로 만들고, 누구는 재능을 썩힌다는 것이다. 누구에게나 재능은 있다 직장에서 직원 한 사람 한 사람을 바라보면 재능이 보인다. 일을 잘하는 직원과 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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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에서 심리적 안전감의 중요성
프로젝트를 하다 보면 내 역량을 200% 아니 그 이상 발휘해야 감당이 되는 경우가 생긴다. 어떨 때는 80%만 발휘해도 충분하지만, 무에서 유를 창조해야 하는 업무나 익숙하지 않은 새로운 기술·방법론을 요구하는 프로젝트를 맡게 되면 하루에도 수없이 고비가 찾아온다. 그럴 때마다 내 심장은 쿵쾅거리기 시작했고, 프로젝트가 종료될 때까지 몇 달이나 증상이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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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알아듣는 만큼 내 영역도 넓어진다
세상은 우리 의지와 상관없이 매우 빠른 속도로 변하고 있다. 다양한 분야에서 혁신이 진행되고 있어 모든 흐름을 다 쫓아가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빠르게 변하는 세상이 공급하는 서비스와 혜택을 누릴 수 있어 좋지만, 기분이 마냥 유쾌하지만은 않다. 마치 어렸을 때 혼자서 챙겨 먹을 수 없던 나에게 엄마가 늘 밥을 차려 주신 것처럼, 어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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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팀장이 되고 싶진 않아
누가 그랬던가. 사람은 인정과 칭찬, 그리고 성공에 대한 욕구가 있다고. 대개는 맞다. 적어도 팀의 리더, 팀장이 되기 전까지는 말이다. 주니어 때는 팀장이라는 자리에 관심이 없었다. 팀장보다는 회사 생활을 오래 함께 할 3년에서 5년 선배들과의 관계가 더 중요했다. 그러다 어느 정도 연차가 되고 주위를 둘러보니 악착같이 팀장이 되려는 이들이 있는 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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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우리 직원을 신뢰하는가
새로운 직원이 들어왔다. 우리 회사의 비즈니스 영역과 100% 일치하는 경력을 갖고 있진 않으나 확장하려는 영역에 장점이 있는 친구다. 솔직히 반신반의했다. 검증이 필요했다. 다행히 내가 이끄는 프로젝트에 투입됐고 대화를 나누면서 ‘아 이 친구는 자세가 되어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일을 대하는 자세가 남달랐다. 그리고 딱 한 달 만에 나는 그 직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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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직'여워서 이직합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는 데는 수만 가지 이유가 있다지만 그중에 가장 씁쓸한 이유는 ‘지겨워서’가 아닐까? 직장 생활을 사랑에 비유하는 거 자체로 큰 실례가 되는 일이지만, 직장과 헤어지는 ‘이직’을 하는 가장 씁쓸한 이유 역시 ‘지겨워서’일 것이다. 사전에서 ‘지겹다’의 정의를 찾아보고 깜짝 놀랐다. ‘지겹다’는 ‘넌더리가 날 정도로 지루하고 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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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는 없다
나와 비슷한 사람들 곁으로 갔다 불의의 사고로 인해 다시 태어났답니다 미인가받은 대안학교에서 근무한다는 c는 아이들이 보고 싶다고 했다 다른 사람을 사랑하느라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법을 자연스럽게 다 잊게 되었다고 그리고 사랑까지 잊어서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아도 될 텅 빈 절정에 기대어 살고 싶다고도 많은 이들이 사고를 겪었고 더 많은 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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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가 고깃국에 빠진 날
“자, 여기 보세요.” 아이들의 시선은 앞에 있는 선생님에게 향했다. 투명한 유리잔에 보기만 해도 침이 고이는 새콤달콤한 오렌지 주스가 콸콸 쏟아졌다. “어? 선생님, 그만하세요. 넘쳐요!” 말하기 바로 직전 선생님은 기울인 손을 다시 제자리로 가져갔다. “우리 친구들, 오렌지 주스 좋아하나요?” 굳이 대답을 하지 않아도 선생님은 이미 다 알고 있었다.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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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입이 120% 하려는 것만큼 위험한 상황도 없어."
처음으로 조직에 들어가게 되면 자신을 과신하는 경우가 생긴다. 그럴 만도 하다. 공채나 수시채용의 경쟁률은 보통 100:1이 넘어가는 게 기본이고, 만약 한 명만 뽑는 직군이라면 매우 어렵게 입사한 것이 맞기 때문이다. 그 잘난 후보자들을 제치고 조직에 들어왔으니 자신이 대단하다고 여기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실제로 대단한 게 맞다. 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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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에 있어줄래? 초라해지기 싫으니까
강변에 나란히 앉아 흐르는 강물을 바라봤어. 적은 등불 덕에 더욱 빛나던 도로 위 차들이, 기분 좋게 불어오던 선선한 바람이 아직도 생생해. 꽉 잡혀버린 내 손이 사실 답답했지만, 어쨌든 우린 사귀는 사이였기에 가만히 힘을 풀고 몸을 맡겼어. 다정한 눈으로 날 내려다보는 눈빛에 마음이 무거워졌지만, 나 또한 보답으로 잔잔한 웃음을 보내곤 했어. 여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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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요리를 잘하는 엄마가 아닙니다.
일본 동요 중에 이런 노래가 있다. おかあさん (엄마~) なあに(왜~) おかあさんて いい におい (엄마는 좋은 냄새가 나요) せんたく していた においでしょ (빨래하는 냄새이지요) しゃぽんの あわの においでしょ (비눗방울 냄새이지요) おりょうり していた においでしょ (요리하는 냄새이지요) たまごやきの においでしょ (계란말이 냄새이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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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한 달 뒤에 비행기에 타고 있을 거야."
MZ세대 사이 세대 사이에서 열풍을 일으켰던 MBTI에서 마지막 글자에 해당하는 J와 P는 계획 성향을 가늠하는 지표로 사용된다. J인 사람은 보통 계획적이고 체계적이며, P인 사람은 비교적 개방적이고 융통성을 중시한다. 그런데 J인 사람들, 즉 계획성이 투철한 사람들에게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으니 바로 일이 계획대로 되지 않으면 무척이나 불안해한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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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rong>타, 타다, 타타... 이게 영어라고?</strong>
아래의 표현은 사전을 펼쳐 놓고 아무 말이나 차례대로 나열한 것이 아니다. 어린아이의 옹알이도 아니다. 괴상하더라도 알아두면 도움이 되니, 뜻을 추측해보자. - Ta - Ta-da - Ta-ta 힌트 1 안타깝게도 서로 연관성이 없는 표현들이다. 다만, 구어체에서 많이 쓴다는 공통점은 있다. 힌트 2 아래 각 이미지/동영상을 참조하자. 1. 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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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같은 만남_3
계곡 옆에 철문이 있었고 문을 열고 들어서자 계곡을 끼고 산으로 오르는 길이 있었다. 계곡 길은 조용하였다. 나는 혹시 사유지가 아닐까 하는 걱정이 들어 그녀에게 물었다. “여기로 가면 어디로 가요?” “계속 오르면 대청봉으로 갈 수 있어요.” “대청이요? 시간이 얼마나 걸리는데요?” “몰라요. 가본 적이 없어서. 대청봉까지 가시려고요?” “아뇨. 그냥 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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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스물다섯에 결혼을 했다. 서른 되기 보름 전에 에 첫 아이를 낳고, 서른여섯을 한 달 앞두고 둘째를 낳았다. 일본에 살며, 일본인 시부모님과 한 지붕 여섯 가족이 살고 있다. 솔직히 말하면 도망치듯 결혼하고 떠밀리듯 임신했다. 내가 한 일이지만 온전히 내 생각을 거친 내 뜻이었다고 말하기 어렵다. 주변의 기대와 즉흥적인 결정이 상황에 나를 밀어 넣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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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감동과 전율'은 없었다!『밤으로의 긴 여로』 그리고 『피츠제럴드 단편선』
『밤으로의 긴 여로』 유진 오닐 지음 / 민승남 옮김/ 민음사 여로[1]. 가난했던 어린 시절에서 비롯한 두려움과 노후 걱정으로 땅밖에 모르는 구두쇠 아버지(제임스 티론), 돌팔이 의사의 처방 때문에 마약 중독자가 된 어머니(메리 캐번 티론), 아버지의 기대와 실망으로 여자와 알코올에 빠져 사는 큰아들(제임스 티론 2세) 그리고 부정적인 세계관으로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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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위한 『책을 읽는 방법』
『책을 읽는 방법』 히라노 게이치로 지음 / 김효순 옮김 / 문학동네 『오리엔탈리즘』, 『국부론』, 『자본론』, 『천황과 도쿄대 1,2』 읽기는 힘들겠지만 뭔가 깨달음이 있지 않을까 싶은 막연한 기대 때문에 구입했던 책들이다. 읽어야 한다는 의무감은 머리속을 떠나지 않았지만 책들은 짧게는 수개월, 길게는 몇 년을 책장에 방치되었고, 마침내 누렇게 변색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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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애 왜 저래?
한국은 다름에 호의적이지 않은 나라다. 모난 돌은 정을 맞고, 가만히 있으면 중간은 가는 나라. “걔 특이해”가 “걔 이상해”와 사실상 같은 말이고 의견을 적극적으로 밝히면 ‘나서는’, ‘기 센’이라는 딱지가 붙는 나라. 나도 마냥 평범한 성격이 아니라서 이해 가지 않는 평가를 받거나 이유 없이 불이익을 받을 때가 없지 않았지만, 어쨌든 지금의 나는 여태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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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미치게 하는 두 가지
아이 하나를 키우는 데 온 마을이 필요하다고 한다. 그렇다면 자폐 아동을 키우는 데는 뭐가 필요할까? 도시? 나라? 자폐를 가진 아이를 키우면서 겪는 어려움의 리스트를 만들어 보라면 누구나 책 한 권은 너끈히 쓸 수 있겠지만, 이번 글에서는 많은 부모님의 리스트 Top 10에 돈과 함께 (필자는 태민이 하나 키우는데 다른 집에서 두세 명 키우는 비용을 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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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rong>설리를 위한 변명</strong>
언어는 존재의 집이다. 남의 말을 함부로 하지 마세요 그 사람 목숨 달린 문제입니다 그 죄를 어찌 감당하려 하는지 사람 살리는 말 하기도 바빠요 2019년 10월 14일이었다. 이날 저녁 직원들과 함께한 회식 자리에서는 단연 설리의 사망 소식이 화제였다. 윗글은 동료들과 대화 중에 설리 양의 죽음이 너무도 안타까워 ‘설리를 위한 변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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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는 행위보다 걷는 사람에 주목하자. 『순례자』
『순례자』 파울로 코엘료 지음 / 박명숙 옮김 / 문학동네 한여름 새벽 네 시. “야! 그 물 마시면 죽어!” 군사학교의 야간 ‘천리행군[1]‘ 인솔 교관은 목이 터져라 외쳤다. 농약 들어간 논바닥 물을 먹으면 배탈이 나기 때문이다. 그러나 열한 시간의 야간행군으로 대부분 탈진 상태에 있던 나와 동기들은 논두렁에 얼굴을 처박고 논바닥 물을 벌컥벌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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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p] 착석 못하는 아이를 위한 코어 운동 - 2
* 필자 부부가 함께 만드는 YouTube 채널 “자폐, 함께 걸어요”에 소개된 영상을 글로 옮긴 콘텐츠로, 「착석 못하는 아이를 위한 코어 운동 -1」의 후속편입니다. 코로나로 인한 온라인 수업이 계속되는 요즈음, 수업에 집중하지 못하고 집 안을 날아다니는 아이들과 씨름하느라 고생하는 부모들이 많다. 성인들도 쉽지 않은 것이 온라인 수업인데 아이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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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자폐아를 위한 학습 교구-2
* 필자 부부가 함께 만드는 YouTube 채널 “자폐, 함께 걸어요”에 소개된 영상을 글로 옮긴 것입니다. 이번 글에서 다룰 도구는 ‘매치 퍼즐: 매치 잇 매스매틱스Math Puzzle : Match it Mathematics‘이다 (Amazon.com에서 구매 가능). 이전 글에서 다룬 마그네틱 텐 프레임 보드Magnetic Ten-Frame Bo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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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료 후기] 미국 최고의 언어치료 체험기
* 필자 부부가 함께 만드는 YouTube 채널 “자폐, 함께 걸어요”에 소개된 영상을 글로 옮긴 것입니다. 태민이는 2015년부터 한국에서 언어치료를 시작했고, 2017년에 미국으로 온 이후에도 계속해서 언어치료를 받고 있다. 처음에 미국에 왔을 때 아이의 모국어가 한국어인데 영어로 언어치료를 하는 게 효과가 있을지, 혹시 한국인 선생님을 찾아서 치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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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자를 본 적 없는 여우
“깨갱!” 쓰다듬으려고 손을 뻗었을 뿐인데, 이 녀석은 내가 몽둥이라도 든 마냥 뒷걸음질 치며 있는 힘껏 비명을 질러댔다. 녀석에게는 전 주인에게 학대받은 과거가 있었다. 유기견 보호센터에서 본 녀석들 중 몇몇은 견종과 크기에 상관없이 과거에 당한 일 때문에 여전히 괴로워했다. 학대받은 것은 과거였지만, 상처는 현재에 아직도 남아 녀석들을 공포라는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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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활은 영원을 참는 것보다 흥분되는 일이었다
약이 없이는 약을 삼키지 못했다 물이 눈을 감으면 그 감은 눈에 입을 맞추듯 물속이었다 우리는 물속에서 처음 서로를 만졌다 어떤 이야기로도 건너갈 수 없는 이야기가 거기 있었고 순결이란 괴물은 우리의 육체를 천천히 벗겨내기 시작했다 검은 물보라가 일었다 슬픔이 이완되고 있었다 물은 우리를 호흡하면서 목이 마른 듯했다 우리는 점점 알 수 없이 벅찬 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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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
나는 나의 끝에 있었고 끝은 내 어깨를 잡고 놓아주지 않고 있었다 너는 나의 끝보다 멀리 있었고 우리는 거기서 만나기로 약속했었다 느닷없이 볕이 들어왔고 안겨있던 만큼 죽어있던 만큼 가득 안았다 나의 끝보다 멀리 있는 너를 우리의 몸은 우리의 기억 다른 세계의 내부 내부라니 내부라니, 내장이라는 말보다 훨씬 끔찍하게 들려 너는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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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자의 버티기와 호기심
아마존 창업자이자 지구상에서 가장 부유한 사람 중 한 사람인 제프 베이조스는 미국 플로리다주 마이애미의 한 고등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하고 아이비 명문 프린스턴에 입학했다. 그가 원래 하려던 공부는 물리학, 그중에서도 이론물리학이었던 것 같다. 그러나 학부 양자역학 수업에서 이른바 천재급 동기들과의 현격한 차이를 깨닫고는 이내 전공을 전자공학/컴퓨터공학EEC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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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변화
‘집짓기는 곧 삶의 과정’이라는 말이 잘못되지 않았다면, 우리가 집을 짓던 시기 전후의 생활을 돌이켜 보며 왜 시골로 이주를 하게 되었는지, 집을 짓게 되기까지 어떤 경로를 걸었는지를 살펴보는 일은 의미가 있을 것이다. 물론 우리의 선택은 대단한 각오의 결과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다른 이들에게 각별히 인식될 만한 의미 있는 과정을 통한 것도 아니었다.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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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 타고 혼자 감성적인 척하기
코로나 때문에 학교 기숙사에 들어가지 못하게 됐다. 이렇게 먼 곳에서 온라인으로 팀 프로젝트도 온갖 과제도 주어지는 학교 수업을 따라가는 것은 분명한 부담이었지만, 그 결과 혼자 있는 시간은 명백하게 많아졌다. 지금은 약속한 것도 아닌데 매일 보게 되던 친구들도, 익숙해지긴커녕 늘 새롭던 타지에서의 외로움도 옆에 없이 말 그대로 혼자 바쁜(척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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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아빠를 만났어
국제결혼, 한일 커플이라 그런지 어떻게 만나게 되었냐는 질문을 자주 받는다. 게다가 결혼을 빨리하기도 한 탓에 대학 졸업장 받기도 전에 혼인신고를 했다고 하면 ‘뭐가 그리 급했냐’며 비하인드 스토리를 궁금해하시는 분들이 많다. 덕분에 처음 만나는 사람에겐 자기 소개하듯 자연스럽게 썰을 풀게 되는데, 어찌나 자주 말했는지 그간 레퍼토리도 다양해져 길게도 짧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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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 기후 위기의 비용 청구서
몇 주 전에 있었던 텍사스 기습 한파 및 폭설에 따른 피해는 주로 신재생에너지 시설, 특히 풍력 발전 시설의 파손이나 고장으로 이어졌다. 풍력 발전기의 날개 역할을 하는 블레이드에 눈이 쌓이고 그것이 그대로 얼어붙으면 블레이드의 무게가 증가한다. 그로 인해 항력 역시 증가하고, 따라서 우선 풍력 발전 효율이 저하된다. 그런데 사실 더 큰 문제는 블레이드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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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중한 것에 대한 성찰! 『에브리맨』, 실험적인 작법의 『센티멘털』 그리고 상상력의 힘 『타임머신』
『에브리맨』 필립 로스 지음 / 정영목 옮김 / 문학동네 “읽어봤어?” “읽어봐. 정말 재미있어!” 요즘은 주변 분들에게 책 선물을 잘 하지 않지만, 예전에는 가끔 하기도 하고 받기도 했다. 그러나 나의 경우 자기계발서는 선물하지 않는다. 많은 자기계발서들이 읽기는 좋으나 읽은 이후의 실천에는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희곡은 권유하는 사람도 없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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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우리는 교육을 받을수록 멍청해지는가! 『바보 만들기』
『바보 만들기』 바보 만들기 / 존 테일러 개토 씀 / 김기협 옮김 / 민들레 아프다. 이마와 정수리 중간에 2초 간격으로 수학 선생의 몽둥이가 계속 떨어지기 때문이다. 방정식인지 행렬인지 기억은 나질 않는데, 수학 선생이 설명한 내용을 모르겠다고 용기 있게 말했다가 벌어진 상황이었다. 아픔을 못 이기고 “알 것 같습니다.”‘라고 말했더니, 수학 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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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rong>수녀님이 거기서 왜 나와요?</strong>
이번에는 사람들이 자주 찾는 기관에 관한 단어이다. 어떤 뜻이 담겨 있을까? - Sister - GP - A&E 힌트 1 모두 ‘병원’과 관련된 단어이다. 힌트 2 아래 각 사진을 참조하자. 1. Sister 위 사진은 영국의 한 병원에 근무하는 의료진(의사 제외)의 유니폼을 직책에 따라 구분한 것이다. Senior Sister, J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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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rong>라거 두 파인트와 크리습 한 봉지 주세요</strong>
이번에는 영국식 영어가 들어간 긴 문구이다. “Two Pints of Lager and a Packet of Crisps” 여기에 쓰인 단어의 뜻을 추측해보자. - Pint - Lager - Crisp 힌트 1 모두 ‘술’과 관련된 표현이다. 힌트 2 아래 각 사진을 참조하자. 영국 생활 초기에 내가 즐겨 보던 시트콤이다. 글 첫머리에 나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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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rong>오만과 편견</strong>
나는 맞고, 너도 옳다. 10여 년 전 뉴욕 주재 대한민국 총영사관에서 근무한 일이 있었다. 아이들 교육 문제 때문에 뉴저지주 잉글우드 클리프스Englewood Cliffs에 집을 마련했고, 아이들은 그곳에 있는 초등학교에 다녔다. 당시 아이들 수업을 여러 번 참관할 기회가 있었는데, 특이했던 것은 아이들의 학습 참여 열기가 매우 높았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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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도 치유도 사람으로부터
깊은 우울감에 빠져 시들어가던 시기가 있었다. 사람이 많은 장소에 가면 숨쉬기 힘들고 친구만나는 것도 두려워 전화기를 꺼버렸다. 스스로 모든 대인관계를 차단한 것이다. 돈이 없어 TV, 인터넷도 끊겼다. 그러자 온 세상이 조용하고 고요해졌다. 암울한 현실을 잊기에는 잠이 최고였다. 잠을 잔 시간만큼이라도 시간을 버릴 수 있고 죽음에 가까워졌다고 생각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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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먼저...
교회에 가면 이런 노래를 많이 부른다. 너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라…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나라와 민족을 위한 기도를 하고 가족과 이웃을 위한 기도도 한다. 어느 날 문득 이런 기도를 드렸다. “하나님, 나라와 민족을 위한 기도가 중요하고 가족과 이웃도 사랑해야 하지만 지금은 내 심령이 너무 가난하고 고달픕니다. 내가 나를 사랑하지 못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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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우와 포도송이
11월에 비가 몇 번 오고 나면 가을은 원래 없었던 것처럼 꼬리를 감추고 아침저녁으로, 아니 대낮에도 꽤 쌀쌀해진다. 그쯤 되면 학년 말을 앞둔 학생들의 마음은 분주하다. ‘얼마나 열심히 했나’ 자신을 돌아보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그보다는 ‘이번 방학 땐 뭘 할까?’ 하는 생각에 마음이 들뜨기 때문이 아닐까. 작년엔 코로나 때문에 교복 한번 제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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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의 기준 말고 네 생각을 말해봐
첫 회사에서 대표에게 불려가 이런 말을 들었다. “왜 화장을 안 해? 예의 없이. 남한에서 화장 안 하면 예의 없는 거 몰라?” 남한 사회를 전혀 모르던 때여서 ‘아, 남한에서 화장 안 하면 예의 없는 거구나’ 하고 대표의 말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였다. 그 후로 예의 없는 사람이 되지 않으려고 서툰 분칠을 하기 시작했다. 맞지 않는 정장을 껴입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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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자'여서 감사합니다
‘탈북자’ 꼬리표에 힘든 시간을 견디고 나니 ‘탈북자’가 명함이 되었다. 특별한 계기나 사건이 있었던 건 아니다. 죽을 만큼 힘든 시간을 이겨낸 건지, 견뎌낸 건지 아무튼 그 긴 시간을 감내하고 나니 더 이상 잃을 것도 버릴 것도 없는 알맹이만 남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를 바꾼 사람은 다름 아닌 나 자신이었다. 가난, 탈북, 불법체류자, 탈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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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역할
스물일곱 살에 어렵게 엄마가 되었다. 엄마가 된 지 일주일 만에 딸은 폐렴으로 죽을 고비를 넘기고 생후 40일부터 할머니 손에 맡겨졌다. 도망자 신분으로는 아이를 키울 수 없다며 나는 쫓겨나듯 북경으로 도망갔다. 그 후로 1년에 겨우 한 번 딸을 만날 기회가 허락되었다. 남한에 입국한 후 딸을 내 품에서 키우겠다고 결심했을 때에는 ‘재산 포기각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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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친 날 기다리느라 지친 꿈들의 불면을 담아
내가 나았다는 악몽을 꾸었다 다 나았다고 했다 나는 나은 적 없는데 내가 괜찮지 않은데 깨끗이 다 나았다고 믿기지 않겠지만 완치이고 기적이라고 했다 이게 꿈이라는 것을 정확히 인지하고서도 절대 믿을 수 없는 말이었다 또 그런 가슴을 뛰게 하는 말들은 왠지 내가 이제 더는 가슴을 진정시킬 수 없을 거라는 무언의 선고처럼 들렸다 이 이상으로 믿을 수 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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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 매입과 건축설계
우리가 처음 땅을 보러 왔던 곳은 정배리였다. 그 뒤로 서종면의 여러 곳에 있는 땅을 보러 다녔다. 나는 10년쯤 전에 처음 아파트를 분양받았고, 결혼하면서 아내와 함께 아파트를 사기도 했지만 땅을 사는 것은 태어나서 처음 하는 일이었다. 물론 시골로 이주하는 것도, 집을 짓는 것도 모두 처음이었다. 우리는 가능한 한 실수를 하지 않기 위해 무척 애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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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재미없잖아, 내 인생
지난주 토요일 난 영어 시험을 보러 다녀왔어. 이제 졸업이 정말 코앞으로 다가와서 성적이 필요했거든. 졸업 후에 뭐라도 하고 살려면 말이야. 그 한 번의 영어시험이 마치 ‘네가 그동안 잘 살았는지 한번 보자.’라고 말하는 것 같아서 얼마나 떨리던지. 난 시험 2시간 전에 집에서 출발했어. 혹시나 늦어서 시험을 보지 못하는 상황은 죽어도 겪기 싫었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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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라멘이나 한 그릇 할까?
우리가 도착한 곳은 신주쿠에서 10분 정도 거리에 있는 JR 츄오센中央線 아사가야阿佐ヶ谷역. 생활하는데 불편하지 않을 정도의 가게와 상점가가 있지만 그렇다고 불필요하게 복작대지도 않는, 적당히 번잡하고 적당히 조용한 동네다. (훗날 그 소박한 매력에 빠져 이 동네에서 두 개의 알바를 뛰게 된다.) 술 한 잔 마시자고 굳이 왜 전철을 타고 이런 곳에 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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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rong>롱(long) 넘버 플리즈... 긴 번호? 그게 뭐죠? </strong>
이번에는 영국 드라마나 영화에 나올만한 대사로 시작한다. 이 대사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리고 그 밑으로 나오는 단어들의 뜻은 무엇인지 추측해 보자. Lend me twenty quid, mate. I’m skint. - Quid - Skint - Long Number 힌트 1 모두 ‘돈’과 관련된 표현이다. 힌트 2 아래 각 사진을 참조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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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변하는 게 사람이잖아
작년에 알게 된 귀한 친구가 있다. 제주에서 살 때 우연히 만났다. 우리는 너무나 닮았지만, 또 어떤 부분은 달라서 서로를 채워준다. 꼭 약속을 하지 않아도 절로 이끌려 함께하게 된다. 서로의 마음을 위해주려는 것도 닮았다. 서로를 행복하게 할 에 자기 자신도 행복해진다. 함께했던 순간순간이 얼마나 좋았는지, 헤어짐도 잠시 제주에서 올해를 함께 시작하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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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적 모델과 사회적 현상 예측의 한계
2020년 벽두부터 많은 사람들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 놓은 코로나바이러스 팬데믹은 이제 만 1년을 훌쩍 넘어, 2021년 상반기까지 잠식해 들어가고 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많은 학자들이 수학적 도구를 활용하여 전염병의 추이 분석과 예측 연구를 내놓고 있다. 팬데믹 상황에 수학이 일차적으로 하는 역할은 전염병의 전파 추이를 분석하고, 그로부터 앞으로의 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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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든 반대로 하는 청개구리
작년 초부터 스마트 워치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개인적인 이유로 스마트폰을 아예 무음으로 해놓는 나에게 스마트 워치는 스마트폰을 갖고 있을 때나, 떨어져 있을 때 연락을 놓치지 않도록 알려줄 것 같았다. 물론 이외에도 다른 기능들이 많이 있지만, 스마트 워치를 처음 사용해보는지라 이런 기능을 제대로 알지도, 쓰지도 못할 게 분명했다. 마침 내가 구매한 기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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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rong>우리라는 이름의 집단 최면</strong>
우리에 갇힌 우리를 깨뜨리자. 뉴욕에서 근무했을 당시, 동포 관련 업무를 맡았던 관계로 한인들과 접할 일이 많았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한인 사회에 관한 여러 가지 사실을 알게 되었고, 애로사항도 들을 수 있었다. 한 번은 뉴저지 쪽 한인회장과 골프를 치면서 그분의 생각을 듣게 되었다. 한국에 지인들이 많이 있어 자주 다녀오는 편인데, 이 경우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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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날의 에세이. 『딸에게 주는 레시피』 그리고 『어떻게 살 것인가』
『딸에게 주는 레시피』 공지영 지음 / 한겨레 출판 힐링과 음식. 생각해보지 않은 조합은 아니지만, 공지영이라는 작가에게 어울리지 않는 주제라고 생각했다. ‘아버지가 다른 아이들을 키우는 엄마’라는 선입견 때문이었을까? 식상한 ‘힐링’ 외에 다른 기대는 없었다. 이 책은 딸(위녕)과 엄마의 삶에 대한 성찰, 애정 어린 조언 그리고 함께 만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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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인이어도 좋더냐
이방인으로 사는 삶은 고달프다. 굳이 왜라고 설명하지 않아도 독자 제위께서 해외에 나가 먹고산다고 생각해 보면 금방 짐작할 수 있으실 것이다. 한국에서 쌓아 놓았던 많은 유·무형의 자산―학벌, 직장, 인간관계, 돈…―을 포기해야 하고, 말도 제대로 통하지 않는 곳에서 남들보다 몇 발짝 뒤에 있는 출발선에 서서 다시 경주를 시작해야 하는 것이다. 많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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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은 척 그만하고 힘든 얘기 좀 할게요
며칠 전, 처음으로 페이스북에 있는 내 기록을 정주행했다. SNS를 그렇게 열심히 하는 편이 아닌데도 그동안 쌓아온 기록의 양은 어마어마했다. 길고 짧은 글들, 가족·친구와 함께 찍은 사진들, 마음에 와닿아 공유했던 뉴스 기사들… “내가 이때 왜 이렇게 화가 나 있었지?”, “이게 뭐라고 그리 힘들었을까”, “별거 아니지만 정말 행복했지” 등 장장 1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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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p] 좋은 테라피스트 어디 없소?
* 필자 부부가 함께 만드는 YouTube 채널 “자폐, 함께 걸어요”에 소개된 영상을 글로 옮긴 것입니다. 태민이가 32개월 때부터 치료를 시작했으니 벌써 5년 가까운 시간 동안 다양한 치료사와 다양한 치료 기법을 접해 왔다. 그동안의 경험으로 볼 때, 치료의 종류와 테크닉도 물론 중요하지만 치료사가 어떤 성격/태도를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 테라피의 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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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 자폐아를 위한 프리스쿨을 찾아서(1)
미국행이 확정되고 나서 가장 많이 신경 썼던 것 중 하나는 태민이의 프리스쿨[1] 입학이었다. 필자가 MBA에서 합격 통보를 받자마자 제일 먼저 한 일이 학교 부설 프리스쿨의 대기 명단에 아이 이름을 올려놓는 것이었으니까. 대학교 부설 프리스쿨은 평이 좋고 가격도 저렴해서 1년 전부터 대기하지 않으면 들어가기 힘들기 때문에 다른 어떤 일보다 서둘러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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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 자폐아를 위한 프리스쿨을 찾아서 (2)
정말 큰 기대를 가지고 시작한 대학교 부설 프리스쿨이었지만 일주일 만에 모든 것이 원점으로 돌아가 다른 프리스쿨을 알아봐야 했다. 지금 돌아보면 ‘겨우 그게 뭐라고’ 싶기도 하다. 하지만 그 당시 필자는 학교에 다니는 것만으로도 바빴기에 모든 것을 영어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아내가 알아서 진행해야 했다. 갓 미국에 와서 정보도 거의 없는 데다, 영어로 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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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 자폐아를 위한 프리스쿨을 찾아서(3)
이전 두 글에서는 필자 가족이 겪었던 첫 프리스쿨에서의 실패와 새로운 프리스쿨(Open Door) 탐색 및 입학 과정을 이야기했다. 이 글에서는 왜 필자 부부와 태민이가 Open Door를 좋아했는지, 그리고 왜 아직도 그때를 생각하면 절로 미소가 지어지는지 구체적인 사례를 들어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1. 독특한 교육 : 자연에서 배운다 대부분의 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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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아이 발달을 도운 마법의 도구들
* 필자 부부가 함께 만드는 YouTube 채널 “자폐, 함께 걸어요”에 소개된 영상을 글로 옮긴 것입니다. 이번 글에서는 태민이가 미국에서 작업치료Occupational Therapy를 받으면서 사용했던 좋은 도구들에 대해 공유하고자 한다. 작업치료란 신체적 혹은 정신적으로 발달이 느리거나 수행능력이 높지 못한 사람이 독립적으로 일상생활을 수행하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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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은 사람을 안 봐. 조직을 보지.”
어떤 일이든 첫 삽이 가장 기억에 남는 법이다. 첫 직장에서 일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 그러니까 교육을 받을 때는 스스로 유능한 커리어맨을 상상하곤 했다. 정해진 업무를 뚝딱 해내고 심지어 다른 사람들의 일까지 어렵지 않게 도와주는. 신입사원이라면 누군들 그렇지 않았으랴, 하지만 현실의 벽은 역시 견고했고, ‘유능한 커리어맨’ 환상이 깨지는 데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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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짓기 과정
2004년 10월, 마침내 집짓기 공사를 시작했다. 2003년 봄에 이곳 양평으로 이사해서 전셋집을 얻지 못해 문호리에 있는 신축 연립을 사서 들어갔다. 아이는 20리 떨어진 정배분교의 병설 유치원에 다니기 시작했고, 우리 부부는 서울로 출퇴근했다. 문호리만 해도 면 소재지여서 약간의 도시 냄새가 나는 곳이다. 대도시에서 시골로 곧장 들어가지 않고, 약간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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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을 집밥처럼
의지를 아무리 불태워도 이를 계속 유지하기는 힘든 일이다. 좋은 습관은 유난히도 만들기 어렵고, 나쁜 습관은 생기기는 쉬운 데다 없애기는 또 어렵다. 좋은 사람, 멋진 사람이 되려고 결심하는 일은 빈번하나 이를 위한 실천들은 곧잘 실패하고 만다. 어쩌면 우리의 일상은 그냥 ‘집밥’ 같은 건지도 모른다. 기본의 밥. 매일의 밥은 완벽하지 않아도 되니까.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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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후지산을 본 적 있니?
2월의 어느 겨울날. 김이 모락 나는 라멘 한 그릇을 사이에 두고 만난 우리는 3월의 봄기운과 함께 한 뼘 더 가까워졌고, 벚꽃이 만개한 4월이 되자 둘만의 데이트를 즐기는 사이가 됐다. 그 사이 외국인 노동자 지망생이었던 나의 아르바이트 찾기도 무사히 성사되어 파스타 집과 커피숍, 두 곳에서 밤낮으로 알바를 뛸 수 있게 되었다. 오픈 조로 들어간 역 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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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지 않은 기억
나는 아주 어렸을 때 일어났던 일과 그때 느꼈던 감정이 지금도 생생하게 떠오르곤 하는데 내가 이런 오래전 기억을 이야기하면 아내는 웃으며 믿지 못하겠노라고 선언한다. 내가 학교도 다니기 전, 미취학 아동이던 때의 기억이다. 시골 할아버지 집에 가기 위해 이른 새벽에 일어나 비몽사몽 중에 밥을 먹었다. 엄마는 밥을 김으로 싼 후 삼키기 수월하도록 계란, 파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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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rong>이방인의 나라</strong>
이방인이겠지! 몇 년 전 중국 청두를 여행할 때 두보 초당에서 찍은 사진이다. 두보 초당은 중국을 대표하는 당나라 시대의 시인 두보杜甫가 한때 거주했던 암자 자리에 두보 기념관과 광대한 정원을 조성해 놓은 곳이다. 이곳에 뭔가 의미심장한 그림이 있어 사진을 찍으면서, 그림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위 그림에서 하늘을 향해 두 팔 벌려 기원하고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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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인생에 영화가 필요해질 때
『영화가 필요한 시간』- 김형욱 티켓을 끊고 상영관 안으로 걸어 들어갑니다. 자리에 앉아 휴대폰을 무음으로 설정하고 나면 장내는 곧 어두워집니다. 스크린을 공유하는 사람들은 작은 소음과 움직임에도 민감합니다. 주변이 최대한 조용하기를, 불필요한 빛이 새어들지 않기를 원합니다. 우리의 눈동자는 이제 말없이 화면의 움직임을 좇습니다. 그래서 영화는 일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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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rong>헤드마스터가 불러요</strong>
아래는 영국의 어린이나 청소년이 자주 만나는 사람들이다. 사전을 이용하지 않고 무슨 뜻인지 추측해보자. - Prefect - Headmaster - Dinner Lady 힌트 1 모두 ‘학교’와 관련된 표현이다. 힌트 2 아래 각 사진을 참조하자. 1. Prefect Prefect (Perfect와 혼동하지 말 것)는 영국의 학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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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방 '너튜브'를 즐겨보는 모든 이에게. 『먹는 인간』
먹지 않는 인간은 없다.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먹어야 한다. 다만, When(언제) Where(어디서) Who(누구)와 What(무얼) How(얼마나) 먹을지에 대한 선택이 있을 뿐이다. 그래서 이 책 '먹는인간'은 전 세계의 맛집을 소개하는 '음식기행문'으로 알았다. 이 책은 전쟁, 기아, 재해 같은 분쟁 속에서 하루하루 끼니를 잇고 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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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대로 된 소개와 서평 글쓰기를 기대하며. 『빈방』, 『가마타 행진곡』, 『책벌레』
『빈방』, 『가마타 행진곡』, 『책벌레』 고 박완서 작가의 책은 한 권도 읽은 적이 없다. 확실한 이유는 모르겠지만 나의 취향과는 다른 글을 쓰셨기 때문인 것 같다. 그러다 우연히 『빈방』을 소개하는 글을 읽고 이 책을 선택하게 되었다. 네이버 책소개에서 그런데 책의 어디에도 ‘예수의 위선’과 관련된 내용은 없었다. 묵상한 예수 말씀에 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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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의 직업 선택을 위하여 『독서 100권으로 찾는 마흔 이후, 인생길』
『독서 100권으로 찾는 마흔 이후, 인생길』 한기호 저 / 다산초당 대한민국은 잘 사는 나라일까. 한국은행이 2021년 3월 4일 발표한 ‘2020년 4분기 및 연간 국민소득’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1인당 GNI는 3만 1천755달러이다. 그렇다면 4인 가족의 총소득은 12만 5천달러가 넘는다. 이를 원화로 환산하면, 1억 4천만원(1달러 1,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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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획적 노후화? 『지구와 바꾼 휴대폰』
『지구와 바꾼 휴대폰』 위르겐 로이스, 코자마 다노리처 저 / 류동수 역 / 애플북스 따르릉! 누군가에게서 걸려온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 “여보세요?” “…” “여보세요? 여보세요? 말씀하세요!” 상대방의 목소리와 주변 소리는 들리는데, 내가 아무리 소리를 질러도 반응이 없다. 나에게 전화가 걸린 줄 상대방은 모르는 것이다. 잘못 눌렀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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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OTICE ] 필기의 고수를 찾습니다.
New! 북이오 아이패드 앱에 필기 기능이 추가됩니다 어느덧 봄이 성큼 다가왔습니다. 새 학기가 시작된 지도 한 달이 다 되어가지요. 북이오에서 구입한 PDF 교재와 함께 밤낮으로 학업에 매진하는 회원님들도 계실 텐데요. 그래서 준비했습니다. 효율적인 학습을 위한 북이오 아이패드 앱 필기 기능! 정식 업데이트를 앞두고 개선할 부분은 없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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칡과 등나무 이야기
“잘 부탁드립니다.” 벌써 4년이 넘었다. 새로운 일터, 함께 일하게 된 사람들과의 식사 자리였다. 서로 통성명을 하는데 동료 중 한 사람의 이름이 어딘가 익숙했다. 돌림자라고 했다. 동성동본끼리 항렬이 같은지, 높거나 낮은지 알 수 있도록 공유하는 이름자 말이다. 그래, 내 앞에 앉은 이 낯선 동료의 이름은 우리가 같은 성씨라는 사실을 알려주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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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운 금성의 대기권에 생명체가 살 수 있을까?
지구에서 가장 가까운 태양계의 행성은 금성과 화성이다 (물론 금성까지의 거리는 평균 1.14AU[1]이고 화상까지의 거리는 평균 1.70AU이므로 금성이 더 가깝다). 하지만 무슨 이유에서인지 지구인들은 금성에 비해 화성에 더 많은 관심을 두고 있다. 농담이지만, 〈화성 침공〉이라는 영화는 있는 반면 〈금성 침공〉이라는 영화는 없다는 것이 그 단적인 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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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비겁하다
엄마가 파킨슨병에 걸렸다. 진료와 검사를 위해 2주에 걸쳐 병원을 가고, 그 중 3일은 입원한 엄마 곁을 지키면서 나는 생각했다. 엄마는 비겁하다고. 엄마에 대해서 언젠가 한 번은 이 지면에 털어놓을 거라 예상했지만 이전엔 용기가 나지 않았다. 엄마가 본인 이야기를 남에게 하는 걸 싫어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내 심리적 문제를 논하는 주제에 핵심을 에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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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rong>뭘 집어던져요?</strong>
봄맞이 대청소의 시기다. 그래서 집안을 정리하고 꾸밀 때 필요한 단어들을 모았다. 무슨 뜻인지 추측해보자. - Tog - Duvet - Throw 힌트 1 모두 ‘이불’과 관련된 단어이다. 힌트 2 아래 각 사진을 참조하자. 1. Tog 영국의 이불 판매 코너에 가니 왼쪽 사진처럼 다 똑같아 보이는 솜뭉치에 숫자만 다르게 표기된 제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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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우와 두루미
- 오 헨리 단편선 중 「마녀의 빵」 줄거리 제목만 봐서는 전체를 파악하기 어려운 글이 있다. 위에서 소개한 「마녀의 빵」이 그랬다. 읽기 전에는 ‘여기 마녀가 나오는가 보다’ 생각했지만, 글을 다 읽고 다음 작품으로 넘어갈 때까지 마녀는커녕 빗자루조차 볼 수 없었다. 다시 생각해 보니 빵 가게 주인, 마더 미첨이 바로 마녀였다. 그녀가 마녀라고? 그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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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밭의 종달새
“응? 뭐야?” 한참 업무를 하고 있는데 스마트폰 알람이 울렸다. 앨범이었다. 2019년 여름휴가 때 찍은 사진들을 모아서 영상을 만든 모양이다. 신기하다는 생각보다는 그립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염병 때문에 전 지구가 어려움을 겪는 건 먼 중세시대 이야기인 줄만 알았는데, 저 때로부터 불과 1년이 지난 2020년 휴가에는 집에 있는 것 외에 아무것도 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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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rong>아빠랑 친구하는 법, 〈아빠 사용 설명서〉</strong>
난 아빠랑 참 안 맞는다. 나와 엄마는 가끔 보면 데칼코마니처럼 생각이나 감정이 똑같은데, 아빠와 난 마치 일부러 반대로 행동하는 것처럼 어긋날 때가 많다. 서로를 싫어해서 그런 건 아니고, 그냥 모든 게 달라서 그렇다. 그래서 어렸을 땐 참 안 친했다. 아빠랑 둘이 있으면 숨부터 막혔고, 언젠가는 엄마도 혀를 내두를 정도로 싸웠으며, 그나마 서로에게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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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Marker Miller 과수원
* 필자 부부가 함께 만드는 YouTube 채널 “자폐, 함께 걸어요”에 소개된 영상을 글로 옮긴 것입니다. 마커 밀러 과수원Marker Miller Orchard은 버지니아Virginia의 윈체스터Winchester라는 도시에 있는 과수원이다. 필자의 집에서 차로 50분, 워싱턴 D.C.Washington D.C.에서는 한 시간 반 정도 걸린다. 윈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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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괴로워도 계속 노래하는가
작년 9월 중순, 즐거운 마음으로 늦은 여름휴가를 준비하다가 받은 한 통의 이메일. '영주권 서류 기한을 놓쳐 모든 절차를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문구를 읽으며 머리가 하얘지는 느낌이었다. '이게 대체 무슨 의미지? 내가 뭘 잘못 읽은 건가? 10개월이나 걸려서 여기까지 왔는데 다시 시작한다고??'. 아무리 다시 읽어도 다르게 해석할 여지가 없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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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미국에서 만난 언어치료 앱, LAMP
* 필자 부부가 함께 만드는 YouTube 채널 “자폐, 함께 걸어요”에 소개된 영상을 글로 옮겼습니다. 현재 만 7세인 태민이는 짧은 문장으로 간단한 의사소통은 되지만 자폐 및 이중언어로 인해 언어 발전이 더딘 상황이다. 버지니아로 이사 온 2019년에는 영어를 좀 더 잘 듣고 이해했지만 발화는 주로 한국어로 이루어졌다. 설령 영어로 말하더라도 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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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p] 자전거를 배우는 아이를 위한 소품
* 필자 부부가 함께 만드는 YouTube 채널 “자폐, 함께 걸어요”에 소개된 영상을 글로 옮긴 것입니다. 자전거가 아이들에게 정말 좋은 전신운동이라는 사실은 모두가 아실 것이다. 하지만 자전거를 가르치는 게 쉽지 않기에 미국 여름 캠프에선 ‘No-Tear Bike Program’을 제공하기도 한다. 필자 부부도 아이가 어릴 때부터 자전거를 태우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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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COVID 직전의 애리조나 여행기
2020년 3월 초, 우리 가족은 애리조나Arizona주의 피닉스Phoenix로 가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피닉스는 미국에서 다섯 번째로 큰 도시이자 필자가 다니는 회사의 가장 큰 고객이 있는 곳이라, 적어도 2주에 한 번씩은 고객 면담을 위해 방문해야 했다. 비행기를 타는 설렘과 호텔에서의 즐거운 경험도 잠시, 세 시간에 달하는 시차와 왕복 열 시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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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신분, Status
미국에서 이민자로 살다 보면 신분status의 중요성을 정말 뼛속까지 깊이 새기게 된다. 모국에서 살 때는 공기처럼 당연했던 일들이 이민자에게는 당연하지 않은 경우가 너무 많기 때문이다. 신분 없이는 입국해서 장기간 체류할 수 없고, 적절한 신분을 유지하지 못할 경우 본인 의지와 상관없이 출국해야 하며, 만약 제때 출국하지 않는다면 불체자(불법체류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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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독특해도 괜찮아 (1)
* 필자 부부가 함께 만드는 YouTube 채널 “자폐, 함께 걸어요”에 소개된 영상을 글로 옮긴 것입니다. 오늘은『독특해도 괜찮아』라는 제목만큼 독특하고 특별한 책을 한 권 소개드리고자 한다. 이 책의 저자는 의학박사이자 언어 치료 전문가이며 자폐증 분야의 세계적인 권위자인 배리 프리전트Barry M. Prizant다. 개인적으로 필자는 자폐에 관련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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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독특해도 괜찮아 (2)
* 필자 부부가 함께 만드는 YouTube 채널 “자폐, 함께 걸어요”에 소개된 영상을 글로 옮겼습니다. 앞서 발행된 「독특해도 괜찮아 (1)」에 이어 배리 프리전트의 『독특해도 괜찮아』를 리뷰합니다. 2. 자폐증과 함께하기 책 후반부의 주제는 ‘아이에 대한 올바른 이해, 그리고 부모의 역할’이다. 주변의 전문가 및 부모들에게 조언을 얻어 올바른 방향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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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p] 엄마의 보여주는 스토리텔링
* 필자 부부가 함께 만드는 YouTube 채널 “자폐, 함께 걸어요”에 소개된 영상을 글로 옮긴 것입니다. 자폐 아동을 키우면서 가장 힘든 점은 무엇일까? 사실 하나만 꼽는 게 어려울 정도로 이런저런 난점이 많지만, 아이에게 무엇인가(특히 추상적인 개념)를 이해시키는 일이 쉽지 않다는 것은 많은 부모님들이 공감하실 것이다. 왜 차도를 건널 때 좌우를 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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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집 앞에서 만난 반딧불이 이야기
2020년 초여름, COVID로 인한 자가격리에도 어느샌가 익숙해졌던 그때. 저녁 산책에서 예상치 못한 광경을 마주하게 되었다. 한국에서 30년을 넘게 살면서 단 한 번도 본 적 없던 반딧불이가 눈앞에 나타난 것이다! 얼른 집 안으로 뛰어들어가 태민이와 아내를 데리고 나왔고, 자폐로 인해 동물이나 새에 큰 관심을 보이지 않던 태민이도 신기해하며 긴 시간 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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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우리 동네 폭포 공원
필자가 살고 있는 페어팩스Fairfax에서 차로 30분 정도 떨어진 곳에 “그레이트 폴스 국립공원Great Falls National Park“이 있다. 나이아가라처럼 어마어마한 규모의 폭포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Great Falls’라는 이름에서 짐작할 수 있듯 크고 작은 다양한 폭포들을 볼 수 있으며, 다양한 걷기 코스Trail가 있어 가족과 연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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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어쩔 수 없어. 해버리자!
* 필자 부부가 함께 만드는 YouTube 채널 “자폐, 함께 걸어요”에 소개된 영상을 글로 옮긴 것입니다. 일본의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오에 겐자부로는 장애를 가진 아이를 낳고 나서 평생에 걸쳐 아들과 가족이 어떻게 공생할지 고민하였다고 한다. 그의 고민은 『개인적인 체험』(머리에 기형을 가지고 태어난 아들을 기를 것인지 포기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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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서로가 자기 자신이 되는 것
알에서 깬다는 말을 들은 적 있는가? 알을 깨고 나와 진정한 내가 되어 새로운 세상을 마주한다는 말은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에서 처음 접한 말이었다. 처음에는 이해가 되지 않았으나, 어느 순간 나를 둘러싼 불편한 알껍질이 깨졌다고 느낄 때 다시금 그 의미를 되새길 수 있게 되었다. 최근 배우 고은아의 동생 미르가 운영하는 유튜브를 봤다. 영상 속에서는 고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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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사랑
“과장님 전화 왔어요” 창가에 서서 완연한 봄 날씨의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감사합니다. 개발2과 김 과장입니다.” “….” “여보세요?” “희수… 씨 맞아요?” “예. 누…구세요?” 직감적으로 그 아이란 생각이 들자 순간 온몸의 기운이 빠지고 목소리는 떨렸다. 그 아이는 유행하는 짧은 파마머리에 흰색 실크 원피스를 입고 집 대문에서 나왔다.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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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남자 VS 한국 남자
흔히들 일본을 ‘가깝고도 먼 나라’라고 하는데 그건 남녀 사이에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일본인 남자 친구와의 연애는 모르긴 몰라도 그간 경험했던 연애와는 다른 것이었다. 물론 사람에 따라 다르고 상황에 따라 변하는 것이 남녀 관계이니 일률적으로 ‘일본 남자가 이렇다’고 단정 지어 말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내가 만난 일본 남자는 한국 남자와 이런 점이 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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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퓨터를 이용한 자연 현상에 대한 실험
최근의 과학 및 기술 연구에 있어 실험과학 못지않게 중요한 수단은 컴퓨터 시뮬레이션Computer simulation, 이른바 ‘흉내 내기’다. 과거 컴퓨터가 지금의 휴대용 계산기만큼의 성능도 못 가졌던 50~60년 전에도 연구진들은 컴퓨터를 이용해서 지구에서 이륙한 아폴로 로켓의 운항 경로를 계산하여 계획한 시점, 계획한 지점에 달착륙선을 정확히 착륙시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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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성을 위한 망국의 기록! 『징비록』
『징비록』 서애 류성룡 지음 / 김문수 엮음 / 돋을새김 문명의 흥망성쇠를 다룬 『역사의 연구』 저자로 유명한 아놀드 토인비Arnold Joseph Toynbee는 민족을 크게 세 가지 유형으로 분류 할 수 있다고 했다. 그 첫 번째는 ‘재난을 당하고도 준비하지 않는 민족’, 두 번째는 ‘재난을 당해야만 준비하는 민족’, 그리고 세 번째는 ‘재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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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에서 배워야 한다.『잉카 최후의 날』
『잉카 최후의 날』 킴 매쿼리 저 / 최유나 옮김 / 옥당 현재 『잉카 최후의 날』은 절판 상태입니다. 중고서점이나 온라인 서점의 품절 센터 의뢰 기능을 이용해서 구하실 수 있습니다. 1532년 프란시스코 피사로가 이끄는 168명의 병사들은 잉카[1] 8만 정예병과의 전투에서 6천~7천 명이나 되는 원주민을 살육하고 잉카의 황제 ‘아타우알파’를 생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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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바랜 꿈
외부 세계에 처음 관심을 가진 것은 젊은 시절 아버지의 사진을 보고 나서였다. 사진 속 교복을 입은 청년은 자동차 범퍼에 걸터앉아 익살스럽게 웃고 있었다. 그 웃음이 자유로워 보였다. 울창한 대나무 숲을 배경으로 찍은 사진도 있었고 하얀 수증기가 피어오르는 온천에서 전통 의상을 입은 사진도 있었다. 아버지는 여행증이 없으면 어디도 갈 수 없는 조선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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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rong>나는 단지 승객에 불과하였다</strong>
어제까지는 승객이었다. 1729년 독일 출신 아버지와 스웨덴 출신의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예카테리나는 열 살 경 러시아 황제 옐리자베타의 조카 율리히(표트르 3세)와의 결혼을 제의받았다. 이에 대해 어머니는 환영했지만, 아버지는 집안 내력인 루터파 교회와의 결별이 걱정되어 개종하지 않겠다는 딸의 다짐을 듣고서야 결혼을 허락한다. 후일 옐리자베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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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으로 재탄생한 〈프리즘〉 연재, 『빨강 머리 앤과 함께하는 영어』
2019년 연말부터 1 년여의 시간 동안 〈프리즘〉 독자들의 열렬한 사랑을 받았던 조이스 박 작가님의 「빨강 머리 앤과 함께하는 영어」가 북하우스에서 종이책으로 출간되었습니다. 오랜 시간 〈프리즘〉과 함께해 온 작가님의 출간 소식이라 더욱 반갑고 기쁜 마음인데요. 『빨강 머리 앤과 함께하는 영어』는 루시 모드 몽고메리의 ‘빨강 머리 앤’ 시리즈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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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의 몫까지
꽃을 꺾을 때 나의 체취가 시작된다고 믿었다 고백은 배를 뒤집고 피어있다 복도에는 전혀 다른 시간이 흐르고 그 시간의 속살이 나의 흉터였다고 석조 건물 위에서 누군가 이쪽을 보고 있다 이쪽이 그를 떨어트린다면 나는 방관자일까 어느 쪽도 아니게 될까 문득 내 이름이 날아와 창문을 깨고 가는데 화창하다는 기분이 들었다 못해도 영원할 것처럼 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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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의 진보는 일직선이 아니다.
19세기 후반 빅토리아 시대, 당대 최고의 물리학자 중 한 사람이자 열역학의 시조이기도 했던 윌리엄 톰슨 (켈빈 경, William Thomson, Lord Kelvin)은 1858년에 출판된 헤르만 헬름홀츠 (Hermann von Helmholtz)의 'On Integrals of the Hydrodynamical Equations, which Exp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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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석기 시대 한반도의 선조들은 운석 충돌로 멸종했을까?
화산 활동? 운석 충돌? 적중·초계 분지에 관한 연구들 한국 경남 합천군 동남쪽에 위치한 적중면赤中面-초계면 근방에는 ‘적중-초계 분지’라는 펀치볼 형태의 분지가 있다(그림 1 참조). 이 분지는 우리나라에서는 보기 드문 거의 완벽한 형태의 정방형 분지이며, 사면이 야트막한 미타산(668m), 대암산(591m), 무월봉(622m), 국사봉 (688m)과 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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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 Hello! Ciao! Bonjour!
첫 여행지였던 로마의 인상은 강렬했다. 바다보다 더 파란 하늘엔 흰 구름이 유유자적하고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세계문화유산이라는 사실에 입이 떡 벌어졌다. 콜로세움, 바티칸 박물관, 베드로 성당, 트레비 분수, 이름 없는 건물과 돌탑들을 마주하니 방금 전까지 TV를 보다가 그 속으로 걸어들어 온 것처럼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로마는 역사 유물보다 관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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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는 사람
평생을 생각했던 직업을 놓아버리고 난 뒤, 놓지 않고 매일 읽던 책들을 통해서 알게 된 것은 자신을 직업이나 나이, 성별이나 국적으로 규정하지 않으려면 진짜 자신을 알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는 정말이지 어렵다. 철학자들이 왜 그토록 결론이 나지 않는 자기 자신에 대해 집착적으로 생각했는지 알 것도 같다. 오히려 직업으로 나를 소개할 때에는 쉬웠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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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결혼까지 할 일이야?
허락된 1년의 시간 동안 우리는 부지런히 사귀었다. 시부야渋谷에서 영화를 보고 주말엔 요코하마 차이나타운横浜中華街에서 얼굴 크기만 한 왕고기만두肉まん를 먹기도 하고, 키치죠지吉祥寺의 이노카시라井の頭 공원에서 오리 배도 타고, 여름엔 휴가를 나란히 맞추어 교토京都와 오사카大阪를 여행했으며, 여의치 않을 땐 아르바이트가 끝난 후에 우리의 첫 만남이 있었던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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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rong>고향을 잃어버린 나그네</strong>
고향이 사라졌다. 친구들과 뒷산에 오른다. 정월 대보름 이어서 그런지 일찍부터 보름달이 연못만큼 크게 떠 있다. 다들 오래전부터 준비해왔던 깡통마다 나뭇가지를 가득 채우고, 산 정상 아래 널찍한 들판에 모였다. 가장 나이 많은 형이 '하나, 둘, 셋'을 외치자 모두 깡통에 불을 붙이고, 열심히 돌린다. 더 힘차게 돌릴수록 불이 더 잘 붙게 되어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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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rong>"서비스 10미터" 저게 무슨 뜻이죠?</strong>
아래 단어들은 쉬운 듯하면서도 엉뚱한 뜻을 지니고 있다. 그렇다고 사전부터 집어 들지 말고 뜻을 추측해보자. - Services - Indicator - Boot 힌트 1 모두 ‘자동차’와 관련된 단어이다. 힌트 2 아래 각 사진을 참조하자. 1. Services 위 첫 번째 사진처럼 도로 표지판에 간단한 글귀만 적혀 있어서 외국인에게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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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드리 재즈
드뷔시의 햇빛 너는 건강했다기보단 오래 참았고 우리는 아팠다기보단 오래 떨었다 듣기 좋은 말만 듣고 자란 벽에서는 어떤 출구가 흐를까 클래식은 쓰레기야 너의 오래 참은 그 말은 듣기에도 잠시 머물기에도 꼭 안고 사라지기에도 좋았다 저녁이 되기 전에 밤을 새우자 이 밤이 이루어지기 전에 얼마나 많은 꿈의 사각을 거두어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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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직 역사 선생님이 이집트에서 찾아 온 인생의 대답
『이집트에서 띄우는 편지』- 김미정 “살아가기로 했더니 살아지더라!” 이집트로 떠난 전직 역사 선생님이 보내는 서른 통의 편지 유난히 몸에 남는 여행이 있습니다. 똑같이 돈을 모으고 시간을 내어 다녀왔는데, 어떤 장소는 빛 번진 사진처럼 흐릿한 반면 희미한 공기 냄새만으로도 순식간에 그날, 그곳으로 돌아간 기분에 휩싸이는 여행지도 있지요. 김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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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치 그만 보고 싶어서 쓰는 글
우리가 살아가며 마주치는 사람들의 수는 몇 명이나 될까. 오랜 시간에 깊은 대화를 곁들인 사람들만 센다면 그 수는 미미할 수도 있지만, 손끝 혹은 발끝이 향했던 사람들까지 합친다면 셈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해질 것이다. 출근 시간에 잠시 시선이 닿았던 우연, 어느 모임에서 쌓은 인연, 가지고 태어난 필연까지 나를 둘러싼 사람이야 수없이 많다. 어떤 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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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지은 거 아니야. 그러니까 죄책감 갖지 마."
정신분석학에는 '초자아(Super-Ego)'라는 개념이 있다. 보통 자아를 감시하는 심급으로 설명하는데, '양심의 삼각형'이나 '마음속 훈육관' 정도로 생각하면 된다. 즉, 내가 무언가 하려고 했을 때 검열하고 감시하는 심급인 것이다. 초자아가 거의 발달하지 않은 사람이 있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초자아가 굉장히 발달해서 스스로에 대한 자책이 심한 사람이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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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렴풋이 알게 된 것들
앞으로의 미래를 미리 계획해서 확신하기보다는, 지금까지 지나온 길을 돌아보는 게 좋다고 했다. 내 선택의 모든 자취들을. 이를 후회 없이 돌아볼 때 나는 지금 어디에 서 있으며, 경험한 것들로부터 무엇을 배우게 되었는지 알 수 있다. 아무리 힘들고 의미 없다고 느껴졌던 빈 순간에도 오직 그 순간을 경험하면서만 얻을 수 있는 인사이트가 있다. 확실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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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혼, 그 달콤하고 살벌한
한 달 만에 급하게 차린 신혼살림이었지만 부지런히 발품을 팔아 그럭저럭 구색을 갖추어 나갔다. 신혼집의 살림은 모든 것이 새로웠다. 가구도, 가전도, 심지어 새로 바른 벽지도. 허름한 맨션이었음에도 현관을 들어서면 아주 새집 같이 느껴졌다. 그곳에서 나도 새로운 내가 되어야 했다. 하지만 기존의 나를 새로운 나로 바꾸는 과정이 녹록지는 않았다. 한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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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rong>그녀는 달린다</strong>
우리를 악의 손아귀에서 벗어나게 하는 가장 강력한 무기는 겸손이다. (by. 조나단 에드워즈) 추방 은파 윗글은 직장 갑질 때문에 사표를 내게 된 사람의 사연을 듣고 ‘추방’이라는 제목으로 써본 내용이다. 우리 사회에서 가장 고질적인 문제는 ‘갑질’이라 단언해도 절대 과언이 아닐 것이다. 사회 곳곳에 갑질 문제가 만연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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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 걷는 일은 없을 것이다 같이 웃거나 울 수는 있어도 같이 걷는 일은
새, 그것은 어깨에 늘 뭉쳐있던 감각이었다 인파 속에서 부딪히고 휩쓸리던 나의 어깨는 심연을 쏘아다니는 꿈 꿈에서 감은 눈 속에서 우두둑 소리가 나 꿈에서 빠져나오는 것보다 눈물을 건너가는 것보다 의자에서 내려오는 것이 더 버거워 어깨를 뜯어내면 하늘이 보일 거야 새보다 꿈보다 미래보다 아름다운 보폭을 갖게 될 거야 사지가 붙어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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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려 가는 당나귀
“김 대리, 이번 건은 맨 처음 안으로 진행하자고.” 이해되지 않았다. ‘차라리 나중에 나온 2 안이나 3 안이 더 경제적이고 합리적일 것 같은데…’ 까칠한 부장의 성격을 이미 알고 있었지만, 용기를 내어 말해본다. “저… 부장님. 2 안이나 3 안은 어떨까요? 시간은 좀 더 걸리지만 2 안은 좀 더 경제적이고, 3 안은 보다 현실적이고 합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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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이 별건가
가고 싶은 여행지로 굳이 유럽을 정한 이유 중에는 천재 건축가 가우디Antoni Gaudi의 사그라다 파밀리아Sagrada Familia 성당을 직관하고 싶다는 마음이 컸다. 49인치 TV 프레임 안에서 처음 본 가우디 성당은 나의 궁금증과 상상력을 한껏 부풀렸다. 궁금증은 탄성으로 변했다. 사그라다 파밀리아는 화려한, 웅장한, 아름다운 등의 온갖 미사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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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지 못할 파리 이야기
여행의 종착지 파리에 입성한 날이었다. 프랑스 남부에서 아침 7시에 출발해 공항에 도착한 시간은 낮 한 시 30분이었다. 예약한 호텔까지는 25Km, 택시와 대중교통으로 갈 수 있었고 택시 요금은 50불이었다. 대중교통비는 저렴하지만 목적지까지는 네 번의 환승과 900m 도보로 총 두 시간이 소요된다고 검색되었다. 여행경비를 아끼려면 대중교통이 답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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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rong>태블릿을 삼키라고요?</strong>
아래의 단어는 남녀노소 누구나 살면서 한 번씩 필요한 것들을 가리킨다. 무슨 뜻인지 추측이 되는가? - Chemist - Tablet - Plaster 힌트 1 모두 '약'과 관련된 단어이다. 힌트 2 아래 각 사진을 참조하자. 1. Chemist Chemist는 화학자의 뜻도 있지만 영국식으로 약국이나 약사를 의미하는 단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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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도 북한을 배워야지요
남한에 입국했을 때 많은 사람들이 내게 이렇게 말했다. “이제 남한 사람이 됐으니 서울말을 배우고 남한 문화와 기술도 배워야지.” 나는 열심히 서울말을 배우고 서울 사람에 어울리는 옷을 고르고 화장도 했다. 공부하고, 일하고, 기술을 배우고, 문화를 이해하며 완벽하게 ‘남한 사람’이 되어갔다. 언젠가 통일교육 프로그램에 참가했을 때였다. 한 탈북 대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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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문제 어떻게 생각해요?
남과 북 사이에 사건이 발발하고 첨예한 대립관계가 형성될 때마다 사람들은 탈북자인 나에게 이런 질문을 하곤 한다. -이번 사태 어떻게 생각해요? -남북 관계 어떻게 될 것 같아요? -통일은 언제쯤 (되기는) 될 것 같아요? 처음에는 당황했고 어떻게든 답을 해보려고 애썼다. 하지만 남북문제가 평범한 소시민인 탈북자의 입으로 정의 내릴 수 있는 단순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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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물림 받은 '이방인'
소년 시절의 할아버지는 대구가 고향이었지만, 강제징용으로 일본에 끌려가 이방인이 되었다. 일본에서 태어난 아버지는 ‘조센징’이라 불렸다. 할아버지, 아버지, 나, 그리고 나의 딸로 이어진 우리 가족은 한 세기 동안 어디에도 귀속되지 못하고 이방인으로 살아왔다. 태어나 보니 내 신분은 ‘귀국자’, 이방인이었다. 귀국자는 일본에서 태어나 북한에 온 사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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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한 챕터 끝났을 뿐이잖아요
모두에게 스무 살 즈음이란 다 똑같을까요? 모르겠어요. 처음 경험한 스무 살, 스물하나, 그리고 스물둘이었어서 그동안의 시간이 비교적 수월하게 지나간 건지, 좀 거칠었는지 비교할 대상이 전혀 없는걸요. 그러고 보니 이 연재를 시작할 때의 전 스물두 살이었는데, 어느덧 한 살 더 많아진 지금 마지막 글을 쓰고 있네요. 처음보다 성인이 아주 조금 익숙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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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남자가 사랑하는 법
#1 서로 사랑하는 사자와 황소가 있었다. 둘은 처음 본 순간부터 상대에게 빠져들었다. 사자와 황소라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둘은 자신이 가장 아끼는 것을 상대에게 선물하고자 했다. 사자는 갓 잡은 새끼 영양을, 황소는 잘 마른 여린 여물을 가지고 왔다. 사자는 황소의 여물을 먹지는 못했지만 그 마음이 고마워 억지로라도 먹어보려 했다. 황소도 마찬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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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사랑은
비행기 소음 속에서도 제니의 규칙적인 낮은 숨소리가 밤 비행기 여행의 곤함을 느끼게 했다. LA에 거의 다 왔는지 창밖으로 대도시의 야경이 은하계처럼 화려하게 전개되고 있었다. "우와. 멋져요." 언제 깼는지 제니가 내 몸에 기대어 창밖을 내다보며 작은 목소리로 환성을 질렀다. 미국 여행도 뉴욕에서 LA로 가는 로컬 비행기도 처음 이었다. 늦은 시간 비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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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고 읽고 움직이는 것의 중요성
때로는, 가장 좋은 것을 가졌을 때도 만족하지 못할 때가 있다. 한 지붕아래 함께 밥 먹는 사람을 식구라 한다. 그렇다면 나는 지금 두 명의 식구와 살고 있다. 그녀들은 내 또래의 자매인데, 성향이 비슷해 삶의 패턴도 취향도 비슷하다. 혼자 사는 것만큼 편안하면서도 함께하니 더더욱 좋다. 그러나 가장 잘 맞는 사람들과 함께 있으면서도, 그 감사함을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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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제국주의의 망령! 『요시다 쇼인 시대를 반역하다』
『요시다 쇼인 시대를 반역하다』 김세진 지음 / 호밀밭 “일본의 총리는 태평양전쟁 패전일(매년 8월15일)을 전후해 대개 야스쿠니 신사를 참여하거나 공물을 봉납해 왔다. 2013년 총리에 재선된 아베 신조는 그해 8월13일 하기의 쇼인 신사를 참배하고, 쇼인의 묘지까지 찾아가 ‘쇼인 선생은 국가를 위해 자신의 몸을 바치는 매우 어려운 결단을 내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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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rong>부캐의 습격</strong>
나는 부캐인가? 본캐인가? 예전에도 그랬지만, 요즘 가장 핫한 연예인을 들라면 단연 유재석일 것이다. 20여 년 가까이 국내에서 최고 전성기를 구가한 이후 서서히 바람이 잦아들 거로 생각했는데, ‘부캐’와 함께 오히려 유재석 열풍은 더 거세지고 있다. 부캐란 원래 온라인 게임에서 주로 사용하던 계정이나 캐릭터 외에 새롭게 만든 ‘부 캐릭터’를 줄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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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야만성'을 이야기하다. 『파리대왕』
『파리대왕』 윌리엄 골딩 저 / 유종호 옮김 / 민음사 내가 정말 재미있게 읽은 책 중의 하나인 『파리대왕』의 핵심 문장은 아래와 같다. 막대 위에 꽂힌 암퇘지 머리야 넌 그것을 알고 있었지? 내가 너희들의 일부분이란 것을. 아주 가깝고 가까운 일부분이란 말이야. 왜 모든 것이 틀려먹었는가, 왜 모든 것이 지금처럼 돼버렸는가 하면 모두 내 탓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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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사람이 경험한 산책과 공간, 그림과 시
루소와 칸트, 니체의 공통점은 무엇일까요? 맞습니다. 세 사람 모두 서양 철학사에 굵직한 획을 그은 철학자이자 시대를 대표하는 지성입니다. 그런데 이들이 공유하는 특징이 하나 더 있었습니다. 바로 산책을 즐겼다는 점이지요. 니체는 「우상의 황혼」에서 “진정 위대한 모든 생각은 걷기로부터 나온다”라고 말했을 정도입니다. 소설가와 시인, 수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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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트코인이라는 절망적 희망 in『빨간 잉크』
* yeondoo 출판사의 『빨간 잉크』(이택광 저)의 아홉 번째 글 「비트코인이라는 절망적 희망」을 옮겼습니다. ‘세계 없음’의 ‘사유 없음’을 보여주는 대표 사례가 한때 한국을 휩쓴 비트코인 열풍일 것이다. 가히 광풍이라고 불릴 만한 ‘쏠림 현상’을 비트코인 열풍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이 ‘쏠림 현상’도 ‘사유 없음’의 징후 같은 것이라고 말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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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려진 마법의 돌
"아휴, 00님. 그걸 왜 00님이 해요! 이리 줘요." 종종 쓰레기통을 비운다. 사실 놀랄만한 일은 아니다. 나는 건강한 성인 남성이고, 걸어 다닐 수 있는 튼튼한 두 다리 뿐만 아니라, 뭔가를 잡을 수 있는 큰 두 손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기 지금 깜짝 놀라 ‘하지 말라’는 투로 말씀하시는 여사님의 의도는 그런 게 아니다. 내가 일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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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rong>보비를 현장에 보내게나</strong>
아래는 모두 같은 뜻을 지닌 단어들이다. 사전을 이용하지 않고 무슨 뜻인지 추측해보자. - Fuzz - Bobby - Peeler 힌트 1 올해 초, 아홉 번째 글(Gaol이 아니라 Goal 아닌가요?)에서 ‘범죄’에 관한 영국 영어를 소개했는데 이와 연관 지어 생각해볼 단어이다. 힌트 2 아래 각 사진을 참조하자. 1. Fuzz 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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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소년
1960년, 70년대에 《새소년》이라는 어린이 잡지가 있었다. 새해 신년 호에는 미래 세상에 대한 특집이 실리곤 했는데, 양쪽으로 펼쳐지는 네 페이지 크기의 커다란 종이에 〈미래의 21세기, 서기 2000년〉 상상과 호기심이 가득한 제목으로 땅속과 하늘에 도로가 있고 그 위로 차들이 다니는 그림이 실려 어린 눈에는 실현될 수 없는 신비하고 멋진 세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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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rong>여기서 스쿼트를 하라고요?</strong>
이번에는 부동산 시장에서 볼 수 있는 단어이다. 사전을 이용하지 말고 우선 뜻을 추측해보자. - Studio Flat - Squat - Conservatory 힌트 1 모두 ‘집’과 관련된 표현이다. 힌트 2 아래 각 사진을 참조하자. 1. Studio Flat Studio Flat은 우리가 잘 아는 원룸이다. Studio F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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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날의 기록을 돌아보며
삶에서 아주 부정적인 날들이 이어질 때가 있다. 그때는 바로 생각을 바꾸려 시도해야 한다. 아무리 노력해도 생각이 바꾸어지지 않는다면 생각이 아닌 다른 무언가를 바꿀 때인지도 모른다. 아주 적절하게, 삶에서 무언가를 배우기 위해서. 그렇게 자신이 삶에서 직접 변화를 이끌어낼 때 비로소 스스로를 믿는 힘이 생긴다. 학창 시절에는 원하는 대학 진학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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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
외발자전거 타듯 아슬아슬하고 불안했던 결혼 생활이 안정을 찾아가기까지 1년 남짓한 시간이 걸렸다. 남의 집 같았던 신혼집 세간 살림이 내 것처럼 얼추 손에 익어가고, 아침저녁으로 오가는 골목길 풍경도 ‘우리 동네’라고 불러도 될 정도로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 사이 나도 무사히 취직과 이직을 거쳐 한 사람 몫의 밥벌이를 해 내는 근로 소득자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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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rong>내가 머무는 곳은 어디인가?</strong>
나는 그냥 세계 속에 내던져진 존재이다. 코로나19 사태 초기에 한・중・일 등을 중심으로 한 동양권 국가보다 미국 등 서구권 국가에서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대규모 감염자가 나오자 처음에는 갸우뚱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미국만 하더라도 전 세계에서 단연 으뜸으로 확진자와 사망자가 쏟아져 나왔고, 서구권 국가 대부분이 같은 추세를 보였다. 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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꼰대에 관하여 in『축제와 탈진』
* yeondoo 출판사의 『축제와 탈진』(박권일 저)에 실린 글을 옮겼습니다. 꼰대에 관하여 “라면에 ‘좋았던 옛날’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일본 만화 〈라면요리왕〉의 한 장면이다. (여기서 라면은 인스턴트 라면이 아니라 일본식 ‘라멘’이다.) 해외에서 활약하던 유명 건축가가 30년 만에 귀국해 젊은 시절 먹던 추억의 라면을 먹고 싶어 한다. 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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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과 재와 평화
나는 신경이 끊어진 것일 수도 온몸의 스위치가 켜진 것일 수도 있었다 달려갈 수도 사랑할 수도 없게 되었지만 날고 있다는 기분 다시 태어나고 있다는 기분 * 솔방울이 떨어진다 찌그러진 물병은 열두 개의 바다를 가로질러 왔고 천사는 닭의 슬픔을 비틀어 새벽을 조용히 껴안는다 * 휠체어에는 많은 사람이 앉아 있다 더 많은 자세와 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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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살부터 맥주를 마신다고? 영국에 사는 한국인 번역가의 문화 충격 적응기
알쏭달쏭 오해하기 쉬운 영국 영어를 수요일마다 콕 집어 가르쳐 주는 프리즘 연재 《앗, 영국 영어가 이렇다고?》, 다들 재미있게 보고 계신가요? 오늘은 《앗, 영국 영어가 이렇다고?》 정숙진 작가님의 신간 소식을 전해드리고자 합니다. 프리즘 연재가 영국 ‘영어’에 대한 궁금증을 풀어주는 콘텐츠라면, 신간 『영국에 살면 어떤가요?』는 ‘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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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적 아름다움이 물리학에서 갖는 의미: 제1부
19세기 초반에 등장했다 20대의 젊은 나이로 요절한 두 천재 수학자가 있다. 한 명은 노르웨이의 수학자 닐스 헨리크 아벨Niels Henrik Abel(1802-1829), 다른 한 명은 프랑스의 수학자 에바리스트 갈루아Évariste Galois(1811-1832)다. 두 사람은 19세기 초반의 유럽 사람이라는 것, 30세도 안 되어 요절했다는 것,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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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rong>운동화 회사 사장님 아니신가요?</strong>
아래의 단어는 영국인이 몸에 착용하는 것을 가리킨다. 사전 없이 뜻을 추측해보자. - Wellies - Trainers - Plimsolls 힌트 1 모두 ‘신발’과 관련된 단어이다. 힌트 2 아래 각 사진을 참조하자. 1. Wellies Wellies는 Wellington Boots의 준말로 영국에서 장화를 가리킨다. Welling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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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고기서 고기다!" 고기 먹는 초식남의 섬세한 육식 철학
『초식남이지만 고기를 좋아합니다』by 변준수 초식남의 정의입니다. 문자 그대로 풀만 먹는 남자를 뜻하는 건 아니라지만, ‘초식남’ 하면 샐러드나 두부 요리를 정갈하게 차려 먹는 사람이 먼저 떠오르는 게 사실입니다. 복스럽게 갈비를 뜯고 큼지막한 쌈을 입에 넣는 모습보다는 말이지요. 반대로 ‘고기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하면 “한 손에는 고깃덩이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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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rong>뭐라고 적어서 보내야 하나?</strong>
이번에는 영국에서 접할 수 있는 서류에 나오는 문구들이다. 암호 같은 이들의 뜻을 추측해보자. - C/O - FAO - Freepost 힌트 1 모두 ‘편지’와 관련된 표현이다. 힌트 2 아래 각 사진을 참조하자. 1. C/O C/O는 Care Of의 약자로 ‘전교轉交’[1]를 뜻한다. 미국식, 영국식 구별 없이 영어권에서 모두 사용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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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정은 해도 후회는 말자
애초에 ‘말을 꺼낸 사람’이란 뜻의 일본어다. “같이 살까요?’” 생각지도 못한 나의 폭탄 발언에 그 자리에 있는 모두의 눈이 휘둥그레졌지만, 사실 가장 놀란 건 누구보다 나 자신이었다. 지금 와서 다시 생각해 봐도 그때 무슨 생각에, 무슨 용기로 그런 말을 꺼냈는지 알 길이 없다. 다만 눈앞에 벌어진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뭐라도 ‘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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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집을 지을 시간』
* yeondoo 출판사의 『지금은 집을 지을 시간』(이종건 저)에 실린 글을 옮겼습니다. 1부 - 집 집이 없는 사람들 “지금 집이 없는 사람은 앞으로도 집이 없을 것입니다.” 시인의 대명사로 불리는 독일의 시인 릴케Rainer Maria Rilke가 「가을날」에 쓴 문장이다. ‘지금’ 집이 없는 사람은, 그가 누구든, 영원히 집이 없을 것이라는 릴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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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rong>내 삶은 내 것인가?</strong>
나는 내 삶을 살고 있는 것일까? 요즘 학생들은 학교 급식을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겠지만 예전에는 등굣길을 오가는 학생들 손에 책가방과 도시락통이 함께 들려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웃픈 일인데, 그 당시에는 늘 도시락 반찬 때문에 고민이 많았었다. 모두 힘들게 살던 시절이었기 때문에 반찬이라고 해보았자 뻔했다. 대부분 김치에 콩자반이나 단무지가 일반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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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치바나 다카시와 사토 마사루가 추천하는 책 400권! 『지의 정원』
『지의 정원』 다치바나 다카시, 사토 마사루 지음 / 박연정 옮김 / 예문 파주로 이동 중인 차 안에서 아내에게 물어보았다. “자기는 책 선택을 어떻게 하지?” “대개 미디어(TV, 라디오, 유튜브 등)에서 언급되는 책을 선택해서 읽곤 해.” “그 선택이 실패하는 경우는 없어?” “있지. 바로 얼마 전에 미디어에서 송XX이 언급한 책을 도서관에서 빌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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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려주세요 잠시라는 영원의 다른 이야기를
이름을 지우면 보이는 숲이 있었다 고철들이 쌓여있고 고철들이 쌓아올린 고요 속으로 쏟아지거나 쏟아지는 소리가 들리고 고철들 사이로 영원이라는 짐승이 지나가고 있었다 짐승은 고철 더미를 뒤지며 무언가를 찾고 있었다 고요의 형량 같은 것을 쏟아지는 것들이 입에 물고 있던 지평선 같은 것을 짐승은 흰 티셔츠에 하얀 청바지를 입고 있었다 나는 그 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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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모두 엄마가 처음이다
고등학교 2학년. 한참 반항의 시기를 겪고 있었던 나에게 엄마는 멈추지 않는 눈물을 닦아내며 억울한 듯 이렇게 외쳤다. 다른 집 엄마들은 어떻다는 둥, 엄마라면 그 정도는 감수해야 한다는 둥, 엄마면서 왜 나랑 똑같이 그러냐는 둥, 이럴 거면 나를 왜 낳았냐는 둥… 지금 돌이켜보면 수도 없이 엄마의 가슴을 찢어내는 듯한 날카로운 말들을 잘도 뱉어냈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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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rong>기술 시대를 살아가는 법</strong>
기술은 기회이자 위기이다. 최근 장석주 시인의 「대추 한 알」이라는 시를 보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대추를 통해 세상 이치를 재치 있고 엄중하게 표현한 시인의 의도는 무엇일까? 우리 선조들은 여러 과일 중에서도 대추를 가장 중요하게 여겨 제사상 맨 왼쪽에 올려놓곤 했다. 또한 예전에 먹을 것이 없었던 시절에는 대추가 한약재에 들어가 서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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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양식이었다
포장지가 필요했다. 선물을 위한 것은 아니었다. 상점에 들러 고급스러운 종이 가방을 샀다. 그 잠깐 사이에 입구에 두었던 우산이 사라졌다. 우산통에 꽂힌 여럿 중에 하필 내 것이. 우산이 사라졌고 비는 내리지 않고 있었다. 비가 내리지 않아서 우산이 사라지는 일이 잦았다. 아무도 이 현상에 대해 밝혀내지 못했다. 우산은 사라지는 계절인지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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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렁이와 뱀
지금은 되도록 일터와 집을 오가며 아무 데도 들르지 않으려고 하지만, 마스크가 필요 없었던 작년만 해도 카페에 자주 갔다.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일을 할 때 도서관같이 아예 조용한 장소보다는 약간은 소음이 있는 장소가 집중이 더 잘되기 때문이었다. 카페를 자주 이용하다 보니 단골집도 생겼다. 사장님은 나를 알아보시는 건 물론이고 “○○ 씨 어서 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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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적 아름다움이 물리학에서 갖는 의미: 제2부
지난 1부에 이어 힐베르트 다음 세대의 수학자 두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통해 2부를 시작해 보자. 그 첫 번째 인물은 바로 독일의 수학자 에미 뇌터Amalie Emmy Noether(1882-1935)다. 비운의 여성이자 유대계 수학자인 그녀는 뇌터 링Noether ring 정리, 라스커-뇌터 정리 같은 순수 수학에서의 업적 외에도 ‘뇌터 정리No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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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픈 자화상 in 『베이비부머를 위한 변명』
* yeondoo 출판사의 『베이비부머를 위한 변명』(장석주 저)에 실린 글을 옮겼습니다. 무수한 세대가 있다. ‘산업화 세대’, ‘민주화 세대’, ‘386 세대’, ‘88만원 세대’, ‘3포 세대’, ‘잉여 세대’ 등등이 그것이다. 베이비부머는 전후의 궁핍에서 태어나고 자랐기에 가난을 보편적 경험으로 기억하는 이가 많다. 우리보다 앞선 해방둥이 세대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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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챙이적을 떠올린 청개구리
“에? 눈이 온다고?” 출근 전 미리 날씨를 확인한다. 대중교통을 이용하기에 갑자기 비나 눈이라도 오면 퍽 곤란해지기 때문이다. 그날도 그랬다. 저녁을 먹고 퀼팅 재킷을 입었다. 지퍼를 올리고, 마스크를 쓴다. 스마트폰 앱에서 ‘날씨’를 확인하니 일요일에 눈이 올 거라고 했다. “아, 그러고 보니까 눈 올 때가 됐구나…” 듣는 사람도 없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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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귀와 주인
“제법 쌓일 것 같네요.” 지난겨울의 어느 금요일 저녁에 주말 직장으로 출발하면서 확인한 일기예보가 옳았다. 일요일 아침, 검은색 롱패딩을 입고 출근한 동료는 지금 눈이 내리고 있다고 했다. 그보다 먼저 나온 나는 눈이 내리는 모습을 보지 못했다. 아마 새벽에서 아침으로 다 넘어온 때부터 눈이 내리기 시작했나 보다. “커피 드실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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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부와 언 뱀
작은 교실에 아이들이 옹기종기 모였다. 녀석들은 안경을 쓰고 단정하게 머리를 묶은 블라우스 차림의 선생님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하고 있다. 그녀의 반묶음 머리 위에 살포시 얹어진 빨간 리본 때문일까? 아니었다. 발그레한 아이들의 두 볼처럼 빠알간 봉숭아 물이 든 선생님의 손끝은 그림을 향하고 있었다. “자, 여러분! 이게 뭘까요?” 아이들은 팽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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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rong>다시 앉아서 뭘 하는 건가요?</strong>
아래는 영국의 학생들이 싫어하는 단어이다. 사전을 이용하지 않고 무슨 뜻인지 추측해보자. - Resit - Revise - Read 힌트 1 모두 ‘학교 공부’와 관련된 단어이다. 힌트 2 아래 각 사진을 참조하자. 1. Resit Resit은 영국의 학생들에게 공포의 단어이다. Resit, 말 그대로 다시 시험을 쳐야 한다는 뜻이기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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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rong>호브에 뭘 얹어두었나요?</strong>
아래의 단어와 표현은 영국인의 집에서 많이 볼 수 있는 사물을 가리킨다. 무슨 뜻인지 추측해보자. - Washing up liquid - Fridge - Hob 힌트 1 모두 ‘부엌’에서 사용하는 것들이다. 힌트 2 아래 각 사진을 참조하자. 1. Washing up liquid Washing-up 설거지 미국식 Dish-wash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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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rong>살 빼러 농장에 간다고요?</strong>
아래는 영국의 여성들이 많이 쓰는 표현이다. 물론 남성도 쓴다. 무슨 뜻인지 추측해보자. - Nail Varnish - Facial - Health Farm 힌트 1 모두 ‘미용’과 관련된 표현이다. 힌트 2 아래 각 사진을 참조하자. 1. Nail Varnish Nail Varnish: 매니큐어 (용액) 미국식 Nail Poli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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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rong>다음 친척은 누구냐고요?</strong>
아래는 영국의 공문서에 자주 나오는 표현이다. 무슨 뜻인지 추측해보자. - Registrar - Civil Partnership - Next of kin 힌트 1 모두 ‘가족’과 관련된 표현이다. 힌트 2 아래 각 사진을 참조하자. 1. Registrar Registrar는 영국의 관공서에서 출생과 사망, 결혼 등의 신고 업무를 수행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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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rong>재킷을 먹으라고요?</strong>
아래는 영국의 요리책에서 볼 수 있는 단어들이다. 무슨 뜻인지 추측해보자. - Jacket - Stone - Gherkin 힌트 1 모두 ‘음식’과 관련된 단어이다. 힌트 2 아래 각 사진을 참조하자. 1. Jacket 겉에 걸치는 상의를 뜻하는 Jacket이라는 단어가, 영국에서는 감자 껍질을 의미하기도 한다. 위 사진처럼 통째로 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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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rong>영국의 법정에 나타난 바리스타</strong>
아래는 영국의 법정 드라마에서 볼 수 있는 표현이다. 무슨 뜻인지 추측해보자. - Barrister - Solicitor - Deed Poll 힌트 1 모두 ‘법률’과 관련된 표현이다. 힌트 2 아래 각 사진을 참조하자. 1. Barrister 위 사진은 영화 〈어바웃 타임〉의 한 장면이다. 돔놀 글리슨의 팬들에게 미안하다. 최선을 다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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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한 『12가지 인생의 법칙』
『12가지 인생의 법칙』 조던 B. 피터슨 지음 / 강주헌 옮김 / 메이븐 “카똑!” 카카오톡 알림 신호에 휴대폰을 들여다 본다. “시간있습니까? 순댓국에 소주나 한 잔합시다” 같은 공간에 있기 꺼려지는 지인이 만나자고 한다. 업무상 만나지 않을 수는 없지만 이 사람과의 술자리는 불편하다. 쓸데없이 말이 많고 주변 사람을 피곤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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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은 무엇을 원하는가! 『신의 위대한 질문』
『신의 위대한 질문』 배철현 저 / 21세기북스 서울역 주변과 지하철에서 가끔 볼 수 있는 현수막의 문구文句다. 기독교의 구세주[1]인 예수[2]를 믿으면 천국 가고 믿지 않으면 지옥 간다는 뜻이다. 그런데 천당과 지옥의 정체성[3]과 존재 여부는 미루어 두고, 예수께서 하신 말씀과 행동 중에 뭘 믿어야 한다는 건지에 대해서도 언급이 없다. 기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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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만의 리그 in 『봄 말고 그림』
* yeondoo 출판사의 『봄 말고 그림』(임지영 저)에 실린 글을 옮겼습니다. 그들만의 리그그들만의 리그! 이 말만큼 예술계를 잘 설명한 단어는 없을 듯하다. 예술이 흔해지고 가까이 다가왔어도 우리는 여전히 잘 모르겠고 좀 멀다고도 느낀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하니 잘 모르는 나는 예술 까막눈이라는 생각에 지레 겁을 먹은 것도 같다. 친구 따라 미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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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rong>유발 하라리의 사자 인간</strong>
신은 내 마음속에 있다. 살아가면서 신에 대해 생각해 보지 않은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인간에게 내려진 영원한 숙제처럼, ‘신이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는 오래도록 우리를 따라다녔다. 신은 과연 있는 것일까? 초등학교 시절 교회에 다녔다. 지금 생각해 보니 침례교회였다. 부모님 모두 일을 하고 계셨기 때문에 대부분의 시간을 친구들과 보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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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적 아름다움이 물리학에서 갖는 의미: 제3부
지금껏 살펴본 것은 19세기부터 시작된 대수 기하학, 그리고 함수 해석학의 발전이 어떻게 물리학자들에게 영감을 주었고, 어떻게 그것을 해석했으며, 어떻게 그것을 이용하여 물리적으로나 수학적으로나 아름다운 이론을 만들어 냈는가에 대해서였다. 그 상호작용의 역사를 돌이켜 보면 다음과 같은 순서도로 정리할 수 있다. 1. 수학자들이 한발 앞서 어떠한 물리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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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읽기 위한 첫걸음. 『자본론을 읽다』
『자본론을 읽다-마르크스와 자본을 공부하는 이유』 양자오 저 / 김태성 역 / 유유 48억 9,200만 원. 매출이 44.2% 감소하고 1,853억 원 영업 손실로 적자가 발생한 호텔신라 이부진 사장의 지난해(2020년) 연봉으로 2019년 대비 52.6% 증가했다. 그러나 직원들은 경영난 타개를 위해 연봉을 평균 15.3% 줄였다. 30억 9,800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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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는 만큼 보인다.『박물관 보는 법』
『박물관 보는 법』 황윤 저 / 손광상 그림 / 유유 “백제의 왕도였던 공주와 부여에는 온전한 반가사유상이 없고, 하반신만 남은 반가사유상이 유일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다. 그러나 백제계 반가사유상은 일본 도쿄 국립박물관, 대마도 정림사, 나가노 관송원 등에 있다.” 2021년 2월 25일 공주시의회 주관 ‘국외 소재 백제문화유산의 가치 조명’ 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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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이면 '덜'이고 아들은 '잘'했다는 건가요?
엄마가 된다는 사실을 실감하는 몇 가지 순간들이 있다. 이를테면 임신 테스트기의 두 줄을 확인할 때. 초음파 사진에서 콩알만 한 아이가 젤리 곰이 되어 손발을 꿈틀거릴 때. 똥배와 구별이 안 가던 배가 빵빵하게 부풀어 올라가기 시작할 때. 아이를 만날 날이 다가올수록 있는 줄도 몰랐던 가슴에 젖이 차오름을 느낄 때. 진통의 간격이 8분… 6분… 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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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rong>최선으로 되었다</strong>
초연한 기다림이 필요하다. 이 부장은 지방대를 졸업하고 경기도에 있는 건설회사에 들어갔다. 사람이 착하고 심성이 좋아 상사들에게 늘 인정받는 직원이었고, 주변에서도 성실성으로 칭찬이 대단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기회가 찾아왔다. 동종업계의 스카우트 제안이었다. 국내 굴지의 대기업 계열회사라 별 고민 없이 이직을 선택하였고, 이전 회사에서 그랬던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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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에게 피임약과 섹스 토이를! in 『진 달래 아리』
* yeondoo 출판사의 『진 달래 아리』(윤성의 저)에 실린 글을 옮겼습니다. 고양이에게 피임약과 섹스 토이를! 수컷 고양이에 달려 있는 땅콩을 제대로 본 건 삐노가 처음이었다. 그 전에는 다들 암컷 고양이들이었기 때문에 겉으로는 딱히 두드러지게 보이는 게 없었다. 달래나 아리 모두 한 살이 되기 전에 근처 동물병원을 찾아 중성화 수술을 했어서 삐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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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온
별들이 도시를 세고 있을 때 굳어진 손 펴지고 밤은 담장을 넘는다 별들은 열 개의 손가락을 한번에 부러트린 모양 으로 빛나고 도시는 우리가 아는 수로도 모자라 셀 수가 없는 하나 둘 셋 넷 셀 수가 없을 정도로 분명하게 지독하게, 계수되고 밤은 아직도 담장을 넘고 있다고 한낮의 테라스에 앉아 별들의 지문을 쪽쪽 빨아대는 사람들 양을 세어보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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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적 아름다움이 물리학에서 갖는 의미: 제4부
3부의 마지막에 언급했던 계보를 따라오다 보면 현 세대 과학자로 분류될 수 있는 학자들을 여럿 만날 수 있다. 이스라엘 태생 미국의 천체물리학자 마리오 리비오Mario Livio(1945-)도 그중 한 사람이다. 그는 2009년 『신은 수학자인가?Is God a Mathematician?』라는 책을 펴냈는데, 그 책에서 위그너의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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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로운 솔로몬 왕이여
아이가 태어나면 꼭 넣고 싶은 글자가 있었다. 한자로는 맺을 ‘결結’. 결혼하다, 결론짓다 할 때 쓰는 바로 그 ‘결’ 자다. 한국인 엄마와 일본인 아빠가 만나 맺은 결실. 엄마와 아빠를 맺어 준 것처럼 한국과 일본을, 사람과 사람을 맺고 이어주는 사람이 되기를. 또한 네가 가는 길목마다 결실을 맺고, 싹을 틔워 나가라는 의미를 이름에 담았다. 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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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rong>지금이 중요하다</strong>
지나간 것은 후회하지 말고, 아직 오지 않은 것은 두려워하지 말자. ‘꿈속이’는 요즘 괴롭다. 하는 일 중 제대로 되는 것이 하나도 없다. 예전에는 하는 일마다 하늘이 돕는 것처럼 잘 풀렸었다. 일단 시작만 하면 주위에 있는 모든 사람이 도와주었다. 주변에 사람들도 많이 몰려들었다. 일이 잘되니 집안도 평화로웠다. 그렇다 보니 세상이 마치 자신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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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적 아름다움이 물리학에서 갖는 의미: 제5부 (終)
길고 긴 시리즈의 마지막 순서다. 이 글에서는 이제 마지막으로 많은 물리학자들이 철석같이 믿고 있는 ‘수학적 미 mathematical beauty‘라는 것이 도대체 무엇일까 한번 짚어 보고자 한다. 이 ‘수학적 미’와 ‘수학의 미beauty of mathematics’은 일견 비슷해 보이나 사실 다른 개념이다. 전자는 모든 사상의 수학적 측면에서 발현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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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자와 의자
내가 자주 가는 길에 서 있었다 나는 내가 점으로 보일 때까지 내가 아니었다 작은 원을 그리고 있었다 생각한 것보다 크구나 작은 원 안에 갇힌 큰 원처럼 나의 너머를 마주하고 있었다 물론 너를 배웅하기도 했다 내가 점으로 보일 때까지 우리가 등을 보이고 점이 등을 내어주고 아픈 얼굴들이 뿔뿔이 흩어질 때까지 나의 너머에는 바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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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짓기 첫째 날과 둘째 날
이종건|건축 비평가 목조 주택은 물이 쥐약이다. 장마 기간 전에 뼈대(투습방수지 마감)와 지붕 작업을 끝내리라 일찍 서둘렀지만, 계획대로 되지 않는 것이 세상사의 원리다. 골조 공사 목수도 곡절 끝에 붙잡았고, 허가 절차도 상상할 수 없던 복병들을 만났으며, 기초 공사 목수 찾기도 어려워 착공일이 훌쩍 지체됐다. 노심초사로 나날을 보내다 마침내 땅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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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인한 9월 in 『피고 지고 꿈』
* yeondoo 출판사의 『피고 지고 꿈 - 그래도 보따리 강사로 산-다』(강정화 저)에 실린 글을 옮겼습니다. 잔인한 9월 9월은 잔인하다. 우리 시간 강사에게 9월은 잔인하다. 3월 역시 마찬가지지만 추웠던 날씨가 풀리고 곧 봄이 될 것이라는 희망 때문인지 9월보다는 덜한 느낌이다. 여전히 더운 9월이지만 하나둘 낙엽이 보이고, 추석이라는 큰 명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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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소서만 80번! '자기만의 방' 꿈꾸던 어느 유학생의 취준 생존기
『안 상, 들어오세요』
by 가람 “나는 집과 약간의 돈이 필요했을 뿐인데 하고 싶은 일까지 하려고 욕심을 부렸던 게 아닐까.” 현재의 청년 세대는 늘 경제가 어렵다, 취업이 힘들다는 말을 들으며 살아왔습니다. IMF 구제금융에 대해 배우며 글로벌 금융 위기 여파 아래 자랐으니 무한 경쟁과 위기의식의 내면화는 자연스러운 일이었죠. 일본에서 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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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질 없는 리더보다 준비 없는 리더가 나쁘다
내가 진행하는 직장인 토론 모임에서 종종 리더십과 창업가 정신을 주제로 다룰 때가 있다. 그때마다 한두 발 물러서서 토론에 참여하는 멤버들이 있는데, 이야기를 들어보면 자신들은 아직 리더가 된다는 것이 남의 이야기같이 들려서 적극적으로 참여하기가 망설여진다고 했다. 이런 멤버들에게 내가 자주 하는 말이 있다. “우리는 누구나 리더가 됩니다. 리더 역할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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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접은 포장이 아닌 선물이다
직장 생활 중 경험한 면접에 대한 기억은 의외로 강렬하다. 2005년 첫 면접부터 2019년 마지막 면접까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면접 장소와 분위기부터 질문과 답변까지 많은 부분이 기억 속에 생생하게 남아 있다. 아무래도 취업에 있어서 면접이 차지하는 비중이 절대적이다 보니 준비도 긴장도 많이 했기 때문일 것이다. 언젠가부터 면접을 앞두고 조언을 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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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직장도 시차 적응이 필요하다
오후 네 시, 어김없이 졸음이 쏟아진다. 토론토에 도착해 자가격리를 시작한 지 일주일이 지났지만 여전히 시차 적응에 애를 먹고 있다. 지금 새벽 다섯 시인 한국 시간에 맞춰 밤을 새운 듯한 피곤함이 몰려온다. 몇 해 전부터 찾아온 노안까지 더해져 컴퓨터 화면이 선명하게 보이지 않는다. 시차 적응도 결국은 적응하는 것이라 그런지 한 살 더 먹을수록 오래 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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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력은 배신해도, 게으름은 배신하지 않는다
생각보다 컨설팅 업무가 잘 풀렸다. 고객 반응도 유난히 좋았다. 평소 아내에게 일 이야기를 잘 안 하는 편인데 이번엔 “고객들 반응이 괜찮네”라며 은근히 자랑까지 했다. 하지만, 저녁 늦게 다른 고객으로부터 컴플레인이 들어왔다. 아침에 전달받은 자료가 본인이 원했던 결과물이 아니라고 했다. 속으로 아차 싶었다. 솔직히 이번 컨설팅할 때 조금 게을렀기 때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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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미친 짓이다 in 『이 순간 사랑』
* yeondoo 출판사의 『이 순간 사랑』(송정림 저)에 실린 글을 옮겼습니다. 사랑은 미친 짓이다 도니체티 〈람메르무어의 루치아〉 그 사람과 함께하지 않는 모든 시간이 통곡 소리를 내고, 그 사람과 함께하지 않는 기쁨은 빛을 잃어버린다. 그런데 어느 순간 눈을 떠보면 나 혼자 힘없이 걸어가는 때가 있다. 사랑하는 사람이 먼저 걸어가는 때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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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rong>여기를 잊지 말자</strong>
내가 거주하는 여기가 가능성이다. 외국에 사는 동포들은 대부분 그들의 뿌리를 잊지 않고 고향을 그리워하며 살아간다. 그래서 매년 추석이나 설 명절 행사도 잊지 않고 전통을 이어가는 경우가 많다. 물론 이민 2세대, 3세대로 내려가면서 자신들의 뿌리에 대한 의식이 점점 희미해지긴 한다. 하지만 세대가 내려간다고 해도 정서는 남아 있는 것 같다. 동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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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츠만과 그의 통계물리학 1부
위 이미지는 칼텍Caltech(캘리포니아 공과대학)의 물리학자 데이비드 굿스타인David Goodstein의 책 『States of Matter』의 1장 도입부로 보인다. [1] 첫 문장에서 언급하듯, 통계물리학의 태조 격인 볼츠만이나 그의 제자였던 에렌페스트 모두 불행하게 생을 마감했다.[2] [3] 이들이 우울증을 앓았고 결국 삶을 불행하게 마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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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츠만과 그의 통계물리학 2부
볼츠만은 그의 운송 방정식이 수학적으로나 물리학적으로나 정교한 비평형 분자동역학의 이론이 되어 줄 것으로 생각했다. 문제는, 이것이 정작 볼츠만 자신이 이론을 유도한 기저인 뉴턴 역학과 배치되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는 것이다. 특히 뉴턴 역학은 힘, 질량, 그리고 시간만 주어지면 개별 입자의 위치와 운동량이 어떻게 변할지 예측할 수 있는, 기계적으로 잘 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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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지자들
정명섭|소설가 여자가 사라졌다. 부사를 사용했다는 죄로 말이다. 우리 둘은 데이트 중이었다. 데이트라고는 하지만 도시 외곽에 가서 바깥과 차단하는 에너지 장막을 구경하는 게 전부였다. 지하 발전 시설에서 만들어지는 전기에 시즈 에너지를 섞은 장막은 무지개색이었다. 에너지 장막 덕분에 도시 안은 안전했다. “아름다워.” 내 말에 여자는 고개를 끄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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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두 방울의 여름
빗물은 두 손을 놓아버린 기도 너의 기도들을 땅에다 묻고 있는 나의 기도는 빗속에서 잃어버린 나의 두 발과 닮았다 우산은 펼치는 순간 음악이 되어 흩어지고 빗속은 음악 속으로 타들어간다 빗속보다 음악 속이 더 깊은 것처럼 빗속에서 잃어버린 것보다 음악 속에서 잃어버린 것이 더 많은 것처럼 무덤에서 사람이 올라오는 것을 무덤에서 기도가 올라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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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쥐와 족제비
*과거의 시점에서 서술하고 있습니다. 푹 자고 일어났다. 아직 불을 켜지 않아 어둡다. 스마트폰 잠금을 해제하고 밤새 무슨 연락이 왔나 확인한다. ‘새해 복 많이 받으라’는 내용의 메시지들이 대여섯 개쯤 보인다. ‘새해 복이라고?’ 진짜다. 새해다. 그냥 잠들었다가 깼을 뿐인데, 2020이 도망하고 2021년이 왔다. “허, 뭐 했다고 1년이 벌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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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yeondoo가 북콘서트를 엽니다
7월 24일 임지영 〈봄 말고 그림〉 임지영 작가는 사람들이 재미로 사느냐고 하지만, 철저한 재미 추구자예요. 사람도, 사랑도, 삶도 무조건 재미있는 것이 좋다고 자신 있게 말합니다. 그림을, 문화를, 삶을 보는 것으로 그치지 말고 누려요. 그래서 봄 말고 그림! 7월 25일 장청옥 강정화 조다희 〈걷고 보고 쓰는 일〉 동아대학교에서 글쓰기를 가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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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라 나쁜 놈들을 졸라 나쁘다고 하지 못하고
윤성의|IT 노동자 졸라 나쁜 놈, 저 덩치 큰 녀석도 그랬다. 한마디는커녕 낌새도 없이 다짜고짜 머리부터 쑥 들이밀었다. 내 뒤에서 짐짓 생각에 잠긴 척 점잖은 표정을 짓고 있더니 어느새 조용히 내달려 와서는 새치기를, 그것도 이렇게 일부러 위험하게 하다니. 이럴 때 유용하라고 꼭 챙겨 쓰는 건 아니지만, 헬멧 덕에 입술이 보이지도 않고 소리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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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패하는 것들, 나, 베트남
매혹이란 무엇일까? 특정 사물에 매혹되는 것은 나에겐 어려운 일이다. 사물에 대한 감각은 일차적으로 시각을 기반으로 이루어지며, 사물을 지각하지 않으면 매혹은 발생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나는 시각을 잘 믿지 못하도록 설계된 사람이라고 느낀다. 시각뿐 아니라 대부분의 지각에 대해서도 그렇다. 따라서 특정 사물이 매혹적이라고 인식하는 일부터가 어렵다. 혹 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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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권을 빨아버렸다 in 『별것 아닌 것』
* yeondoo 출판사의 『별것 아닌 것』(전윤혜 저)에 실린 글을 옮겼습니다. 여권을 빨아버렸다 땀이 많은 니콜라스는 티셔츠를 하루에 두세 개씩 갈아입는다. 어제도 저녁 내 걸었지. 바지며 속옷이며 땀 닦은 수건이며. 바닥에 쌓인 빨랫감이 한 더미다. 니콜라스는 태평히 조식을 먹으러 가자고 한다. 나는 오로지 빨래 생각뿐인데. (그렇다. 그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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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rong>동양 사상에 해결의 열쇠가 있다</strong>
이데아 vs 기독교적 신 vs 이성 플라톤에 따르면 인간은 본래 불완전한 존재로서 초월적 실재인 이데아를 추구하는 존재라고 한다. 이러한 플라톤의 이데아라는 관념은 중세 기독교 시대를 거치면서 신(하나님)에게 그 자리를 내어주게 된다. 이 시기의 가장 초월적이고 절대적인 가치는 하나님의 말씀이었고, 사람들은 그 말씀을 생활 속에서 실천하는 길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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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실에서 한국어 타임
아이가 만 3살이 되어가던 어느 날. 한국에 다녀온 이후로 부쩍 한국어에 관심을 갖는다. 문장을 말하진 못하지만 여기, 저기, 누구 거야, 내 거야 등등 몇 가지 단어를 말할 수 있게 되었다. 처음에는 아이보다 되려 내가 겁을 먹고 ‘가르칠 수 있을까. 배울 수 있을까’ 걱정했는데, 한국에 있는 며칠 사이에 한국어가 느는 것을 보고 아이들은 정말 흡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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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logue_음식과 문화, 그리고 그 역사를 추적하기
이제는 판타지 소설의 고전으로 불리는 『해리포터』를 읽은 분들은 아마도 한 번은 그런 생각을 해보셨을 것 같습니다. “과연 버터맥주는 무슨 맛이지?” 대다수의 문학 작품이나 영화, 각종 창작물들은 배경이 되는 시대와 사회를 반영하는 만큼 한 시절을 읽는 중요한 키워드가 되는 일이 많습니다. 우리는 드라마 〈대장금〉을 통해 궁중 음식의 옛 모습을 간접 경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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늑대와 개
사람들은 쉽게 생각을 바꾸고 싶어 하지 않는다. 보고 싶은 것만 본다. 기존의 상식을 뒤집고 ‘그거 아니에요’ 말하는 사람의 말은 귀를 틀어막고 들은 척도 않는다. 150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지구는 우주의 중심이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이론과 교황청을 필두로 한 종교계는 인간이 밟고 선 행성을 중심으로 온 우주가 돌아간다고 굳게 믿었다. 이런 신념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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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조다희|도서관 사서 누군가 바람을 몰고 온다 배를 밀고 풀숲 지나 말에서 떨어진 뒤 생긴 흉터 바르르 타들어가는 나무 언덕 보이면 바르바라[1] 바르바라 소리 내 시를 읽는다 폭력적인 어제를 살고 꿈꾸던 낮의 소원들 바르르 몸을 떨며 착해지고 싶다 외친다 언덕에 올라 귀 기울이니 누군가 바람 따라 노래 부르고 바르바라 바르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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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르고와 이기투르
이택광/문화 비평가 내가 가장 사랑하는 부사는 그러므로다. 이 부사만큼 우리의 ‘있음’을 드러내는 말은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는 접속 부사다. 말하자면 이 부사를 통해 우리는 서로를 연결한다. 이 연결이 무엇일까? 바로 관계 맺음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이자 또한 여럿이다.” 이렇게 접속 부사가 밝혀 주는 관계에 자신을 놓음으로써 우리는 존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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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의 가격
나는 지금 신데렐라 성이 보이는 도쿄 디즈니랜드에서 방금 막 스플래시 마운틴을 타고 내려와 3년 전 겨울을 회상하고 있다. 남자들은 군대에서 지낸 혹한기 훈련을 절대 잊지 못할 겨울 에피소드로 꼽는다는데, 내 생에서 (지금까지도, 그리고 아마 앞으로도) 가장 또렷하게 기억에 남을 겨울은 바로 그 해 겨울이었다. 새벽 3 시 50분에 시작되어 저녁 7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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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rong>에피소드 1. 현존재(現存在)</strong>
참으로 긴 여정이었다. 하이데거와의 만남 이후, 어떻게 하면 난해하기로 유명한 하이데거 철학을 평이하게 전달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이 많았다. 그러다가 개인적인 경험담을 하이데거 시각으로 풀어내다 보면 하이데거와 쉽게 가까워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에세이 형식으로 하이데거 철학을 재해석해보기로 했다. 하지만 원고를 접한 이들은 한결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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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의 안팎에서 허용되는 넘나듦 - 1 (feat.황금비)
황금비, 자연이 가장 사랑하는 비율? 황금비the golden ratio는 해바라기, 선인장, 앵무조개, 심지어 은하계의 구조 같은 자연의 여러 대상에 걸쳐 공통적으로 관찰되는 것처럼 보이는 일종의 수학적 개념이다. 예를 들어 해바라기 씨앗이 나선형으로 배치된 패턴에 숨겨진 피보나치수열Fibonacci sequence은 황금비와 관련이 있으며(예를 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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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의 안팎에서 허용되는 넘나듦 - 2 (feat.진화생물학과 물리학 이론)
물리학의 궁극적 목표 이제 본격적으로 과학의 이론과 원리, 그리고 그것이 적용될 수 있는 범위에 대해 원론적인 이야기를 해 보자. 수학에도 증명이 불가능한 공리가 있듯, 물리학에도 이에 해당하는 기본적인 ‘제1 원리the first principle’들이 있다. 모든 자연계의 물질과 에너지는 네 가지 기본 힘인 중력, 전자기력, 약력, 강력을 통해 상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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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의 안팎에서 허용되는 넘나듦 - 3 (feat.열역학과 생명의 탄생)
열역학 제2법칙과 생명체의 탄생 어떻게 무생물로부터 생명체가 나올 수 있었는지는 여전히 확실한 답을 정할 수 없는 문제다. 이에 대한 연구의 가장 최전선에 있는 연구자 중 한 사람은 MIT의 ‘물리학자’ 제레미 잉글랜드Jeremy England로, 그가 사용하는 물리학 도구는 다름 아닌 열역학이다. 양자역학의 태두 중 한 사람인 오스트리아의 물리학자 슈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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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의 안팎에서 허용되는 넘나듦 - 4
과학 안에서의 넘나듦 인간적 요소가 관여할 수밖에 없는 사회학이나 인문학에 자연과학이나 공학에서 수학적 언어로 정제된 이론 체계와 기본 원리가 그대로 적용될 수 있으리라 생각하는 것은 오산이며 학문적 오만함과도 크게 다르지 않다. 그나마 같은 자연 과학에서 분야를 넘나드는 경우에는 약간의 오버랩이나마 가능하지만, 아예 과학이 아닌 다른 분야, 예를 들어 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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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의 안팎에서 허용되는 넘나듦 - 5
물리학에서 많이 쓰이는 분자 동역학molecular dynamics은 분자 레벨에서 입자들의 상호작용을 컴퓨터로 실시간으로 계산하고, 열역학 법칙에 따라 분자들이 어떻게 행동하는지를 추적한다. 이를 통해 분자들의 화학반응이나 자기조립self-organization, 결정 성장, 상전이phase transition나 상분리phase separation 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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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의 안팎에서 허용되는 넘나듦 - 6
유비의 한계에서 출발한 열역학 제2법칙 운이 좋아 관측된 현상이 특정 학문 분야 내에서만 정의될 수 있다면 유비적 도구로 수립된 모형을 잘 따라갈 수도 있다. 그 예로 열역학의 선조 중 한 사람인 카르노Sadi Carnot의 사례를 살펴보자. 19세기 초중반 프랑스에서 활동했던 공학자이자 물리학자인 카르노는 열역학, 특히 열의 흐름에 관심이 많았다. 그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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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의 안팎에서 허용되는 넘나듦 - 終
천문학이 천체 물리학이라는 중요한 도구를 갖추게 되었듯, 20세기 후반부터 활발하게 연구되기 시작한 생물 물리학biophysics 역시 생물학에 있어 훌륭한 도구가 되어 주고 있다. 예를 들어 최근 폭발적인 관심을 받고 있는 시스템생물학systems biology을 생각해 보자.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시스템 생물학은 생물학의 한 분과로서, 생명 현상을 개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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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자 우월성은 기술적으로 달성 가능한가? - 1부
2019년 10월, 영국의 과학 잡지 《네이처Nature》에는 구글이 개발했다는 ‘양자 우월성quantum supremacy’ 달성에 대한 연구 논문이 게재되었다.[1] 예상했다시피 국내외 관련 커뮤니티에서는 이에 대한 논쟁이 아직까지도 진행 중이다. 양자 우월성이라는 용어가 본격적으로 주장되기에 현 시점은 다소 이르고, 따라서 과장된 개념이라는 주장이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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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자 우월성은 기술적으로 달성 가능한가? -2부
양자 컴퓨터가 기존의 클래시컬 컴퓨터classical computer로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를 풀 수 있는지는 컴퓨터 과학에서도 그렇지만 수학에서도 굉장히 중요한 문제다. 결국 클래시컬 컴퓨터, 그리고 클래시컬 컴퓨터에서 ‘어쨌든 이론적으로라도’ 구동될 수 있는 모든 알고리즘을 동원하여 풀리는 문제는 ‘다항 시간polynomial time’ 동안에 풀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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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모이는 자율주행차는 교통지옥을 해결할 수 있을까
자기 조립/자기 조직의 형태와 그 예측 자기 조립self-assembly/자기 조직self-organization은 분자 수준 혹은 나노미터 수준에서 물질이 근거리 상호작용short-range interaction을 통해 규칙적인 구조를 이루는 현상을 의미한다. 주로 나노입자nanoparticles 같은 미세한 알갱이들이 알아서 뭉치고, 뭉쳐진 덩어리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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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사과정 학생을 동료 연구자로 만들기 - 1
내가 운영하는 연구실은 두 자릿수 대학원생이 넘실대는 연구실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훌륭하신 국내외 공동연구자들이 많이 계셔서 좋은 연구를 지속적으로 하고 있고, 덕분에 좋은 연구 성과도 꾸준히 나와서 연구자로서 보람이 크다. 그런 기회를 주시는 동료분들께 늘 감사할 따름이다. 나 홀로 연구하는 것도 물론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과학기술 분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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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사과정 학생을 동료 연구자로 만들기 - 2
학교에서 교수에게 주어진 가장 중요한 책무는 역시 교육이다. 학부생 강의도 중요하지만 대학원생 지도도 못지않다. 같이 연구하고 있는 (다른 선배 교수님의) 대학원생 한 명을 틈날 때마다 꾸준히 멘토링해 주고 있는데, 점점 성장하는 것이 보인다. 원래 잠재력이 큰 학생이기도 했다. 박사과정 학생이 학위를 마무리할 시점이 되면 자신이 했던 일을 갈무리하여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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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는 왜 화성에 가야 하는가?
인류는 왜 화성에 가려 할까? 아니 애초에 왜 지구가 아닌 다른 행성에 관심을 갖는 것일까? 화성에 가려는 이유, 나아가 태양계와 은하계, 그리고 심우주 탐사를 하려는 이유, 심해를 탐험하고자 하는 이유, 쓸데없어 보이는 순수 수학에 매진하는 이유, 서로 관련 없어 보이는 두 학문 사이의 다리를 굳이 놓아보려는 이유, 아무 상관없어 보이는 이미지 사이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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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섭고 슬프고 피곤하다
강정화|글쓰기 강사 무서운 게 많아졌다. 원래도 겁이 많았지만, 특히 내 몸에 대한 걱정이 많아졌다. 아프기도 싫고, 다치기도 싫다. 죽는 건 제일 싫다. 안 하던 걷기 운동도 열심히 하고, 건강 검진도 빼놓지 않고 받는다. 건널목을 지날 때는 길을 다 건널 때까지 차도를 살피고 또 살핀다. 혹여 자동차나 오토바이에 부딪히진 않을까, 온 신경을 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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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을 향해 나서기 in 『걷고 보고 쓰는 일』
* yeondoo 출판사의 『걷고 보고 쓰는 일』(장청옥, 강정화, 조다희 저)에 실린 글을 옮겼습니다. 마침내 여름을 보내고 쓴 시가 여기 한 편 있다. ‘가을날’은 지금 고독한 자 오래 고독하고, 잠들지 않고, 읽고, 긴 편지를 쓰거나 불안스레 이리저리 가로수 길을 헤맬 거라 예감한다. 여름의 끝자락에 선 릴케Rainer Maria Rilke의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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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사전에 면허란 없습니다
누구는 해바라기라고 했다. 누구는 구멍이라고 했고 누구는 동그란 탑이라고도 했다. 어느 저명한 습작생은 관념 그 자체라고도 했으며 상상력이 지나친 어느 정치인은 외나무다리라고도 했지. 그러나 모두가 한마음으로 그것은 거대한 바퀴가 돌아가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것의 명칭보단 그것의 상태에 집중했다. 그것은 아무리 여러 이름으로 돌고 돌아도 <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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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몰랐던 중국 서민음식의 민낯
한동안 정부가 주도하는 ‘한식의 세계화’가 이슈였다. 세계화의 기준은 관점에 따라 달라질 수 있겠으나 우리가 알고 있는 요리 중 세계화에 가장 ‘성공’한 케이스를 꼽자면 중국요리가 대표적이다. 다만 유념해야 할 점은 세계화되어 어느 지역에서나 만나볼 수 있는 중국요리들은 중국인들이 실제로 즐기는 음식들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이다. 특히 중국 본토에 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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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물고기처럼 살자는, 그런 낭만적인 이야기는 아니고요
구슬아/문화연구자 관상어를 기르는 취미에 관해 알고 계시는지요? 1980년대에서 19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취미 생활의 일환 혹은 공간을 꾸미기 위한 목적으로 가정의 거실이나 관공서, 식당 등에 큰 어항을 두는 일이 흔했습니다. 적지 않은 아파트 단지의 상가 1층에 관상어와 관련 용품을 취급하는 소매점이 입점해 있었으며 주말이면 그러한 소매점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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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을 파먹는 생명체가 존재할 수 있을까?
2019년, 미국의 과학자들은 필리핀 보홀섬Bohol island의 연해 강가에서 돌을 파먹는 신종 배좀벌레(쉽웜shipworm)을 발견했다고 저널 《Proceedings of Royal Society B : Biological Sciences》 2019년 6월 19일 자에 보고했다. [1] [2] 배좀벌레는 원래 나무를 파먹고 사는 조개(이매패류二枚貝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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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rong>프롤로그|잠깐만요, 저도 왜 영국에 사는지 생각 좀 해볼게요. </strong>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내가 영국에서 산 지 6-7년이 지날 무렵부터 이런 질문을 듣기 시작한 것 같다. 질문하는 이와 나의 관계에 따라 조사와 어미, 강조하고픈 단어가 조금씩 달라졌을 뿐이다. 영국에 간다는 계획을 처음 알렸을 때만 해도 내 영국행의 목적은 하나였기에 그 목적만 달성되면 한국으로 돌아오리라 그들도, 나도 예상했다. 그런데 그 목적 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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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살 소녀의 발렌타인데이
어느 날 아이가 물었다. 엄마, 발렌타인 데이가 뭐야? 母さん、バレンタインデーって何)? 응~ 그건, 여자가 좋아하는 남자에게 초콜릿을 선물하는 거야. それは、女の子が好きな男の子にチョコレートをプレゼントする日だよ。 여자는? 女の子は? 여자는 3월에 화이트데이가 있어서 그때 받는 날이야. 女の子は3月のホワイトデーにもらえる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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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rong>에피소드 2. 세계(世界)</strong>
현존재를 이해했으면 현존재가 활발하게 관계하는 세계를 파악해 보도록 하자. 서양 역사에서 기독교 등장 이후 가장 중요한 사건은 16세기부터 시작된 근대과학혁명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근대과학혁명의 역사에 초석을 놓은 사람은 다름 아닌 근대 경험론의 창시자 베이컨이다. 그는 과학의 토대를 세우기 위해서 세계에 덧씌워져 있는 주관성을 배제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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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들지 않는 아이
임지영|예술 교육자 이미 답을 다 알고 있었어. 국어 교과서 지문은 너무 시시껄렁하고 뺄셈쯤 보자마자 답이 나오는데 선생님은 자꾸 질문하는 거야. 그래 놓고 아는 사람 손을 들래. 그렇게 쉬운 걸 꼭 말로 해야 해? 나는 절대 손을 들지 않았어. 절대, 절대로. 콕 찍어 시키면 마지 못해 조그만 소리로 답을 얘기했지만, 손을 들고 발표하는 건 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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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하고 있다고 말해주세요 in 『그 분홍 노을』
* yeondoo 출판사의 『그 분홍 노을』(신량 저)에 실린 글을 옮겼습니다. 엄마라는 게 어떻게 좋기만 할까. 사나흘 내 속을 까맣게 태우면 이틀 예쁜 짓을 하는 아이는 아직도 어렵지만, 순간의 환희가 좋으니 이 사랑을 계속할 수 있는 힘을 얻는다. 아이가 네 살 때 두 번째로 이사했다. 겨울이었고 유독 골바람이 심했던 곳이라 바람을 뚫고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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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공을 둥둥 떠다니는
어떠한 특정 시간에, 어떤 공간에, 어떤 사람이 위치하는 일에 대해서 생각해 본다. 이것은 1996년 한국에서 태어나고 자란, 예술대학 졸업생 김인선이 2020년 겨울부터 베트남에 거주한 기록과 그 경험에서 촉발된 단상들의 모음이다. 정확한 시기를 단정 지을 수는 없지만 해외여행에 대한 막연한 로망은 한국 사회의 젊은이들 사이에서 흔하게 이야기되는 주제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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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 뒤에서
아프지 않았다 위태롭지 않았다 사랑을 배우지 않으려고 쉬지 않고 사랑을 나눴다 아무도 떠올리고 싶지 않아 쉬지 않고 머리를 굴렸다 바닥으로 바닥으로 빼곡했던 나날들, 뒤로한 채 숲으로 갔다 숲에서는 보이지 않는 노역과 호객이 한창이었다 푸른 노을은 도시의 비위를 쓰다듬고 숲은 무언가가 통째로 옮겨간 기억이다 더는 남아있지 않은 그 문장 앞에서 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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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속에 박제된 ‘탐험가의 로망’
디스커버리 채널에서 방영됐던 〈Man vs Wild〉와 〈Worst-case scenario〉에서 ‘생존왕’ 베어 그릴스가 오지를 무대로 펼치는 모험은 마치 로빈슨 크루소를 실시간으로 보는 듯한 긴장감과 흥미를 준다. 무엇보다 시청자의 눈길을 끄는 장면은 먹을 것을 구하기 힘든 환경에서 그가 선보이는 온갖 엽기적인 먹방일 것이다. 생존왕은 사자가 먹다 남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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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포항 지진은 인재였을까?
비화산 지대의 지열발전 2008년 10월, 박사 유학 첫 학기에 치른 화공 열역학 1차 시험 문제 1번은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당시 제프 테스터Jeff Tester 교수가 내 담당이었는데, 이 양반이 쓴 극악의 가독성을 자랑하는 열역학 교과서와 PSET[1]의 스타일에 따라 1차 시험 문제 역시 스토리텔링 형식으로 출제되었다. 내 기억으로 세 시간짜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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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을 곱씹으면 철학이 될 수 있을까?
『무엇의 철학』
by 강석찬 드립력 충만한 철학 전공자의 일상 철학기 ‘철학’ 하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이미지는 무엇인가요? 소크라테스나 플라톤 같은 고대 그리스 철학자나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처럼 유명한 철학자가 했다는 유명한 말, 혹은 불가항력에 이끌리듯 자꾸 고개가 아래로 떨어지던 학창 시절 ‘윤리와 사상’ 시간을 떠올리는 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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멍하게
이석|일본 문화 연구자 먼 옛날 중앙을 다스리는 왕의 이름은 혼돈渾沌이었다고 한다. 어느 날 남해와 북해의 왕이 놀러 왔기에 혼돈왕은 융성하게 이들을 대접했다. 이에 남해 왕과 북해 왕은 감격해 말했다. “혼돈왕께 구멍 일곱 개를 선물하리라.” 구멍 일곱 개란 두 눈과 두 귀, 두 콧구멍과 입 하나를 가리키는 것으로, 혼돈은 이목구비를 갖추지 못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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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나 꿈이 생겼어 (궁서체 ver.)
요맘때쯤 아이들의 꿈이야 하루에 열두 번도 더 바뀐다. 우리 아이의 꿈 역시 프린세스며 미용실 언니, 문방구 주인에 아이돌 등등 지금까지 스쳐 지나간 것만 해도 수십 개다. 그러나 이번만큼은 “나 지금 옴.총. 진지해” 하는 눈빛으로 말하는 아이를 보고 차마 그냥 넘어갈 수가 없어 “뭔데~” 하고 물으니… 오옷! 예상치 못한 답변에 깜짝 놀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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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rong>에피스드 3. 세계(世界)에 대한 이해(理解)</strong>
현존재가 활발하게 관계하는 세계를 파악했으니, 이제는 세계에 대한 이해理解가 무엇인지 살펴보도록 하자. 개인적인 주말 일정을 예로 들어보겠다. 개인적으로 등산을 좋아해서 주말에 시간이 나는 대로 산을 찾곤 한다. 우선 등산을 위한 등산화와 등산지팡이를 준비하고, 자동차를 운전해서 가까운 산에 도착한다. 산에 오르기 전, 제일 먼저 하는 일은 등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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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당히, 근사하게
장청옥| 비교 문학자 내가 어려서부터 즐겨 사용했던 ‘멋지게’, ‘훌륭하게’에 해당하는 단어는 ‘근사하게’였다. 산을 등진 마을 꼭대기 집에 살아서 발아래로 경사진 밭을 일구고 바람이 실어나른 바다 내음을 맡을 수 있던 고향 집에서는 ‘근사함’은 일상에서 멀리 떨어진 어떤 것에 가까웠다. ‘근사近似하다’의 사전적 의미 중 아마 ‘거의 같다’, ‘그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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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콤하고 씁쓸하고 뜨겁고 차가운 인생의 맛 in 『하루 하나 상식』
* yeondoo 출판사의 『하루 하나 상식』(송정림 저)에 실린 글을 옮겼습니다. 비엔나에는 없는 비엔나커피 창 넓은 카페에 앉아서 달콤한 휘핑크림을 풍성하게 얹은 비엔나커피를 한 잔 마시면 마음이 따뜻하게 풀어져 내린다. 그런데 달콤한 크림이 가득한 그 커피는 왜 비엔나커피라는 이름을 가지게 된 것일까? 비엔나커피는 음악의 도시, 오스트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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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rong>해외에 나갈 때 어디에서 정보를 구하나요?</strong>
내 나이 스물두 살에 첫 여권을 만들었다. 유럽으로 배낭여행을 가기 위해서였다. 스마트폰은커녕 인터넷 검색이라는 말도 존재하지 않던 시절이다. 나는 서점에서 두터운 여행 책자 하나를 사서 귀퉁이가 닳도록 읽고 밑줄을 그어가며 또 읽었다. 여행 중에도 배낭에서 꺼내 내용을 확인하고 때로는 현지인에게 책 속의 사진을 보여주며 길을 묻기도 했다. 책이 비에 젖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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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 안내] 희망을 展하다
세계적 팬데믹 재앙으로 지친 모두에게 희망을 전하기 위해 ‘희망 메신저’를 자처한 작가들이 모였다. 7월 21일부터 29일까지 9일간 인사동의 복합문화공간 〈KOTE〉에서 열리는 이 전시에는 회화, 사진, 조각, 공예, 퍼포먼스, 음악 등 다양한 장르의 작가 70여 명이 참여한다. 타이틀을 “희망을 展하다”로 정한 이 전시에는 기성의 작가 외에도 장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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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rong>6개월 치 월세를 미리 내고 계약한다고요?</strong>
영국에 처음 오는 한국인이 쉽게 접근했다가 의외로 높은 장벽에 부딪히는 일이 집 구하기다. 1년 체류를 목적으로 8월경 영국에 온 가족이 있다고 가정하자. 9월에 시작되는 새 학기에 맞춰 2~3주 전에 왔으니 집을 구하고 자녀의 학교 등록까지 시간이 넉넉하리라 계산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 가정의 아이가 9월 초 개학[1]에 맞춰 등교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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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울 속의 나는 거울 밖의 나보다 크고 아프고 다정하고
그 손을 내밀기까지 너무 오랫동안 손을 흔들어야 하는 너는 가깝거나 가까웠다 멀거나 멀었다 너와 너의 옆은 전혀 다른 사람인 것처럼 손을 내민다고 다 그림이 될 순 없겠지만 손을 내밀지 않으면 아무것도 그릴 수 없다는 사실만이 우리 둘이 붙잡을 수 있는 단 하나의 표정 단 한 줌의 안녕이라서 입을 삐죽 마음이 마음을 덥석 붙들고 있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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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리 잘린 여우
잔잔한 전주가 깔린다. 아직 노래가 나오지도 않았는데, “아, 이 노래!” 하며 아는 체한다. 앉은 자리 주변으로 전구들이 보인다. 왼쪽부터 빨간색, 파란색, 초록색, 그리고 노란색. 흐르는 전주에 맞춰 알록달록 전구들이 하나둘 자기 색을 드러낸다. 노래가 시작되기 무섭게 ‘나도 가수다’라는 듯 함께 노래를 부르는 방청객들. 불이 들어온 게 그렇게 대수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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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숭이와 여우
필자는 약 10년째 애플 제품들을 사용하고 있다. 아이패드가 시작이었다. 지금은 아이폰, 애플워치, 에어팟까지 사용한다. 군 복무를 마친 뒤 후배에게 싼 값으로 아이패드2를 샀다. 워낙 싸게 올려놨길래 ‘한번 써볼까?’ 하는 생각으로 산 거다. 생각보다 잘 맞았다. ‘이 정도면 노트북 대신 써도 되겠다’ 싶었다. 복학 할 때가 되어 ‘어떤 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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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가지 재주를 가진 날다람쥐
35°c. 일어나자마자 오늘의 최고 기온을 확인한다. 최대한 얇은 셔츠와 무릎까지 오는 반바지를 입는다. 에어컨을 18°c로 설정하고, 큰 컵에 얼음을 가득 채워 커피를 내린다. 춥다. 가을이 벌써 온 것만 같다. 실제 기온과 체감 기온은 가끔 다르다. 시간도 마찬가지다. 생각과는 다르게 흐른다. “아니 이걸 벌써 만들어?” 얼마 전 〈응답하라 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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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미국판 삼시세끼 스토리
tvN의 리얼리티 예능 〈삼시세끼〉 시리즈가 꾸준히 인기를 끈 이유는 무엇보다 자연에 대한 사람들의 향수를 자극했기 때문일 것이다. 특히 마트나 슈퍼마켓에서 완제품을 사 먹는 데 익숙한 현대인들에게 자연에서 직접 식재료를 얻는 과정은 신기함을 넘어 경이롭게까지 느껴진다. 그런데 이런 낭만 때문이 아니라 생존을 위해서 자연을 개척해 먹거리를 찾아내야 했던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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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모든 청년〉프로젝트를 시작하면서
‘세상의 모든 청년’들에 대해 이야기하기 위해, 스무여 명의 작가들이 모였다. 작가들은 저마다 말해져야만 한다고 믿는 청년들의 이야기를 찾아 나섰다. 때로는 기차를 타고, 지하철을 타고, 차를 몰고, 뚜벅뚜벅 걸어 청년들을 만났다. 그렇게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그들과 깊이 교감하면서 저마다 세상에 알려야 한다고 믿는 지점들을 적어내고자 심혈을 기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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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남기고 간 편지
초등학교 입학을 1년 앞둔 여름의 일이다. 이제 아이들도 많이 컸으니 독립심과 자립심을 기르는 차원에서 1박 2일 합숙 훈련을 하겠다는 어린이집 안내문이 집으로 도착했다.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 출장이 잦은 탓에 남편과 시부모님께 아이를 맡겨놓고 2~3일 집을 비운 적은 있어도 아이가 밖에서 자고 내가 아이를 기다리는 건 처음 있는 일. 짐가방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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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rong>영국 음식, 이름부터 심상치 않다</strong>
영국을 대표하는 음식이라고 하면 피시 앤 칩스Fish and Chips를 가장 먼저 떠올리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그럼 다른 영국 음식으로는 무엇을 알고 있는가? 딱히 더 떠오르는 이름이 없다. 영국에 거주하는 외국인은 물론 자국민조차 인정하는 요리가 없을 정도다. 다행히 외국인 유입이 활발하여 이들의 입맛을 맞춰줄 식당과 식료품점이 있기에 먹거리 선택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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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트랑은 유난히 일출이 예쁜 도시
나트랑은 유난히 일출이 예쁜 도시였다. 새벽 두시가 조금 넘어 도시에 도착했다. 내가 타고 온 택시 말고는 사람도 차도 없는 인적 드문 동네에 숙소를 잡았는데, 택시가 엉뚱한 장소에 내려줘서 숙소까지 십분 정도를 걸어야 했다. 파도 소리는 들리지만 가로등도 몇 개 없어 어두웠으니 바다는 거의 보이지 않았다. 새까만 도시에 파도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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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고
박직연 | 미디어 아티스트 “선배님, 어젯밤 참 감사했습니다.” 15년쯤 전일까. 그 전날 밤 내가 만든 술자리에 우연히 합석하게 된 후배가 보낸 문자 메시지였다. 얼굴은 처음 봤다. 신인이지만 일을 의뢰하는 클라이언트도 늘고 있고, 감각도 있다는 평이 들리는 후배였다. 근데 참? 참이라… 왜 참? 그저 담백한 자리였고 술 몇 잔 주고, 덕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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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 문
곽능희|음악가 1994년 보스턴, 음악을 공부하기 위해 간 그곳에는 일본 학생이 정말 많았다. 일어를 배울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그러나 “나 일어 배울 거야!”라고 말하자 “영어나 열심히 배워라.”라는 친구들의 뼈 때리는 말에 곧 풀이 죽었다. “그림 배우고 싶어!” 말하는 내게 “음악이나 열심히 해.”, “더 나이 들어 그림을 배워도 늦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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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rong>에피소드 4. 진리(眞理)</strong>
현존재의 세계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진리-내-존재의 진리 개념을 파악해 보도록 하자. 『예술 작품의 근원』이라는 책에서 하이데거는 예술의 본질에 관해 설명하기 위하여 고흐가 그린 〈구두〉(위의 그림)를 예로 들고 있다. 하이데거는 고흐의 〈구두〉 그림을 보면서 아래와 같이 설명한다. 고흐는 대표적인 인상파 화가이다. 따라서 미술사적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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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계 문명에서 보내온 전파 신호
2만 5천 년 거리로 보낸 지구인의 신호 한때 밤하늘을 올려다 보며 천문학자가 되는 꿈을 꿔본 이들이 많을 것이다. 아마도 학창 시절 칼 세이건의 명저 『코스모스』를 몇 번이나 탐독했을 것이고, 조금 더 나이 들어서는 칼 세이건 원작 소설을 바탕으로 한 영화 〈콘택트〉도 감명 깊게 감상했을 것이다(적어도 나는 그렇다)[1] 영화 〈콘택트〉에는 주인공 조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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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처드 도킨스는 여전히 과학자일까
이 말은 유명한 대중 과학 저술가이자 헤비 트위터리안이기도 한 리처드 도킨스가 2020년 2월 16일 자신의 트위터에 한 말이다. 가짜 뉴스가 아니다. 진짜다. [1] [2] [3] 도킨스 박사는 국내에 『이기적 유전자The Selfish Gene』(31,531회 인용), 『확장된 표현형The Extended Phenotype』(6,736회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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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람들은 과학자를 얼마나 신뢰할까?
과학자를 ‘매우 신뢰’하는 한국인 응답자 비율 14% 2020년 말, 각국 시민들이 과학(자)를 얼마나 신뢰하는지에 대한 여론조사 결과가 화제가 된 바 있다. 주요 국가 중 한국은 과학자에 대한 신뢰 수준이 상당히 하위권에 위치하는 것으로 보인다. 매우 신뢰a lot와 다소 신뢰some을 합친 수치는 69% 정도다. 아예 신뢰하지 않거나 거의 신뢰하지 않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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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자가 과학기술 기사에 바라는 15가지
‘1인당 GDP 3만 불을 넘겼으니 이제 선진국’이라고 자부하는 한국의 뉴스 포털에서는 정치, 사회, 스포츠 분야의 인기가 좋고, 과학기술 관련 뉴스는 그에 밀려 관심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아주 중요한 연구 결과는 일 년에 한두 번 보도될 뿐이고, 보통의 연구 결과 관련 기사들은 연구자 혹은 연구자가 속한 기관에서 뿌린 홍보 자료에 기반한 것들이 대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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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의 대중화 vs 대중의 과학화
언젠가 라디오를 듣다가 꽤 깊은 울림을 주는 작은 이야기를 접했다. 2016년 피아니스트 조성진이 쇼팽 콩쿠르에서 우승했을 때, 굉장히 이례적으로 클래식 음반 시장이 활성화된 적이 있다. 조성진 쇼팽 콩쿠르 실황 음반의 출시일에 맞춰 음반 가게 앞에 100명이 넘는 사람들이 줄을 서는 진풍경이 연출되었고, 온라인에서도 조성진 CD를 사려는 사람들이 결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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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초과학을 왜 국가가 지원해야 하는가
기초과학 연구를 선도하는 미국에는 우수한 연구 중심 대학뿐만 아니라, 커다란 프로젝트를 장기간 지속적으로 연구하는 국가연구소National Lab들도 많다. 그중 한 군데인 버클리 랩의 모토는 아주 짧다. 과학을 업으로 삼는 이유, 더 정확히는 모르는 대상을 연구하고자 삽질하고 또 삽질하면서 그래도 계속 조금씩 전진하는 이유는 거창하게 말하자면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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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납법이 늘 진리는 아니다.
일반인들에게 유명한 수학자는 대부분 서구권 출신이고, 그것도 대부분은 서유럽, 즉 프랑스, 독일, 영국, 이탈리아 출신이다. 상대적으로 동유럽 출신 수학자들이 덜 알려진 감이 없잖아 있지만, 동유럽 출신 수학자 중에도 꽤 유명한 분들이 있다. 그중 가장 큰 지분을 차지하는 것이 헝가리인데, 일반인들에게도 잘 알려진 천재 수학자 존 폰 노이만John v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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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소련의 몰락이 주는 교훈
구소련과 서방 세계가 맞서던 시절, 서구권에서 진담 반, 농담 반으로 자주 회자되던 이야기가 있었으니 ‘소련은 로켓과 핵잠수함은 잘 만들지 몰라도 냉장고와 자동차는 형편없다’는 것이었다. 많은 이들에게 잘 알려진 대로 구소련 같은 철저한 계획경제 하의 사회주의 국가에서는 모든 것이 당으로부터의 탑다운 방식에 의거하여 사업이 추진되었기 때문에, 소련이라는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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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완전성의 미학
불완전성 혹은 무질서는 보통 안 좋은 의미로 쓰인다. 세상살이라는 것이 결국 불완전한 상태에서 완전을 추구하는 인생의 질곡, 무질서의 상태에서 질서를 추구하는 지난한 과정 끝에 정보의 완벽한 상실로 접어드는 여로 아니겠는가. 당연히 이런 맥락에서 보면 불완전성 혹은 무질서가 만들어 내는 완전성 또는 질서는 그 자체로 모순처럼 보인다. 디스플레이 패널에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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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3년에 심은 나무가 반세기 후 주목받은 이유
어떤 ‘단일’ 실험 결과를 얻기 위해 무려 반세기를 기다릴 수 있는 나라가 있을까? 조직이 있을까? 그런 팀이 있을까? 그런 과학자가 있을까? 이웃나라 일본은 한 가지 주제에 오랜 기간 천착하여 기어이 뭔가를 이루고야 마는 전통이 있다. 그것은 과학에서도 마찬가지라, 한 주제에 집중하고 또 집중해서 아무도 못 얻는 데이터를 얻고야 마는 전통이 100년 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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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 팬들을 열광케 한 실험 결과의 최후
미디어에서 과학기술 관련 뉴스를 신중하게 다뤄야 하는 것만큼이나 과학기술 관련 연구자들, 특히 기초과학을 연구하는 연구자들이 뉴스 미디어를 다루는 일에도 무거운 신중함이 필요하다. 그중에서도 제1원칙을 들자면, 동료들의 리뷰peer-review를 거치지 않은 새로운 연구 결과는 가급적 대중을 상대로 한 언론에 미리 흘리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른바 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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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만든 간장치킨이 '지옥에서 온 닭봉'으로 전락한 이유
얼마 전 나는 온라인에 공개된 백 선생 레시피를 보며, 치킨을 무진장 좋아하는 아이들을 위해 집에 있는 에어프라이어로 간장 닭봉 요리를 해주고자 많은 준비를 했다. 레시피대로 재료를 모조리 준비하여 싱크대의 엔트로피를 한껏 높여 놓고 정성껏 계량하여 혼합물을 준비하는 것까지는 그럭저럭 잘 진행되었으나, 그 이후부터 갑자기 계량하고 온도 재고 시간 재는 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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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는 블록 쌓듯이
큰아이가 어렸을 때 다녔던 직장 어린이집에서는 가끔씩 아이들이 블록으로 만든 작품을 교실 밖 복도에 전시해 놓곤 했다. 블록 유닛의 모양은 일정하니 7세 아동들의 작품이라고 해 봐야 거기서 거기일 것 같지만, 하나씩 살펴보면 놀랍도록 다양하고 재밌는 작품들이 있다. 예를 들어 큰아이는 몰펀 블록으로 다양한 형상의 작품을 만드는 것을 좋아하는데, 오늘 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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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는 양반? 미지의 바이러스가 숨어 있을지 모르는 지구상의 장소
디젤유 유출·싱크홀의 원인 매년 빠르게 상승 중인 지구의 평균 기온으로 인해 극지방의 영구동토층 면적도 그에 비례해 급격히 줄어들고 있다. 한 때 영구동토층이었던 지역에서는 지하에 갇혀 있던 이산화탄소, 그리고 그보다 훨씬 강력한 온실 가스인 메탄가스가 공기 중으로 유출되고 있다. 당연히 대기 중 온실 가스의 농도 상승은 한층 가속되는 중이고, 일부 학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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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rong>에피소드 5. 사방세계(四坊世界)</strong>
하이데거의 사방세계를 이해한다면, 하이데거가 추구하는 철학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하이데거는 인간은 사방세계 안에 거주하고 있다고 단언한다. 여기에서 거주한다는 것은 우리가 일상적으로 숙식을 해결하면서 살아가는 거주지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흔히 집을 그저 가족이 머무는 장소, 재테크를 위한 일시적 장소, 언제든지 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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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프스 소녀』의 소박한 식탁이 주는 의미
스위스 요리라고 하면 우리나라 사람들 열의 아홉은 녹인 치즈를 빵에 찍어먹는 퐁듀를 떠올릴 것이다. 서울 이태원이나 한남동 등지에서 맛볼 수 있는 퐁듀는 1인분에 몇 만원이 훌쩍 넘을 정도의 값비싼 고급 요리로 취급받고 있다. 그러나 퐁듀 가격이 비싼 것은 외국 요리라는 프리미엄에다 재료가 되는 치즈와 와인 등이 한국에서 비정상적으로 고가인 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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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퇴의 색깔
-‘겟코소’는 백년이 넘은 공방이다. 화려한 긴자 거리의 명품관 사이에서 작은 공방이 오랫동안 존재할 수 있었던 이유는, 화방에서 직접 만든 독특하고 아름다운 색깔의 물감에 있다.- 나는 자퇴했다. 작년 말, 종례시간에 지역교육청 학생기자단에서 발행한 신문을 전해 받았다. 우리 학교 아이들이 쓴 글이 있는지 훑어보며 무심히 페이지를 넘기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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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차피즘 연구를 위한 메모
정한아|시인 1. 어차피 씨는 누구인가 어차피 씨가 언제부터 어차피 씨가 됐는지는 모르겠다. 그가 일주일에 서너 번씩 만취하고 나머지 3, 4일은 숙취를 벗어나느라 바빴던 젊은 시절에 그는 이른바 X세대라는 그룹에 속했다고 사람들은 말한다. 비슷한 시기 신세대나 오렌지족도 있었지만, 신세대는 뭔가 뒤쳐진 낱말 같았고 오렌지족은 계급적으로 한정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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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rong>서른 살 그는 대한민국 사람입니다</strong>
금요일 저녁 여섯 시, 퇴근한 나는 하루하루 열심히 살아가는 중이라는 어느 청년을 만나기 위해 지하철에 몸을 실었다. 이십 분이 채 지나지 않아 상수역에 다다랐고, 곧 약속 장소에 먼저 도착한 그를 만났다. “저는 서른 살 남성이고 NGO 방송국에서 PD로 일하는 직장인입니다.” 이정철. 명함 위에 쓰인 이름을 읽고 그를 바라보았다. 쌍꺼풀진 큰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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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년 차 엄마의 오답노트
12월 생인 우리 아이가 태어난 그 해 겨울은 유난히도 밤이 깊었다. 아이의 젖먹이 시절. 모든 것이 처음인 건 아이도 나도 마찬가지여서 먹이는 것 하나, 입히는 것 하나하나가 물음표 투성이었다. ‘오른쪽 눈 위의 연어반은 언제 없어질까’ ‘트림을 잘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지?’ ‘유치가 나기 전 입속 관리 방법은?’ ‘녹변, 혹은 흑변을 보았을 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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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의 붓다는 남성이 아니다.
“베트남의 붓다Buddha는 남자도 여자도 아니다. ” 베트남어를 가르치던 한 베트남인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붓다는 한국을 포함한 여러 나라에 걸쳐 존재하지만 한국의 붓다는 베트남의 붓다와 꼭 다른 존재인 것처럼 느껴졌다. 같은 이름의 신이라 할지라도 나라마다 그 모습이 다른 게 아닐까 생각했다. 어쩌면 이름만 같고 전혀 다른 신들이 존재하는 것 같기도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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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와 함께하라 in 『좋은 삶의 기술』
* yeondoo 출판사의 『좋은 삶의 기술』(이종건 저)에 실린 글을 옮겼습니다. ‘참 나’를 해명하기 위해 앞서 언급한 사르트르나 정신분석은, 개인에게 지나치게 주목하는 한계가 있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는 말이 뜻하듯 인간은 홀로 살 수 없다. 우리 모두 타인과 맺는 일정한 관계 망으로 산다. 따라서 인간관계를 잘 형성하지 않고서는 ‘좋은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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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연적 죽음과 생생한 삶
주형일|이미지 비평가 요즘은 시간이 왜 이리 빨리 가는지 모르겠다. 아침에 일어나 출근했다 싶으면 어느새 점심시간이고 식사 후에 잠깐 덤벙대다 보면 어느덧 저녁을 먹을 때가 돌아온다. 하루가 이렇게 흐르니 일주일, 한 달, 일 년이 그야말로 눈 깜빡할 틈에 지나가 버리는 느낌이다. 같은 하루, 같은 일주일이 어릴 적에는 그렇게도 길게 느껴졌는데 말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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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rong>한국에는 녹색어머니, 영국에는?</strong>
한국의 녹색어머니와 같은 교통 도우미가 영국에도 있다. 녹색어머니(혹은 아버지)처럼 주로 초등학교 앞에서 활동하는 사람이다. 녹색어머니의 깃발 대신, 이들은 ‘정지 Stop’를 알리는 둥근 모양의 표지판을 들고 근무한다. 그래서 ‘학생 등하교 교통정리원School Crossing Patrol’이라는 다소 긴 정식 명칭 대신 간단히 ‘롤리팝 레이디Loll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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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내가 연기한 관객 중 한명이었다
고양이 대신 키우게 된 것이 있다 잃어버린 고양이를 찾습니다,라는 문장 텅 빈 골목이란 날 버리고 간 것들이 영영 내 안에서 발견되는 것 다만 아무리 찾고 파헤쳐 봐도 내 안에 나는 없었다 나는 멸종했을까 수많은 내가 나돌아다니고 있었지만 밤의 입구에는 고양이들의 꿈과 꼬리들 수북하게 쌓여있고 다정한 호각 소리 수많은 내가 내 안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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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우라 아야코 『빙점』과 홋카이도 음식
일본 문화에 대한 반감이 지금보다 강했던 60년대 무렵, 드물게 우리나라에서도 큰 인기를 끈 일본 소설이 하나 있다. 바로 미우라 아야코의 1964년작 『빙점』이다. 패전 직후까지 홋카이도에서 교사 생활을 하다 뒤늦게 작가가 된 미우라 아야코는 일본에서는 드문 개신교도로, 작품에서도 원죄와 구원 등 기독교적인 메시지를 엿볼 수 있다. 이 덕분에 『빙점』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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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나귀와 강아지
주식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우연히 교보문고에서 마주친 대학원 동기는 쭉쭉 올라가는 그래프를 보여주었라. “아직도 안 해요?” 눈을 크게 뜨는 그의 표정을 아무 말 없이 웃어넘겼다. “요즘 다 주식하더라.” 오랜만에 대학을 함께 다녔던 친구와 카톡을 했다. “요즘 삼성이랑 테슬라 ㅋㅋㅋ” 하고 답장을 보냈다. “오 너도 하니? 또 나만 안 해.”라기에 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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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이 생각하는 재량적 리더십
데이터 분석 컨설팅 회사에서 전체 프로젝트를 총괄하는 마크. 그에게는 풀리지 않는 고민이 있었다. 바로 늘 피곤하다는 것. 일이 몰리는 시즌이나 그렇지 않은 시즌이나 별반 다를 것이 없었다. 그는 항상 피곤했고 해결책은 요원했다. 그러던 어느 날 마크는 애플에서 도입한 재량적 리더십discretionary leadership 모델을 접한다. 반신반의하는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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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어로 틈틈이는
전윤혜|자유 기고가 “대신 틈틈이 구상할게요!” 넉넉한 마감 날짜를 더 미룬 게 못내 마음에 걸려 한마디 덧붙였다. 이 원고가 중요하다는 걸 잊지 않을게요, 하는 마음도 실어서. 실은 그다지 바쁜 사람이 아닌데 갑자기 바쁜 척하기 머쓱한 마음도 컸다. 몇 달을 쉬다가 갑작스레 일이 몰린 때였다. 불과 한 달 전만 해도 틈밖에 없던 삶이 이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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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꼭 가져야 하나?
둘째는 일찍 나온대 첫 출산이 꽉 막힌 국도였다면, 두 번째 출산은 뻥 뚫린 고속도로라고 했다. 한 번 길이 뚫렸으니 엄청 수월할 거라고. 초조해하는 엄마에게 걱정하지 말라며 예정일에 꼬옥 맞춰 나온 첫째였기에, 이번에는 조금 일찍 나오겠거니…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 예정일을 열흘 앞두고도 이렇다 할 소식이 없는 것 같아 밤낮으로 걸어도 보고 안 하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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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의 동시대 예술은 어떤 느낌일까?
좋은 작가는 책도 많이 읽고 전시도 많이 보러 다닌다지만, 어쩐지 대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규모와 상관없이 전시를 보러 다니는 것에는 큰 흥미가 생기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나는 종종 글을 쓰거나 작업을 하는 것이 꼭 혼자 주야장천 독백하는 일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집단적 독백’이라는 요즘 말처럼 말이다. 베트남까지 이사를 오고 나서야 이곳의 작가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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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아름다운지
차주경|IT 기자 술에 얼큰히 취해 노래방에라도 가게 될 때면 으레 첫 곡이나 마지막 곡으로 토이의 〈여전히 아름다운지〉를 부른다. 과연 내 노래란 듣기 좋은 것일까, 아니면 듣기 고역일까 하는 여부는 차치하자. 내가 이 노래를 부르는 까닭은 가사를 유독 사랑해서다. “변한 건 없니. 내가 그토록 사랑한 미소는 여전히 아름답니. 난 달라졌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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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게 물린 남자
신상 유출 방지를 위해 각색된 부분이 있습니다. “여보세요?” “형, 잘 지냈어요? 오랜만이네. 잠깐만, 딴 게 아니고 형한테 볼일 있는 분이 계셔서 전화했어요.” 사회 초년생 시절 함께 인턴을 했던 J에게 전화가 왔다. Y 부장이랑 식사하고 커피를 마시는 중인데, 그분이 긴히 할 말이 있다고 전화 연결을 부탁했단다. “네, 부장님.” “어,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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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르메스와 까마귀
“아, 거 참 별 이야기를 다 하네!” 어머니의 목소리 너머로 큰 소리가 들린다. 아버지다. “왜, 뭘! 아들한테 이런 소리도 못 해?” 어머니는 퉁명스럽게 대꾸하시고는 이야기를 이어간다. “응, 아들. 어디까지 이야기했지?” 하루에 한 번 정도는 어머니와 통화를 하는 편이다. 전화를 먼저 하는 건 거의 어머니다. “밥은 먹었니?” “일은 좀 어때?” 안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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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남자와 두 애인
“어? 이게 뭐야?” 처음 보는 계정들, 거의 엇비슷했다. 그들이 눈에 띈 건 브런치 작가가 되어 글을 쓰고 난 직후였다. ‘이렇게 하면 글을 읽어주는 사람이 한 명이라도 늘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에 인스타그램 계정을 하나 더 만들었다. 필명으로 만든 인스타그램 계정에는 글의 일부를 카드 뉴스처럼 만들어 올렸다. 온갖 태그와 함께. 브런치에서 글로 만나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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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끼와 개구리
“골고루 좀 먹어라.” 어린 시절 반찬 투정이 참 심했었다. 특히 김치를 안 먹었다. 집에서는 식사 시간 때마다 “누가 보면 한국 사람 아닌 줄 알겠다”는 어머니의 잔소리를 들어야 했다. 처음 급식 교육을 받았던 급식실에서는 도저히 먹기 싫은 깍두기 때문에 혼자 남아 영양사 선생님과 기싸움을 해야 했다. “음식 남기면 나중에 지옥 갔을 때 악마가 다 비벼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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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면의 느낌과 욕구를 향해 떠나는 다정한 여행
『일상에서 들려오는 마음의 속삭임』by 이현주 일상 속 어려움의 진짜 원인은 뭘까? 내면의 느낌과 욕구를 향해 떠나는 다정한 여행 쾅! 방이 어지러워 몇 마디 했더니 아이가 방문을 세게 닫아버립니다. 치워 주면 자기 물건에 손댄다고 성화고, 참다 참다 언질을 주면 지금처럼 잔소리한다고 짜증을 내죠. 그렇다고 가만히 두고 보자니 저런 먼지 구덩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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텅 텅 텅
키보드를 바꿨습니다. 싸고 좋은 것입니다. 텅 빈 편지를 쓰는 중이었습니다. 할 말이 많았습니다. 하고 싶은 말들이 텅 빈 편지 곳곳에 갇혀 있습니다. 텅 빈 편지 속에서 가끔씩 당신의 소식이 들려옵니다. 두 손을 덜덜 떨며 당신의 소식을 읽고 지우고 다시 씁니다. 없는 사람이 되겠다는 다짐은 우리를 바닥에서 건져내었지만, 서로에게 소중한 사람이었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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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콤하고 다채로운 『아라비안나이트』
오늘날 아랍, 하면 각종 테러가 빈번하게 일어나는 분쟁지역이라는 인상이 강하다. 이슬람 신앙을 앞세워 인권을 탄압하는 곳이라며 선입관을 가진 이들도 적지 않다. 하지만 아랍에 대한 이런 스테레오타입은 대부분 서방 언론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라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 서구 열강이 제3세계를 정복하기 전까지만 해도 아랍인들은 각종 문화 예술뿐 아니라 과학, 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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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갑자기
열네 살, 친구 테라스에 앉아 가방에 비치는 햇빛을 바라볼 수 있는 것, 친구가 보낸 이모티콘을 보고 키득거릴 수 있는 것, 오랫동안 만나지 못한 이들과 화상 회의 플랫폼에서 온라인으로나마 만나는 것. 우리에게 당연한 것들이 당연하지 않은 이들이, 주변 곳곳에 존재한다는 걸 인지하기 시작한 지 오래되지 않았다. “기적이 있다고 믿어. 그 기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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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기설기 얽힌 관계
김지은|문학 연구자 샤워볼을 바꿨다. 샤워볼 교체와 같은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주변 사람에게 말하지는 않는다. 그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기에 나만 아는 작은 일상의 변화고 소소한 변화가 불러오는 작은 설렘이다. 여태껏 써온 익숙한 샤워젤이 조금 남아 있지만, 괜스레 새로운 샤워젤을 꺼내어 샤워볼 위에 작은 원을 그리며 쭉 짜본다. 여름을 닮아 산뜻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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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도 문제, 정당한 분노에 걸맞은 명확한 언어가 필요합니다
*2016년 비비디부에서 출간한 『독도북』을 다듬어 전자책 ‘에디션’으로 선보입니다. 역사서, 지도, 외교문서, 조약문 초안… 신라의 우산국 복속부터 오늘날까지, 독도가 한국 영토인 명백한 증거 총망라 도쿄 올림픽이 한창입니다. 그리고 일본은 독도를 마치 일본 영토인 것처럼 성화봉송로 지도에 포함해 도쿄올림픽 조직위원회 홈페이지에 게시 중이죠.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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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로 살기 VS 나로 살기
올해 초등학교에 들어가는 아이를 위해 책상을 구입했다. 인터넷으로 구할 수도 있었지만, 왠지 이 특별한 경험을 아이와 함께 하고 싶어 손을 잡고 가구점을 찾았다. 모양도 색깔도, 기능도 다양한 학습용 데스크를 보고 눈이 휘둥그레진 아이는 이것저것 욕심을 내었지만 “어른이 되어도 쓸 수 있는 책상, 쓰고 싶은 책상을 고르자”는 약속을 기억해 주었고, 그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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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째 계명. 대지 위에 춤춰라 in 『건축 십계명』
* yeondoo 출판사의 『건축 십계명』(이종건 저)에 실린 글을 옮겼습니다. 상품은, 그리고 세상의 패션(트랜드)은 구식이 되기 위해 머무는 잠깐의 새로움이다. 상품의 수명은 새로움이 다른 새로움에 의해 대체될 때까지 머무는 잠정적 시간이다. 경제력과 소비 사회의 문명화 수준은 신상품 사이클이 결정한다. 디자인, 예술, 심지어 철학마저 새로움이 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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갇힌 집에서는 뭘 하면 좋을까?
과거의 드라마나 방송을 보면서 마스크 없는 인물들의 모습에 순간 낯설었던 경험이 한 번쯤은 있을 것이다. 베트남의 코로나 상황은 근 2년 중의 어떤 시기보다 심각하다. 8월 1일 기준 하루 확진자가 8천 명을 넘었고, 호찌민에서만 4천 명을 넘겼다. 이번 확산이 시작된 지 꽤 되었기 때문에, 6월부터 다양한 조치들이 조금씩 이루어졌다. 카페나 식당의 실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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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량하고 과즙 같은 산미가 풍부한 케냐 커피를 위하여
심재범|커피 칼럼니스트 케냐 커피는 독특한 테루아를 바탕으로 발현되는 과즙 같은 산미가 매력적이다. 자몽, 포도, 파인애플 같은 강렬한 향미뿐 아니라 깔끔하고 풍요로운 단맛이 선명하다. 강력한 임팩트, 질감과 애프터까지 케냐 커피는 와인의 왕, 샴페인의 청량감과 유사하다. 케냐 커피의 품질은 2,000미터에 육박하는 재배 고도, 적절한 온도, 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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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는 소설을 권했지만
새가 날아들었다 새의 양손에는 선물이 한 보따리 음료와 음료와 음료들 나의 추락도 역시 달지도 짜지도 않은 달콤한 맛이었다 새의 걸음을 본떠 낡은 벤치가 생기고 새의 손짓에 밀려 계절이 넘어가고 새를 알아들지 못해 다리가 굳는 이명을 앓게 되었다 몸과 마음이 굳어가는 아름다운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 * 새가 있고 새처럼이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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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내가 되고, 내가 네가 되어
우울은 blue, 그리고 세상은 red 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다. 우울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나는 전자에 속한다. 우울은 늘 내 음악의 원천이었다. 심각했던 시기에는 거울만 보면 거울 속에 비친 나 자신이 낯설고, 어색하고, 안타까워 팔로 어깨를 감싸며 눈물을 흘리곤 했다. ‘끼리끼리 논다’는 말처럼 사람은 비슷한 결의 인간에게 끌리는 경향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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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남부식 '먹방 소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한국의 ‘청순가련형 여성’에 해당하는 미국식 표현은 재미있게도 ‘남부 숙녀Southern lady’라고 한다. 이들은 투명할 만큼 새하얀 피부에 부러질 듯 가는 허리를 자랑하며 툭하면 기절하고 식사를 거의 하지 않는 등 병약함을 매력으로 내세운다. 마거릿 미첼의 소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 나오는 여성들과 유사한 이미지다. 주인공 스칼렛은 당시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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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밀한 취미 생활
염운옥|역사 연구자 내 은밀한 취미는 고양이 동영상을 보는 것이다. 상당히 중독성이 강하다. 야금야금 보기 시작하면 어느새 한 시간이 훌쩍 지난다. 이럴 때 누가 나를 부르면 “야옹” 하고 답할지도 모른다. 두 손을 고양이 앞발처럼 세우고 쥐락펴락 움직이며 말이다. 유튜브에 넘쳐나는 귀엽고 재미난 동물 영상을 보는 행위는 그다지 특별할 것 없는 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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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스럽게
견혜경|그림 작가 내가 사는 곳은 읍, 면, 리 대충 ‘촌’으로 불리는 곳이다. 주변은 그냥 풀, 나무, 밭이 널린 말 그대로 시골 그 자체다. 시내도 아니고 읍내라고 부르는 곳에 나가려면 집 앞에서 배차 간격이 30분인 버스를 기다렸다가 타고 1시간이 걸려야 갈 수 있다. 친구와 약속이 있는 날에는 일찍이 일어나서 나갈 준비를 한다. 입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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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rong>2개 국어 쓰는 아이의 일기장, 구경해볼래요?</strong>
아들에게 책꽂이 정리를 시켰다. 오래된 일기장과 노트, 수년 전 읽었던 책, 장난감까지 먼지를 뒤집어쓴 채 자리를 차지하고 있어서다. 남편까지 지원군으로 투입했건만 한 시간 여가 지나도 큰 진전이 없다. 간혹 두 사람이 키득거리는 소리만 난다. 아무래도 내가 나서야겠다. “남자들, 일 안 하고 뭐해요?” 문을 열고 나가보니 두 남자가 이렇게 바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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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rong>영국 병원에서 살아남기 </strong>
영국에서 만난 한 여성의 사연이다. 병원에서 겪은 황당하고 무안한 경험을 상세히 다 들려주기엔 우리는 너무나 서먹한 사이였나 보다. 내가 들은 그날의 경험은 딱 여기까지다. 비슷한 연령대의 여성을 위해 병원 통역을 해준 적도 있고, 나 또한 여성 질환에 관심이 많을 수밖에 없는 나이이므로 추측해볼 수는 있다. 이 여성이 앓은 병은 방광염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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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6년, 어느 한국 청년의 사랑과 인생
『1976년 어느 날』by 우드 자식들에게 어머니는 날 때부터 어머니, 아버지는 날 때부터 아버지 같겠지만 그런 일은 당연히 불가능합니다. 부모님도 누군가의 자식으로 태어나, 별것 아닌 일에 우스웠다가 금세 화가 나기도 하는 사춘기와 청년 시절을 거쳐 어른이 되었지요. 그렇게 온전한 한 사람으로 성장하는 동안 마주친 인연들은 뇌리에 유난히 깊이 각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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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여자의 혼자 여행
오랜 기도 끝에, 엄마는 서른이 가까워서야 첫아이를 얻었다. 100도씨로 끓는 물을 거치지 않고서는 그 어떤 것도 아이에게 닿지 않게 했다. 먹는 물은 물론 씻는 물, 옷가지, 장난감 모두 그랬다. 소독과 멸균. 밖에서는 땅에 내려놓는 법이 없었다. 땅에 닿을까 항상 안거나 둘러업고 밖을 나갔다. 그래서인지 나는 걸음도 늦게 떼었다. 엄마는 종종 그때를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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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늘 이렇다
남상욱|일본 문학 연구자 문제는 늘 시간이었다. 야간 자율 학습이 없는 학교를 다녔던 탓에 고등학교 시절에는 남는 게 시간이었다. 고등학생이 되면 도시락을 두 개씩 싸 가지고 가는 게 당연했던 쌍팔년도였는데 오후 3시에 하교하는 특권을 받고 어리둥절하다가 남는 시간을 서클 활동에 조금 써보기로 했다. 선배의 잔소리가 아무리 길어져도 6시면 집에 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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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있을게, 마음껏 걸어가렴
신량|엄마 아이와 복작이던 시간이 지나고, 초등맘이 되었다. 새 출발에 대한 기대와 떨림을 음미하는 것도 잠시 아이는 빠르게 학교라는 새 울타리에 적응했다. 매일 밤 새처럼 조그만 입을 벌려 학교에서 있었던 일들을 재잘거리고, 목 끝까지 이불을 폭 덮은 채 내일을 기대하며 잠드는 아이를 보는 건 데운 물에 적신 수건으로 가슴을 닦아 내리는 일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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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여덟 어른에게 필요한 어른
겨우내 앙상하게 말라있던 나뭇가지들도 봄이 되면 따스한 햇살 아래 초록 봉우리들을 만들어낸다. 당연한 자연의 이치이겠지만 계절마다 달라지며 자신의 역할을 해내는 나무를 볼 때마다 성장의 신비함을 느낀다. 세상 만물 대부분이 그렇듯 주어지는 시간 속에서 성장하는 것은 당연한 순리이다. 그러면, 한 명의 아이가 어른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얼마만큼의 시간이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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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리즘이 놓친 넷플릭스 명작 리뷰
『내 맘대로 넷플릭스』by 탄소포인트 가족이나 친구, 심지어는 나 자신보다 내 취향을 더 정확하게 꿰고 있는 존재가 있다면 그건 바로 알고리즘일 겁니다. 유튜브에서도 넷플릭스에서도 귀신같이 내가 좋아할 콘텐츠만 골라 추천해 주죠. 취향에 안 맞는 콘텐츠로 시간 낭비 안 해도 되고, 나와 견해가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는 듣지 않아도 되니 편리하긴 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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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불』에 묘사된 남도음식의 세계
먼 옛날 우리 조상들은 푸르스름한 혼불이 보이면 두 손을 모아 망자의 명복을 빌었다고 전해진다. 사람의 혼을 이루는 바탕인 ‘혼불’을 주제로 소설가 최명희는 우리 민족의 가장 어두운 시기였던 1930년대, 고통 속에서도 처연한 삶을 이어간 이들의 군상을 담았다. 이 작품은 양반가 삼대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는 점, 일제 강점기를 배경으로 한다는 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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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숨 정도는 걸고 삶을 헤쳐나가는 서른 살 ‘은희‘의 이야기
“빨간 머리, 미니스커트, 반짝이는 코걸이“ 강렬한 붉은색의 긴 세팅 퍼머 머리를 한 그녀는 미니스커트를 입고 있었다. 내가 앉아 있는 소파 쪽으로 다가올 때는 진한 아이라인의 눈 아래 콧방울 위로 반짝이는 코걸이가 눈길을 사로잡았다. 자유로워 보이는, 예쁜 빨간 아가씨. 2018년 12월, 추운 겨울에 만난 그녀의 첫인상이었다. 한 강연장에서 강연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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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의 재능을 고를 수 있다면 나의 선택은?
중고등학교를 시골에서 나온 나는 학창 시절 대부분을 학교에서 보냈다. 그러다 잠깐 친한 친구들과 중3 때 영어 학원에 다닌 적이 있다. 학원에선 수업 시작할 때마다 영어 단어 암기 시험을 쳤다. 50개를 외워야 했는데 친구들은 한 시간 일찍 학원 자율학습실에 도착해 단어를 외웠다. 미리 외우기도 했고 이미 알고 있던 단어들도 있어서 나 역시 그 정도 시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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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에 깔려죽은 이야기가 있었다
접시가 뛰어간다 액자가 뛰어간다 책장이 뛰어간다 티슈가 뛰어간다 뛰어간다가 뛰어간다 과자가 뛰어간다 음악이 뛰어간다 창밖이 뛰어간다 안녕이 뛰어간다 이름이 뛰어간다 벤치가 뛰어간다 꽃들이 뛰어간다 구름은 뛰어가지 않는다 그것은 자신의 사라진 발자국을 멍하니 올려다보고 있다 커피향이 뛰어가고 우산이 뛰어가고 텅 빈 거리가 통째로 뛰어간다, 뛰어간다 뛰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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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후조리 없는 산부인과
시간을 잠시 거슬러, 초 겨울바람이 코끝을 빨갛게 건드리기 시작하던 지난 12월로 되돌아가 본다. 알람 소리도 없이 눈을 뜬 시각은 4시 35분. 인기척 없는 고요함 속에 내 안의 누군가가 말을 걸어온다. 본능적으로 알아챈 그 목소리를 부표 삼아 오늘 하루의 동선을 마음속으로 헤아려 본다. 오전 내내 불규칙한 진통이 밀려오고 쓸려가는 동안 이불 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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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사람의 눈을 정면으로 바라보는 것
한국에서 사는 동안에도 ‘시선’이라는 단어는 여러 차례 이야깃거리가 되곤 했다. 대체로는 그다지 좋지 않은 맥락으로 쓰일 때가 많았다. 대학을 막 입학한 20살 때엔 별로 시답잖은 이유로 프로테스탄티즘이나 금욕주의에 진지했는데, ‘금욕’이라는 키워드에 몰입해서는 온통 검은색 옷을 입고 다니곤 했다. 보통 검은 생머리를 풀고는 검은색 티셔츠, 검은색 카디건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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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rong>영국의 초등학생은 뭘 입고 학교에 가나요? - 1</strong>
곧 영국의 학생과 학부모가 바빠지는 시기다. 9월이면 각 학교가 개학[1]을 하니 이에 대비해 교복과 준비물을 사야 하기 때문이다. 자녀를 처음으로 학교에 보내는 초보 학부모가 가장 바쁘겠지만 선배 학부모라도 여유만만일 수 없다. 6주라는 긴 여름 방학을 보냈더니 자녀가 훌쩍 커버린 탓에 지난 학기에 착용했던 교복과 신발마저 맞지 않을 수 있어서다. 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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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한 사춘기 소년의 부실한 밥상 이야기
한때 ‘영국 요리’라고 하면 ‘혀에 대한 테러’라고 불릴 만큼 그 악명이 높았다. 이런 이미지가 예전에 비해 개선된 것은 제이미 올리버, 고든 램지 같은 스타 셰프가 등장하면서부터다. 하지만 영국 요리도 과거로부터 지역별로 독특한 레시피가 발달해왔고, ‘영국식 아침식사’는 그 푸짐한 양으로 오늘날까지 사랑받고 있다. 영국 요리가 혹평을 받게 된 데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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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정엄마의 유산
나는 절대 아프지 않으려고 한다.아빠랑 약속했어 우리 아프지 말자고 모아둔 돈도 없는데 우리가 아프면 자식들이 고생이라고.연명 수술 같은 건 생각도 하지 마라 . 엄마는 선언했다. 그러면서 테이블 위로 꺼내 놓은 것은 ‘장기 기증 희망 등록 카드’사전 연명 치료 거부 신청도 해 놨다고 한다. 그 옆에서‘나는 안 할 거야.’하는 아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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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한번
정하린|젠더 평등과 화해 운동 활동가 “선생님, 뭐가 힘든지, 어려운지 말해보라는 말은 내 세상에는 없는 말이에요.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저한테 왜 그러세요?” 오늘 상담실에서 들은 말이 내 가슴에 아릿하게 들어온다. 나는 지금 이 사람의 세상에 작은 균열을 내고 있다. 지영(가명) 씨가 듣도 보도 못한 말을 계속하며 노크해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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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기에서
문광용/문명비평가 지금 여기에서 나는 행복하네, 온전하네. 현실의 나는 부조리하다는 신호를 자꾸 보내지만, 원래의 나는 행복하네. 나는 매일 사라지고 나는 매일 태어나네. 매일 사라지는 것도 지금, 매일 태어나는 것도 지금, 여기라네. 어제의 나는 오늘의 내가 아니고 오늘의 나는 내일의 내가 아니라네. 나는 매일 새로워진다네. 내가 태어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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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의 어느 우기 : 비 특집
1. 베트남의 기후는 보통 북부와 남부로 나누어 설명하는데, 북부의 경우 사계절이 있고 남부는 건기와 우기로 나뉜다고들 한다. 사이공은 남부에 있으니 건기와 우기로 나뉘는데, 지금은 우기이다. 베트남 여행을 준비하는 사람들은 이런 기후 특징에 따라 여행 갈 지역을 정하기도 하고, 시기를 정하기도 한다. 보통은 건기가 여행하기에 더 좋다고들 말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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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낙엽이 떨어진다. 또 이별을 맞았다 술을 마시고 영화를 봐야겠다. in 『저 강변 극장』
* yeondoo 출판사의 『저 강변 극장』(차주경 저)에 실린 글을 옮겼습니다. 그래. 또 또 또 사랑에 실패했다. 이별의 횟수가 한 손으로는 세지 못할 만큼 많아진 이후에는 사실 정확한 횟수를 세지도 않았다. 나이와 경험만큼 연륜이 쌓이고, 그만큼 망해도 멋지게 망하는 법을 배운다고는 한다. 그럼에도 사랑만큼은 어떻게 이뤄야 할지 도무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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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행 퇴사하고 미국 중소기업 택한 단 하나의 이유
『자폐, 함께 걸어요』by 김솔 미국에 정착한 자폐 아동 가족의 치료·교육·성장에 관한 기록 업계 최고의 직장을 뒤로하고 어마어마한 불확실성을 감수하며 외국에 살기로 결정하는 이유에는 무엇이 있을까요? 자유로운 생활? 원대한 꿈? 모두 그럴듯한 답이지만, 『자폐, 함께 걸어요』를 쓴 김솔 작가의 이유와는 거리가 멉니다. 작가가 한국은행을 그만두고 지원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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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rong>동네 언니의 ‘덕질’을 응원하게 된 이유</strong>
그녀가 보호종료아동 캠페인을 시작하게 된 이유 카페에 마주 앉아있는데, 언니가 뭔가 부끄러운 듯 고백했다. “나 사실, 덕질중이야.” 마스크 너머 언니의 얼굴이 살짝 빨개진 것 같았다.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클럽하우스 인문학 모임에서 만나 어느덧 동네 언니가 되어버린 하트스트링 님, 조용하고 책 읽기를 좋아하며 언젠가는 글을 쓰고 싶어 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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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rong>낯설고 흥미로운 한국과 영국의 줄 서는 풍경</strong>
“오랜만에 한국에 왔으니 맛있는 집으로 가야지” 그리운 사람을 만날 때처럼 설레고 기분 좋은 일은 없다. 가족과 친척을 만날 때도, 예전 직장 동료나 학창 시절 친구를 만날 때도 마찬가지다. 몇 년에 한 번 고국을 방문하는 나를 위해 이들은 한결같이 마음을 써준다. 그래서 다들 당연하다는 듯 맛집으로 향한다. 오랜만에 만나는 친척과 친구를 데리고 소문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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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끄럽게 침묵하는 살림들에게
내가 좋아하고 가장 많이 시간을 쏟는 것들이 나만의 고유한 아이템이 되는 시대라고 한다. 나의 시간을 가장 많이 쓰는 것? 살림이다. 그럼 살림을 좋아하나? 아니다. 살림 노동자로 십 년 넘게 살았지만 십 년 내내 살림은 ‘빨리 해치워야 할 무엇’이었다. 누구는 살림을 하다 보니 인플루언서가 됐다지만 내게 살림은 그저 인플루엔자였다. 끝없는 반복에 나를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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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 키우면 좋은 점, 오조오억 개
딸을 키우며 좋은 점 오조오억 개 중 하나는 이런 게 아닐까. 아기자기한 수첩이며 문구류, 스티커를 사이에 두고 몇 시간이고 조잘조잘 떠들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다는 것. 작년 여름부터 엄마 따라 나도 적고 싶다기에 작은 수첩을 장만해 주었는데 올해는 자신도 ‘달력이 있는 수첩’을 갖고 싶다 하여 나란히 같은 디자인의 스케줄러를 골랐다. 아빠에게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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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도의 무덤
최창대|작가 살아가는 것은 끊임없이 무언가 고장 나는 것이다. 살아가는 것은 끊임없이 무언갈 잃어가는 것이다. 사랑이란 건 내 귀한 걸 내어주고 상대의 흔한 걸 얻어오는 일이다. 나는 네게 모든 귀한 걸 내어줄 터이니 너는 내게 오직 흔한 것만을 내어주어라. 남자는 글쓰기를 멈추고 고개를 의자 뒤로 젖히며 눈을 감았다. 자신이 적은 여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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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찰나, 빛나는 노력
신경숙|북 디자이너 아침부터 밖에 요란스럽게 울어대는 까마귀 소리에 갑자기 생각이 났다. 처음 일본에 갔을 때, 이른 시간부터 호텔 밖에서 들리던 그 소리의 기억이다. 기이하다고 생각했고, 소리를 듣다 보니 일본 기담집의 한 이야기 속에 있는 것 같았다. 호텔 창문으로 어디에서 나는 소리인가 찾다 본 새까만 까마귀는 번잡한 도심에 그 모습만큼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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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랑한 NPC
스물세 살에 처음 만난 응우옌 씨는 첫 번째 베트남인 친구였다. 베트남어를 전혀 할 줄 모르는 여행객으로서 베트남 사람과 친구 관계를 맺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번역기를 통해 이름이나 직업 정도만 알고 지내는 사람들을 친구로 포함하기 어렵다고 느꼈다. 한적한 여행지 어느 작은 마트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던 응우옌 씨는 영어를 잘했다. 베트남어를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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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rong>소와 당나귀, 돼지도 만날 수 있는 영국의 도로</strong>
“앗, 사슴 표지판이다!” 긴장해야 한다. 영국의 도로에서 운전하다 보면 동물 모양이 새겨진 표지판이 자주 나타난다. 가축을 방목하는 목초지나 농장, 국립공원이 근처에 있을 가능성이 크다. 동물은 동물원이나 축사에 갇혀 있을 텐데 왜 도로 표지판으로 이들의 존재를 알릴까? 이런 의문을 가질 운전자를 위해 친절하게 몸소 보여주려는 듯, 양이나 소가 두어 마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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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풍과 태양
- 이솝 우화 중 「북풍과 태양」 우리에게 잘 알려진 이 이야기는 무엇을 말하고 싶었던 걸까? 빠르게 서두르기보다는 천천히, 꾸준히 하는 것이 더 좋은 방법이라는 사실을 말해주는 것일까?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건 매서운 바람 같이 쏘아붙이는 태도가 아니라 햇볕같이 따스한 경청의 태도이니, 당신도 북풍보다는 태양처럼 타인을 대하라는 교훈이 들어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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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과 방패
- 『한비자』 「난세편難勢篇」 중 창과 방패의 우화 위의 이야기는 어떻게 창을 뜻하는 모矛와 방패를 의미하는 순盾이 합쳐져 ‘논리에 어긋나다’라는 전혀 다른 의미로 쓰이게 되었는지 말해준다. 이렇듯 모순은 자가당착을 설명하는데 자주 쓰이는 표현이지만, 창과 방패가 부딪히는 모습은 마치 싸움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로보트 태권 V랑 마징가 Z랑 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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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멜른의 피리 부는 사나이
- 독일 민간전승 중 「하멜론의 피리 부는 사나이」 어린 시절 나는 부모님께 존중과 사랑을 받으며 컸다. 어머니와 아버지는 웬만한 일이 아니고서는 꾸중하지 않으셨다. 하지만 절대로 그냥 넘어가지 않는 경우가 하나 있었다. “너 진짜 이럴래? 회초리 가지고 와!” 학교에서나 학원에서 억울하게 혼이 난 날 나는 종종 동생에게 성질을 부렸고, 그럴 때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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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음과 눈물이 함께하는 달콤쌉싸름한 일상다반사
아무리 산해진미로 배를 채웠어도 다음날이면 집밥을 찾는 게 사람들의 심리라고 한다. 따라 하기 쉽고 친숙한 맛을 내는 백종원의 레시피가 대중들에게 인기를 끄는 이유도 같은 맥락일 것이다. 이런 심리는 삶을 그려내는 문학작품에도 적용되는 듯하다. 가령 안톤 체호프Anton Pavlovich Chekhov의 단편은 특별할 게 없는 일상을 담고 있으면서도 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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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예술가 병수 형
우리는 예전에 병수 형이랑 알고 지낸 지 어느덧 6년으로 이제는 중고등학교 친구들만큼이나 친한 사이가 되었다. 우리는 내가 고3, 병수 형은 재수 때 연극영화과 입시 학원에서 처음 만났다. 수업받는 반은 달랐지만 온종일 학원에 붙어 있다 보니 자연스럽게 친해질 수 있었다. 힘든 입시 생활을 헤쳐 나가기 위해 돼지국밥을 자주 먹으러 가다가, 또 눈빛만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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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사 없는 삶
김주현|기자 1997년 봄, 새파란 수습기자들을 만난 선배는 이렇게 말했다. “기자라면 대한민국 50년사를 200자 원고지 한 장에 쓸 수 있어야 한다.” 그 선배는 나중에 경향신문 편집국장까지 했던 특종 전문기자였다. 그때는 200자로 우리나라 역사를 요약하라는 말을 듣는 순간 ‘뻥’치는 것 같았다. 그런데 6개월간 수습하다 보니 그 말이 이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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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의 유령
김웅기|미술 비평가 앤디 워홀은 귀신으로 살다가 사람으로 죽었다. 워홀이 예술가가 된 이래 그의 모습과 작품은 어디에나 나타나고 어디서나 보였다. 1968년 워홀이 밸러리 솔라나스Valerie Jean Solanas에게 총 두 발을 맞았을 때도, 1987년 담석적 합병 수술로 사망했을 때도 뉴욕시의 일간지 《뉴욕 포스트》 전면에 나올 정도로 유명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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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rong>영국의 초등학생은 뭘 입고 학교에 가나요? - 2</strong>
*〈영국의 초등학생은 뭘 입고 학교에 가나요? - 1〉에서 이어지는 글입니다. 이번에는 교복 대신 다른 옷을 입고 등교하는 날이다. 말 그대로 교복 안 입는 날Non-Uniform Day로, 단순히 사복이 아니라 특정 주제에 맞춘 옷을 입는다. 학교 소식지에 행사 날짜가 나오므로 이를 확인하고 미리 준비하자. 영국 문화에 익숙하지 않다면 교사나 선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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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 식민주의와 베트남, 예술
융합예술학과 김인선 서론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서구 열강이 주도한 국가 간 땅따먹기 개념의 식민지 전쟁은 끝이 났으나 문화와 경제 영역에서의 전쟁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이 전쟁은 눈에 잘 띄지 않으며 심지어 인식하기도 어려운데, 그것은 지배 국가의 개인에게든 피지배 국가의 개인에게든 마찬가지이다. 몇 해 전에는 『정의란 무엇인가』가 한국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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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집 냉장고는 말을 한다
식구들이 다 잠든 밤, 옅은 진동과 함께 이상한 소리가 들린다. 도대체 시공을 어떻게 했길래 다른 집의 괴이한 소리와 진동이 벽을 타고 오는 거냐고 구시렁거리며 거실로 나왔다. 층간 소음이 아니었다. 열네 살 먹은 냉장고가 하는 말이었다. “이이우웅퐈꽐꺼롸..쿠오오왁꾸워어으라왁..” 푹, 어이없는 웃음이 나왔다. 어르신, 저도 좀 도와드리고 싶은데 방법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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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밖으로, 사회 안으로 난 길
한여름 평일 오후, 북한산행 지하철의 마지막 정거장에 내렸다. 한적해 보이는 등산용품 가게 그리고 막걸리집이 가득한 거리를 지나 골목으로 들어서자 조용한 분위기의 상가가 이어졌고, 원목 인테리어의 테라스 카페도 자리해 있었다. 이 근방에 있는 목적지를 찾기 위해 나와 동행인은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카페를 지나치려 했는데, 카페 사장님으로 보이는 테이블에 앉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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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 공동체를 무대로 한 흥미진진한 비밀지도
오늘날 수도원이라고 하면 성직자들이 모여 경건하고 금욕적인 생활을 하는 곳으로만 아는 이들이 많다. 이런 이미지는 산사에서 속세와 단절된 채 살아가는 조선시대 승려들의 모습과도 비슷하다. 하지만 현대의 종교인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세속의 일에 관여하듯, 중세의 수도원 역시 수행만을 위한 장소는 아니었다. 중세 가톨릭교회 수도자들이 기도만큼이나 중요하게 여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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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는 싸움
신이연|독립 기획자 “굳이?” 무언가를 시작하려 할 때마다 제 행동을 반 박자쯤 늦추게 하는 부사가 있습니다. 이 단어는 이 글을 쓰는 지금도 계속해서 제 머릿속을 맴돌고 있습니다. ‘굳이’. 내가 지금 귀중한 종이를 낭비해가면서까지 굳이, 이 글을 책으로 남겨야 할 이유가 있는 것일까. 굳이…. 하지만 생각해보면 지금까지 제가 해온 일들은 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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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우주는
발을 쿵쿵 구르며 방 문을 쾅 닫는 아이. “어휴- 나도 이제 모르겠다. 맘대로 해라!” 고개를 가로저으며 주방으로 향하는 시어머니. 아니 이게 무슨 일이야… 퇴근하고 집에 돌아오니 집 안에 찬 바람이 쌩쌩. 초등학교 1학년인 딸아이와 만 65세의 할머니가 한바탕 쏟아부었는지 집 안이 꽁꽁 얼어붙어있다. 살얼음 밟듯 조심조심 신발을 벗고 거실로 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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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로의 가스레인지, 눈물의 인덕션
학교 앞에서 자취하던 시절, 자주 놀러 오던 동생이 있었다. 그 애는 가스레인지로 내 상태를 파악했다. “하이고, 언니. 가스레인지 좀 보소? 어젠 또 뭔 일이 있던 거야?” 학교에선 조교, 학교 밖에선 문화센터 강사였던 나는 늘 남에게만 상냥한 아가씨였다. 나의 상냥함은 통장을 채웠기에 그게 좋은 건 줄 알았다. 나와 남 사이의 상냥함을 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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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순간에 무너진 꿈
안우광|직장인 선선한 공기를 온몸으로 느끼면서 가을이 왔음을 직감했다. 베란다에서 방안으로 돌진한 서늘한 공기가 살갗을 스치더니 여지없이 알레르기성 기침이 시작된다. 가을이 왔다! 코로나 사태 이후 집에서도 에취, 하며 기침해대는 건 가족들에게 눈치가 보인다. 스스로 제어할 수 없는 기침을 연신 한다. 잔기침이 아니고 분무기처럼 침방울을 동반하는 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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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rong>저는 다방 커피로 주세요</strong>
“커피를 어떻게 좋아하냐고요?” 여기서 잠시… 위 대목에서 이어질 법한 영어 표현을 알아보자. 현장감을 주기 위해 토익 듣기 형태로 표현하겠다. 이 자리는 눈으로 읽는 공간이지 귀로 듣는 곳이 아니기에 친절하게 대본을 공개한다. 개인적으로 토익 문제를 풀어본 지 20년이 넘었으니 감각이 떨어져도 이해해 주길 바란다. 영국에 산다면 다양한 이유로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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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큰 아픔 - 탈시설 정책과 시설 거주 장애인의 이야기
“남성 장애인과 여성 비장애인 중에 누가 약자라고 생각하세요?” 밤 열 시가 다 되어 전화를 걸어온 제보자는 대뜸 물었다. 선뜻 답하기가 어려웠다. 물리적인 힘의 세기를 묻는 게 아니라면, 이 질문은 누가 더 ‘사회적 약자’라고 생각하는지 묻는 걸까? ‘약자가 존중받는 사회’, ‘약자 보호’, ‘약자에게 제공되어야 하는 복지’, ‘약자를 돕자’. 이런 단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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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북녘의 땅, 생소하지만 정감 있는 식문화
2000년대 초반 대한민국에서는 뜬금없이 핀란드라는 나라가 사람들의 관심을 모았다. 외교적 이슈가 있었던 것도 아니고 핀란드 영화가 히트를 친 것도 아닌데 핀란드의 이름이 머나먼 한국에서 그렇게 자주 오르내린 건, ‘호밀빵’과 ‘자일리톨’이라는 키워드를 앞세운 두 광고 때문이었다. 특히 치아 건강에 좋다는 자일리톨 껌은 “휘바 휘바[1]“라는, 낯선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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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면 너머의 바다를 바라보는 일
유독 지치고 피곤한 아침이었다. 어쩌면 내 주변 사람들은 내가 베트남에 온 목적이 단순히 나트랑에 가기 위한 변명이었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줄곧 그렇지 않다고 대답했다. 선뜻 그렇다고 할 정도의 확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다고 말할 확신도 물론 없었으나 나는 그저 덜 부끄러울 수 있는 대답을 이어나갔다. 확신에 차서 과감하게 내린 결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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꿀벌과 독침
- 이솝 우화 중 「꿀벌과 독침」 “그래서, 뭐 어쩌게?” “복수해야지, 복수!” “허이고…” 분노가 끓어오를 때가 있다. 하는 짓이 꼭 깍쟁이 같아서 한대 쥐어박아주고 싶은 사람이 있는가 하면, 속 보이는 거짓말을 한다거나, 교활하게 이간질을 하는 모습을 보면 마음속에서는 저절로 ‘내가 저걸 가만 두나 보자’하는 생각이 불쑥불쑥 튀어나온다. ‘분노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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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도 시대 사람들은 뭘 먹고 살았을까?
한식 붐을 일으킨 드라마 〈대장금〉에는 고춧가루로 빨갛게 물든 김치가 나오지 않는다. 오늘날 흔하디흔한 감자나 당근도 작품의 배경이 되는 16세기에는 없었고, 심지어 배추도 드문 식재료였다. 음식 감수를 맡았던 궁중요리 전문가 한복려 선생은 이 때문에 옛 문헌을 참고해 맨드라미나 호박꽃, 석류알 등으로 색감을 살렸다고 한다. 지금보다 식량 사정이 좋지 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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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rong>아들아, 이제부터 이의 요정 말고 까치에게 연락해 보렴</strong>
“엄마요, 이의 요정이 10펜스만 놓고 갔다요.” 이른 아침, 아들의 다급한 목소리가 침실을 울린다. 어릴 적부터 항상 새벽에 깨어 부모의 알람 시계 역할을 하던 아들이다. 우리 부부는 비몽사몽 상태에서 이게 무슨 소린가 싶어 겨우 몸을 일으켜 울먹이는 아들을 맞이했다. 전날 아들의 이가 빠졌다. 그런데 밤에 이의 요정이 다녀가면서 1파운드 대신 10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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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추석 풍경
한국을 떠나온 지 12년. 타지에서 보내는 열두 번째 추석. 우리 집 저녁 메뉴는 차례상 대신 오뎅おでん이다. 명절을 명절답게 보내지 못한 지도 오래되었다. 송편이며 전이며 가족이 둘러앉아 빚어내고 부쳐내고 하면서 못생긴 애들은 하나씩 집어먹기도 하고, 막상 다 해놓으면 뿌듯~한 마음에 아까워서 못 먹기도 하고… “정아야 가서 식용유 좀 하나 사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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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움이 필요해
그를 만난 지 1년 남짓. 우리는 만나자마자 소울메이트가 되었다. 그랬던 그가 얼마 전부터 낌새가 이상했다. 나에 대한 마음이 식은 것인가. 식기세척기님이 식기세척을 못했다. 기름기가 그대로 남았고 자동 건조도 안됐다. 다급하게 기사님을 모셔왔다. 제 소울메이트를 살려주세요. 기사님은 5분 만에 진단을 내렸다. 물을 뜨겁게 데워주는 모터만 바꾸면 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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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강의 '단짠'을 경험하는 인생의 어느 시기
『겨우 스물둘』by 신지수 불안하도록 찬란한스물둘 청춘의 기록 ‘슈퍼 테이스터’를 아시나요? 혀 표면에 미뢰가 많아 일반인보다 맛을 강렬하게 느끼는 슈퍼 테이스터들은 쓴맛에 특히 민감하며, 단맛은 더 달게, 짠맛은 더 짜게 느낍니다. 이런 특성 때문에 요리에 소량 사용된 재료를 알아채기도 하고, 남들은 맛있다는 음식이 이들에겐 고통스러운 맛으로 다가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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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의 집의 기록
한승태 #1 현재 다달이 부과되는 TV 시청 수신료는 2,500원이다. 요즘 다들 그렇듯이 나도 TV는 거의 보지 않는다. 그래서 그만 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 돈 가지고 뭘 그러느냐고 할지 모르겠지만 어느 시인의 표현을 빌려서 말해보자면, 나는 인생을 500원 단위로 계산하며 살아왔다. 먼저 아파트 관리 사무소에 전화를 걸었다.“그런 건 저희는 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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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부름하는 개
- 라퐁텐 우화 중 「심부름하는 개」 일을 앞둔 사람은 계획을 짜거나 연습을 수차례 반복한다. 결과가 좋을 때도 있지만 그렇지 못할 때도 있다. 주인과 열심히 연습을 하고 나서 자신만만하게 거리로 나섰다가 뒤따라온 개들 때문에 난감해진 개처럼, 인생도 그렇다. 상황이 계획대로 진행되지 않고 생각지도 못한 것 때문에 일의 방향을 수정하는 것은 물론, 심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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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rong>내가 한국 나이로 말이야</strong>
한국인이 대화 도중 외국인에게 혼란을 안겨줄 수밖에 없는 상황이 있다. 바로 나이를 말할 때다. 한국인들 사이에 통용되는 나이 표현법이 국제 사회에서 인정하는 것과 다르다는 사실은 아마 대부분 알 것이다. 한국 내에서도 공식 문서에 표기하는 나이와 사석에서 말하는 나이가 다르다. 이 때문에 얼떨결에 외국인 친구에게 한국 나이로 말했다가 억울하게 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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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초 학문의 '무용함'에 대하여
한국은 지난 반세기 동안 세계에서 유래를 찾을 수 없을 정도로 고도의 경제적 성장을 이룬 나라다. 특히 전쟁의 폐허와 거의 제로에 가까운 부존자원이라는, 사실상 아무것도 없는 기반 위에 이뤄낸 성장이라는 점에서 역사적으로도 비슷한 사례를 찾기 어렵다. 한국이 이렇게 빠른 속도로 경제적 기반을 다지고 선진국의 대열에 합류한 원인은 여럿 들 수 있겠지만,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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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필요하지만 유수의 과학 저널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이것
현재 지도하고 있는 학부 연구생들은 몇몇이 팀을 이뤄서 지난 6월부터 각자의 주제로 열심히 연구하고 있다. 제법 그럴듯한 결과를 얻은 팀도 있고, 여전히 헤매는 팀도 있다. 그중 세 명은 플라즈모닉스 신소재 관련 연구를 하고 있는데, 3개월 정도 시뮬레이션과 계산 관련 툴을 익히고 나름의 성과를 얻은 것으로 보인다. 이 팀은 자신들이 계산한 결과가 실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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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없는 그림책
현관문을 열자마자 뛰어 들어온 아이가 집 안을 향해 소리친다. 무슨 일인가, 어리둥절해하는 할머니와 할아버지 사이를 가르고 곧장 내 품으로 달려오는 아이. 머리를 쓰다듬으며 “인사하고 손부터 씻어야지”라곤 하지만, 어서 빨리 뒷이야기를 듣고 싶은 마음은 나도 마찬가지다. 둘째가 태어나고 주말마다 찾았던 도서관을 함께 가지 못하고 있다. 대신 아빠와 함께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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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과 헤어지는 순간
일본에서 전시를 한 적이 있다. 2019년 1월 즈음이었는데, 두 해 전에 만들었던 졸업 작업에 조금 더 살을 붙여 전시하기로 했다. 주먹만 한 스텝 모터 네 다섯 개가 들어가는 기계 설치를 포함한 작업이었기 때문에 출국 전에 몇 날 며칠 납땜과 코딩으로 밤을 새웠다. 여러 나라 여행하는 걸 좋아하는 편이었기에 사람들은 당연하게 내가 일본에 가본 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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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rong>우리 애는 집에서 영어 안 쓰는데요</strong>
“XX이는 집에서 어느 나라 말을 쓰나요?” 아들이 말을 할 줄 아는 나이가 되고부터 만나는 사람마다 이런 질문을 한다. 우리 가족과의 친분 때문에 안부를 묻는 과정에서 이 질문이 나오기도 한다. 아들과의 첫 대면에, 아들이 아닌 나를 쳐다보며, “얘, 한국말 할 줄 알아요?” 하고 물을 때도 있다. 한국을 제외한 다른 나라 사람들은 “영국에 살면 영어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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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호종료아동 출신 바이올리니스트 A의 경우
연주가 끝난 콘서트 장에서 연주가 끝난 클래식 콘서트장은 연주자들의 지인들로 북적거리기 마련이다. 연주자들의 가족, 친구, 친지들은 대개 정장을 입고 기다리다가 연주자에게 꽃다발과 선물을 전달하고는 웃으며 함께 사진을 찍는다. 한참 그곳을 떠들썩하게 만들던 이들이 하나둘씩 차를 타고 사라지는 동안, 한참이 지났는데도 내가 기다리던 A는 나타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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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강사자현부전
- 이규보, 「청강사자현부전」 “알겠지? 차근차근히 해!” 중학생 시절, 영어 시험 보는 날만 되면 어머니는 학교 가기 전 나를 잡아 세우시곤 늘 같은 말씀을 하셨다. ‘겉 넘지 말고 천천히 문제를 읽고 답을 고르라’는 말이었다. 어머니가 이렇게 신신당부하신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나는 영어를 잘했다. 고등학교 땐 물론이고, 중학교 때부터 영어 경시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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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질
- 박지원, 『열하일기』 중 「호질」 언제부터였을까? 기억나지 않는다. 초조할 때마다 손톱을 물어뜯었다. 처음엔 불안해서 물어뜯었는데, 어느새 습관적으로 입에 손가락을 넣고 있었다. 이런 내 모습을 보시고 어머니는 타이르시고, 아버지는 혼을 내셨지만 소용없었다. 어리숙한 오 형제에게 들켜 뛰쳐나간 그 밤이 동리자와 북곽 선생의 은밀한 첫 밤이었을까?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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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풍광 속 소박한 음식문화가 있는 곳
2002년 개봉한 미국 영화 〈나의 그리스식 웨딩〉에서 주인공 일가가 운영하는 그리스 식당 이름은 바로 ‘춤추는 조르바Dancing Zorba’다. 니코스 카잔차키스 소설의 세계적 명성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그리스 문화나 역사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들도 토머스 불핀치가 쓴 신화 이야기나 조르바라는 이름에는 익숙할 것이다. “고전문학이란 제목은 알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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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가지마, 엄마랑 같이 가.
‘엄마, 아기 자?’ ‘엄마, 내가 아기 우유 먹여봐도 돼?’ ‘엄마, 내가 아기랑 놀아줄게.’ ’엄마, 아기는 언제쯤 나랑 놀 수 있을까? 입으로는 엄마를 부르면서 마음은 온통 태어난 아기를 향해있는 아이. 올 봄, 초등학교에 들어간 데다 곧 있으면 7살이 될 테고, 지난겨울 동생이 태어난 덕에 명실공히 진짜 언니가 되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다. 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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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지를 보내며
퇴직 후 오랜만에 윤지를 만난 곳은 아파트 단지 안에 조성된 벤치였다. 그녀는 휴학생 시절 내가 운영하는 카페에서 잠시 아르바이트를 했었고, 대학을 졸업한 뒤에는 얼마간 쉬다가 다시 카페로 돌아와 정규직으로 일했다. 작년에 창업하기 위해서 퇴직할 계획이었지만 코로나 때문에 예정보다 더 오래 우리 공간에 머물렀고, 그러다 최근 여러 가지 사정이 겹쳐 결국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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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버스 식탁
가수 이적의 어머니 박혜란 선생님은 자신의 책에서 ‘정리 안 된 집은 아이의 창의성에도 좋다’는 식의 이야기를 하셨다. 그 집 삼 형제가 그 시절 대표 엄친아로 주변 또래를 꽤나 쪼았을 법한데 말이다. 하나도 아니고 셋이 엄친아인데 그 집 엄마가 저런 말을 하다니! 저 문장 하나로 박혜란 선생님의 책은 내게 경전이 되었다. 눈길 닿는 모든 곳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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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을 거면 내일, 오늘은 안돼
며칠 후가 이삿날이었다. 갖가지 경비 처리로 들숨에 출금, 날숨에 마이너스인데 세탁기가 갑자기 멈췄다. 죽을 거면 이사 다 끝나고 죽어! 오늘은 안 돼! 이미 최대치로 끌어다 쓰고 있는데 세탁기까지 감당할 수는 없었다. 고객센터 페이지에 셀프 점검 방법이 나와있다. 뭐를 열고 얘를 청소하고 쟤를 다시 끼워주랜다. 뭐를 열었다. 시커먼 덩어리를 울컥하고 뱉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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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 오락의 재미를 돋우는 조선시대 먹방
“흥선대원군, 고종 때 했던 판소리랑 정조 때 판소리랑 같은 판소리일까요? 아니란 말이죠. 지금 제가 그냥 즐기는 게 21세기의 판소리라고 생각해요. 갓 쓰고 도포 입고 하는 것도 21세기의 판소리고, 이날치를 이렇게 하는 것도 21세기의 판소리인 거죠.” 〈범 내려온다〉로 유명한 국악 밴드 이날치가 했던 말이다. 다른 나라의 전통예술처럼 판소리 역시 다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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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rong>음식물 쓰레기를 분리수거도 안 하고 버린다고요?</strong>
“엄마, 여기 와서 이거 보세요” 집에 놀러 온 한 꼬마가 우리 집 부엌 쓰레기통을 가리키며 이렇게 외쳤다. 혼자 보기 아까웠던지 자기 엄마까지 불러다 놓고 한바탕 웃는다. 영국에 온 지 며칠 안 되는 지인 가족과 함께 식사 준비를 할 때였다. 집안 정리에 시간을 많이 들이는 편은 아니라서, 누군가 우리 살림살이를 보고 비웃어도 할 말은 없다만, 초등학생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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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풀잎들도 가을 준비를 하나 봐
아이가 젖먹이 시절. 멀리서 울음소리만 들어도 내 자식인 걸 알아채던 때가 있었다. 어른들이 으레 하시는 말씀인 줄 알았는데, 아니다. 겪어보니 진짜였다. 물론 처음부터 귀신같이 알아맞힌 것은 아니고 아이와 함께 뒤척인 수많은 밤을 보내고 난 후에야 왜 우는지, 뭣 때문에 우는지 알게 된 것인데, 육아 6년 차에 접어든 요즘은 애 키우는 짬밥만큼 귓밥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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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탈주민이 남한에서 자주 받는 질문 세 가지
『탈북자, 나를 발견하다』by 이샘 탈북자 이샘이 경험한 국가와 사회, 그리고 ‘나’ 이샘 작가는 15년 전 대한민국 국민이 되었습니다. 탈북 후 중국에서 숨어지낸 지 10년, 4개국을 돌고 돌아 남한에 입국했지요. 신분증을 받아든 날에는 자신을 받아준 이 나라가 고마워서 울었습니다. “더 이상 죄인도, 불법체류자도 아니”게 되었으니 그것만으로도 희망찬 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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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rong>영국에서 적는 출산 일기</strong>
“Painkillers anyone(진통제 먹을 사람 있어요)?” 오늘 밤도 어김없이 그녀가 나타났다. 밤마다 내가 누워있는 병실을 돌아다니며 조산사가 외치는 소리다. 이미 실내 불은 꺼지고 잠든 산모와 신생아도 있기에 작은 소리로 내뱉는 말임에도 나를 불안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간혹 수면제와 얼음팩을 권할 때도 있다. 출산을 한 후 다른 산모들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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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rong>영국에서 만난 젓가락</strong>
재작년 5월, 아들의 친구가 집에 놀러 왔다. 자기들끼리 날짜를 합의해놓고 이틀 전에 내게 통보하는 식이었다. 평상시 서로 왕래하던 사이도 아니고 집도 멀리 떨어져 있어서 J의 부모가 직접 태워줘야 했다. 갑작스러운 주말 일정에 집 청소부터 시작했다. 무엇보다 가장 큰 고민거리는 음식이었다. 영국에서 만난 사람과 식사를 하거나 초대를 받으면, 가장 먼저 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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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rong>동생 데리러 가야 하니, 먼저 나가겠습니다</strong>
초등학교 수업이 끝나는 시간에 맞춰 아들을 데리러 갈 때의 일이다. 맞은편에서 앞뒤로 줄을 지어 걸어오는 청소년들이 보인다. 처음에는 네 명이라 생각했는데, 가까이서 보니 앞줄에 서너 살 정도의 작은 아이가 끼어 일행은 총 다섯 명이다. 남학생 하나가 이 아이의 손을 잡고 있다. 아장아장 걷는 아이의 작은 몸집에 비해 지나치게 커 보이는 옆의 학생은 아이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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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rong>누구나 이방인이 될 수 있다 (시리즈 마지막 회)</strong>
한국에서 본 외국인 1 재작년 가을, 가족과 함께 한국을 방문했을 때다. 첫 목적지는 통영이었다. 영국 집→히스로공항→인천공항→통영→숙소까지 총 24시간가량 소요되는 긴 여정이었다. 인천공항 도착 후 통영행 시외버스를 탔다. 경유지를 여럿 거치는 버스이므로, 목적지에 따라 각기 다른 짐칸에 짐을 실어야 한다는 버스기사의 지시에 따라 우리 가족 모두 각자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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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렌지 주스를 바라보다가
페트병에 담긴 오렌지주스를 마신다. 햇볕이 잘 드는 캘리포니아에서 자란 과즙이 뚝뚝 떨어지는 오렌지를 떠올린다. 냉장고 안에서 차갑게 식은 주스에서는 신선함마저 느껴진다. 신선한 오렌지 주스를 생각하며 오렌지 주스를 만든다. 방금 막 마트에서 사 온 오렌지를 쥐어짜서 과즙을 담거나 과육을 통째로 갈아내어 마셔본다. 오렌지가 가득 갈려 담긴 오렌지 주스는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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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예된 자들의 봄
심보선, 「청춘」 中 푸르른 봄, 청춘은 젊음과 동의어일까? 어느 순간부터 그런 질문을 던져보고는 했다. 흔히 상상하는 자유로운 청춘의 이미지와, 멍든 복숭아처럼 진물을 흘리는 우리네 삶이 정말 같은 것인지 불쑥불쑥 의문이 찾아왔던 탓이다. 찌뿌듯한 어깨를 펴는 게 고작인 어두운 공간에서 하루를 보내는 젊음은, 사람들의 시야에서 밀려나 청춘의 바깥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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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엌의 여신이 펼쳐 놓는 몽환적인 맛과 사랑
2018년 개봉한 애니메이션 영화 〈코코〉를 보면, 무려 4대에 이르는 대가족이 모여 살고 조상을 추모하는 행사가 있다는 점 등에서 멕시코 문화와 우리 문화의 유사성을 발견할 수 있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가족을 이끌고 선대와의 가교 역할을 하는 인물이 여성이라는 것이다. 이는 제사를 주도하며 대를 잇는 주체가 남성으로 한정되는 한국식 가부장제와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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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logue: 일상의 과학, 과학의 재미
호기심은 인간의 본능 중 하나이고, 그래서 과학 공부는 재미있습니다. 과학이란 세상에 대해 우리가 몰랐던 사실을 배워나가는 과정이기에 새로운 과학 지식은 때로 우리의 호기심을 강하게 자극하곤 합니다. 우주가 작동하는 기본 원리를 설명하는 이론, 지구의 수십억 년 역사에 대한 연구, 그리고 세상에서 가장 크거나 작거나 빠르거나 느린 생물에 대한 탐구처럼, 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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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리호, 절반의 성공이 의미하는 것
연구에 몸담은 지 20년이 다 되어 가지만 나는 누리호 개발 프로젝트 같은 국가 주도의 장기 프로젝트에 참여한 경험이 거의 없고, 과제의 일부 브랜치에 약간 발 걸치며 들어간 게 전부다. 그래서 10년이 넘는 장기 프로젝트에 혼을 갈아 넣어 뭔가를 달성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잘 알지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패와 시행착오를 거듭하여, 끝내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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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과 필연
전현우: 물과 관련하여 물리화학자들의 직관을 듣고 싶습니다. 크립키는 과학의 목적은 물에 대해 무엇이 필연적인 것인지 밝혀내어, 우리가 감각을 통해 이미 알고 있었던 것보다 더 나은 지식을 제공하는 데 있다고 주장합니다. 여기서 필연적 진술의 사례는 “물은 H2O다”와 같은, 어떤 물질 명사와 그 미시 구조 사이의 동일성 문장입니다. 또한 여기서 필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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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탄재가 진화하면 인덕션이 된다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연탄재가 더 뜨거울까, 사용 직후의 인덕션이 더 뜨거울까. 어릴 때 연탄을 갈아봤고 지금 인덕션을 쓰고 있는 사람의 경험치로 당연히 후자다. 후자여도 이 시에는 여전히 짧고 강하게 압도된다. 내 아이들도 압도될까? 연탄재를 실물로 보지 못했는데? 아이들에게는 꺼진 인덕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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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빈약해지고 아이는 풍성해졌다
큰맘 먹고 몇 시간 검색을 한다. 몇 개 스크랩을 한다. 조심스럽게 내민다. 그들이 하는 대답은 똑같다. “손님, 이건 드라이입니다. 펌으로 나올 머리가 아닙니다” 드라이어는 정말 나와 가까워질 수 없는 것인가. 헤어드라이어를 어학사전에서 찾으면 “젖은 머리를 말리는 기구. 찬 바람이나 더운 바람이 나오며 머리 모양을 내는 데도 쓴다.”라고 나온다. 이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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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죽어도 되는데 왜 안 죽니
쓰던 세탁기에 건조기를 설치하려면 앵글을 따로 짜야 한다. 세탁기가 명을 다하면 앵글도 같이 쓰레기가 된다기에 안 샀다. 세탁기에게 이사 비용 할부 끝날 때까지만 버텨달라 읍소했는데 읍소를 너무 했는지 무려 사계절을 한 바퀴 돌고서도 여름까지 왔다. 이리도 짱짱할 일인가. 이젠 죽어도 되는데 왜 안 죽니. 건조기 사용자가 공통으로 찬양하는 건 화장실 수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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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중칠우쟁론기
- 작자 미상, 규중칠우쟁론기閨中七友爭論記 “헐,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어? 야, 나 가야 돼. 빠이!” 자취하는 친구 집에 놀러 간 적이 있다. 그때 우리는 대학생이었고, 나는 기숙사에 살았다. 자취방에서 저녁으로 콜라와 치킨을 먹고 한참을 떠들다 보니, 가야 할 시간이 지났다는 걸 알았다. 학교마다 다르겠지만 내가 다니던 학교 기숙사에는 점호가 있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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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야, 중요한 건 균형이야
- 성간成侃 , 「용부전」慵夫傳』 근면과 성실이 좋은 인생의 표준이라고 배우던 때가 있었다. 열심히 공부하고 일하는 사람은 좋은 사람이고, 놀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게으르고 나쁜 사람이라고 어렸을 적 읽었던 「개미와 베짱이」는 말해주었다. 언뜻 보면 용부전 역시 그와 같은 이야기인 것 같지만, 아니다. 부지런함을 대표하는 근수자가 게으름을 상징하는 용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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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리어프리가 일상인 사회
오랜만에 민선이를 만났다. 스승의 날이 되면 인사차 학교로 찾아오거나 카톡으로 안부를 남기곤 했는데 이렇게 바깥에서 만난 건 근 2년 만인 듯했다. 노랗게 탈색한 흔적이 남은 짧은 커트 머리가 제법 잘 어울렸다. 젊은이의 자유로움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뭘 먹을까?”라는 질문에 1초의 망설임도 없이 민선이는 예전에 함께 갔던 곱창집을 떠올렸다. 제자와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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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처럼 리듬을 타고 노래하는 여우원숭이
여우원숭이는 오직 아프리카의 마다가스카르 섬에서만 서식하는 영장류의 일종입니다. 뾰족하게 튀어나온 입과 긴 꼬리가 여우를 닮아서 여우원숭이라는 이름이 붙었지요. 마다가스카르 섬에 100여 종의 여우원숭이들이 살고 있다고 알려져 있는데, 가장 큰 종인 인드리 여우원숭이도 최대 10kg에 불과할 정도로 작은 동물입니다. 종마다 생김새는 제각각이지만 대체로 귀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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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투성이 기사가 그려내는 희극적 여정
어린이, 청소년 필독서’라는 이름으로 세계 명작을 축약해 내놓은 작품들은 서점가에서 흔히 볼 수 있다.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셰익스피어의 희곡은 찰스와 메리 램 남매의 이야기책 형태가 더 친숙하다. 그리스 로마 신화는 토머스 불 핀치 버전이나, 아예 만화로 처음 접했다는 이들이 많다. 이런 축약본들은 방대하고 어려운 내용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는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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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 버티게 해준 건 좀비였다
에디션 『날 살린 좀비』는 인문서와 산문집, 그림책을 만드는 yeondoo 출판사와 함께합니다. 『날 살린 좀비』by 정명섭 출판사 책소개 좀비 소설가 정명섭에게 좀비는 어떻게 보면 ‘날 살린 존재’라고 할 수 있다. 좀비는 오랜 무명의 작가 생활 동안 자신에게 휴식 같은 존재가 되었다. 사람이 정신적인 안정을 찾는 건 대략 두 가지다. 하나는 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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折り紙:오리가미
아이의 손에 들린 종이학 한 마리. 색종이의 1/4 크기인 학종이를 꾹꾹 눌러 접은, 날개와 허리가 곧게 뻗힌 예쁜 학이다. 맞아, 그렇지… 요맘때 한참 많이 접었던 종이학. 100마리 1,000마리를 접겠다고 밤을 새워가며, 때로는 책상 아래 손을 숨기고 꼬깃꼬깃 친구들과 함께 나눠 접었던 기억이 나에게도 생생하다. 몇 해 전만 해도 코 묻은 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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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에 온 걸 환영해 - 1
서른네 살의 루이스는 베트남에 온 지 6년이 조금 넘었다고 했다. 베트남에 살기 시작한 지 6개월 정도 되었다고 말하니 그는 나를 신입생 정도로 여겼다. 베트남어를 유창하게 하지 못하는 데다가 사교성도 좋지 못해서 특별히 친구를 사귀지 못하고 있던 중에 우연히 만난 친구였다. 그 역시 나를 다른 사람들에게 ‘one of my friends’ 정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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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립준비청년, 그들에게 진정 필요한 것은…
‘그곳’은 도시의 보이지 않는 곳이었다. 그날따라 일정이 왜 그리 많았는지, 인터뷰 장소에 가기 전까지 거쳐야 할 외부 일정이 세 개나 되던 날이었다. 이 특별한 인터뷰를 바쁜 날 하고 싶진 않았다. 그러나 ‘그곳’의 방문 인터뷰는 몇 번 퇴짜를 맞은 터라 내 일정을 고려한 시간 맞추기란 사실상 어려웠다. ‘그곳’을 찾아가는 길, 아침부터 여기저기 도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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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고 잠꼬대하는 문어
잠꼬대하는 강아지를 본 적 있으신가요? 강아지들은 자다 말고 뭔가 먹는 시늉을 하거나, 마치 달려가려는 듯 다리를 움찔거리며 잠꼬대를 합니다. 작게 소리 내어 짖기도 하고요. 언뜻 보면 사람처럼 꿈을 꾸는 것 같기는 한데 깨워서 물어볼 수도 없으니 정말로 꿈을 꿨는지, 꿈을 꾼 게 맞는다면 무슨 내용이었는지 확인하기는 어렵지요. 사람은 잠을 자면서 ‘렘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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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은 아니지만 그럭저럭 살만한
결혼 14년 차, 큰아이가 열 살, 둘째 아이가 네 살일 때 독일에 왔어요. 2016년 7월 28일, 한국의 무더운 여름을 뒤로하고 열세 시간을 날아 도착한 브레멘 공항은 공간의 낯섦만큼이나 한기가 느껴졌어요. 일곱 시간의 시차가 그저 얼떨떨했죠. 그래도 가족이 흩어지지 않고 함께여서 견딜 만했던 것 같아요 6개월 전에 미리 부친 살림살이와 별도로 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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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버스, 그 이후
넷플릭스에 시대의 명작 영화 〈13층〉(조세프 루스, 1999)이 걸려 있기에 애들을 재우고 오랜만에 아내와 함께 감상했다. 역시 다시 봐도 명작이다. 22년 전에 개봉한 영화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플롯이 훌륭하고, 무엇보다 배우들의 연기가 일품이다. 이 영화를 본 분이라면 잘 알겠지만 다층위의 세계가 씨줄과 날줄처럼 오버랩된 상황에서 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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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에 온 걸 환영해 - 2
「베트남에 온 걸 환영해 - 1」에서 이어지는 글입니다. 친애하는 루이스, 웬만하면 이 글들을 읽지 않길 바라지만, 그건 단순히 당신 이름이 거론됐기 때문이다. 당신 이름이 언급된 글을 썼다는 것에 당신은 화가 날지도, 우쭐해할지도 모르겠다. 당신은 내가 글을 쓰거나 끊임없이 작업할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 정도는 알았을 것이며 심지어 뮤즈가 되고 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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핑계가 무덤이 될 때
- 임제林悌, 「서옥설鼠獄說」 “다음부턴 똑같은 실수 반복하지 마, 그럼 돼. 수고해.” “넵, 감사합니다!” 왜 그랬을까… 실수를 했다. 수백 번은 아니었어도 몇십 번은 다시 본 것 같은데, 업무용 문서에 오탈자를 냈다. 회의 때 모두가 볼 문서였다. 설상가상으로 그걸 찾아낸 건 당사자인 내가 아니라 우리 부서 S 부장이었다. “○ 페이지, △△△인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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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완전한 의식으로 바라보는 비일상적 일상의 시
『파수』by 강전욱 강전욱 시인의 『파수』는 북이오 에디션 시리즈의 첫 번째 시집입니다. 강전욱 시인은 2019년 문예지 《시와반시》 소시집 공모를 통해 작품 활동을 시작했고, 올해 4월 첫 시집 『우리는 함께 이 소설을 이겨 내기로 했다』를 출간했습니다. 『우리는 함께 이 소설을 이겨 내기로 했다』가 밀실에 유폐된 자의 운명과 고통, 자아에 대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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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 문제를 푸는 말이 있다고?
여우원숭이도 리듬을 타고, 문어도 꿈을 꿉니다. 과학자들이 연구를 거듭할수록, 인간만이 갖고 있을 것 같은 ‘고등’한 능력을 갖춘 동물이 계속 발견되지요. 생각해 보면 당연합니다. 인간도 물리학과 생물학의 법칙을 따라 진화한 생물이니까요. 적절한 환경과 절박한 필요가 만나 충분히 오랜 시간이 흐른다면 인간의 모든 능력은 다른 생물에게서도 진화를 거쳐 나타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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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티앙 자크가 들려주는 고대 이집트의 삶
구약성서 「창세기」 속 요셉은 이집트 파라오의 신임을 받고 곡식을 빌리러 온 형제들을 정착시킨다. 『일리아스』에 등장하는 메넬라오스와 헬레네는 트로이 전쟁이 끝난 후 이집트에 잠시 머물면서 극진한 대접을 받았다고 한다. 그런가 하면 절세 미녀였다는 이집트 여왕 클레오파트라는 나귀 젖으로 목욕을 하고 진주를 와인에 녹여 마시는 사치를 즐겼다. 이처럼 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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캡슐 커피 회사가 이 글을 싫어할까요?
우리 집엔 아홉 살 먹은 캡슐 커피 기계가 있다. 세상에서 제일 작은 카페는 작아도 너무 작아서 성에 안 찼다. (공유 님, 미안해요. 카누가 지겨웠어요) 귀여움과 환장함의 콜라보 시절, 그러니까 큰애는 말이 폭발적으로 늘어서 나랑 말싸움이 시작되고 둘째는 혼자 뒤집어놓고 수습 못해서 앵앵거리던 그런 시절. 하루 세 끼는 못 먹어도 세 캡슐은 뽑았다. 캡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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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시는 자, 그 무게를 견뎌라
척, 갖다 대면 와라락, 나오는데 동그랗고 예쁘단다. 투박한 네모 모양이 아니라서 더 대접받는 느낌이라나. 신형 정수기 얘기다. 우리 집 정수기는 얼음은커녕 시원한 물도 안 나온다. 시원하게 마시려면 물통에 물을 채워서 냉장고에 넣어야 하고, 얼음 트레이도 채워져 있는지 확인해야 한다. 집에 있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아이들의 새로운 모습을 봤다. 얘네는 ‘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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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생도 싸이를 한다
전 국민 씨족사회화 및 서퍼화를 이끌던 싸이월드. 가족도 친구도 아닌데 1촌이면 그의 거친 생각과 눈빛까지 짐작할 수 있던, 손발가락이 반의반으로 쪼그라드는 마법이 횡행하던 그곳. 현 40대 중 ‘싸이월드 갬성’에서 자유로운 사람이 있을까 싶다. 2주 전 저녁, 09년생, 10년생, 12년생의 술래잡기가 모니터 앞에서 시작됐다. 도스 시절 ‘페르시아 왕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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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오랫동안 고향에 가지 못할 줄이야
이렇게 오랫동안 고향에 가지 못할 줄은 몰랐어요. 고국을 떠난 지 내년 여름이면 벌써 6년, 한국에 다녀온 지는 4년이 넘었어요. 코로나가 국경을 봉쇄한 탓도 있지만, 4인 가족이 움직이는 데 드는 비용이 솔직히 가장 큰 이유죠. 한국에 살면서 유럽 여행 한 번 하기가 어려운 것처럼, 독일 살면서 한국에 방문하는 것도 생각보다 쉽지 않아요. 지인들이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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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늦게, 김에게 안부를 묻는 일.
일 년 남짓 베트남에 있는 동안 두 명의 사람이 세상을 떠났다. 아는 언니 하나, 아는 오빠 하나. 알게 된 장소도 시간도 다른 두 사람이었지만 마지막 기억은 먹고 마시며 웃는 장면으로 남았다. 예상 가능한 죽음은 드문 일이지만 유독 갑작스럽게 느껴졌다. 김의 죽음이 기억에 강하게 남은 것에는 여러 이유가 있었다. 그녀는 5월 8일 어버이날 스스로 세상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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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하는 인공지능, 어디까지 왔을까
요즘 인공지능 연구의 최전선에는 자연어처리Natural Language Processing, NLP 알고리즘이 있습니다. 한국어나 영어, 중국어처럼 인간이 ‘자연스럽게’ 발달시킨 언어를 사용하는 컴퓨터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분야지요. 이제는 일상적으로 사용하게 된 애플 시리나 삼성 빅스비 같은 AI 비서 서비스, 파파고 같은 구글 번역기, 더 넓게는 심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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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물건이 아니다.
- 이옥, 「각로선생전」 “안녕하세요, 어떻게 오셨나요?” “핸드폰 바꾸고 싶어서요.” 며칠 전부터 핸드폰이 이상했다. 그럴 만했다. 진즉 약정이 끝났고, 햇수로 4년째 녀석을 굴리고 있었다. “오래 쓰긴 했지?” 직장 동료와의 대화를 듣기라도 했던 걸까? 제발 다른 핸드폰으로 갈아타라는 듯 못 쓸 정도로 동작이 느려지기 시작했다. 내일이면 주말, 핸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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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틀리지’ 않은, ‘다른’ 것을 향한 희망의 꽃
LGBT 사회운동을 상징하는 무지개 깃발은 빨강, 주황, 노랑, 초록, 파랑, 보라색으로 성적 지향의 다양성을 존중하자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인류가 추구하는 가치는 무지개처럼 서로 다른 빛깔을 지닐 수 있다는 것이다. 나이지리아 출신의 작가 치마만다 은고지 아다치에Chimamanda Ngozi Adichie는 2003년 출간된 첫 장편 『보라색 히비스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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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간신히 아무렇지도 않을 무렵
프랑스 철학자인 롤랑 바르트는 그의 책 『애도 일기』에서, 엄마가 자신을 부르던 “나의 롤랑, 나의 롤랑” 하는 목소리가 엄마가 돌아가신 후 환청처럼 계속 따라다닌다고 했어요. 집 곳곳에서 엄마의 손길을 느낄 때마다 바르트는 그리움에 사무쳐요. 어딜 가나 엄마와 함께했던 추억을 떨칠 수 없고요. 소중한 이가 곁에 없는 고통과 슬픔이 어떤 것인지 그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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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모 평가 AI, 디스토피아는 이미 여기 있다
테드 창의 SF 소설집 『당신 인생의 이야기』[1]에는 「외모지상주의에 관한 소고: 다큐멘터리」라는 단편이 실려 있습니다. 소설 속 인류는 신경과학 기술의 발달 덕에 인간의 뇌에서 외모의 아름다움을 인식하는 회로만 선택적으로 끌 수 있는 기술을 얻게 됩니다. 아름다움을 뜻하는 접두사 칼리calli, 인식불능 증상을 뜻하는 단어 아그노시아agnosia를 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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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사람들은 그렇게 영어 공부를 열심히 하는데 왜 영어를 못할까?
오늘도 많은 사람들이 영어학원을 찾는다. 전국의 학원가엘 가보면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영어를 배우러 다니고 있다는 데 놀란다. 그야말로 남녀노소를 불문하고다. 그런가 하면 책방의 외국어 코너에는 수십 종의 영어 교재들이 널려 있다. 불과 며칠 만에 토익 듣기, 읽기를 끝내고 단기에 토플 스피킹과 라이팅 실력을 획기적으로 올려준다는 영어 시험 관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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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프심보다 부러지기 쉬운 이것
- 유본학, 「오원전」 “샤프심보다 부러지기 쉬운 게 뭔지 아세요? 초심이에요.” 팟캐스트를 듣다 뼈를 맞았다. 글을 쓰다 부러뜨린 샤프심보다, 어쩌면 부러진 초심이 더 많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일까, 초심을 잃어버리고 교만에 빠졌다가 결국 버려진 오원이 우습다기보다는 가여웠다. “한 달만, 딱 한 달만 한번 해보시죠.” 바쁘다는 핑계로 체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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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안뇽"부터
저녁 무렵 K가 찾아왔다. 그냥 안면만 있는 사이여서 내가 조금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나 보다. 그녀는 살짝 얼굴을 붉히며 이렇게 말했다. “어떻게 하면 영어를 잘 할 수 있나요?” 그러니까, 얼마 전 미국인들과의 회의 때 내가 참석한 걸 보고 영어를 꽤 잘하는 사람으로 생각한 모양이다. “어느 정도 수준인데?” “수준이라고 얘기할 것도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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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라리 영어를 모르는 게 유리하다
“안녕하세요?“ 며칠 뒤 K는 다시 나를 찾아왔다. 물론 빈손이 아니었다. 자연스럽게 이야기는 다시 그 노하우로 넘어갔다. “제가 곰곰이 생각을 해 봤는데요, 아무리 생각해 봐도 알 수가 없어요. 머릿속이 이미 차버린 어른들이 아기들처럼 그냥 들어서 배울 수도 없을 것 같고, 영어로 된 문장을 모국어처럼 사전도 찾지 않고 그냥 읽어낸다는 게 도대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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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밍업
영어를 10년 넘게 공부해 온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영어는 공부하는 게 아니라고 하면 당연히 이해가 잘 안될 것이다. 아무리 여러 가지 이론적인 이야기를 해 주어도 그건 그때뿐, 자신의 생각으로 다시 돌아가면 흔들리기 십상이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초등학교 3학년부터 배우는 영어는 시작부터가 암기이다. 알파벳에서부터 발음 기호, 초급·중급·고급 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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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 만에 토익 100점이 오른다
제1 단계 훈련 과정 “이게 1단계의 전부예요?” “응. 간단하지? 그렇지만 이것만 해도 아마 토익 점수가 100점은 뛸걸?” “어머, 정말요? 음, 그런데 왜 하루를 쉬어야 하죠?” “그건 언어가 사람들의 머릿속에 저장되는 특수한 메커니즘 때문이야. 내가 독일의 어느 병원 대기실에서 읽었던 의학 보고서에 의하면, 사람의 뇌는 언어를 받아들일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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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기존 학습법이 실패할 수밖에 없는 이유
1. 문법 공부를 꼭 해야 할까? 10대에서부터 50대 초반에 이르는 우리나라 사람들 중에서 『정통 종합 영어』 혹은 『성문 종합 영어』라는 책을 모르는 이는 아마 없을 것이다. 혹자가 말하기를, 그 책은 적어도 우리나라에서는 성경 다음으로 가장 많이 팔린 책이라고 한다. 그만큼 우리나라 영어 학습 세상에서 문법을 중시해왔다는 증거다. 묘한 것은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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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을 향한 인간의 집착은 어디까지인가
해외여행이 막 자율화된 시절, 중장년층 남성들의 이른바 ‘보신 관광’이 세간의 구설에 오른 적이 있다. 동남아시아 등지에서 뱀이나 전갈 같은 야생동물을 먹다가 현지 당국에 적발된 일이다. 심지어 “바퀴벌레가 정력에 좋다고 소문이 났다면 진작에 멸종됐을 것”이라는 우스갯소리도 있다. 하지만 굳이 따지자면 이른바 ‘정력제’의 역사는 옆 나라 중국이 훨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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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둡고 긴 유럽의 겨울을 환하게 보내는 방법
“유진